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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읽고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 메멘토

SNS에서 제법 잘 나가는 작가. 인터뷰나 르포르타주를 주로 쓴다고 해서 호기심이 일기도 했고(인터뷰만으로 유명한 작가가 한국에는 잘 없으니까. 지승호 정도려나?) 최근에 낸 책도 많이 팔렸다던데...언젠가는 한번 읽어봐야지 하다가 이번 독서모임에서 한다고 해서 읽어보게 되었다.
결혼하고 아이낳고 아이 둘을 기르다가 뒤늦게 수유머너R에서 철학과 글쓰기를 배우고 글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사보기자, <나.들> 인터뷰 기자 등으로 일하고 ,수유너머나 가장자리 등에서 글쓰기 강좌를 하고 있었다. 결혼을 했다뿐 나와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다. 심지어 나는 <다들>의 기자임. ