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읽고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 엄마 박완서의 부엌
호원숙 | 세미콜론

도서관에 예약도서를 찾으러 갔는데, 사서가 이 책을 찾지 못해 한참 헤매다가 나중에는 예약서가 말고 다른 서가까지 다 훑는 일이 벌어졌다. 내가 볼 때는 <아몬드> 옆의 저 얇은 주황색 책등이 틀림없이 이 책이지 싶은데, 그 앞을 몇번을 지나가면서도 찾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내 손에 온 책은 그 주황색 책이 맞았다. 왜 그렇게 못찾았나 하고 봤더니, 책등에 '엄마 박완서의 부엌'이 더 잘 보이도록 인쇄되어 있어, 그 아래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은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세미콜론의 띵 시리즈는 그렇게 두 개의 제목을 가지고 있어 사서들이 항상 곤혹스러워하는 것 같다.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전의 띵시리즈들도 사서들이 한참 찾아서 준 기억이 난다.
이 책은 박완서 작가의 첫딸인 호원숙 작가가 엄마와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부엌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책이다. 나는 박완서 작가가 우리 엄마 나이인 줄 알았는데, 엄마는 오히려 호원숙 작가와 가까운 나이다. 그러니 이 분이 쓴 민어나 대구, 족발 이야기는 이제 제법 나이가 든 내게도 경험하지 못한 이야기들이다. 생각해보니 내 손으로 생선대가리 한번 따본 적 없는 사람이라, 일일이 손이 가는 성가신 요리들을 가뿐하게 해내는 박완서와 호원숙을 감탄의 마음으로 읽게 된다. 민어 손질을 하는 할머니의 손과, 그 장면을 보고 있는 엄마의 눈이 자기 손으로 옮아 붙었다는 표현이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엄마의 글 속에서 다시 찾아보게 되는 행운에 대해 쓸 때는 부럽다. 소설가 엄마를 둔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 올해가 박완서 작가 돌아가신지 10주기라고 하는데, 한때 열심히 읽었던 그녀의 소설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어졌다.
아차산 기슭의 늙은 부부 이야기는 에세이 전체가 따라 써보고 싶을만큼 좋았고, 호박잎이나 머위잎에 쌈 싸먹는 이야기, 맑아서 몽고간장을 더 좋아한다는 이야기, 베이커리에 미쳐서 한동안 가스가 새는 오븐에서 이빵 저빵 구워낸 이야기들도 재밌었다.
나도 외할머니의 갈치미역국과 젓국다시마 무침, 할머니의 늙은호박전, 엄마의 카스테라와 오보로 김밥 등 이런 이야기를 쓰자면 책 한권 분량은 나올 것 같은데, 참 얼마나 많은 사랑을 먹고 자랐는지....

밑줄긋기
14 _ 백합은 꽃이 하얗다는 뜻이 아니라 하얀 뿌리가 비늘처럼 켜켜이 모여 있어 붙은 이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25 _ 유튜브에서 흑설탕으로 잼을 만드는 것도 보았는데 그러는 걸 말릴 능력도 생각도 없지만 잼을 만드는 데 흑설탕은 적당하지 않다. 흑설탕에는 특유의 향이 있기 때문에 과일잼의 색깔과 향이 엉망이 된다.
36 _ 고춧가루를 고운 체에 걸러 물을 내리면 발간 나박김치 국물이 된다. 뭐가 그리 다르겠냐마는 고춧가루를 그냥 넣으면 음식이 천박해 보인다. 별것 아닌 듯해도 음식에서도 미묘한 차이가 좌우하는 것이 있다.
55 _ 쌀가루를 두 손으로 비비면서 체에 거르던 그 손이야말로 기도하는 손이었다.
100 _ 자세히 보면 신기하지 않은 생물이 없다.
100 _ 그까짓 맛이라는 것, 고작 혀끝에 불과한 것이 이리도 집요한 그리움을 지니고 있을 줄이야. (박완서)
111 _ 나는 정확하게 만 일곱 살이 되기 전의 기억을 꽤 많이 하고 있는 데다가, 훗날, 사실은 먼 훗날에 어머니의 글에서 그 기억의 편린을 맞추어볼 수 있는 것도 나에게는 특별한 행운이다.
147 _ 그럴 때는 마음이 개운하다고 해야 하나. 음식을 버릴 때보다 남긴 음식을 거두어 먹을 때 떳떳하고 알뜰함에 스스로의 만족감이 분명히 있다.

