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장 폴 뒤부아 지음 | 김민정 옮김
밝은세상
하필 이 책을 읽을 때는 내 원고가 잘 풀리지 않는 중이었다. 원고 중에서도 글 쓰는 것에 대해 쓰면서 글 쓰는 것의 나쁜 면은 애써 꾹꾹 눌러놓고 좋은 면에 대해서 쓰는 중이었는데, 이 책에서 이런 구절을 만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 보잘것없는 물건을 만드는 데 들였던 노력의 십분의 일만 내 삶에 투자했어도 난 훨씬 행복해졌으리라는 것을. 난 깨달았다. 삶을 피한다고 삶이 더 나아지는 건 아니라는 것을. 남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면 그 삶을 굳이 글로 옮기려 들지 않으리라는 것을. 내가 스스로를 속이기 위해 글줄을 쌓아올리고 있다는 것을. 난 깨달았다. 늘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쓴다고 생각해왔지만, 사실 자신을 향해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다는 것을.
글을 쓰는 것만큼 속편한 일도 없다. 살지 않으면 그만이니까.(44p)"
이 소설의 주인공은 13권의 책을 쓴 소설가다. 아내와 이혼하고, 자신의 책을 쌓아놓고 높이를 재봤더니 24cm더란다. 156개월 동안 자기가 이뤄놓은 것이 고작 24cm라니! 이 변변찮은 걸 한다고 아내와는 사랑도 없는 결혼생활을 하고, 장인으로부터 이제 좀 밥벌이가 되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냐는 꾸중이나 듣고, 이제 남은 건 개와 자신 뿐인데 그 개마저도 죽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도대체 자신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하다 비행기 사고로 죽은 엄마와 그 몇년 뒤 캐나다의 어느 호숫가에서 실종된 아버지에 생각이 미치고, 그리하여 주인공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그 호수에 가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평소 자신의 성향대로 바로 캐나다로 날아가지도 못하고 되도록 피하기 위해 어느 기업 총수의 운전기사로 일하기도 하고, 아무 죄도 없는 흑인을 잔혹하게 죽인 백인 남자들과 (그런지도 모르고) 친구가 되기도 하는 등 피할 수 있는 한 피하다가 결국 캐나다의 그 호숫가에 가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비밀을 알게 되고, 그 아버지 앞에서 떳떳한 아들이 되기 위해 죽음의 숲을 건넌다.
재미있느냐고 물으면 바로 '그렇다'고 답하지는 못하겠다. 사실 줄거리라고 말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는 소설도 아니니까. 하지만 글 쓰는 것에 회의하고, 자신의 인생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글을 써왔던 남자가 결국에 자신의 인생과 마주보고 서게 된 이야기라서 나에게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소설이었다. 내 안의 회의와 의문들을 이 남자가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으므로.
이런 부분들이 좋았다.
'자네는 믿음이 있나?'하며 경멸스런 눈초리로 주인공을 바라보던 장인. 믿음이 없으니 차를 살 형편도 안되고, 더 나은 삶을 살지 못한다고 설교한다. 그러다 얼마 지나면 안경을 침대맡에 두고나온 근시의 남자 때문에 가족을 잃은 남자가 '믿음은 인간이 갈 데까지 갔다는, 비천해질대로 비천해졌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믿음'에 대한 이토록 다른 시각이라니! 사람은 결국 자신이 원하는대로 믿고 말한다. 그걸 받아들이는 것 역시 자기가 받아들일만 할 때만 받아들인다. 명언이라는 것이 이렇게 허무할데가.
장인어른에 대항해 잔디깎는 기계의 속도를 1에 놓고 일하는 주인공도 알만하고, 쿠바의 땡볕 아래 자동차를 세워두고 와버리는 장면도 기억에 남고, 첫 책을 보냈더니 "너의 첫 건축물을 지었구나"라는 답장이 온 장면도 생각나고, '난 이런 글을 쓸만한 깜냥이 못된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걸 읽고 감동할 수 있다는 것이나마 얼마나 뿌듯하던지'라는 표현도 좋았다. 모든 에피소드들이 하나하나 주옥같다는 생각이 든다. 곱씹어 생각해볼수록 그렇다.
P.S _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한번 더글러스 케네디가 장 폴 뒤부아의 열렬한 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빅 픽쳐>에 열광했다가 뒤늦게 <프랑스적인 삶>을 읽고서, 이건 분명히 베낀 구석이 있다고 느꼈는데, 이번에도 <모멘트>를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었더니, 이혼한 뒤 혼자 사는 남자의 황량한 풍경이라든가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유년시절 등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나 비슷한 구석이 많다. 이걸 표절이라고 해야 하는지 오마주라고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겐 문제로 보인다.




덧글
달을향한사다리 2012/02/10 17:56 # 답글
전 이 책을 장폴 뒤부아의 책 중에서 두 번째로 읽고 그가 좋아졌어요. 그 전에 읽었던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는 좀 시시했거든요. 정말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너무 좋았어요^^더글러스 케네디는 한 권도 안 읽었는데, 읽기도 전에 좀 미워지려고 하네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