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살인 읽고

간병살인
마에다 미키오, 시부에 치하루, 무코하타 다이지 지음
남궁가윤 옮김
시그마북스 

<워킹 푸어>부터 일본 NHK의 탐사보도를 기반으로 한 책이 꾸준히 번역 출간되고 있다. 그게 잘 팔린다 싶으니 NHK가 아니라도 사회적인 문제를 비슷한 표지와 충격적인 제목으로 꾸미고 나온 책이 여럿이다. 이 책도 그런 책 중 하나다. 나는 제목을 들었을 때부터 당연히 NHK팀의 책일 거라 생각했는데, 빌리고 보니 마이니치신문의 취재팀이 쓴 책이다. NHK보다 못하다. 글도 별로고 취재 밀도도 낮다. 글은 방송보다 신문이 윗길 아닌가? 신문기자들이 방송기자보다 못쓰다니 실망이야. (물론 NHK팀은 사람이 많고, 마이니치는 3명이서 전담을 했으니 질적 차이가 있을 수 있겠다) 

읽으면서 두 가지를 알게 됐다. 
간병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다들 느끼지만 그것이 살인이라는 강을 건널 때는 불면이 큰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 잠을 못자면 사람이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간병살인을 막으려면 간병인이 잠을 자도록 해야 하는데, 그걸 사회가 도와주지 못한다. 대체로 불면증에 걸린 간병인들의 환자들은 중증이라 어느 시설에서도 받아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밤새 소리를 지르거나 돌아다니거나 하기 때문에 시설에서 받아주질 않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간병인은 잠을 잘 수가 없는 것이다.
또 하나는 간병살인마저도 남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저지른다는 것. 전체 환자의 간병인 비율은 남녀가 3:7 비율인데, 간병살해자의 비율은 7:3으로 역전된다. 이 책에선 남자들이 감정적으로 고립되는 경우가 많아 스트레스를 혼자 짊어지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고 분석하던데, 그것도 물론 그렇겠지만 남자들이 '죽여도 된다' 혹은 '죽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뭐든 독박은 나쁘다. 독박 육아도, 독박 간병도. 하지만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앞으로 점점 간병받을 인구는 늘어날테고, 간병할 인구는 줄어들텐데 어떤 대책이 있을까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하다. 
내가 왜 이런 책을 자꾸만 읽는지 생각해봤다. 간접경험을 하기 위해? 앞으로를 대비하기 위해? 무엇이든 나를 무장하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내가 간병하는 것만 생각했지 간병받는 사람이 된다는 생각은 1%도 하지 않았는데, 발 다치고 움직일 수 없게 된 두달 동안 간병인뿐 아니라 환자도 힘들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더욱 간병은 정말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알수록 더 막막한 분야다. 여긴. ㅠ.ㅠ 

기타 부기 셔플 읽고

기타 부기 셔플
이진 | 광화문글방

이 소설은 장강명이 심사위원이었던 제5회 수림문학상 수상작이다. <당선 합격 계급>에서 심사과정이 소상히 소개되었고, 자신(장강명)은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거의 팔리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던 소설이다. 재밌는 소설이라는데 안읽을 이유가 있나. 찾아보니 우리 동네 도서관에는 없어서 상호대차까지 신청해서 읽어봤다.
재밌었다. 1960년대 전쟁이 끝나고 미8군의 밴드 헬퍼(악기와 의상 나르는 보이)로 일하게 된 소년이 기타리스트로 성장하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친척집 더부살이의 서러움, 하루 아침에 공장에서 쫓겨난 뒤의 가난, 음악다방, 연예계에 만연했던 아편과 대마초, 미군 병사와의 우정, 캄보밴드와 댄서, 짝사랑과 비열한 사랑, 바이올린과 기타, 빽판과 빌보드 차트, 남산 케이블카, 밴드 오디션 등의 에피소드가 쭉 이어진다. 1960년대 미군부대 내의 연예계가 손에 잡힐듯 선명하게 그려진다. 영화로 만들어도 재밌겠다고 생각하면서, 키키 킴은 과연 누가 하면 잘할까 혼자 막 상상해보곤 했다.

아빠로부터 취향을 물려받았으나 전쟁 덕에 삼촌네서 더부살이를 하게 된 김현. 밥 먹을 돈을 아껴 음악다방에서 팝송을 듣던 그는 땡전 한푼없이 공장에서 내쫓겼을 때 운좋게 친구 우기를 만나 미8군 헬퍼로 들어간다. 음악에 대한 사랑과 성실성 덕분에 꽤 많은 월급을 받으며 일했고, 아편에 취해 기타 연주를 못하게 된 기타맨을 대신해 코드 뽑고 기타치는 흉내를 낸 그날부로 기타리스트가 되었고, 가장 실력좋았던 형들이 좋게 봐준 덕에 독립해서 캄보밴드인 와일드캣츠의 일원이 될 수 있었다. 스무 살의 그가 음악과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도 재밌고 흥미진진했지만, 뒤에 할아버지가 되어 '나는 인복이 있었다'며 회고할 때도 좋았다. 손자 앞에서 기타를 치는 마지막 장면까지 읽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수림문학상 심사위원들이 '과연 좋은 이야기가 좋은 소설인가' 토론까지 벌일 정도로 이 소설은 다큐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나는 그게 나쁘지 않았다. 아마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글이 다큐를 닮은 픽션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다큐 같은 픽션을 쓰며 꽤 즐거워하는 중인데, 이 소설을 읽어보니 내가 원래 이런 글(내가 몰랐던 한 시대를 관통하며 살았던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이 그 시대를 보여주는 이야기)을 좋아했단 걸 알았다. 작가의 말에서 '가장 새롭고 진보적이라고 배우고 믿었던 사상과 사물들이 짧게는 수십 년, 멀게는 수백 년 전의 과거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개념 단위로 존재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이미 명확한 형상을 갖추고 있었다'고 썼던데, 내가 과거의 사건이나 시대상에 관련된 것들을 파다보면 느끼는 게 바로 그것이다. 현재는 결단코 과거와 멀리 있지 않다.   

