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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껴쓰기] 다양한 의견을 빙자한 나쁜 말 (이삼화) 생각하고

내가 페이스북에서 얼굴도 모르면서 친구맺기 하고 있는 몇 사람이 있는데, 그 중 이삼화 소장은 건축가다. 주로 일을 하면서 밤을 새거나 넘나 스트레스 받으면서 마감 칠 때, 이 분은 하룻밤에 연달아 대여섯개 이상의 글을 마구 올리는데, 글 하나가 스크롤 20번 이상 해야 할 정도로 길다. 그래서 어느 아침, 이삼화 소장의 글이 연달아 10개쯤 올라와 있으면 "아...이분 마감치는 중이구나" 싶다. 근데 그 긴 이야기들이 웬만한 소설가, 드라마작가 뺨치게 재밌고 빠져들어간다. 너무 찰지고 술술 읽히는 글이다. 보고 있으면 내추럴 본 스토리텔러가 아닌가 싶다. 이런 분에 비하면 나는 어디가서 작가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지경. 밥숟가락 놔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이분은 대체로 헛소리를 쓰지만, 가끔 각잡고 쓰실 때도 있는데, 그런 글들이 또 절창이다.
아래는 오늘 아침 페북에 올라온 글인데, 요즘의 분위기에 대해 내가 몰랐던 부분을 콕 찝어 예리하게 가르쳐주셔서 베껴쓴다. (페북 글이 대개 그렇듯 제목이 없어서, 제목은 그냥 내가 대충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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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은 '특정사건'과 관련된 일이기에 그 '특정사건'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합니다. 우선 그 '특정사건'에 대해서 간략히 설명해 봅니다.
A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어제 있었던 지진으로 인해 수능시험이 연기된 일을 평가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였습니다. 그 의견 가운데 몇 가지가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렸고 싸움으로 번지기에 이르렀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견이 있었는지 또 어떤 싸움이었는지를 제대로 옮길 자신이 없습니다. 쉼표 하나 차이로도 상식과 몰상식이 구분되는 무서운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A씨의 의견 중 상당 부분에 대해서 피를 토하듯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얼핏 보면 A씨가 그런 비난을 당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상엔 다양한 의견이 있고 또 모든 사람의 생각이 다 완벽할 수는 없으며, 다양하고 불완전한 생각을 표현하는 가운데 아무도 생각지 못했던 발견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니 세상은 우리에게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가르쳤고, 우리는 그게 옳다고 생각해서 그런 차이 앞에 분노하지 않고 스스로를 다스리는 연습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좀 과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지나치게, 꼭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너무 많은 것을 참아 왔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다양한 의견'을 빙자한 거짓말과 변명, 눈속임, 유혹, 은폐와 범죄를 못본 척 해왔습니다. 그것은 다양한 의견일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나쁜 말과 다양한 의견은 어떨 땐 구분이 참 어렵습니다. 누가 자신있게 아이유와 신봉선을 구분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뭔가 나쁜 일을 꾸미는 인간들은 일부러 어렵고 힘든 표현과 복잡한 논리로 이야기를 합니다. 아, 그러면 뭐 난 잘 모르는 일이니까 하고 판단을 접는 인간의 본능을 이용한 것입니다.
처음엔 그런 이상한 말들을 방치한 결과가 고작 시험 점수가 좀 바뀌거나 인사고과가 좀 달라지거나 혹은 그런 것들의 여파로 장기적으로 봤을 때 간짜장 대신 자장면을 먹어야 하거나 교장을 못해보고 평교사로 퇴직을 해야 하는 정도의 그런 미미한 피해들만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이제는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싶을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가장은 전 가족이 차량 결함으로 몰살을 당했는데 제조사로부터 사과는커녕 우리가 만드는 차 모두가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우리 잘못이 아니다,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확인해 보니 모두가 그런 문제를 갖고 있더군요)
군대 보냈는데 시체로 돌아오고 학교 보냈는데 시신으로 돌아오고 여행 보냈는데 심지어 시신조차도 돌아오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물론 누군가는 어쩔 수 없이 죽습니다. 아기든, 학생이든, 노인이든, 밤이든, 낮이든, 새벽이든, 사고든, 병이든, 범죄든 간에 누군가는 항상 죽습니다. 그 죽음과 '다양한 의견'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냐, 시체장사 하지 마라, 라는 것이 지난 정권을 비호하는 자들의 주된 논리였습니다.
하지만 그 죽음과 '다양한 의견을 빙자한 패악' 사이엔 명백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질려 버렸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해서 존중했더니 그걸 악용해서 궤변을 일삼는 자들이 생기고 그 궤변에 놀아나서 동조하는 이들이 생기고 이 궤변론자와 추종자들을 불쏘시개 삼아 곳곳에 불을 지르며 이익을 챙기는 자들이 늘어났습니다. 어느덧 그들이 이익을 챙기는 것으로 모자라서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처음 내 돈을 훔쳐가거나 내 물건을 훔쳐갈 때까지만 해도 참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가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까. 어쩔 수 없이 죽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죽이고 있습니다.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나나 내 가족을 죽이려 달려드는 자의 목을 비틀고 배를 가른 뒤 창자를 꺼내 그것으로 줄넘기를 하는 일이 범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세상이 이상한 짓거리를 벌이면 분연히 들고 일어나 자기 손에 피를 묻혀가며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한반도에 사는 백성들의 오랜 습관입니다.
위에 언급한 '특정사건'에서 A씨가 내뱉은 의견은 어쩌면 몇년 전이었다면 그렇게 격한 비난을 당하진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안전이나 사람, 인권 이렇게 표현하니까 잘 안 와닿을 수도 있는데 좀 더 정확하게는 사람의 목숨에 요즘 사람들은 매우 민감하게 되었습니다. 매우 구체적으로 내 피붙이의 목숨을 고작 누군가의 불편이나 권리 같은 것과 비교하거나 그 아래에 두는 행위에 대해서 눈깔이 뒤집히고 주먹부터 나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매우 인간적이고 당연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내 자식을 바라보면서 내 자식을 향해 담배불을 겨냥해서 던진다면 그 인간은 10미터 밖에서 머리가 없는 자기 몸을 바라보는 기적을 몇 초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담배불만 해도 그런데 칼을 던지거나 총을 쏘려 하거나 무너질 지도 모르는 건물 안에 들어가라고 종용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여기까지가 '특정사건'과 관련된 저의 감상입니다.

