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니아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비채
[밤의 피크닉]도 재미없게 읽으셨다는 언니가 이 책은 재밌게 읽었다고 해서, 요즘 온다 리쿠에 완전히 질리기는 했지만, 또다시 읽어보았다.
결론은, 나에게는 [밤의 피크닉]이 온다 리쿠의 최고작이라는 것. 하지만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재탕, 삼탕 우려내서 줄줄이 토해낸 요상한 제목의 환상소설(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니 흑과 다의 환상이니 등등) 보다는 이 책이 훨씬 낫더라.
일단 설정이 확 구미가 당긴다. 대대로 내려오는, 동네에서 존경받는 병원집의 잔칫날, 손님들이 맥주와 주스를 마시고 집단으로 죽는다. 그 집에서 일해주는 아줌마 하나가 용케도 살아남았고, 앞 못보는 딸도 주스를 마시지 않아 살아남는다. 앞 못보는 딸(히사코)의 친구인 여자아이가 사건이 일어난지 십여년이 지나 [잊혀진 축제]라는 다큐르뽀집을 내고, 그로부터 또 10여년이 흘러 이 책은 시작된다. 인터뷰와 파일과 소설이 혼재하여 각장 마다 누가 서술자인지 알 수 없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물론 읽어가다 보면 이 사람이 누구란 걸 알 수 있다. 만약 이 소설을 영화로 옮긴다면 형편없이 재미없는 영화가 될 것이다. 소설에는 얼굴을 볼 수 없다는 치명적인 강점이 있다. 그래서 읽는 동안 긴장감이나 재미가 배가되는 것 같다.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자살한 아저씨를 이웃으로 두는 게 자랑할 일이야?' 한 다음에 엄마가 입을 다물어 버린 에피소드라든지 종이학을 접는 수사관이라든지, 주의산만한 둘째 오빠가 죽으면서 밝히는 비밀 같은 것들은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은 온다 리쿠의 전공대로 아스라하게 처리해 버리는데, 그건 결국 이 모든 소동을 일으킨 사람이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했는지에 대한 답을 만들지 못해 대충 처리한 느낌이다.
백일홍에 대한 이야기나 제목인 '유지니아' 같은 경우 일본어를 모르면 그닥 와닿지 않는 것도 큰 패착이다. 만약 일본어를 알았더라면 '유지니아'가 무슨 뜻인지 훨씬 금방 알지 않았을까? 그리고 백일홍 이야기는 그닥 중요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너무 매달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뭐 이 만큼 쓰기도 쉬운 일은 아닐터. 하지만 당분간 온다 리쿠는 그만 봐야겠다.
밑줄긋기
* 논픽션? 난 그말 싫어요.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고 주장해도, 사람이 쓴 것 중에 논픽션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저 눈에 보이는 픽션이 있을 뿐이죠. 눈에 보이는 것조차 거짓말을 해요.
* 아마 요즘 같으면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았겠죠. 매스컴에서 몰려와서 순식간에 가족들 사진까지 공개되고 문밖으로 나가지도 못했을 거예요. 요즘은 피해자들, 가해자들, 아직 진상이 다 밝혀지기 전부터도 거의 사(私)형을 당하잖아요. 나쁜 짓을 한 사람을 비난할 수 있는 건 피해를 당한 당사자뿐이죠. 어째서 무관한 사람들까지 '그럼 나도 돌을 던져도 상관없겠지' 생각하는 거죠? 도무지 이해가 안돼요. (내 말이!)
* 어른들은 애들한테 쓰는 시간에 인색하잖아요. 자기가 쓸 수 있는 시간을 100이라고 치면, 애한테 쓰는 건 10정도라고 정해놓죠. 동네 어른이라면 다른 집 애한테 쓰는 건 2나 3쯤 될까? 말을 시킬 때도 여기서 1쯤 써줄까 하고 계산하는 게 빤히 보여요. 그러니까 뭐라고 말을 시켰다가 애가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1만 쓸 생각이었는데 3쓰게 생겼다 싶으면 다들 허겁지겁 애를 밀쳐내는 거죠. 애들도 어른이 자기한테 시간을 아끼는데 민감해요. 저쪽에서 아끼면 괜히 더 욕심나니까, 필사적으로 어른한테 시간을 빼앗으려고 들어요. 대개의 경우엔 역효과가 나서 실패하지만요. 그렇게 해서 어른에 대해 불신감을 갖게 되고 체념하게 되는 거죠. 부모나 교사나 평소에는 자기 시간에 인색하면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만은 '자 숨기지 말고 다 이야기해봐라'라고 하죠. 자기 시간은 안 주면서 네 시간을 통째로 내놔라, 그러면 어떻겠어요? 애들이 저항하는 것도 당연한 거죠.
* 노인 한명이 죽는 건 도서관 한 개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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