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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인간 VS 기계 읽고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
김대식 | 동아시아

재밌었다. 강추!
머릿말의 '퍼셉트론', '사라지는 경사도', '깊은 보상 학습' 같은 말을 읽을 때는 "어려운 책 아니야?" 겁을 먹었는데, 1장부터 완전 빠져들어서 이틀 만에 다 읽어버렸다. 강의록을 책으로 정리해서 그런지 강의를 듣는 것처럼 머리에 쏙쏙 들어오고, 내가 몰랐던 수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과 전공에 컴알못에다 헐리우드 SF 따위 싫어라 하지만, 작년에 번역 관련 카피 쓰느라 인공지능과 딥러닝에 대해 살짝 공부했다. 내가 몰랐던 세계가 있다는데 놀랐고, 그 세계가 이미 현실이라는데 또 한번 놀랐다.
이 책은 로봇과 인공지능에 대해 기본 개념부터 시작해 우리가 두려워하는 미래 인공지능 지배 사회까지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꿰어준다. 우리에겐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는 일,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일이 너무나 쉽지만, 수천만 단위의 계산을 수초만에 끝내는 로봇에게 그 일은 너무나 어렵다. 이유는 인간의 인식체계와 로봇의 인식체계가 다르기 때문. 컴퓨터는 뇌를 모방해서 만들어졌지만 CPU와 메모리가 분리된 구조라 뇌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과학자들이 인식하게 되었고, 언어로 표현되지 못한 90%의 직관을 인간들은 어떻게 알고 있나 봤더니 훈련과 경험으로 알고 있더라는 것, 근데 빅데이터 덕분에 수많은 층위의 데이터를 모아 인간처럼 학습하는 딥러닝이 가능해졌다. 로봇은 딥러닝을 하기 시작하고 이렇게 인공지능이 계발되어 몇년 만에 인간이 상상도 못하던 경지에 올랐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소름끼쳤던 부분은 
1. 알파고가 단지 이길 정도로만 잘한다는 것. 이 말은 그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2. 프렌즈나 심슨가족 등의 오래 상영한 시트콤이나 드라마의 경우 인공지능이 대본을 쓸 수도 있고, 그 완성도는 인간 작가가 쓴 것과 비슷하다. (ㅠ.ㅠ 난 인공지능보다 못해...)
3. 어떤 풍경을 보여주면 인공지능은 그걸 고흐풍, 샤갈풍, 피카소풍으로 얼마든지 척척 그려낸다.
아무래도 내가 글 등 문화쪽에 종사하고 있다보니 다른 것들보다 이런 부분이 크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구글의 농담'에 대해서도 알게 됐는데, 너무 얍쌉한 사업 방법이 아닌가 분통 터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렇게 머리 좋은 놈들이니 이 시대에 살아남겠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나는 무인 자동차에 대해 무척 안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기계 고장으로 사고나면 누가 책임질 건가? 해킹으로 오작동나면 다 죽는 거 아닌가?) 저자는 인공지능이 차를 운전하면 정말 안전하고 사고도 나지 않을 것이라며 나와 정반대의 주장을 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그 이유들을 읽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세워져있지 않은 자동차 덕분에 매연이 줄어들고 환경도 좋아진다는 의견에도 수긍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결국 마지막으로 가면 지구에 인간이 있는 편이 나은가 없는 편이 나은가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던져진다. 그래...뭐...인간이 다 같이 없어진다면야 나도 기꺼이...쿨럭. 
이 책 읽으며 <컨택트>를 봤을 때 언어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문자적이고 매우 협소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그 문어들이 내뿜는 먹물이 언어로 표현되지 못한 90%를 포함한 것이었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최근 본 <에이리언 : 커버넌트> 속의 데이빗과 <엑스마키나>의 에이바가 단지 인간의 불길한 상상만이 아닐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책을 덮으면 좀 무섭고 막막하고 그런데...한편으로는 아직 윈도우즈 버그도 못잡는 세계에서 이 상상이 상상처럼 스무스하게 실현될까 싶기도 하다. 이렇게 첨단의 책에 페이지마다 오타가 눈에 띄는 걸 보면 더 그렇다.  