그리고 정유표 님께서 지적하신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제가 바로 이해한 것이 맞다면, 아마도 정유표 님께서는 A씨가 지나친 모욕을 당하는 중이다, 이는 옳지 않다, 라는 의견을 주신 것으로 이해합니다. A의 의견은 '나 편하자고 니 새끼 뒤져라'라는 몰상식한 바언이 아니라, 나름의 논리와 근거가 있는 주장인데 그것이 화가 난 군중들에 의해 왜곡 과장되었고 자세히 들을 필요도 없이 몰상식한 쌍X으로 낙인 찍혀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관경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안쓰럽고 안타깝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우선 제가 이렇게 길게 글을 쓰는 이유는 정유표 님의 의견에 매우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A씨는 어쩌면 그렇게까지 나쁜 말을 한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다소 민감한 주제이기는 하나 나름대로 자기 의견을 이야기한 것이고, 게다가 A씨는 공인도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도 아닙니다. 이삼화 소장이 평소 하는 개소리에 비하면 오히려 논리적이기도 하고 일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A씨는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저는 A씨가 조리돌림을 당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조금도 안타깝거나 불쌍하지 않습니다. 하도 궁금하여 저도 A씨의 글을 일부러 찾아서 읽어보았습니다. 지식과 논리가 상당했습니다. 그 정도라면 필히 지식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심지어 법조인이기까지 했습니다. 어찌보면 이런 문제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를 한 사람인 것입니다. 그 분은 결코 자신이 하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다고 할 정도로 글에 대한 내공이 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글을 쓰는 재주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타인의 머릿 속에 자기 생각을 심어 놓는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런 A씨와 같은 사람들이 아무 책임 없이 궤변을 쏟아내는 것을 방치하고 그런 궤변이 신문에 실리고 다양한 의견으로 포장되고 심지어 추켜세워지는 것을 방치했기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덧없이 죽어나간 거라는 죄책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죽음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지만 요 근래에는 세월호라는 단어로 불리고 있습니다.
세월호에서 죽은 사람들은 그 동안 우리가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내버려 뒀기 때문에 희생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찾아내서 갈기갈기 찢어발겨 버릴 것입니다.
A씨는 아마 피해자일 것입니다. 조리돌림을 당한 것도 의견이 지나치게 왜곡된 것도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될 겁니다. 이제 A씨처럼 다양한 의견을 빙자해서 사람들을 위협하는 경우를 사람들은 그냥 두지 않을 겁니다. 이건 어쩌면 새로운 종류의 빨갱이입니다. 빨갱이는 같이 생산해서 같이 나눠먹자는 생각이 위험해서 미움을 받은 게 아닙니다. 전쟁을 통해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에 미움을 받는 겁니다. 
사람은 죽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허무하게 죽는 사람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을 때까지 이런 종류의 발언에 관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좀 그래야 합니다.
A씨는 아마 피해자일 것입니다. 하지만 목숨은 붙어 있지 않습니까. 그 정도 피해는 입어도 됩니다. 사람을 살리는데 필요한 피해라면 입어도 됩니다. 그러니까 정유표 님께서 이제 안타까워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 와중에 피해를 입을 소수를 향한 정유표 님의 따뜻한 마음이 너무나도 인간적이서어 안타깝지만, A씨가 지금 이 시점에 욕을 먹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세상이 완벽해서 욕도 먹지 않고 누군가가 죽지도 않는다면 참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죽는 것보다는 욕 먹는 게 낫습니다. 그 분은 욕을 먹는 것으로 어쩌면 수백 명의 생명을 살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몽골] 8일 : 이태준 공원 & 먹쉬돈나 살고

