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중간의 집 읽고

언덕 중간의 집
가쿠타 미쓰요 지음
이정민 옮김
한스미디어

이다혜 기자의 책에서 추천받아 읽은 책. 예상을 하긴 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답답하고 우울한 책이었다.

전업주부 리사코는 어느 날 형사재판의 보충재판원으로 선정된다. 우리로 치면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이 된 것이다. 그녀가 맡게된 재판은 2살도 안된 아이를 욕조에 빠뜨려 익사시킨 주부에 대한 재판이다. 자신도 딸이 하나 있는 리사코는 이 재판에 참여하며 다 잊고 있었던 자신의 결혼과 출산과 육아를 돌아보게 된다. 만의 하나 자신도 뭔가 하나 잘못됐더라면 피고인처럼 아이를 위험에 빠뜨렸을 수도 있다고. 보충재판원으로 일하는 8일 동안 그녀는 점점 사건에 몰입하고, 더불어 집에서는 점점 남편과 아이와 사이가 멀어진다.

디테일하게, 예민하게 쓰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을 분위기와 생각들이기에 이렇게 쓸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마지막까지 낙관적인 전망이 없고, 하다못해 화끈하게 이혼하는 결론도 아니라 책을 덮는데 통쾌한 기분이 1도 들지 않았다. 다 잊고, 귀찮아서 생각하지 않고, 남이 결정해주는대로 살기가 습관화된 여자가 드디어 각성하고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서 끝나기 때문이다.
일견 <82년생 김지영> 같은 부분도 있어서, 육아를 경험한 혹은 경험하고 있는 여자들이 읽으면 크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육아를 해보지 않은 나도 읽으면서 알 것 같았다. 무엇이 사람을 그런 나락으로 끌고 들어가는지, 대화란 어떤 식으로 사람을 방어적으로 만드는지. 나는 여기 나오는 무쓰미와 비슷한 성격이라 리사코나 미즈호가 답답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성격도 있는 거라고. 그리고 나도 아이를 낳으면 어떤 엄마가 될지는 절대로 절대로 장담할 수 없는 거라고.
하필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법무부에서 섹스의 즐거움만 누리고 책임은 안지려고 하므로 낙태죄 폐지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놨다. 이 책이나, 지금 한국이나 아이에 관한한 남자들은 모든 책임에서 면제다. 성모 마리아도 아니고...답답한 노릇이다.  

밑줄긋기
9 _ 자신처럼 TV에서 본 일기예보를 신문에서 또 확인하고 철자히 채비하는 사람과, 빗속을 우산도 없이 뛰어가는 사람 중 총량으로 따졌을 때 더 힘든 쪽은 누구일까. 
294 _ 리사코가 나고 자란 지역에서는 여자가 도쿄로 진학할 경우 장하다고 표현되었다. 여자애가 참 장하구나! 여자애가 도쿄의 대학이라니 장하구나! 칭찬하는 것 같지만 그 말에는 여자가 뭐하러 굳이 도쿄까지 가서 공부하느냐는 뜻이 들어있다. 대학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외국에서 유학하거나, 도쿄에서 취직한다면, 그 여자는 '별세계 사람'으로 취급되어 반상회 명부에서 삭제된다. 동시에 그 지역의 속박과 관습을 면제받는다. 고향으로 돌아오면 도쿄의 4년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대학 진학 전의 세계로 돌아올 수 있다.
341 _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나쁘게만 여겨지는 일은 정말 자주 있다. 실제로 나쁜 일만 일어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조차 주관이라고 말한다면, 그렇다. 하지만 주관 없이 우리는 무엇으로 판단한단 말인가.
374 _ '퇴사에 대한 나의 생각에 남편이 반대하지 않은 것은 내 생각이 옳아서가 아니라 남편의 기준에서 그것이 정답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정답이 아닌 말을 했다면 기각되었을까?' 설마, 아닐 것이다. 출산휴가를 갖고 직장에 복귀하겠다고 했다면 그 역시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과연 그럴까? 리사코는 혼란스러웠다. 퇴사를 선택한 사람은 자신인데 그것밖에 선택지가 없었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375 _ 요이치로는 답례품이 마뜩찮다고 말했던 게 아니며, 늦은 귀가를 미리 알리는 남자는 없다고 말했던 것도 아니다. 당신은 이상해, 틀렸어. 단지 이 말을 끊임없이 해온 것이다. 이상한 부분을 고치라는 것도 아니며,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으라는 것도 아니다. 요이치로는 단지 내게 열등감을 심어놓았을 뿐이라고 리사코는 이제 와 마치 남의 일처럼 이해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와 5월의 드라마들 보고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극본 김은 | 연출 안판석
손예진, 정해인 출연
jtbc 16부작