밑줄긋기
78 _ 인간이 '쉽다'와 '어렵다'를 잘못 생각한 것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쉽다고 생각하는 일은 사람에게 쉽다고 생각되는 일인 것이죠. 어려운 문제도 사람한테 어렵다고 생각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걸어다니는 것, 물체 인식하는 것,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이 정말 어려운 문제였던 것이죠. 생물체는 진화과정에서 그 문제를 곡 풀었어야 했습니다. 표범과 고양이는 구별할 수 있어야 살아남고 구별 못하면 죽는 거니까요. 
176 _ 공학자로서의 입장을 말하자면 직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뇌는 무엇인가를 계산을 하고 그 일부만을 언어로 표현하는데,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걸 우리가 적분해서 합쳐서 직감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거라고 생각합니다.


5월의 먹사 살고

쭈꾸쭈꾸아 (여의도 국회도서관 맞은편 드롭탑 건물 or 그 옆건물 지하) 
매운 거 좋아하는 언니가 '매운 맛에 푹 빠지고 싶을 때'라고 적힌 간판을 보고 선택한 곳.
가보니 식탁마다 고르곤졸라 피자가 얹혀 있었다. 저게 뭔가 했더니 세트에 딸려나오는 피자.
많은 분들이 남기고 가시기에(다 먹긴 배부름) 우린 세트를 시키지 않고 단품 2개를 시켰다.
그런데도 기본으로 샐러드가 나왔고, 쭈꾸미 비벼 먹었더니 배가 불러서 
아마 세트로 시켰다면 틀림없이 피자를 남겼겠다 싶었다. 
깊고 맛있는 매운 맛이라서 마음에 들었다. 
기본으로 나오는 샐러드. 우리는 세트를 시키지 않았는데, 내주셔서 감사히 잘 먹었다.
짧은 파스타면과 상추를 잘라 버무려주심. 샐러드만 먹고도 배부른 느낌. 
쭈꾸미 직화 2인분.
매운데 맛있다. 캡사이신 매운 맛 아니고 뭔가 고소하고 불맛 나는 느낌? 하여튼 독특한 맛이 있다. 
이 볶음과 함께 여러 나물을 주시고, 밥은 큰 그릇에 담아줘서 비빔밥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월향 (광화문-시청 TV조선 옆 건물 1층)
갑자기 급결성된 낮술 모임. 5시가 되기 전에 모였는데, 
안타깝게도 4시까지 입장하면 막걸리 50% 할인이 된다. 우리는 할인 못받고 그냥 마셨다. 
막걸리에 안주까지, 출출하게 만났으나 배터지게 헤어졌다. 
8시도 안되서 나오는데, 그 큰 홀의 자리가 다 차더라는 것.
우리의 사랑 보리새우튀김. 새우깡처럼 바삭바삭 먹기 좋음.

어슬렁 정거장 카페 (홍대입구 CGV 뒷길 찰스김밥 근처 막다른 골목.^^;;)
이런데 과연 가게가 있을까 싶은 막다른 곳에 있는 카페. 카페라고는 하지만 밥이 더 유명하단다.
한번 갔다가 문을 닫아서 이번이 두번째 방문이었는데, 길 찾기 쉽지 않았다.
6명이 가서 각각 다른 걸 5종류 시켰던가? 밥은 슬로우푸드라 느리게 나온다.
혼자 만드는 것치고는 빠른 편이라 할 수도 있고....
셀프서비스라 주문은 물론 밥 받아오고 반납까지 손수해야 된다.
친환경, 슬로우푸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지트 삼고 싶을만한 가게.
내가 다녀본 슬로우푸드 음식점 중에는 맛있는 편에 속했다.
(사실 슬로우푸드는 내가 한 밥 같아 맛이 없어 안좋아 한다)

토마토 스튜
내가 시켜 먹은 건데, 서촌 고희의 맛을 기대했으나 미치지 못했다.
함께 내주는 샐러드, 리코타 치즈, 피클 등이 더 맛났다. 