나의 조선미술 순례 읽고

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반비

<나의 서양미술순례>를 썼던 서경식 선생님이 드디어 한국 미술에 관한 책을 냈다. 머리말과 원고 내용을 보면 원래 '우리/미술 순례'라는 제목으로 내려다가 바뀐 것 같다. 마케팅적 측면에서는 지금 제목이 낫고, 다만 저 빗금을 통해 디아스포라, 경계인, 남한과 북한을 넘나드는 뜻은 충분히 알겠다. 
이 책에는 신경호, 정연두, 윤석남, 이쾌대, 신윤복, 미희, 홍성담, 송현숙 화가가 소개되어 있다. 살아있는 분들은 직접 인터뷰를 했고, 돌아가신 분들은 자료를 통해 썼다. 내가 잘 아는 작가는 윤석남과 신윤복 뿐이라 모든 챕터를 흥미롭게 읽었다. 신경호와 홍성담은 5.18때 광주에 있었던 분들이고, 이쾌대는 월북했으며, 송현숙은 간호사로 독일에 갔다가 화가가 된 케이스다. 전남대 미대 교수로 있는 신경호와의 인터뷰를 통해, 오윤의 그림이 디에고 리베라 등 멕시코 벽화미술에 영향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광주비엔날레가 "이거 줄테니 5.18에 대해 입다물어라"는 식으로 관에서 던져준 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정연두가 올해의 작가로 정해졌을 때 국현에 가서 전시회도 보고, 이후에도 이런저런 전시에서 자주 본 작가인데, 이렇게 웃긴 분인지 몰랐다. ㅋㅋ 미대 간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재떨이를 날렸고, 그 아버지가 골프 사업을 하다 망해서 입학 당시 골프바지 80벌을 주시는 바람에 대학 다니는 내내 골프바지를 입고 다녔다고. 운동권처럼 장발+야상+운동화 다 갖췄는데, 바지가 청바지가 아니라 알록달록한 골프바지여서 경찰들에게도 찍히지 않았다고. ㅋㅋㅋ 이런 그를 보며 크게 싸우지 않고도, 조용히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요즘 젊은 세대의 특징을 알게 되었다는 서경식 선생의 글도 좋았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손을 가만히 못두는 스타일이었는데, 수업시간에 샤프로 분필을 깎아 토르소를 만들었고, 한 학년이 끝나면 서랍 안에 분필조각이 가득해 친구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예술가란 이런 사람이지' 했다.
윤석남 선생과 나눔의 집 윤석남 선생의 작품 앞에서 인터뷰한 꼭지도 좋았다. 윤석남이 버려진 나무껍질에 나이 든 여자를 그리는 것에 대해, 서경식이 유년시절 자신을 쓰다듬어주는 외할머니의 마른 나무껍질 같던 손을 떠올리는 부분 좋았다. 나는 최근 윤석남의 핑크룸을 봤는데, 그 전에 블루룸이 있었나보다. 블루룸의 주인공은 바리데기였다. 나는 바리데기가 아버지한테 버려지고서도 아버지를 위해 약을 구하려고 원치도 않는 결혼을 하고 결국 약을 구해오는 이야기가 속터져 죽을 것 같았는데, 윤석남 선생은 바리데기가 끝내 아버지의 특혜를 거부하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아...그렇게 볼 수도 있구나....
이쾌대의 '군중'을 일본 전쟁화와 연관지어 쓴 글은 지루하기도 하고 동의도 안되어 재미가 없었고, 다만 이쾌대의 '무녀도'에 나오는 여자들의 검은 눈동자가 요즘 '스위트홈'이나 '조선구마사' 같은 드라마에 나오는 좀비의 눈과 비슷해 인상적이었다.
홍성담이 태어난 하의도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조선 어느 왕의 처남이 난봉꾼이라 그에게 왕실 토지였던 하의도를 내리고 거기서 살라며 유배를 보냈는데, 나중에 그 자손이 일본인에게 섬을 통째로 팔아버린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조선의 독립은 하의도 주민에게는 땅의 소유권 문제였다는 것, 광복 후엔 또 미군이 점령해 세금을 거두고, 일제 부역인들이 여전히 떵떵거리며 미군에 붙어 먹었고, 결국에 7.7항쟁이 일어났는데, 그게 미국과 총격전을 벌인 최초의 사례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처형당한 부역자 가족이 바다에 던져졌고 그해 잡은 물고기는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는 부분을 읽으며, 4.3때 밭에 묻힌 사체가 너무 많아 그해 감자 농사가 풍년이었다는 구절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 하의도가 바로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 하의도다. 홍성담은 89년에 안기부에 잡혀가 20일간 물고문을 당했는데, 이후 물에 대한 공포와 정면 대결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작품(욕조, 물 속에서의 스무날)이 감동적이었다.
벨기에 입양아 출신의 미희에 관한 이야기도 심란하면서도 내가 몰랐던 입양에 관한 사실들이 많아 흥미롭게 읽었다. 

