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항쪽으로 가다보면 넓은 부지에 현대적으로 지어진 큰 건물이 마주보고 있다. 바다쪽에는 예술회관이, 언덕쪽에는 옥공예관, 문학관 등 몇 개의 건물이 있다. 옥공예관은 무료 관람이라 문학관도 그런 줄 알고 갔더니 입장료가 2천원이었다. 입구에 티켓 자판기가 있어서 돈 넣고 끊으면 된다. 1층에는 박화성, 차범석 관이, 2층에는 김우진, 김현관이 있다. 중앙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을 보고 김현관에서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오면 1층을 둘러볼 수 있다.

김우진 관에 들어갔을 때는 사진기를 꺼내지도 않아 김우진 껀 없다.
이렇게 보니 다 나름 개성과 특색이 있지 않나? 부럽도다!

나를 감탄하게 만든 것은 김현 관 안에 있는 '김현, 바다의 몸'이라고 이름붙여진 방이었다. 컴컴한 이 방에 들어가면 사람이 움직이는대로 조명이 하나씩 켜지고, 설명이 나온다. 내가 움직이는 데 따라서 조명이 들어올 때마다 마치 내가 연극무대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김현이 병원에서 받았던 처방전부터, 교수 김광남(김현의 본명)이라는 명패 및 그가 신었던 구두와 안경들, 작가들과 주고받았던 편지와 김현이 직접 그린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다. TV에서는 김현 관련 인터뷰라든가 살아생전 김현의 모습이 보이고, 방의 중앙에는 그의 책상 위에 그가 쓰던 낡은 컴퓨터와 타자기, 그가 쓴 책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푸른 벽에는 그의 어록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김현은 김윤식과 함께 우리나라 문학 비평계의 양대 산맥이다. 둘 다 서울대 교수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현이 문학과지성사를 세웠다는 건 여기 와보고야 알았다. (백낙청이 창비를 세운 건 알았는데 문지를 누가 세웠는지에는 왜 관심을 두지 않았을까?) 그는 매달 나오는 신인들의 시와 단편소설을 빠짐없이 읽고 코멘트해주는 걸로 유명했고, 그의 비평에 힘입어 대작가가 된 사람들도 많다. 한마디로 그는 한국 현대문학의 어머니 같은 역할을 했다. 사실 나는 김현의 본격 비평서는 거의 읽어본 적이 없고, 에세이 <행복한 책읽기>만 달랑 한권 읽었다. 하지만 학교 다닐 때 프린트물로, 스터디로 그의 비평들을 읽었는데, 김윤식 보다 덜 어려워서 좋았다.ㅋㅋ


나는 비평을 좋아하지 않는다. 학교 다니는 4년 동안 비평스터디를 하면서 비평의 매력에 빠진 게 아니라 '비평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만 굳어졌다.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수많은 작가들의 첫작품을 읽고 그에 대해 쓰고, 덕분에 신인작가들이 힘을 얻어 창작에 매진하는 이런 관계가 가능하다니 부러웠다. 그러니 수많은 작가들이 편지도 하고 그림도 그려주고, 그리고 그가 가고 난 후 후배들에 의해 기념관이 서고, 독자인 내가 여기 와서 감동받고...이 모든 것이 큰 나무에 열린 열매처럼 느껴진다. 여기 와서야 비평가가 왜 필요한지, 비평가로 사는 보람이 뭔지 처음 알게 되었다.



윤심덕과 현해탄에 뛰어들 때 나이가 겨우 스물아홉이었다. 당시엔 부인 따로, 애인 따로인 것이 지식인들의 유행이었거니와 그가 적어놓은 글을 보니 자유의지로 뭔가를 한다는 것에 대해 선언했고, 그런 자신의 선언을 저버릴 수 없어 그러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배타기 전에 윤심덕이 전화해서 자살을 예고했다니 어쩔 수 없었겠다 싶기도 하고.
나는 건물만 번듯하게 세워놓고, 컨텐츠가 부실한 각종 관 주도의 관들을 싫어한다. 그런데 목포문학관은 한번 가볼만 하다. 2천원이라는 싼 입장료에 이 정도 컨텐츠를 볼 수 있다니, 마음에 들었다.
아마 다른 도시에도 이런 문학관들이 있을테지? 앞으로 다른 도시에 여행가면 문학관들을 찾아봐야겠다.

