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수류정의 낮과 밤 살고

수원 화성은 지나다면서 보긴 했다. 바로 앞까지 가서 차를 마신 적도 있고, 그 앞의 미술관에 가본 적도 있지만 화성 자체를 제대로 본 적은 없었다. 동생이 화성 안에 있는 초등학교에 발령받아 일을 하고 있는데도, 그렇게 한번 오라고 성화를 하는데도 못가보다가 이번 가을 드디어 가보게 되었다. 마침 날이 맑고 화창한 가을이라 하늘이 다 했던 날이었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버스에서 내려 장안문으로 들어가는데, 이런 귀여운 빨간 곰돌이가 서 있었다.
화성에는 정자가 여럿이었는데, 그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는 방화수류정.
나는 여기 한낮에 한번 올라가고, 해질 때 또 한번 올라갔다. 
신발 벗고 올라가니, 사방으로 탁 트인 경치와 불어오는 바람, 
손질 잘된 반질반질한 마룻바닥이 너무나 좋은 것. 종일 멍때리고 싶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정자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나는 눕는 대신 플랭크를 했다. ^^;;
방화수류정에서 바라본 오른쪽 언덕길. 
해질녘, 이번에는 다른 멤버들과 또 한번 올라갔다.
분홍빛으로 물든 구름과 하늘이 참 좋다.

방화수류정에서 내려다보면 뒷편에 용연이 보인다. 
낮에 보면 그냥 평범한 연못인데, 이곳이 그렇게 인스타 핫플이란다.
여기 피크닉 세트를 대여해주는 사업이 번창하고 있다고.
캠핑의자와 테이블, 피크닉 바구니와 매트, 조화까지 세트로 빌려줘서 
사진을 찍으면 예쁘게 나온단다. 과연 그러했다. 저녁에 찍으니 정말 사진 잘 나오는 곳이었다.
해질녘의 용연.
화성의 다른 곳들은 내가 눈으로 보는 것보다 사진이 훨씬 안나오는 편인데, 
용연만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사진이 훨씬 잘 나왔다.
밤의 용연.
멋지지 아니한가?



최애, 타오르다 읽고

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창비

고등학생 아카리는 아이돌그룹 마자마좌의 마사키를 덕질한다. 어린 시절 연극 무대에서 피터팬 역을 맡았던 마사키를 인상적으로 봤던 그녀는 고등학생이 되어 마사키가 아이돌로 데뷔했다는 걸 알게 되고, 그때부터 덕질을 시작한다. 기본적으로 음반을 여러개 산다든가, 악수회에 간다든가, 투표에 참여하는 건 다른 팬들과 같지만, 아카리만의 차별점이라면 최애의 심리적인 부분을 해석해서 블로그에 올린다는 것. 그래서 아카리 블로그에는 팬들이 많다. 
그런데 최애 마사키가 팬을 때렸다. 그 일로 난리가 나고 공식 사과도 하지만 최애의 인기는 확 떨어지고, 아카리는 이제껏 그의 심리를 안다고 자부했지만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아카리는 결국 수업도 안들어가고 시험도 엉망으로 봐서 3학년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유급된다. 유급을 당하느니 자퇴를 하기로 한 아카리. 그런데 최애는 인스타라방을 하다가 은퇴하겠다는 폭탄발언을 하는데...

한때 인스타에 우수수 떴던 책이다. 제목도, 강렬한 표지도 인상적이어서 읽어봤는데....왜 다들 앞부분만 잠깐 언급하고 말았는지 알겠다. 재미가 없다.
내 주변에도 방탄 덕질하는 사람이 최소 다섯은 넘는다. 다들 40대다. 연예 기자도 해봤고, 아이돌 팬클럽 관리도 해봤고, 어릴 때 나의 아이돌에게 팬레터를 쓴 적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의 덕질은 예전과 수준 자체가 달라서 좀 궁금한 부분이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으려나 싶어서 읽어봤다. 학교 가는 것도, 수업 하는 것도, 밥 먹는 것도 무엇 하나 의욕이 없는 주인공은 학교에 거의 결석하거나 가더라도 엎어져서 잠만 자거나 아니면 양호실에 누워있는 무기력한 인간인데, 꾸역꾸역 알바는 한다. 왜? 아이돌 덕질하려고. 오로지 그것만이 그녀를 살게 한다. 그녀는 그걸 자신의 척추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사는 자신에게 왜 엄마는, 언니는, 선생님은 잔소리를 하고 괴롭히는지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살게 내비두면 안되는 건지...그런 그녀를 보면 한숨이 나오는 나는 기성세대. 어쩔 수 없다. 
소설 자체는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을 생각나게 했다. 일본 문단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어린 여성 작가라고 호들갑이었지만 막상 읽어보니 내 취향은 아니었던 작품이다. 이 책도 딱 그렇다.