치킨 카레
기본적인 일본 카레맛.
왕새우 시금치카레.
요것이 별미였음. 약간 콩맛이 나나 했는데, 시금치 맛이 제법 나던 카레.
매운 음식과 먹다 보니 싹싹 긁어먹었다. (내 것도 아니면서!) 

매운 돼지고기 덮밥.
이 음식, 너무 매웠다. 심하게 매웠다. 한 숟가락 먹고 나면 다른 밥을 몇 숟갈 퍼넣어야 매움이 가라앉음.
나라면 다시 시키지 않겠지만, 매운 거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을까 싶은 맛.

펍 충무로 (충무로역 4번 출구 매일경제신문사 앞 파리바게뜨 골목으로 50m)
스승의 날을 맞아 급결성된 벙개 모임. 쌤이 충무로 쪽이 좋다 하여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곳이다.
일단 충무로답지 않게 분위기가 아늑하고 좋다. 막 시끄럽지도 않고. 
맥주(생맥은 클라우드)랑 안주가 맛있어서 괜찮았다.  
창가에 빈 맥주병(1.5리터짜리 PET병)을 매달아 장식해놨다.
층고가 높고 나무 천장이라 숲속 통나무 별장처럼 운치있고 좋았다.
테이블도 전부 나무를 깎아 만든 느낌.
클라우드 생맥
돼지고기 바베큐 (25,000원)
이 집 유명한 안주 가운데 하나인 바베큐. 가성비 나쁘지 않고, 양이 많아서 
밥 안 먹고 왔는데, 안주로 밥먹은 느낌. ㅎㅎㅎ

필동해물 (충무로 대한극장 옆 골목 200m쯤 내려와서 대로변)
인쇄소 쪽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들 안다는 필동해물. 나는 처음 가봤다.
안주가 몇가지 없다. 다 생물 해물이라 내가 먹을 수 있는 것도 몇개 없었다.
사람들은 바글바글하고, 인도에도 테이블을 깔아 앉아 있었는데, 때마침 비가 부슬부슬.
우린 도로쪽에 앉았다가 빗방울이 굵어져 가게 바로 앞 처마가 있는 곳에 바싹 붙어 앉았다.
해물모듬 
먹을 수 있는 건 몇개 없었지만 그냥 보기에도 싱싱한 해산물 가득.
함께 나오는 홍합탕을 시원하게 퍼 먹었고, 홍합인지 굴인지 삶은 게 있어서 주워 먹었다.

카츄마마 (분당 정자 엠코헤리츠 빌딩 식당가) 
분당에서 회의를 하고 이른 저녁을 먹으러 간 곳. 분당은 전혀 몰라 원주민을 따라 갔다.
마치 어느 관광지에 온 것처럼 빌딩과 빌딩 사이에 중정과 화단을 만들고 
식당들이 둘레에 모여 있었다. 신도시 주민들은 이런데서 밥 먹는구나 신기했다.
바깥으로 보이는 녹색 화단과 나무들이 예뻐서 밥 먹을 맛 나는 곳.

그린 마마 샐러드 (12,000원)
하하하! 이 샐러드 주문해서 나왔을 때 진심 육성으로 "헉"하는 소리가 밖으로 나왔다.
그릇이 어찌나 큰지.... 사진으로는 그 거대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배가 고프지 않아 돈까스 하나와 샐러드를 하나를 시켜 나눠먹자 한 건데 
이건 뭐 샐러드 한 그릇으로도 둘이 충분히 먹고 남음.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양. 아래쪽은 전부 양상추와 풀떼기였지만 하여간 거대한 샐러드다.
클래식 돈카츄 (13,000원)
돈까스도 어마어마했다. 고기를 2덩이나 준다. 
이것 역시도 1인분이라기보단 2인분.
이날 이거 다 먹고 헉헉대며 버스 타고 서울 올라왔는데, 
잠들 때까지도 배가 꺼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도 굶었다. 배불러서.
돈까스 맛은 딱 옛날 경양식집 돈까스 맛. 마음에 듦.

