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읽고

도가니
공지영 | 창비

이틀만에 다 읽었다. 첫날 중반까지 읽고 자려고 누웠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흥분되고, 열받고...
나는 공지영의 소설이 대체로 좋지만, 그 중에서도 이런 소설이 가장 좋다. 그는 르포라이터와 소설가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소설로 운동하고 있는 사람이다. 앞으로도 이런 소설이 계속 나와주고, 내가 계속 이런 소설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녀는 인터넷 인턴기자의 기사를 보고 이 소설을 시작하기로 했단다.
그것은 마지막 선고공판이 있던 날의 법정 풍경을 그린 젊은 인턴기자의 스케치기사였다. 그 마지막 구절은 아마도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였던 것 같다. 그 순간 나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들의 비명소리를 들은 듯했고 가시에 찔린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준비해오던 다른 소설을 더 써나갈 수가 없었다. 그 한 줄의 글이 내 생의 1년, 혹은 그 이상을 그때 이미 점령했던 것이다. - <작가의 말> 중

<무진기행>으로 이미 한국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친근해진 무진시. 꼭 한반도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그러나 실제로는 없는) 그곳의 장애학교인 '자애학원'에 부임하는 34살 강인호 선생. 그가 도착하는 날, 아이 하나가 기차에 치어죽고, 다음날, 화장실에서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리고, 그리고 이 학교에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이야기들이 상시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학교 선배이며 인권쎈터 간사인 서유진과 힘을 합쳐 이 아이들을 성폭행과 무자비한 폭력에서 구출해내려는 노력이 시작된다.

책의 페이지가 아직 반이나 남았는데, 법정 공방에서 이들은 이기는 것 같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책의 후반부에 그런 에피소드가 나온다면 승리를 확신할 수 있지만, 아직 책은 반이나 남았는데...앞으로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생각하니, 울화통만.
시스템은 너무나 견고하고, 우리는 먹고 사는 일에만 집중하기에도 버겁고, 그렇지만 눈 질끈 감고 넘어가기에는 진실이 너무나 추악하고...책을 읽는 내내 나와 같은 소시민인 강인호의 마음에 내 마음을 얹고 읽어가게 된다. 
그 추악한 사건에서 교회 세습 문제를 끌어내는 목사의 설교를 읽고 있자면 내가 기독교인인 게 죄스러워진다. 서유진의 귀옆에서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해대는 권사 역시. '진실은 그것이 진실이기에 너무나 게으르다'는 단점이 있다는 말도 폐부에 와서 박혔다. 유리 할머니의 선택에 공감하면서 (왜 항상 옳은 쪽은 가난한가..ㅠ.ㅠ) 더불어 가난이 나쁜 것은 얼마 안되는 돈과 몇푼의 경제적 보상에 인간의 존엄성을 팔아넘길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에 가슴 아팠다. 이적의 <거위의 꿈>의 가사가 그토록 절절한지 몰랐다.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과 <예수전>과 <도가니>가 나에게는 모두 한 선상에서 외치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밑줄긋기

246_가진 자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에너지는, 가지지 못한 자가 그것을 빼앗고 싶어하는 에너지의 두배라고 한다. 가진 자는 가진 것의 쾌락과 가지지 못한 것의 공포를 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거짓말의 합창은 그러니까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포함하고 있어서 맑은 하늘에 천둥과 번개를 부를 정도의 힘을 충분히 가진 것이었다.

257_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예요.

266_내가 불쌍하고 불행한 적이 있다면 그건, 나도 가끔은 뻔히 아니라는 걸 알면서 그것과 타협하고 싶어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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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지영의 &lt;도가니&gt;, 공포와 분노의 차이 2009/08/13 21:32 #

    나는 공지영이라는 작가를 좋아한다. 처음부터 이 작가를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젊은 날 나는 그녀를 막연히 질시했다. 글도 잘 쓰고, 예쁘기까지 한 여자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것이 내심 배가 아팠다. 오래전 한겨레신문의 열혈구독자였을 때 읽었던 만 해도, 누구도 주목하지 않을 만한 인물을 참으로 잘 그려냈다 싶은 정도였지 큰 감동은 없었다. 그러다 몇 년 전 모 일간지에 연재되던 을 꼬박꼬박 챙겨 읽으며 비로소 그..... more

덧글

  • 박양 2009/08/10 11:35 # 답글

    이요님 기독교 신자셨군요..^^ 저도 공지영 작가의 작품을 꽤나 좋아하는데, 도가니는 겁나 무서운 얘기인 것 같아서 아직 안 사고 있었는데 읽어봐야할 까 봐요.
  • 샐리 2009/08/10 13:19 # 삭제 답글

    너무 고민스러운 책은 읽기가 싫어요 요즘은..
    공지영은 어디서 그렇게 소재를 끊이지 않고 가져올까요.참..
  • 쭘파 2009/08/10 23:58 # 삭제 답글

    밑줄긋기의 내용이 무척이나 가슴팍에 와 닿아요. 뉴스만으로도 버거운데 소설은 힘이 들까봐 부러 무시했어요. 이거 또 불을 질러 주시네요.
  • 희야 2009/08/11 09:27 # 삭제 답글

    이 책 읽으면서 중간에 쉬었다가 다시 읽었어요~ 내용이 이런건줄몰랐는데 저도 너무 화가나고 속상해서 계속 읽진 못하겠더라구요
  • 까뮈 2009/08/13 11:04 # 삭제 답글

    도가니는 눈으로 읽었던게 아니라 가슴으로 읽었던 거 같아요.

    http://mongu.net/461
    요기에 가시면 도가니에 대한 공지영작가의 인터뷰가 있어요.

    인터뷰중 기억에 남는 부분은 [예를 들어, 어떤 집을 방문했을 때 힘없고 가장 약한 어린아이를 학대하는 가정은 절대 좋은 가정이 아니죠. 나라를 두고 볼때 힘없는 약자를 정부와 시민이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질이 결정된다고 봅니다.] 이네요..

    이 책이 더 많은 분들에게 읽혀졌음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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