밑줄긋기
31 _ 주체성은 김일성이 말한 거라 나쁘다고 하면서도 한국 정부가 장려하는 새마을운동에서도 주체정신이라는 말을 썼으니까, 이게 과연 뭔가 하는 혼란이 있었죠.
70 _ 저는 학생들에게 싸게 팔아라, 싸게 팔아라, 그래서 네 그림이 앞으로 점점 가치가 오르는 기쁨을 소장가에게 주어야 한다, 이런 말을 하는데....많은 학생들이 일확천금을 꿈꾸거나 제대러 그리지도 않으면서 콧대만 세죠. (신경호)
84 _ 작품을 만들 때, 상대방의 기쁨과 슬픔까지 최대한 함께 느낄 수 있도록 저 나름의 시도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달콤한 순간에 한 발 물러나 대상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이 두 순간의 차이가 제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정연두)
230 _ 그들에게 자유주의 혁명과 식민지주의는 모순 없이 양립했다. 이것이 바로 근대의 양면성이자 기만성이다. 
289 _ 저는 유대인의 강제이송 경험과 우리 코리안 해외 입양인의 경험을 중첩시켜보았습니다. 이들 사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대규모로,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멋대로 이송 조치되었다는 점, 어떤 보호도 없이, 그리고 돈 때문에 옮겨졌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미희)
306 _ 아프리카인이 인종주의 문제를 다루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는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당한 차별이 널리 문제시되어왔기 때문이지요. 그에 비해 아시아인의 문제는 더 음습하고 비밀스러워 예술적 표현으로 연결되면 커다란 반발을 사곤 합니다.
323 _ 입양 제도는 마치 중립적인 것처럼 이야기되곤 하지만 완전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먼저 입양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의 배경에는 경제적인 격차가 가로놓여 있습니다. 보통은 압도적으로 부유한 나라의 백인이 양부모가 되며 거기에서 식민주의적 관계를 읽어낼 수도 있습니다. 순수한 것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미희)
327 _ 디아스포라는 결코 애처로움이나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안주하고 있는 '국민, 인종, 문화의 동일성'이라는 관념이 얼마나 허구에 차 있으며 위험한가를 일깨워주는 존재일 따름이다.