지금 이 목소리를 듣는 것이 우리의 정의다 읽고

지금 이 목소리를 듣는 것이 우리의 정의다
이문현 지음
박윤수 감수
포르체

나는 르뽀를 좋아한다.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킨 사건에 대해 실시간으로 따라잡는 것도 물론 재밌지만, 그 사건들이 다 끝난 뒤에 정리된 한 권의 책은 그 사건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게 해주고, 내가 실시간으로 따라잡지 못했던 디테일들을 보여준다. 이 책은 버닝썬 사건을 최초로 보도했던 MBC기자의 버닝썬에 대한 기록이다.
촛불집회를 이대생들이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고 했던 것처럼, 버닝썬 게이트도 김상교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고 했다. 나도 김상교 사건은 알고 있었지만, 디테일은 자세히 몰랐다. 가드에게 폭행당해 갈비뼈가 3대나 부러진 사람을 경찰이 와서 뒷수갑을 채우고 지구대에 데려가 몇시간을 방치했다니...하... 그 와중에도 피해자측과 가해자측 둘 중 어느 쪽도 믿으면 안되는 기자의 윤리의식이 느껴졌고, 일반 배속과 0.2배속으로 돌렸을 때 달라지는 CCTV의 진실도 흥미로웠다.
특히 이 책에서 내가 새로 알게 된 건 속칭 물뽕이라고 하는 GHB의 무서움이다. 강간약물에 대한 미술전시를 본 적도 있고, 이걸 몰래 먹여 여성들을 성폭행 내지는 성추행했다는 사실도 알았지만 그 증상이나 법의 헛점은 몰랐다. 물뽕은 일단 물처럼 생겨서 음료에 타면 탔는지 전혀 모르고, 먹었을 때 기억은 끊어지지만 행동은 멀쩡하다고 한다. 그래서 CCTV를 돌려보면 여성들이 제발로 호텔에 들어가고, 겉보기에는 의식을 잃은 표시가 나지 않는다. 나중에 일어나서 당했다는 걸 알고 검사를 해도 먹은지 6시간이 지나면 검출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당한 여자들은 억울해 팔짝 뛰는 거다. 이런 무서운 약물일 줄 몰랐다. GHB를 수입 판매하는 마약사범을 처벌한 적은 있어도 그걸 복용해서 처벌받은 사람은 0명이라는 게 이 약물의 무서움을 보여준다. 게다가 이 약은 자기가 먹으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 먹이려고 사는 거라 성분이고 양이고 조절하지 않고 마구 사용한다는 게 더 무섭다.
그래서 여자들이 그렇게 혜화동에 모여 시위를 하고, 버닝썬에 치를 떨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약물에 의한 강간죄는 국회 법사위에 올라갔다가 결국 법 제정이 안되고 흐지부지 됐다고 한다. %^&*%(육성으로 욕하고 싶지만 참는다..으으으) 
만수르세트니 린 사모니 하는 것들은 이 책에서 처음 봤고, 마약상이자 MD였다는 애나는 알고 있었는데, 책을 보니 어떻게 그렇게 활개를 치며 일할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런 어마어마한 돈이 현금으로 왔다갔다 하고 강남경찰서나 역삼지구대와 붙어먹으면서 모든 단도리를 했던 그 버닝썬이 회계관리는 엉성하게 하고, 결국 경리담당이 돈 들고 날랐다는 이야기를 보니 참 씁쓸했다.
내용 전체에서 가장 분노스러웠던 것은 경찰이 셀프 수사를 하겠다며 브리핑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은 순간이었다. 이 기자가 질문에 답하는 고위직 경찰의 표현 방식을 어떻다고 적절하게 표현할 단어가 없어서 그대로 옮겨본다며 적어놨는데, 다음과 같다.

Q 중국인 여성의 혐의는 확인됐나요?
A 어떤 혐의?
Q 버닝썬 대표 소환은 결정할 건가요?
A 어떤 내용으로요?
Q 마약 성폭력 등 의혹이 클럽 운영진과 연결되어 있는지 보려면 경찰의 의지가 중요하지 않나요?
A 클럽 운영진과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은 왜 제기하는 건가요?

와...나 이거 보는데 뒷골이 당겼다. 반말 비스무레하게 "어떤 혐의? 어떤 내용으로요?"하면 진짜 질문했던 기자들도 황당해서 말이 안나왔을 것 같다. 역삼지구대는 4대의 CCTV 중 3대가 깡통이었다는데, 서울 어떤 지구대도 그런 곳은 없다고 한다. 버닝썬 이후 강남경찰서는 절반 이상 물갈이가 됐다던데 과연 지금은 괜찮은 건지 모르겠다.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강남경찰서 경찰 자살 사건이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는데, 책 다 읽고 찾아보니 자살사건은 버닝썬이 터지기 10년 전에 있었던 사건이었다. 안나올만 했네.
마지막에 이 기자가 버닝썬 게이트 취재에 도움을 준 선배들과 동료들, 데스크의 이름을 쭉 나열하는데, 마치 내가 그들과 함께 일했던 것처럼 울컥했다. 

밑줄긋기
87 _ 기자는 누구의 말이든 그냥 믿으면 안 된다. 우리가 월급을 받는 이유는 누군가를 대신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하고, 취재를 통해 '진짜 사실'을 발견해내기 때문이다.
114 _ CCTV는 지구대에 끌려온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동시에 경찰관을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한다. 양쪽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말이다.
116 _ 불리할 때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공격하는 방법은 아주 고전적인 수법이다. 메신저를 물어뜯으면 상처 입은 메신저는 입을 닫거나 숨어버린다. 본질은 자취를 감추고, 대중의 관심도 곧 멀어지고 만다. 악랄하고 치졸한 방법이지만, 효과는 확실하다.
142 _ "히로뽕이든 젤리든 자기 몸에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적당한 양, 확실한 물건만 쓴단 말이에요. 그런데 물뽕은 진짜 나쁜 게, 자기가 아니라 타인한테 쓰는 거니까 그냥 막 넣죠. 그 사람이 어찌되든 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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