요즘 한국 드라마들은 마지막회에 시청자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경향이 있다. 이 드라마도 마지막회 보면서 몸에서 사리 나올 뻔 했다. 
사실 막 되게 재밌는 드라마는 아니었다. 워낙 손예진과 정해인이 예쁘고 케미 돋아서 그렇지, 무지하게 느린 드라마였고, 주인공 윤진아(손예진)의 성격도 끝까지 답답해서 보는 내내 가슴을 치며 봐야했다. 그렇더라도 마지막회는 좀 심했다.
이 드라마는 연상연하 커플이 일반적으로 겪는 고난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니다. 두 주인공의 관계가 특수(=한 가족이나 다름없음)해서 다른 연상연하 커플이 겪는 것보다 좀 심하게 반대를 당하는 입장이고, 여자쪽 어머니는 진짜 강적이다. 내가 본 중 가장 절벽같은 아줌마였는데, 생각해보면 보통 아침드라마나 일일드라마의 엄마들보다 더 극악한 캐릭터도 아니다. 그런데도 왜 볼 때마다 짜증나고 스트레스가 쌓였나 생각해보니 이 배우(길해연)가 연기를 너무 잘하는 거다. 다른 극악한 엄마들은 그냥 연기려니 하면서 봤는데, 이 아줌마는 연기로 받아들여지지가 않았고 보는 내내 진짜 저런 아줌마가 나한테 다다다다 해대는 느낌이었다. 하...저 엄마를 어쩌지? 진아가 아니라 내가 잔소리 듣는 느낌이었다. 특히 경선이 찾아가 손 꼭 잡고 이야기할 때 정말 토나올 것 같았다. 경선이가 제일 불쌍해...ㅠ.ㅠ
그런 엄마의 딸이라 윤진아가 그런 답답한 성격이 된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핸드폰 커플요금제가 뭐라고 그냥 해지하고 새로 하지, 그 미친 전남친놈 차를 타란다고 타는 건 뭐며(바보냐!), 자기는 부모가 이혼하고 바람피는 거 한번 겪어본 적도 없으면서 지가 뭐라고 남친 아빠한테 잘해주라는 오지랖을 부리는 건가? 나는 보는 내내 윤진아 성격이 마음에 안들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본방사수한 건, 일하는 여자의 직장에 관한 부분이 리얼하고 볼만했기 때문이다. 미투 운동의 여파로 사내 성폭력도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데, 그런 시류에 맞춰 이상적이지도 않게, 그렇다고 절망적이지도 않게 현실을 그려 좋았다. 얄미운 강세영이라든가 툭툭거리지만 의리있던 금대리라든가 상습적으로 성추행하면서 비겁하기까지 한 공차장과 남이사, 그 속에서 자기 실속차리고 미꾸라지처럼 행동하던 군상들, 결국엔 속내를 드러내던 사장까지 직장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인간형들이 다 모여있어 재밌었다. 물론 그 성추행 부분도 통쾌함 없이 끝내서 아쉬웠지만, 조직에 대항해 이긴다는 게 이 정도면 성공적이라는 씁쓸한 현실을 보여줬으니까 의미는 있다 하겠다.
예전에 <풍문으로 들었소> 보면서 드라마가 이렇게 느린 게 작가탓인가 했는데, 이번에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보니 연출 탓이라는 걸 알겠다. 빨간 우산을 쓰고 비오는 거리를 걷거나 상의만 입고 똥머리하고 품에 안기는 장면들을 느릿한 재즈 선율에 맞춰 슬로비디오로 보여주는 거, 눈은 호사했다만 나에게는 너무 느린 전개였다.
그리고 끝까지 진아 엄마도, 진아도 변하지 않아 그것도 마음에 안들었다. 그저 정해인과 손예진, 두 배우의 아름다움은 잊을 수 없고, 그것이 이 드라마를 살렸다고 본다. 

