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마초 생각하고

요즘 [한중록]을 읽고 있는데, 혜경궁 홍씨가 나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조가 대가 세고 기질이 화통한 반면, 사도세자는 생각이 많고 우유부단하고 우물쭈물하는 성격인데, 영조가 그런 아들을 못참아 호통 치고, 그러면 사도세자는 그게 무서워서 더더욱 우물쭈물하고...이렇게 부자관계가 악화되어 갔다 한다. 그런데 혜경궁 홍씨는 아무래도 간택받아 들어간 마당이니 기질이 사도세자 보다는 영조에 가깝다. 써놓은 글을 보면서 심정이 어땠을지 능히 짐작이 가나, 만약 아내가 조금 더 사도세자의 편이었다면 좀 나았을텐데...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보고 있는 TV드라마 [인순이는 예쁘다]에 보면 성취욕이 대단하고 적극적인 엄마 밑에서 자기 뜻대로 살지 못하고 끌려다니며 괴로워하는 딸이 나온다. 그 엄마 나영희가 심하다 싶다가도, 아무 것에도 의욕이 없는 딸(서효림)을 보고 있자면 내가 엄마라도 속터지겠다 싶다. 그런 딸에게 "넌 왜 하고 싶은 일이 없니? 왜?" 윽박지르는 내 모습이 그려진다. -.-; 그러면서 내가 거기 나오는 나영희 캐릭터랑 참 많이 닮았구나 생각한다.

그러던 차에, 이런 나의 성격을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말을 모임에서 들었다. 
'여자 마초'
듣는 순간 가슴으로 칼이 관통하는 것 같았다. 너무 맞는 말이기에 아팠다. 
내 기준이 맞다 생각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답답해 하고. 통솔하는데 잘 안따라오는 사람들 있으면 밉고. 약속 안지키는 사람 싫은 것도 다 마초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온화하기는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엄마가 너무 유하면 자식은 귀찮아 하고 업신여기고, 반대로 너무 강하면 기가 죽고 무서워한다. 그 중간을 유지한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닌 것 같다. 사람마다 기준이 달라서 유함과 강함의 기준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도 모르고.   
요즘 만화며 드라마에서는 소심한 사람이 대세인 것 같다. 그들이 꾹꾹 눌러 참았다가 터뜨리면, 감동이 배가 된다. 거기다 작가는 아무래도 남을 관찰하는 직업이다 보니 작가 자신들이 소심한 경우가 많고.    

그런 세계에서 마초로 살기도 쉽지 않다.
내가 잔소리하고 화내니까 연락하지 않는다. 내가 무서워 연락하지 않는 그 사실 때문에 나는 다친다.
나는 화내고 툭툭거려도 해줄 거 다해준다. 그런데 받는 사람은 이런 내 태도 때문에 받고도 욕한다. 그래서 난 또 다친다. '다시는 이런 짓 하나 봐라'하지만, 천성이 그러니 다시 또 반복한다. 
안매도 되는 총대 매고 나서서 욕 먹는다.  
나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는 거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건데, 그걸 못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배려가 없다고 한다. 대체 배려란 무엇일까?  
그런 모든 것이 나에게는 상처다. 여자 마초로 살기도 쉬운 세상은 아니다.
끝까지 내가 억울한 거 보니, 내가 마초긴 마초인가 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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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최지영 2007/11/23 09:31 # 삭제 답글

    와. 저 정말 공감해요. 저도 여자 마초인가봐요.ㅡㅡ
    제가 바라는 건 그냥 기본이라도 지키는게 예의라고 생각하는데,
    기본도 안지키는 사람들 때문에 화내고 열내고.. 그러면 상대방은
    뭘 그런거 가지고 그러냐며 오히려 나무랄때 마냥 내가 잔소리꾼으로만
    여겨지는 걸 느낄때 참담해요.ㅜㅜ
  • 바람곰 2007/11/23 09:52 # 삭제 답글

    이럴 때 쓰라고 '외강내유'라는 말이 나온 겁니다~ 저도 마초 신고^^;;
  • 해리 2007/11/23 09:54 # 삭제 답글

    그렇구나. 어찌 보면 나도 '마초'인지도..소심한 마초?ㅎㅎ
  • 키드 2007/11/23 09:57 # 삭제 답글

    크하하하하하 여자 마초 왠지 자꾸 웃으면서 눈물이 ㅋㅋㅋㅋ
  • kundera 2007/11/24 05:57 # 답글

    저는 그게 마초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 자기 주장이 분명한것 뿐이죠. 여자 마초라는 말은 뒤집어 보면 여자는 마초이면 안된다는 이야기인데, 마초라는 것이 상징하는 이미지가 주장이 강하고 통솔력이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때, 여자가 그런 이미지를 가졌을때 주위에서 그걸 거북하게 생각하는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자기 주장이 있고 그걸 기반으로 행동하는 건 좋은거예요. 그 태도가 거슬려 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그 사람은 무시하는게 지금 이요님의 행동방식을 바꾸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자기 주장 강한 여자들이 상처받을 때마다 우리나라에서 살기가 참 싫어지네요.
  • 이요 2007/11/24 15:07 # 답글

    쿤데라님, 고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면 자꾸만 움츠러드네요.
  • kundera 2007/11/24 15:26 # 답글

    저도 그래요. 강하게 마음 먹다가도 그런 소리 한번 들으면 내가 문제인가보다 하죠.
    그래도 움츠러들지 말고 계속 목소리 내시길...! 이요님 생각을 아끼는 사람들이 더 많을거예요. : )
  • 조이한 2007/11/24 22:11 # 삭제 답글

    이요님 말씀대로라면 저 또한 마초네요. 그러나 한 번도 제가 마초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ㅎㅎㅎ 남자를 쫌 밝히지만 마초처럼 들이대지도 않고...(이건 증명이 필요한 말인가?) 이요님, 괜찮아요. 자기 주장 강하고 할 말 있을 때 하는 건 마초가 아니예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
  • sideb 2007/11/25 18:00 # 삭제 답글

    넌 기-이픈 맛이 있단다...

    한두 번 만나는 사람은 그걸 모르고 배려 없다느니.. 그딴 소리 하는 거다.

    흘려 들어라..

    넌 정작 중요한 걸 배려하는 진국이란 말야... 몰랐단 말야?? 알믄서!
  • 2007/11/28 18:12 # 삭제 답글

    언니가 다 투덜대고 까칠하게 굴어도 걱정해서 그런거라는거 다 알아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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