팥빙수의 계절이 시작되었고, 팥빙수빠 언니의 손에 끌려 파리 크라상에 들어가 올해 첫 팥빙수를 먹었습니다.
고로게는 맛있었다. 저 오징어를 닮은 소시지빵은 그냥 모양만 좋았다.

바른 치킨 (건대 입구역 1번 출구 첫번째 골목 1층)
뚝섬 벼룩시장 갔다가 돼지갈비와 이자까야를 제치고 결국 낙찰된 것은 치맥.
의외로 건대에 치킨집이 없다며 횡단보도를 건너 발견한 곳이 바른치킨이다.
이제 막 문을 열어 알바 혼자서 청소, 접객, 서빙까지 다 하느라 힘들어보였다.
화장실 문이 잠겨서 쌩쇼를 했고, 음악소리가 넘나 시끄러워서 낮춰달라고 했는데 거절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쾌한 기억보다 재밌었다고 기억되니...ㅎㅎㅎ
치킨 샐러드 
샐러드 3종류가 있어서 다른 샐러드를 시켰는데 되는 게 이것 밖에 없다고 했다.
치킨 뜯으면서 또 치킨샐러드라니 싶었지만, 의외로 맛있었다.
바삭바삭 튀겨진 치킨 조각 씹으면서 야채 같이 먹으니 괜찮았음.
반반 바른치킨 (16,900원)
수많은 메뉴 중에 고민고민하다 시킨 메뉴. 치킨은 역시 반반이 진리.
치킨이 의외로 맛있었다. 셋이서 이거 다 먹고 살짝 모자라서 같은 걸로 하나 더 시켰다.
물론 그것은 과욕으로, 나중에 시킨 치킨은 두어조각 먹고 싸갔다.
여기저기 체인점 많던데, 바른치킨 맛 괜찮은 듯.

교다이야 우동 (합정역 7번 출구 합정마트 길 100m 직진) 가마보코아게 (5,000원)
여기 우동은 여러번 올렸으므로 사진 생략. 
이건 처음 시켜본 가마보코아게. 사이드 메뉴로 오뎅 튀김이다. 맛있다.
역시 여긴 오뎅을 잘 하는 듯.

무대륙 (합정 당인리 발전소 맞은편 휴먼빌 아파트 맞은편)
오랜만에 가본 무대륙. 평일 낮이었는데도 손님 꽤 많고, 우리는 바람 불어오는 자리에서 낮술을~
무대륙 샘플러
요놈도 오랜만이네. 한잔 마시고, 흑맥주는 나눠 마셨다.
이거 비우고 그냥 맥스 생맥 마셨는데, 확실이 샘플러쪽이 더 맛있었다.
피시 앤 칩스 (19,000원)
서교동 과수원 피시 앤 칩스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피시 앤 칩스도 만만치 않음.
양도 많고, 따끈따끈, 소스로 여러 종류, 감자튀김도 맛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밥 먹자마자 맥주에 피시앤 칩스까지 배가 꺼질 겨를이 없었다.
영국 갔던 누군가가 그러더라. 영국 사람들한테 우리나라 피시 앤 칩스 만드는 법을 전수해줘야 한다고.