로비 겸 출입구 (뒤의 엘리베이터를 타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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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집필실
김현의 책상
박화성의 집필실
차범석의 집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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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집필실



김우진 관에 들어갔을 때는 사진기를 꺼내지도 않아 김우진 껀 없다.
이렇게 보니 다 나름 개성과 특색이 있지 않나? 부럽도다!


푸른 벽에는 그의 어록들이 빼곡히 적혀 있다.

그가 신던 구두.

이제하가 그린 김현의 초상화들
김현은 김윤식과 함께 우리나라 문학 비평계의 양대 산맥이다. 둘 다 서울대 교수라는 공통점이 있다. 김현이 문학과지성사를 세웠다는 건 여기 와보고야 알았다. (백낙청이 창비를 세운 건 알았는데 문지를 누가 세웠는지에는 왜 관심을 두지 않았을까?) 그는 매달 나오는 신인들의 시와 단편소설을 빠짐없이 읽고 코멘트해주는 걸로 유명했고, 그의 비평에 힘입어 대작가가 된 사람들도 많다. 한마디로 그는 한국 현대문학의 어머니 같은 역할을 했다. 사실 나는 김현의 본격 비평서는 거의 읽어본 적이 없고, 에세이 <행복한 책읽기>만 달랑 한권 읽었다. 하지만 학교 다닐 때 프린트물로, 스터디로 그의 비평들을 읽었는데, 김윤식 보다 덜 어려워서 좋았다.ㅋㅋ

황지우가 보낸 연하장

(위) 오윤이 그린 김현, (아래) 김승옥이 그린 김현
나는 비평을 좋아하지 않는다. 학교 다니는 4년 동안 비평스터디를 하면서 비평의 매력에 빠진 게 아니라 '비평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만 굳어졌다.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 수많은 작가들의 첫작품을 읽고 그에 대해 쓰고, 덕분에 신인작가들이 힘을 얻어 창작에 매진하는 이런 관계가 가능하다니 부러웠다. 그러니 수많은 작가들이 편지도 하고 그림도 그려주고, 그리고 그가 가고 난 후 후배들에 의해 기념관이 서고, 독자인 내가 여기 와서 감동받고...이 모든 것이 큰 나무에 열린 열매처럼 느껴진다. 여기 와서야 비평가가 왜 필요한지, 비평가로 사는 보람이 뭔지 처음 알게 되었다.

이청준이 김현의 아들에게 편지도 보냈단다

박화성 관에는 박완서가 보낸 편지도 남아있었다.
(박화성의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어서, 박완서 친필이 더 인상적이었음.^^;;)
(박화성의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어서, 박완서 친필이 더 인상적이었음.^^;;)
박화성은 우리나라 최초로 장편소설을 쓴 여류소설가란다. 그러니까 여자작가 중 최초로 장편을 썼다고. 어머니로 아내로 작가로 살기가 요즘도 쉽지만은 않은데, 그 시대에 대단하다. 루이제린저와 같이 찍은 사진도 걸려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핸드백이 요즘 보기에도 썩 괜찮은 물건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을 뿐이고.^^;;


차범석은 극작가이자 드라마 작가.
전원일기를 쓰신 분이라고 한다.
전원일기를 쓰신 분이라고 한다.

각 관의 초입에는 이렇게 입상이 놓여 있다.
김우진은 윤심덕과 현해탄에 동반자살한 것으로 유명하다. 13살 때 첫 소설을 쓰고, 17살때 데뷔했다나.윤심덕과 현해탄에 뛰어들 때 나이가 겨우 스물아홉이었다. 당시엔 부인 따로, 애인 따로인 것이 지식인들의 유행이었거니와 그가 적어놓은 글을 보니 자유의지로 뭔가를 한다는 것에 대해 선언했고, 그런 자신의 선언을 저버릴 수 없어 그러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배타기 전에 윤심덕이 전화해서 자살을 예고했다니 어쩔 수 없었겠다 싶기도 하고.

김현의 친필 (김병익과 주고받은 글이라고 한다)
나는 건물만 번듯하게 세워놓고, 컨텐츠가 부실한 각종 관 주도의 관들을 싫어한다. 그런데 목포문학관은 한번 가볼만 하다. 2천원이라는 싼 입장료에 이 정도 컨텐츠를 볼 수 있다니, 마음에 들었다.
아마 다른 도시에도 이런 문학관들이 있을테지? 앞으로 다른 도시에 여행가면 문학관들을 찾아봐야겠다.
태그 :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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