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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아가기 읽고

혼자 살아가기
송제숙 지음
황성원 옮김
동녘

김춘수가 '누가 나에게로 와서 나의 이름을 불러주자 꽃이 되었다'고 했던가. (이 구절을 쓰려고 김춘수의 꽃을 찾아보고 개충격!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자 그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한다. 와...이 자기중심주의. 역시 한국남자의 시였어...)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이름이 불려진 듯한 기분을 느꼈다. 386처럼 가열찬 투쟁을 했던 것도 아니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가정을 이루지도 못했고, 직장 또한 철새처럼 떠돌아다니다 프리랜서로 산지도 10년이 넘어 이제는 불안정이 안정처럼 느껴지는 지경에 온 나에게, 이 책은 정확히 '정치적으로는 좌파, 사회적으로는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전월세에 사는 비혼여성'이라는 이름을 불러주었다.
태곳적 'X세대'라는 지칭을 받으면서도 내 자신이 그렇게 힙하고 오렌지족처럼 살진 않아 어색했고, 학창시절 운동권의 영향 안에 있으면서도 앞뒤 꽉꽉 막힌 선배들에게 답답해했고, 돈 따박따박 잘 주는 직장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왔고, IMF의 직격탄을 맞았으면서도, <섹스 앤 시티>에 환호했고, 스타벅스 커피와 브런치를 선망했던 나는, 이제 세월이 흘러 영 페미니스트들이 부상하고, 요즘의 운동방식이 채식과 반려견, 생태주의로 표방되자, 저 뒤에서 "우리 때도 페미니즘은 열렬했어."라든가 "동물 싫어하는 사람은 어떡하라고?"를 궁시렁거리고 있는 나이가 되었다. 여전히도 월세를 따박따박 내면서, 노후 준비는 개나 주라는 심정으로 살면서도, 그래도 뭔가 좀 의미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나, 사회가 이상한 방향으로 갈 때는 제동을 걸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그런 신념과 내 자유주의적인 생활방식은 과연 맞는 것인가 갈등도 하면서.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위로가 되는 책이었다.

'혼자 살아가기'라는 제목과 일러스트가 그려진 표지만 볼 때는 싱글여성의 말랑말랑한 에세이처럼 보이지만, 이 책은 그런 책이 아니다. 캐나다 토론토대학교의 교수가 영어로 쓴 논문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이다. 논문이라니...그것도 번역한 논문이라니! 초반에 그 문체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하다. 문장이 길고, 꾸며주는 부분이 길어서 읽다가 헤매기도 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들이 다른 말로 표현될 때 묘한 쾌감이 있다. 우리가 흔히 'IMF'라고 하던 시기를 '아시아금융위기'라고 한다든가 '계'를 '퇴적된 금융화'라고 정의할 때, 또 '월세집에 산다'는 말 대신 '임대주택에 살며 달마다 임대료를 지불한다'라고 다르게 말하면 일상언에 따라붙던 구질구질함이 제거되고, 내 삶이 사회학적 연구대상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저자는 2000년대 후반(그러니까 2010년이 되기 전)에 서울에 사는 비혼여성 16명을 인터뷰하여 그들의 삶을 이루는 공통요소를 뽑아내고 그걸 한국적 상황과 역사에 결부시켜 이 책을 썼다. 일종의 세대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내가 딱 그 연구대상에 들어맞는 사람이다 보니 약간은 감격스럽고 기꺼웠다.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던 집단에 돋보기를 들이댄 느낌이었고, 이 분이 이제는 또 달라진 시대(2020년대)에 다시 한번 이런 논문을 써주면 기꺼이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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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_ 한국 싱글남성의 노동과 비교했을 때 한국 싱글여성 노동의 유일하게 다른 혹은 더 강조할만한 지점은, 여성 대다수가 제조업이 가장 왕성했던 시기에마저 학위에 대한 보상을 안정된 일자리로 받아본 적이 없었다는 데 있다.
31 _ 가부장적인 가족 시스템이 정부 정책에 반영된 또 다른 사례는 '여성 가장'들이 아시아금융위기 시기에 남편이나 부계혈통의 남성 친족의 보증 없이는 여성 가장 창업자금 지원 사업에 신청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 사업이 남성 가구주가 없는, 또는 남성 가부장이 일할 수 없는 상황의 생계 대책으로 마련된 것임에도 말이다.
74 _ 공동체를 만든다는 건 모든 걸 공유하고, 같은 걸 먹고,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시간에 자고 한다는 게 아니에요. 그건 생물학적인 가족 규범의 프레임을 그대로 반복하는 거죠. 우리가 그 프레임을 따르게 되면 또다시 부담과 죄책감만 양산하는 불행한 가족을 만들게 될 거예요. 저는 제 생활양식을 존중하는 공동체 안에서 혼자 살아가고 싶어요.
93 _ 많은 한국인들이 주택청약예금은 만인이 꿈꾸는 내 집 장만의 미래를 실현할 수 있는 공정한 절차라고 생각한다. 이는 임대주택은 과도기적인 주거형태라는 신념을 강화한다. 하지만 내 연구참여자들을 비롯한 노동빈곤층에게 임대주택은 장기적으로 또는 영구적으로 유일한 선택지이다. 
121 _ 요컨대 한국의 임대 제도는 집주인이 집세만  받는 시스템이 아니라 목돈의 현금을 비공식적으로 손에 넣어 돈놀이를 할 수 있는 장치인 것이다.
124 _ 금융법과 은행조례는 특히 임대주택 대출 신청 자격요건에 정규직 일자리 규정과 연령 규정을 넣음으로써 결혼한 부부와 규범적인 가정이 당연히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듯이 명시해놓았다.
179 _ 많은 비혼여성들이 규리처럼 가난 속에서 가정을 책임지거나 자경과 선우처럼 병든 부모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돌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의 범주에 비혼여성이 아닌 여성들만 해당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184 _ 급진적인 정치운동의 쇠락과 함께 이들이 사라진 듯 보이게 된 것은 거부나 배신이라기보다는 자기 유예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세대의 일선 학생운동가였던 비혼여성들의 서사는 이들의 자기 유예가 과거 운동가로서의 경험에서 누적된 실망과, 자신의 비전과 가치에 대한 탐색, 그리고 비혼여성이 혼자 살아갈 자유 등과 같은 개인적 공간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뒤섞이면서 발생한 것임을 보여주는 풍부한 사례를 제시한다. 이 여성들은 정치적으로 우파적이고 사회적으로 자유주의적이거나(신자유주의 시장과 결합한 보수적인 국가 제림 같은) 정치적으로 좌파적이고 사회적으로 보수적인(남성적인 학생운동가 출신들 같은) 이들의 지배적인 힘에 저항하면서, 정치적으로 좌파적이고 사회적으로 자유주의적인 새로운 공간을 향한 불씨를 지피고 있다.  
187 _ 민주화가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았어요. 그보단 자본주의를 더 촉발시킨 것 같아요. 사실 이젠 '민주화'라는 말도 그렇게 자주 듣지 못해요. 자유주의적인 민주화와 자본주의의 가속화는 거의 동의어가 아닌가 싶기도 해요.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읽고