드디어 마지막 여행기다!!! ^^
자이승 전망대를 보고 내려오면 길 건너 이태준 공원이 있다. 아주 작고 고즈넉한 곳인데, 우리나라 패키지여행자들이 필수코스로 들러 가는 곳인듯, 우리가 가 있는 동안에도 관광버스가 왔다. 생각해보니 무료인데다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이 있으니 패키지 상품에 꼭 있을만하다. 
난 처음에 이태준이라길래 <달밤>을 쓴 작가 이태준인줄 알고 매우 좋아했다가 그것이 아니라길래 마음이 좀 식었다. 가서 보니 의사이고, 몽골 황제의 주치의를 하기도 했단다. 몽골에 유행하던 전염병(정확히 나오지는 않는데 성병이 아니었나 추측하는 듯)을 고쳐서 몽골 국민의사로 불렸다고 한다. 독립운동가들을 많이 도와주기도 했었다고.
공원 전경. 참 마음에 드는 공원인데, 사진을 찍으면 뒷쪽의 고층 아파트가 같이 찍혀서 영 별로다.
 
태극기와 몽골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 이태준 열사 묘비 (진짜 묘는 아니고 이쯤에 묻혔다고 해서 세운 비석)
 
자그맣게 기념관도 있다 | 기념관에 전시된 이태준 초상화 
기념관 옆에 팔각정이 있다. 거기서 본 공원 풍경.

이태준 공원을 둘러보고 시내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도로 가에서 손을 들고 있었더니 검은 승용차가 와서 섰다. 올 때 운전기사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는데, 이번에 탄 차의 기사님은 영어를 좀 하셨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20대에 우리나라 인천에 가서 일을 하셨다고 한다. 일했던 회사 이름이 파빅스라고 했다. 파빅스가 뭘 하는 회사인가 한참 검색을 했는데도 안나오더니 80년대를 풍미했던 그릇(요즘의 락앤락 같은)과 도시락 만드는 업체였다. 승은이가 검색 신공을 발휘해 찾아내고 나자 그때서야 어릴 때 파빅스라는 브랜드를 들어본 언니들이 "아아...그 파빅스"했다는 것! ㅋㅋ 아저씨가 영어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어서 단어만 드문드문 말했는데, 용케 내가 알아들어 대화를 이어나갔다. 브로큰 잉글리시 잘 알아먹는다고 칭찬 받았다. ㅋㅋㅋ 사실 20대에 일을 하셨다는 건지, 22개월간 일을 했다는 건지는 아직도 헛갈린다.  
맛이 제대로였던 먹쉬돈나 떡볶이.
먹쉬돈나 입구 

