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역설 읽고

진보의 역설
(부제 : 우리는 왜 더 잘살게 되었는데도 행복하지 않은가)
그레그 이스터브룩 지음
박정숙 옮김
에코리브르

오랜만에 노트 필기 해가며 책을 읽었다. 다 읽는데 몇주나 걸렸지만,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 유익한 책이다.
부제처럼 '우리는 왜 더 잘살게 되었는데도 행복하지 않은가?'하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이다. 일단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좀 편해진다. 언론이 떠들어대고, 정치가와 환경운동가들이 위협해도 많은 수치와 통계는 '세계가 진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고 한다. 지구가 환경오염으로 곧 망할 것 같지만, 1920년대보다 공기는 오히려 좋아졌고, 기아 때문에 매일 수천명의 아이들이 굶어죽는다지만 그 수치는 지난 세기와 비교했을 때 매우 낮아졌다고 한다. 현대의 미국이나 유럽 중산층이 누리고 있는 부는 지난 세기 왕족들이 누리던 부보다 더 커졌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더 행복하지 않을까?
이 책에서는 일단 사회적인 요인부터 살펴본다.
'작은 그림의 횡포' _ 큰 문제가 해결되면서 따라오는 부수적인 작은 문제에 안달하는 성향. 예를 들어 식량 증산은 전지구인을 먹여살릴만큼 늘어나고 풍족해졌으나, 그에 따르는 유전자 변형의 문제를 큰 문제로 본다든지.
'우울 이익집단 요인' _ 기금모금가, 정치가, 엘리트 등이 실제 상황과 상관없이 슬프다고 외치려는 욕구. 왜냐? 이렇게 해야 기금이 더 많이 모이고, 자신들이 당선되고, 엘리트들이 할 일(=논평)이 있기 때문이다.
'언론의 과장된 헤드라인' _ 이거야말로 사람들이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진다는 느낌을 가지게 만드는 근본 원인인듯.
'불평 열망' _ 스스로를 불쌍히 여김으로써 압박감에서 벗어나려는 인간들의 보편적 욕구.

그리고 현대인들의 심리적인 이유도 있다.
'기대가 야기한 불안' _ 이미 어느 수준까지 부가 올라갔기 때문에 더 이상 잘 살 거라는 기대를 하기 힘들어진다. 발전할 미래가 없으면 수준 자체가 높더라도 행복하지 못하고 불안해진다.
'멋진 호텔방 요인' _ 현대인들은 대체로 혼자 산다. 아무리 멋진 호텔방이라도 혼자서 하루 이틀 있다보면 무뎌져서 자신이 좋은 데 산다는 걸 모르게 된다. 대가족과 울려 살 때보다 행복감을 현저히 덜 느낀다.
그리고 가장 큰 요인은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저자는 현대인들(특히 미국과 유럽의 중산층)이 자신의 부를 약간씩 포기하고 다른 사람(빈곤층)을 도울 때(그저 선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극빈곤층에게 최저생계비가 지급되는 시스템을 말한다) 정서적 의미에서 '행복'에 더 가까워지리라는 주장을 편다.

진보적인 독자가 읽으면 너무 보수적인 관점이 아닌가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치와 통계로 읽어보면 지금 우리는 어느 때보다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고, 세상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18세기 사람들이 바랬던 유토피아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행복감을 높이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며,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체계적으로 짚어주고 있는 책이다. '용서'와 '감사'는 종교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이기적인 이유에서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마음가짐이라고 한다.
결국 행복하고 즐겁게 성공적으로 삶을 사는 사람들은 냉소적으로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그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밑줄긋기
97_'누가 더 오래 사는가'하는 문제에서 확실한 승리자는 고지식한 사람이다. 정직하고 고지식한 방식으로 산다면 범죄의 희생자가 되지 않을 것이다.
124_현대를 살면서 배운 분명한 교훈은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의견 일치 속에서가 아니라 극단적인 주장에서 돈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145_인간은 대체로 불평하는데 정말 뛰어나다.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는 이유로 부모님에게 불평하고, 교육한다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불평한다. 고용했다고 상사에게 불평하며, 음식과 옷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상인에게 불평한다. 포용한다는 이유로 연인과 배우자에게 불평하고 자녀들에게 함께 하자며 불평한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세상을 만들었다고 조물주에게 불평한다.
159_사람들이 본질적으로 발전에 반대할 때 그 의미는 거의 항상 자신들은 멋진 라이프 스타일을 획득했지만 이제 다른 사람들이 올라올 수 없도록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사다리를 차버리겠다는 뜻이다.
263_사람들은 쉽게 불행의 늪에 빠진다. 그것이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316_만일 당신이 은행에서 돈을 훔친 강도라면 당연히 감옥에 갇히고 훔친 돈을 압수당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기업에서 돈을 훔친 CEO라면 해고는 당하겠지만 처벌받지 않고 훔친 돈도 그대로 갖게 될 것이다. 기업 경연진들은 언젠가 자신들의 거짓말이 들통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훔친 돈을 절대 빼앗기지 않으리란 사실 역시 알고 있다. 대부분의 최고 경영자들은 잡히기 전에 가능한 빨리 돈을 훔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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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샐리 2008/08/26 22:26 # 삭제 답글

    밑줄긋기 그럴듯한데요? 특히 145페이지와 159페이지에 고개를 끄덕끄덕
    저도 한 불평 하지 않겠습니까..ㅋㅋ
  • 키드 2008/08/27 13:56 # 삭제 답글

    저도 처음엔 이 책 읽으면서....'뭐야? 그러니까 지금 너네들은 행복한 줄 알고 불평불만하지 말고 입닥치고 살란 밀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중반 이후에 그게 다 후반부를 위한 역설적 표현이었다는 것을 알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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