그리고 5월의 드라마 이야기.
으아아...이렇게 볼 드라마가 없다니!!! 이런 비수기가 있나! 매일 밤 10시에 TV 앞에 붙어있다가 1시간 뒤 짜증을 내며 떨어지기를 몇 차례. 과연 올 상반기 내로 볼만한 드라마가 나올 것인지 의문이다!!
<슈츠>!! 내가 얼마나 기대했던가. 그러나 1회 보고 놨다. 유치하기가 이루 말을 할 수가 없고, 왜 원작 <슈츠>가 인기였는지를 전혀 모른 채 리메이크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박형식!! 대사를 그렇게 밖에 못쳐? 무슨 천재가 그렇게 발음이 에데데해서 어쩌자는 거야? 박형식을 보고 나니 장동건이 얼마나 연기를 잘하고 발음이 정확한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왜 룸쌀롱에서 법전 외우고 자빠진 건데? 하....도저히 봐줄 수가 없었다. 물론 원작 <슈츠>가 워낙 재밌으니까 꾹 참고 보면 재밌으리라는 거 안다. 그리고 시청률도 꾸준히 오르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고. 그러나 나는 그냥 원작 본 걸로 만족하련다.
<기름진 멜로>!!! 으아아아~ 이 드라마 역시 기대하던 나에게 똥을 줬...ㅠ.ㅠ 서숙향 작가님, 이러시믄 안되는 거 아님니꽈? 무려 정려원에 준호라고요! 그런 애들 델따놓고 이런 활극이라니! 혹시 내가 뭘 잘못 봤나 싶어 넘나 이상했지만 2회도 봤다. 여전히 아무것도 나아진 것이 없다. <파스타>를 기대한 나에게, "그건 이태리 식당이었고, 이건 중식당이라고! 그러니 지글지글 끓고 칼 툭툭 던지는 활극이 맞지 않겠니?"라고 하는 것 같다. 장혁과 그의 조폭 패거리들 못보겠고요, 1인2역하는 이미숙도 이상하고요, 거기다 시한부 끼얹고....도저히 못보겠....
<어바웃 타임>!!!! 으하하하...이건 사실 그닥 기대를 했던 건 아니지만 워낙 tvN에서 홍보를 해대길래 뭐가 있으니까 저렇게 돈을 쓰겠지 싶어 봤다. 이성경과 이상윤, 둘 다 좋아하는 배우이기도 하고. 그런데 어쩜 이래? 일단 이 드라마는 cj의 뮤지컬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그리고 이야기는 약 10여개의 로코물을 베껴서 만들었다. 보는 동안 내 머리를 스쳐간 드라마는 시크릿 가든, 별에서 온 그대, 주군의 태양, 또 오해영, 최고의 사랑, 푸른 바다의 전설...어떤 장면도 신선한 장면이 단 한 장면도 없다. 전부 어디서 보던 것들. 재벌 캐릭터 식상하고, 재벌과 비서의 케미 어색하고, 아무데서나 맥락없이 키스하고, 별 이유없이 들이대거나 무시하고. 그런 재벌 이제 고만 보고 싶고요.
이렇게 계속 실망만 왕창왕창 하는 중에 그나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보고 있는 작품들.