이렇게 한국에서 일하셨던 분까지 만나서 시내로 왔다. 우리는 망설임없이 먹쉬돈나에 들어갔다. 매콤한 것이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먹쉬돈나는 삼청동 본점만큼은 아니지만 서울 시내 여러곳의 프랜차이즈 지점들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맛있었다. 우리는 떡볶이를 먹으면서 "우와...카페베네 커피도 그렇고, 먹쉬돈나 떡볶이도 그렇고, 어떻게 한국보다 몽골이 더 맛있냐?" 했다. 해물은 재료가 준비되지 않아 먹을 수 없었지만 볶음밥까지 야무지게 먹고 나왔다.
시간도 맞춤하게 6시쯤이라 천천히 산책하며 호텔로 갔다. 그런데 광장 근처에서 우리 여행사인 조이 몽골리아 대표 아료나에게 전화가 왔다. 7시에 호텔 앞에서 우리를 픽업하기로 했던 공항 리무진이 공항 근처 다리 공사 때문에 길이 막혀 7시 30분쯤 도착하겠다는 전화였다. 알겠다고 했더니 혹시 어디냐고 물었고, 우리가 수흐바타르 광장이라고 하자 커피를 사고 싶은데 괜찮겠느냐고 했다. 우리는 당연히 좋다 했고, 광장 중앙의 기마상 앞에서 만났다. 
아료나는 키가 크고, 인상 좋고, 한국말도 매우 유창했다. 그녀의 회사가 광장 근처에 있다며 회사 아래층의 커피숍으로 가자고 했다. 따라가보니 우리가 광장 지나다니면서 "와 정말 화려하다"고 했던 센트럴 빌딩이었다. 와우! 이런 좋은 건물에서 근무한다니! 
조이 몽골리아는 아료나와 7살 차이 나는 친언니(여행 첫날 아침에 차 출발하기 전에 오셨던 사장님)가 함께 만든 회사인데 사업이 잘 되어 올해 이 빌딩으로 이사왔다고 한다.
  
아료나가 커피를 사준 센트럴빌딩 3층 커피숍

센트럴 빌딩은 유명 명품 브랜드 매장이 즐비했고, 에스켈레이터가 운영되고 있었다. 3층 커피숍에서 라바짜 커피를 얻어 마셨다. 조이 몽골리아는 2년된 신생회사이지만 몽골 5대 여행사에 속하는 모양이었다. 최근에 대한민국 영사가 5개 여행사 대표들을 모아놓고 가이드 성추행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때도 참석했다고 한다. 빌게처럼 아료나도 한국에서 공부를 했고, 심지어 한국어가 아니라 다른 전공(도시개발이라고 했던가?)으로 숭실대에서 석사를 받았다고 한다. 원래는 몽골과 한국 사이를 이어주는 공공단체에서 일을 했는데, 결혼하고 남편과 뜻이 맞아 여행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행사를 경영하며 손님 때문에 2번 울었다고 했다. 들어보니 여행사 일도 쉬운 게 아니구나 싶었다. 가이드와 기사와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유심을 공짜로 나눠주기 시작한 곳도 조이 몽골리아가 처음이라고 한다. 한국 영사님께 칭찬들었다고 했다. ㅋㅋ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열정도 넘치는 사람이었다. 
처음 만난 외국인과, 그것도 우리가 여행한 여행사 사장님과 몇년지기처럼 수다를 떨다가 기사 아저씨가 오셨다는 연락을 받고 호텔로 갔다.
짐을 찾아 차에 싣고 공항으로 출발! 원래도 울란바토르 시내는 차가 엄청 막히지만, 다리 공사하느라 공항 쪽은 장난 아니었다. 1차선에 두줄로 차가 서 있다가 결국 3줄이 되는 등 무질서하고 엉망진창이었다. 경찰이 나와 있는데도 대책이 없었다. 서울 시내 끼어들기는 끼어들기 축에도 못끼겠다 싶었다. 근데 그렇게라도 안했으면 나는 도로에서 오줌 쌌을 지도 모르겠다. ^^;;; 정말 참고 참다가 더 이상 못 참겠다 할 때쯤 공항에 도착했다.  
처음 몽골에 도착했을 때는 이 정도로 작은지 몰랐는데, 비행기 타러 들어가면서 보니 공항이 참 작았다.
  
