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청림출판
요즘 기억력이 없어지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건 내가 나이 먹어 생기는 현상인줄 알았다. 이 책의 작가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에 노화보다 더 심각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인터넷이다. 뉴스 하나를 클릭 한 뒤, 연관 검색어를 살피고, 링크된 다른 곳에 들어가보고, 동영상을 보다가 그 배경음악을 듣고 마지막엔 웹툰이나 엉뚱한 블로그에서 끝난 경험을 우리는 매일 매시간 매분 하고 있다. 처음에 뭘로 시작했는지는 까마득히 잊혀지고, 내가 뭘 찾으러 들어왔는지도 까먹고, 몇단계 전에 본 뉴스 내용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런 습관은 독서를 할 때도, 글을 쓸 때도, TV를 볼 때도 따라온다. 그러니 검은 글자만 박힌 책장은 한두 장 읽는 것도 힘들어지고, 이거 했다 저거 했다 주의산만하게 신경이 분산된다. 사람들은 집중력이 분산되면 스트레스를 받고, 깊은 사고를 하지 못하게 되며, 기억 역시 잘 못하게 된다.
내가 회사 다닐 때 광고 만들고 있는데, 기사쓰라고 하면 짜증내고, 보고서 쓰고 있는데 교정 봐달라 하면 짜증냈던 것도 집중력을 방해받았기 때문인 것 같다.
뇌는 신경으로 이루어져 있고, 신경은 가소성이 있다. 즉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에 따라 뇌가 변형된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택시운전수들은 시내 지도가 머릿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일반인의 뇌보다 공간지각하는 부분의 뇌신경이 발달해 있다. MRI를 찍으면 그 부분의 크기가 다르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터넷에 얽매여 살수록 얇고 너르게 생각할 뿐 깊은 사고를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뇌구조 자체가 바뀌기 때문에. 세상의 진보는 깊은 사고에서 비롯되는데 이제는 그런 사고가 불가능해지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하긴 책조차도 사람의 기억력을 아주 많이 퇴화시켰다고 한다. 문자가 없었을 때는 들은 이야기나 정보를 전부 머릿 속에 기억하고 있어야 했는데, 문자가 생기고 책을 들고 다닐 수 있게 되면서 책을 찾으면 되니까 기억을 놓게 되었다고. 지금은 인터넷에 다 있으니까 거의 기억하지 않게 되었다. (네비의 탄생 이후 길을 기억하지 않게 된 운전자나, 핸드폰 탄생 이후 친구 번호를 기억하지 못하게 된 우리를 보라!)
몇년 전에 김영하가 '멀티미디어 시대의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강연을 할 때 하이퍼링크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고, 그것이 독서의 집중력을 방해한다는 이야기도 했었는데, 이 책에도 그에 대해 상세하게 나와 있다.
내용으로 보면 새로운 것을 알게 해주고, 깊이 있이서 좋은데, 책이 너무 무겁고, 번역도 별로다. 완전 직역을 해놔서 뭐라는지 내가 다시 의역해야 할 판이다. 작가도 너무 의욕이 앞서서 책의 역사, 각종 통계와 실험에 대해서 모은 자료를 다 나열하고 있는데, 그런 부분들도 지루하다. 어찌나 각주가 많이 달려 있는지, 인터넷에 대해 반대하는 글을 쓰면서 글쓰기 형식은 딱 인터넷형 글쓰기다. 이런 아이러니라니!
일독을 권하고 싶지만, 번역과 각주의 벽을 각오하고 읽어야 할 듯.