<이리와 안아줘>는 기대도 안했던 MBC 작품인데,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유영철의 아들과 유영철에게 죽임을 당한 여자의 딸이 사랑하는 컨셉이다. <미스티>의 김남주 후배로 나왔던 진기주가 첫 주연을 맡았는데, 내가 또 진기주를 쫌 좋아라 한다. 남쥔공은 처음 보는 얼굴인데, 마스크도 좋고 연기도 괜찮았다. 1~2회는 중학생 시절 아역들이 연기했는데, 어색하고 오글거리긴 했지만 볼만했다. 무엇보다 연쇄살인마 역의 허준호가 발군! 조명 때려주면 허준호가 얼마나 무서운가! 게다가 그는 잡혀서 사형을 당하지도 않았고 아직 감옥에 있다. 허준호만 나오면 일촉즉발 뭔가 막 일어날 것 같아 손에 땀을 쥔다. 경찰과 배우라는 남녀 쥔공의 직업도 잘 잡은 것 같고, 화목한 가족처럼 보이는 여쥔공집의 오빠도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아 궁금하다. 요건 계속 봐줄 예정.
<미스트리스>는 미드가 원작인데, 나는 미드를 보지 않았다. 그래서 흥미롭게 보고 있는 중이다. 미드답게 훅킹 쩔고, 호흡이 너무 짧아 보는데 불편하지만, 미스터리를 깔고 가니까 궁금하다. 사실 이 드라마는 다 끝나고 몰아보는 게 제일 재밌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라이브>도 끝나고 <밥잘사>도 끝나서 주말에 볼 게 없어 그냥 본방으로 보고 있다. 한가인, 최희서, 신현빈 등 내가 좋아하는 여배우들이 나와서 좋다. 특히 최희서 라인(무정자증 남편의 교사 아내. 한번 바람 피워서 임신)의 이야기가 흥미진진.  
<미스 함무라비>는 문유석 판사가 쓴 원작 소설을 재밌게 읽은터라 기대하고 있었다. 1회 타이틀롤 뜨는데 '극본 문유석'이라고 써있어서 충격받았다. 현직 부장판사가 지금 드라마 쓰신 거예요? 레알? 이게 말이 되는 거임? 그렇게 1회를 보는데, 재미도 있어. 바로 전에 <어바웃 타임>보고 게거품을 물던 참이라 이 드라마는 훨씬 더 재밌게 느껴졌다. 소설에선 박차오름이 주인공이었는데, 드라마에선 임바른이 나레이션을 맡아 느낌이 좀 다르다. 판사가 글까지 잘 쓴다며 자괴감을 곱씹고 있는데, 2회 가니 좀 재미가 없어졌다. 역시...특히 러브라인은 정말 어쩔...싶은. 그래도 각 캐릭터가 좋고, 류덕환, 이엘리야 등 조연들도 괜찮아서 좀 더 지켜보겠다.
<훈남정음>은 황정음과 남궁민이 나온대서, 딱 어떤 분위기겠네 싶었는데,  딱 그런 분위기의 로코물이다. 그러나 <어바웃 타임>을 본 뒤라 그런지 디테일의 참신함과 주연배우들의 호연에 끌려 볼만했다. 비슷비슷한 재벌에 까칠남, 캔디에 생활형 여주인공. 뻔한 이야기지만 디테일이 다르다. 우다다다 쏟아내는 여주인공 옆에서 택시 기사 아저씨가 시끄러워 이어폰을 낀다든지, 재벌가 자식들이 월말에 엄빠 앞에서 결산 보고를 한다든지, 옷을 갈아입고 헤어스타일을 바꿔서 오리에서 백조로 거듭나는 게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든지. 그런 비틀기들이 재밌는 편이다. <어바웃 타임>이 여러 드라마 살리네. 