출국장 들어가기 직전 공항 풍경 | 짐검사 하고 들어와서 대기하는 장소

수속을 밟고 들어오니 또 고비 매장과 고요 매장이 우리를 반긴다. 여전히 미련이 남은 우리는 캐시미어들 속을 헤매 다녔고, 남들 장갑 살 때 나는 마음에 드는 조끼를 만지작거렸다. 살까 어쩔까 망설이고 있는데, 해리가 보더니 "작아"라고 했다. 바로 정신 차렸다. ㅋㅋㅋ 남은 달러로 기념품 좀 샀다.
울란바토르 공항에서 산 3달러짜리 돼지 고리 | 박물관에서 산 냉장고 자석

2층 면세구역에 180도까지는 아니지만 160도 정도로 펴지는 편한 의자가 있어 거기 누워서 글도 쓰고 책도 읽었다. 그 동안 일반 벤치에 쭈그리고 앉아 뭘 열심히 하던 승은이는 우리들에게 각각 엽서를 써서 줬다. 10시 55분 보딩이 시작되고, 비행기에 올랐다. 인천 오는 동안은 피곤해서 책이고 영화고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밥 먹고 자기만 했다. 새벽 4시쯤 인천에 떨어졌다. 
수속을 밟고 짐을 찾고 나왔지만 공항버스나 공항철도 첫차가 다니지 않는 시간이었다. 언니는 택시를 타고 가겠다며 먼저 갔고, 나머지 세 사람은 노숙자 모드로 핸드폰 충전하며 공항 벤치에 앉고 누워 시간을 죽이다가 5시반 첫차가 출발할 즈음에 제각각 자기네 동네로 가는 공항버스를 타러 헤어졌다.
 
공항버스 타고 오는 길, 한강 쪽으로 해가 뜨기 시작했다.

몽골 여행기 끝! (올...이번 여행기는 한달 만에 다 썼다!!^^)