잉여롭게 쓸데없게 읽고

잉여롭게 쓸데없게
임성순 | 행북

'국민학생들의 추억 속 보물상자를 꺼내다!'라고 표지에 적혀 있듯, 초등학교로 바뀌기 전 국민학교를 다닌 세대의 잉여 문화 추억담이다. 작가는 76년생이라고. 내가 좀 더 나이가 많지만, 같은 세대로서 낄낄대며 정말 즐겁게 읽었다. 나 왜 여기 나오는 거 다 알아? 심지어 경북대에서 개발한 PC통신프로그램 하늘소, 나 얘들이랑 학교 같이 다녔네. ㅋㅋㅋ 문집에 글 써오라고 하면서 선배들이 하는 말 "응, 키노처럼만 안써오면 돼."라니. ㅋㅋㅋ
읽다가 데굴데굴 구른 대목은 군대 가서 "안양00고 임성순 선배님 아니십니까?"하는 말을 듣고, 무엇이든 구할 수 있었던 그의 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하는 부분이다. 아이큐 점프와 소년 챔프를 한권씩 사서 돌려읽다가 싸움이 나고 그 덕분에 엎어져 자던 저자가 시끄러워서 깬 후 책읽는 순번을 정해주고 그렇게 온갖 잡지, 무협지, 만화책의 사서노릇을 했던 이야기. 진짜 웃겼다. 또 컬러게임이 나오기 시작하자 위기를 느낀 오락실에서 단색게임 화면 위에 셀로판지를 붙였다는 이야기에도 엄청 웃었다. 당시 오락실은 불량청소년 온상이라고 해서 나는 거의 들어가 본적이 없어 몰랐던 사실이다. 셀로판지로 컬러 화면 만들기라니...ㅋㅋㅋㅋ
책 페이지 페이지 마다 까맣게 까먹고 있었던 추억들이 넝쿨째 흘러나온다. 중간중간 QR코드가 있어서 폰에 찍어보면 그 옛날 부르뎅아동복 광고라든가 차승우의 기타 퍼포먼스, 아이큐1000 광고 같은 걸 볼 수 있다. 동시상영 영화관의 비오는 스크린, 전자오락실, 하이텔의 영퀴방, 도라에몽 전의 동짜몽, 소리바다, 심야라디오, 싸이월드 등등 나도 열광했던 것들을 시니컬한 문장과 함께 보고 있자니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저자가 남자다보니 내가 모르는 PC게임이라든가 컴퓨터쪽 이야기가 많았는데, 만약 내가 쓴다면 어떤 내용이 더 들어갈 수 있을까? 들장미 소녀 제니 중단 사건? 순정만화 애니메이션과 만화방의 순정만화 계보? 온 동네를 쓸고 다녔던 청바지 밑단과 손도 보이지 않게 길게 입고 다녔던 셔츠, 나이스나 아이도스 같은 패션 쪽도 들어갈 수 있겠고. 키노까지만 나오고 씨네21이 없어서 아쉽던데 그것도 추가할 수 있겠다. 
진짜 꼼꼼하고 세밀하게 써서 80년대 후반~90년대를 살았거나 기억하는 사람들은 즐겁게 읽을 수 있다. 마지막에 나오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도 짧았지만 임팩트 있었다. 나무를 깎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일단은 나무가 있어야 하고, 평탄한 삶을 살아 자신의 나무가 없는 사람은 남의 나무를 채취해야 한다는 비유가 찰떡 같았다.

밑줄긋기
7 _ 대체로 과거에 대한 그들의 향수는 실제로 그것이 좋았는지의 여부를 떠나 그것이 가능했던 젊음과 여유에 대한 그리움일지도 모른다.
9 _ 쓸데없이 소중한 것이 정말 소중한 것이다. 쓸데없다는 걸 고상하게 한자어로 바꾸면 잉여라 부를 수 있다. 잉여의 생산물이 처음 등장하면서 인간 사회에는 경제가 생겼다. 그리고 잉여의 생산물에 기대어 미를 추구하는 부류가 생겨났는데, 이것을 예술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얼마나 많은 잉여를 지닐 수 있는가'는 인간 역사에서 오랫동안 발전의 지표였다. 
99 _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음악 청취를 의미하지 않는다. 인생의 어떤 순간에 배경음악을 까는 일이자 기억에 인덱스를 붙이는 일이다.
219 _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상 돈을 가진 사람이 예술이라고 말할 때에는 돈 없는 이의 노력을 예술이란 이름으로 착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232 _ 재화는 힘이고 가능성이다. 가난은 불편할 뿐만 아니라 궁상맞고 종종 부끄럽게 만든다. 바꿔 말해 수치와 비루함을 견딜 수 있다면 적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233 _ 힙스터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경쟁에서 낙오한 일군의 무리들이 자본주의 경쟁이 강요하는 노동과 자기계발에서 열외 되는 대가로 남은 시간에 자신의 문화적인 취향을 발전시키고 복잡한 자신들만의 코드를 만들어 예술적 취향으로 이뤄진 층위의 시계를 만든 것이다. 예전, 그러니까 세기말 이전에는 잉여의 시간이 넘쳐나던 귀족이나 가능했던 교양의 위계화를 문화적 취향으로 바꿔 재현한 무리가 이들이었다.
250 _ 당신이 기술자 지망생이고, 기술자가 되기 위해 도구 사용법을 배워야 한다면 가장 멍청한 학습법이 도구의 매뉴얼만 읽는 것이다. 대개 작가가 되고 싶다면서 문예 창작 이론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가 이론만 수능 시험 준비하듯 공부하는 것, 즉 주구장창 매뉴얼만 읽는 것이다. 하지만 도구를 잘 쓰려면 실습을 해야 한다.
266 _ 10대 후반이었을 땐 우리를 X세대니, 오렌지족이니 Y세대가 어쩌고저꺼고 떠들어댔지만, 그런 구분보다는 태어날 때부터 소비자로 자란 첫 세대라 말하고 싶다. 그런 구분 자체가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털기 위한 상술이었으므로 "우리가 X세대예요"라고 말하는 건 어쩐지 호구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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