마지막에 구글의 이야기를 보며 무서워졌다. 예전에 <전자책의 충격>을 읽었을 때도 구글이 전세계 도서관의 책을 스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는데, 이번에 다시보니 진짜 무서워졌다. 구글 CEO가 하는 말도 너무 천박해서 들어줄 수가 없고....정말 무서워졌다. 더불어 내가 책 속의 어떤 구절들을 베껴서 이렇게 인터넷에 걸어놓는 것에 대해서도 회의가 들었다. 맥락이 무시된, 분절로 쪼개진 글만으로는 작가의 주장을 다 알 수 없는데, 사람들은 이걸 보고 그 책을 읽었다고 느낄 것 아닌가? 걱정된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건 스마트폰을 사야할까 말아야할까 고민스러워서였다. 스마트폰을 사서 2년만 쓰다가 다시 피처폰으로 돌아가면 되겠거니 막연히 생각하고 책을 읽었는데, 그렇게 2년을 쓰고 나면 이미 나의 뇌는 거기 맞춰져서 변형된다. 신경가소성이란 탄력성이 아니기 때문에 강력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돌아오기 힘들다. 즉 나는 지금 이 강을 건너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입장에 처해있는 것이고, 건넌 후에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책을 읽고 해답을 얻기는커녕 고민만 두배로 늘었다. ㅠ.ㅠ
밑줄긋기
9 _ 세상과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창으로서의 대중 매체는 우리가 보는 것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결정하고, 나아가 개인과 사회의 정체성을 바꾸어 놓는다. 맥루한은 "기술의 영향력은 의견이나 개념수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오히려 이 영향력은 "인식의 방식을 꾸준히, 아무런 저항 없이" 바꾸어 놓는다는 것이다.
61 _ 다시 말하자면 유연하다는 것이 곧 탄력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의 신경회로가 고무줄처럼 이전 단계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이 신경들은 변화된 상태를 유지하며, 새로운 형태가 더 낫다는 보장도 없다. 나쁜 습관은 좋은 습관만큼이나 빨리 우리의 뉴런을 파고든다.
133 _ 우리가 인터넷에서 보내는 시간은 원래 텔레비전을 보는 데 소요되던 시간에서 비롯되었다고 흔히 짐작한다. 하지만 조사결과는 정반대다. 미디어 활동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는 인터넷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텔레비전 시청 시간은 예전과 같은 수준에 머물거나 혹은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188 _ 십자말풀이를 하면서 책 읽기를 시도해보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인터넷에서 지적 활동을 할 때의 환경이다.
198 _ 우리가 관심을 전환할 때마다 뇌는 스스로 다시 방향을 잡아야 하고 우리의 정신세계에 더 많은 고통을 가한다.
236 _ 구글은 정보가 공짜이기를 바란다. 그 이유는 정보의 비용이 하락할수록 사람들은 컴퓨터 스크린에 더 많은 시간 동안 시선을 고정하게 되고, 그러면 회사의 수익도 상승하기 때문이다.
243 _ 책을 온라인에서 찾고 검색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책을 훼손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책장을 따라 흐르는 본문의 응집력, 이야기와 논지의 선형성이 희생되고, 고대 로마 장인이 최초의 고문서를 만들 때 함께 꿰어놓은 것들이 풀어지는 것이다. 고문서의 의미의 일부였던 고요함 역시 희생된다.
298 _ 지적 기술은 "일단 구조와 완벽하게 통합되고 다양한 주요 하부 구조와 얽히게 되면 구조 내에서 없어서는 안될 요소가 되며, 이 때문에 전체 구조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하지 않는 한 제거될 수 없다." (와이젠바움)
301 _ 우리가 도구와 맺는 긴밀한 관계는 쌍방향적이다. 기술이 우리 자아의 확장인 것처럼 우리 역시 기술의 확장이 된다. 목수가 망치를 손으로 집을 때 그는 손을 이용해 망치가 할 수 있는 작업만 할 수 있다. 손은 못을 박거나 뽑는 도구가 된다. 군인이 쌍안경을 눈에 가져다 댈 때 그는 렌즈가 볼 수 있도록 허용하는 대상만 볼 수 있다. 그의 시야는 넓어지지만 가까이 있는 것은 볼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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