11월의 폰털이 일기 살고

10월부터 띄엄띄엄 핸드폰에 찍힌 사진들....
망원시장 간 날 찍은 노을. 가을은 노을의 계절이었고...이제는 좀 춥다.
망원시장도 이번주나 다음주에 다녀오면 올해는 마지막이지 않을까 싶다. 매우 춥거나 매우 더운 계절엔 아무래도 시장보단 쾌적한 마트를 찾게 된다. 
몽골 뒷풀이 모임 때 받은 선물. 몽골에서 찍은 사진을 사람별로 셀렉하여 작게 붙여서 만들어온 해리. 이걸 액자에 넣어야 될지, 비닐 째로 창문에 붙일지 결정을 못해 아직 책꽂이에 꽂혀 있다. ㅎㅎㅎ 조만간 결정하여 눈에 보이는 곳에 붙여야지.
일본의 쿠크다스와 몽골의 초콜릿. 포장이 어찌나들 그 나라스러운지 재밌어서 찍어봤다. 몽골 초콜릿은 커피믹스 포장에다 전통의상을 입은 남녀 그림도 몽골몽골하다. 백의 연인은 홋카이도 다녀오는 여행객들 손에 항상 들려있는 선물. 오랜만에 먹으니 달콤하고 좋더군.
중학생 진로탐색캠프 마지막은 충남 예산. 가는 길에 어마어마한 송전탑이 늘어서 있길래 찍었다. 10여년 전에도 부안에서 원자력 발전소 반대한다는 시위가 한창이었는데, 그리고 몇년 뒤에 갔을 때도 영광 법성포에는 이제 굴비 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때마다 서울에 살아서, 전기를 많이 쓰면서도 발전소는 지방에 짓는 게 죄스러워서 미안했는데, 도로 옆의 이 어마어마한 송전탑을 보니 밀양도 생각나고, 이래도 되나 싶고...
오후에는 딸랑 2명의 학생을 받아 1대1로 강의하고, 드디어 한달 여 만의 진로캠프가 끝났다.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변 논에는 누렇게 익은 벼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며칠 뒤 초록마을에 햅쌀을 주문해 먹었다고 한다. (여름에 주문한 쌀에서 시멘트 냄새가 나서 그렇게 괴롭더니 역시 햅쌀이 맛있어!)
어느 술집에서 계산을 마치고 나온 영수증에 웃기는 말이 쓰여 있어 찍어봤다. '한송이꽃이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까지는 알겠는데, '술마신 남자를 조심하라'는 대체 뭐지? ㅋㅋㅋ 혹여 이 술집에서 취해서 2차에서 위험한 일을 당할까봐 미리 경고해주는 문구인가? 가끔 영수증 자세히 들여다보면 센스있는 문구나 사업자의 이름 같은 게 재밌을 때가 있는데, 단연코 '술 마신 남자를 조심하라'가 윈이다!! 유 윈!
1년반 넘게 했던 어반스케치 모임이 끝났다. 그 기념으로 전시회를 하기로 했다. 그동안 그려왔던 그림들을 모아봤더니 제법 양이 된다. 실력이 나아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름 다양하게 그려보려고 했는데, 다 모아놓고 보면 내 스타일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다음주 토요일, 내 그림과 친구들 그림을 모아놓고 보면서 추억해야겠다. (전시회 소식은 담주에 블로그 업뎃하겠습니다!!)
11월 한달동안 마포도서관에서 하는 미술강의를 듣는다. 마포도서관이 미술 관련 특화 도서관으로 지정되었다더니 미술 강의를 부쩍 많이 한다. 알고보니 따로 미술사를 고용하고 그 분이 여러 주제로 연속적으로 강의하시는 듯. 이번에는 한국 근현대미술사 강의라고해서 관심이 가서 신청했다. 금요일 저녁 7시에 이렇게 많은 수강생이라니! 근데 수강생들이 죄다 내 나이거나 나보다 많아! 그 교실에서 강사가 제일 어린 것 같다. ㅋㅋ 재미없으면 첫 회 듣고 치우려 했는데, 재밌어서 계속 듣는다. 벌써 이번 주에 마지막 강의다. 쩝. 저 그림은 강사가 보여준 슬라이드 중 서세욱의 그림이다. 넘나 멋진데 원본이 없단다. ㅠ.ㅠ 사진으로만 남아 있단다. 강사는 저 고양이 모양만으로 다 했다고 했지만, 나는 숙이고 있는 여자가 더 대단한 듯. 몇 개의 선으로 이런 그림을 그리다니!! 따라 그려보려고 찍어왔는데 과연? ㅋㅋ
오랜만에 예술의 전당에 갔더니, 분수쇼의 음악이 라라랜드로 바뀌어 있었다. 좋았다.
국립현대무용단 공연 공짜표가 생겨 보러 갔다. <슈팅 스타>라는 현대무용 공연이다. 무용 공연은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연극이나 뮤지컬처럼 서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음악공연처럼 귀에 듣기 좋은 음악이 있는 것도 아니라. 어떻게 보는지 모른다는 것도 한몫했고, 발레 공연 같은 건 비싸다는 이유도 있고. 여튼 그래서 현대무용 공연을 처음 봤는데....50분짜리 공연이었는데 후반부는 살짝 지겹고 별로였지만 초반부는 굉장히 좋았다. 사람의 몸의 율동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은. 6명의 무용수들이 검은 옷을 입고 나와 계속 웨이브를 타는데 희한하게 집중이 되고 대단하다는 느낌이 왔다. 나는 특히 검은 장막이 걷어지기 전 제일 처음 나와서 웨이브를 보여주던 그 여성 무용수의 몸이 잊혀지질 않는다. 다 보고 나오는데, 괜히 내가 꿀렁꿀렁하면서 몸에 웨이브를 넣고 있더라는 거. ㅋㅋㅋ 설명문을 보니 중동의 춤에서 따왔다는데 중동 무용은 이런가? 하여튼 몸으로 뭔가를 표현한다는 건 나에게는 넘나 어려운 일이고 내 뜻대로 안되는 일이라 보고 있으면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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