현재 보는 드라마 스코어는 이렇고, 6월에 시작하는 <김비서는 왜 그럴까>에 기대를 한번 걸어본다. 너무 큰 기대 말고 쪼꼬만 기대.


[일드]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 보고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 
마츠다 유코 각본 | 나구모 세이이치 연출 
요시타카 유리코, 에이쿠라 나나, 오오시마 유코, 사카구치 켄, 스즈키 료헤이 출연 
NTV 2017년 1분기 / 총 10부작 

2020년 도쿄 올림픽 때는 아이를 키우는 주부가 되어 있거나 커리어 우먼으로 승승장구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삼총사 친구들. 그러나 도쿄 올림픽이 3년밖에 안남았는데, 서른이 되었고, 결혼은커녕 애인도 없어 허구헌날 셋이 모여 술 마시면서 "옛날에 그 남자랑 잘 됐더라면..." "만약에 내가 이 남자랑 사귀었더라면..."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삼총사 중 린코는 드라마 작가, 카오리는 네일샵 운영, 코유키는 아빠를 도와 '논베'라는 술집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린코는 데뷔할 뻔 했던 드라마가 엎어져 아직 데뷔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한때 자신에게 고백했던 선배(PD)가 다른 여자 좋아하니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주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놓인다. 카오리는 철없이 꿈만 쫓는 동거남를 차버렸는데, 그 남친이 가수로 빵 떠 수퍼스타로 등극하는 바람에 속앓이를 하고, 코유키는 첫눈에 반한 남자가 알고 보니 유부남이라 괴롭다. 이런 각각의 고민을 논베에 모여서 술마시며 푸는데, 노란 머리에 새파랗게 젊은 놈이 와서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그렇게 '만약에~라면(=타라레바)' 타령만 하고 있냐며 비아냥댄다. 

첫 회에서 여자 셋이 모여 '만약 그랬다면'하거나 친구에게 용기를 주려고 '아냐, 니가 ~한다면 틀림없이 넘어올거야' 따위의 위로를 건네는데, 이거 혹시 우리를 보고 만든 건가 싶었다. 아니, 쟤네 모임 폭식로드 아니야? 이러면서 봤다. 30대가 넘은 싱글 여자들의 모임에는 으레 그런 부분(=위로, 만약에, 잘 될 거야 같은)이 있기 마련인데, 그걸 비아냥대는 키(사카구치 켄)의 독설에 내 마음이 너덜너덜해진다. 나중에는 키가 입만 열었다하면 내 입에서 "저 악마 같은 놈!"하는 탄식이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게다가 주인공 린코는 데뷔 못한 드라마 작가다. 감정이입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드라마를 쓰는 한 친구는 1회 초반에 린코가 머리를 질끈 묶고 "자 다시 해볼까?"하면서 12고를 13고로 고쳐넣을 때 벌써 울컥했다고 한다. 나는 거기까지는 미리 들어서 괜찮았는데, 그 다음 회의 씬에서 울컥했다. 감독이 고치라는대로 고쳐왔는데 재미가 없다고 하자 "지난번에 감독님이 고치라고해서..." 변명하는 린코. 그러자 감독이 말한다. "감독이 하자는대로 쓸거면 작가가 뭔 필요가 있어?" 우와..비수가 그냥 내 가슴에 퍽퍽 날아들었다. 회의할 때 피디들이 하는 말이란 국적을 불문하고 똑같구나! 후.....
이렇게 이입하여 보는데, 나이 찬 싱글여성이 겪을 수 있는 모든 연애의 경우의 수가 다 나오고, 그것들이 현실적으로 그려져서 매번 등장인물과 함께 나도 고민하게 된다. 이렇게 한다면 어떨까? 저렇게 한다면 어떨까? 가끔 실수도 하지만 여자들은 다행히 갈팡질팡하면서도 현명한 답을 찾아가고 거기에 나도 위로 받는다. 여자들이 주인공인 드라마답게 남자들은 찌질하거나 이상하거나 하지만 하야사카상은 마지막까지 좋았다. 내가 린코였다면 키 대신 하야사카 상을 택했을 것이다. 헤어지면서도 "나랑 함께 일하자"고 해주는 남자라니! 하야사카상, 멋있어요! (그의 예민함을 보면 그는 분명 B형일거야!)
키 역할로 나오는 사카구치 켄은 요즘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배우라고 하던데, 일본 남자 배우치고 드물게 꽃미남이다. 하는 말은 악마 같지만, 키 역시 19살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는 소년이었다는데 오면 걔도 참 불쌍하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이해해주려면 최소 나이가 서른은 넘어야 한다는 점에서 또 이 드라마의 현실성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린코를 비롯한 여자들의 무의식의 소리를 대변해주는 참치회 토막과 곤약 토막도 재밌었다. 걔네가 나올 때 흐르는 노래를 나중에는 따라 부르게 된다. 타라레바, 타라레바...막 이러면서. ㅋㅋㅋㅋ
요즘 한국 드라마가 넘나 재미가 없는데, 이 드라마는 정말 재밌게 봤다. 현실적이면서도 코믹하고, 두근대는 사랑의 설렘도 느낄 수 있는 드라마로 <최후로부터 두번째 사랑>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일단 올해 지금까지 본 일드 중 가장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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