밑줄긋기
110 _ 그러나 사람을 무대 위에 서게 만드는 근본적인 힘은 지극히 본능적이며 육체적인 것이었다. 모든 딴따라들의 영혼에 찍힌 낙인. 속된 말로 '끼'라고 불리는 그 재능은 최초에는 이성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풋내기다운 욕망에서 시작한다. 쇼를 거듭해갈수록 그 욕망은 덩치를 부풀려 수백 수천 청중의 우레 같은 갈채를 갈구하게 된다. 무대라는 단상 위에서 기독교 부흥회의 장로처럼 접신을 한다. 인간을 초월하여 신에 가까워지고자 하는 욕망. 딴따라의 야생적 끼가 도달하는 궁극적인 지점에는 역설적으로 종교적인 숭고함이 있다.
139 _ 형제지간에 사랑하는 형제가 있고 미워하는 형제가 있다면 인생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전자보다는 후자일 테다.
145 _ 내가 발을 들여놓은 연예계는 일견 유토피아처럼 보였다. 달러화가 쏟아지는 파라다이스. 전쟁고아 출신 떠꺼머리가 인텔리 사원보다 값비싼 봉급을 받는 세계, 미국인이 한국인을 상대로 아낌없는 상찬과 경의를 표하는 세계, 서울에서 홍콩과 마닐라와 도쿄와 라스베이거스까지 이어지는 세계, 핏줄과 학력을 초월하는 실력주의가 통하는 이상향의 세계는 거꾸로 뒤집어보면 핏줄로도 학력으로도 획득할 수 없는 재능이라는 무형의 계급이 지배하는, 그 어떤 세상보다도 가혹한 세계였다.




만랩 나미브 커피 (10000LAB X NAMIB) 살고

이태원 해방촌. 말은 많이 들었지만 한번도 가본 적은 없었던 곳. 모임 MT장소가 해방촌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라 가보게 되었다. 뜨거운 오후, 이제 막 보도블럭이 깔리기 시작해 아쿠아슈즈 사이로 모래가 들어오는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야 했다. 그 게스트하우스 근처에 갤러리 겸 카페가 있다고 해서 토요일 오전에 들렀다. 우리가 거의 첫손님으로 요소요소 아름다운 공간을 전세내듯 구경하고, 함께 앉을 자리가 없어 편한 곳에 따로따로 앉아서 맛있는 커피와 에클레어를 먹었다.
인스타갬성으로 충만한 곳인데, 그런 장소치곤 자리도 편해서 좋았다.
갤러리 카페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하에선 사진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진의 수준은 안습....
지하층에서 야외 자리로 연결되는 슬라이딩 도어 공간. 
외부 계단으로 내려올 수도 있음.
야외 좌석은 이렇게 꾸며져 있다. 
지하의 다른 공간. 등받이 없는 의자와 낮은 탁자로 이루어진 2인용 자리들.

1층과 2층은 꼬불꼬불 나선형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1층에서 커피 주문 받고, 아래층 내려가서 마신다.
전체 코지코너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코너.
쇼나조각, 타자기, 꽃이 조화롭게 어울린다. 
애들이 타자기 쳐보며 즐거워했다. 찰칵찰칵 타자기 소리는 언제나 즐거워.
이 타자기 코너를 중심으로 옆에는 2인용 자리, 다른 옆에는 작업실 모드의 책상.
플랫화이트. 신맛이 강했지만 맛있었다. 
원두도 200g에 8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 
사놓은 원두가 많아서 눈물을 머금고 외면했다.
에클레어라는데, 평소 먹던 에클레어와는 사뭇 다른 맛.
방금 튀겨낸(혹은 구워낸) 것인지, 표면이 바삭바삭하다.
나 에클레어 별로 안좋아하는데, 요건 맛있었다.

해방촌은 처음 가본 곳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디카를 들고 간 관계로 여기저기 다 찍어봤다.
인스타갬성으로 무장한 카페들을 별로 안좋아하는데, 이 날은 손님도 별로 없었고, 커피도 맛있어서 괜찮았다.
나중에 인터넷 찾아보니 만랩 스페셜티 커피는 프랜차이즈였다.
로고가 하늘색이라 블루보틀을 연상시키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뇌에 커피를 들이붓는 그림으로, 뇌가 카페인에 절여진다는 걸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로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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