사랑 밖의 모든 말들
김금희 | 문학동네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유투브에서 머릿말의 일부를 읽어줬기 때문이다. 
"아픈 기억을 버리거나 덮지 않고 꼭 쥔 채 어른이 되고 마흔이 된 날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프다고 손에서 놓았다면 나는 결국 지금보다 스스로를 더 미워하는 사람이 되었을 테니까. 그리고 삶의 그늘과 그 밖을 구분할 힘도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좋아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김금희 작가가 소설가가 되고 11년 동안 썼던 산문을 묶은 책이다. 첫 에세이집인 셈이다. 최근의 이상문학상 수상거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소설을 쓴다는 것(작법이라긴 좀 애매한)에 대해서도 나온다. 집안 이야기와 유년의 기억,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가끔 좋은 글도 있었으나 대개는 뭐라는지 잘 모르겠는 너무 미문이기만 하거나, 아사무사해서 여러번 읽어야 뜻이 통하는 문장들이 많았다. 이 작가는 에세이보다는 소설이 낫다. 사실 소설도 <경애의 마음>이 딱 좋았고, 나와 결이 잘 맞는 작가는 아니었지....

밑줄긋기
5 _ 아픈 기억을 버리거나 덮지 않고 꼭 쥔 채 어른이 되고 마흔이 된 날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프다고 손에서 놓았다면 나는 결국 지금보다 스스로를 더 미워하는 사람이 되었을 테니까. 그리고 삶의 그늘과 그 밖을 구분할 힘도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25 _ 때로 시는 마음이라는 수면의 무늬를 흰 종이로 걷어내는 방식으로 쓰이기도 한다.
71 _ '우리가 그런 사이는 아니잖아?'라고 항의하기 위해 타이밍을 살펴야 하는 상황은 한국에서 이렇게 잦고 불시에 등장한다.
79 _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예단하지 않고, 내가 여기까지 해주겠다 미리 선 긋지 않는 선의. 그러한 선의가 필요한 순간 자연스럽게 배어나올 수 있는 것. 그것은 얼마나 당연하면서도 소중한가. 이러니 매순간 배워나갈 수밖에 없다.
106 _ 나는 분명 전달받았는데 그 전달받음의 세세한 과정은 삭제되고 전달받았음의 마음만 남아 있다. 말은 사라지고 마음만 남은 상태,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충분히 정확하게 전달된 소설 수업의 형태일까.
152 _ 소설을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나쁨'에 대한 지겨운 고백을 듣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159 _ 일직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많이 잡는다는 명언이 일견 진실일지라도 그런 새는 이미 초저녁부터 잘 쉬었던 새임을 깨닫고는 나는 왠지 억울해졌다.
208 _ 죽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근원적으로 품고 가야 하는 고통이자 딜레마다. 죽음이 어떻게 다루어지는가는 어떻게 사는가 만큼이나 중요하다. 죽음을 덮거나 피하지 않고 진정으로 애도할 수 있는 사회, 그럴 수 있더록 사회의 공기를 조성하고 충분히 슬퍼하고 분노할 수 있게 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만이 삶은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이 된다.
231 _ 어떤 불행은 나를 비켜 가리라는 기대보다는 내게도 예외란 없으리라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 위로받는다.


D-2 며느라기 그리고

수많은 사린이를 그린 끝에 가장 비슷하게 그려진 한 컷.
다 마음에 드는데, 사린이 표정이 걱정스러워보여서 첫 방송인데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다시 그림.
헤헤헤

D-2. 이제 이틀 남았어요.
카카오톡에서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쭉~ 볼 수 있고, 놓치신 분들은 웨이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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