또 이렇게 먹고 다녔네 그려.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읽고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김혜리 | 어크로스

김혜리 기자의 글을 좋아한다. 아주 예전부터. 
'난처함에 이목구비가 있다면 휴 그랜트의 얼굴일 것이다' -> 어떻게 이렇게 간단하게, 그런데도 이렇게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지? 놀라웠다. 
그런데 이 책 뒷표지에 무려 신형철이 '바로 이 사람처럼 잘 쓰고 싶다'고 사랑고백을 해놓았다. 헐...이건 반칙 아님? 신형철처럼 잘 쓰는 사람이 이렇게 거세게 고백해버리면 10여 년 이상 김혜리를 마음에 품고 있었던 나의 애정은 드러내 보이기도 창피해지잖아...ㅠ.ㅠ (나는 무려 15년 전에 김혜리 기자에게 책 내시라고, 꼭 내시라고 이메일 썼던 사람이라고! 가만...이메일이 아니라 댓글이었나? 어쨌든 김혜리 기자가 자기 글은 책 낼만큼 안된다고 답글도 달았던 것 같은데...그리고 한참 뒤에 결국 그녀는 책을 냈다.)

요즘도 씨네21을 읽는데, 거기 김혜리의 영화일기가 나온다. 사실 김혜리의 영화일기는 이 전 글들에 비해 재미가 별로 없다. 그녀는 인터뷰 기사에서 발군이고(그 인터뷰가 길다면 더 좋다), 한편씩 혹은 주제를 정해 써놓은 영화평들은 재밌었지만, 제목도 붙이지 않고 날짜별로 일기처럼 써놓은 영화일기는 집중력이 떨어져 잘 읽게 되지 않는다. 주간지에는 잘 안맞는 컨텐츠라는 느낌도 든다. 
그녀의 영화일기를 보면서 그녀도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었구나 느꼈다. 왜냐면 나도 그렇기 때문이다. 인상적인 영화를 보고 달아올라 그 영화만의 글을 써본 게 언젠지 모르겠다. 블로그에서 영화평을 한달에 몰아 한꺼번에 올리기 시작한지 몇년 되었다. 예전에는 한편 한편에 곱씹고 뜯어보고 정성을 들였다면 요즘은 한편에 길어봐야 10줄이 넘어가지 않는 글을 간단하게 소회만 쓴다. 그리고 그렇게 쓴 글은 반향도 별로 없다. 나중에 내가 찾아볼 때나 도움이 되겠지 독자를 생각하는 글쓰기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김혜리의 영화일기도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김혜리의 영화일기'는 주간지가 아니라 이렇게 책으로 펴내기에 적합한 글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책의 글 중에는 내가 씨네21에서 읽었던 글도 많다. 그런데도 느낌이 다르다. 첫 영화(와일드)의 첫구절부터 따라 쓰고 싶은 글의 향연이었다. 밑줄긋기를 모으다 포기했다. 그렇게 밑줄 그으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어야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를 보는 그녀의 눈과 나의 눈은 다르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본다. 내가 <와일드>에서 엄마와 심정적으로 헤어지기 위해 애도하는 여자 아이를 본다면 그녀는 여행의 괴로움을 본다. 나는 <플로렌스>의 메릴 스트립이 노래를 너무 잘하는 사람이었기에 어울리지 않는 캐스팅이었다고 평가한 반면 그녀는 메릴 스트립이 음치의 노래마저도 연기로 승화시켰다고 극찬한다. 나는 <메기스 플랜>의 에단 호크가 극도로 이기적인 남자라고 생각하는 반면 그녀는 별로 나쁘게 보지 않는다. 나는 <폭스캐처>의 마크 러팔로가 괜찮은 형이고 완성된 인격체였다 생각한 반면 그녀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 남자라고 생각한다. 이런 견해를 영화주간지에서 읽었을 때는 마음에 안들어서 덮어버렸지만, 이렇게 차분하게 책으로 읽으니 다 이해할만 하고 수긍할 만하다. 이레서 나는 책이 좋다. 책이라는 컨텐츠는 이래서 필요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김혜리의 글에 대한 애정이 솟았다. 언젠가는 한편 한편 필사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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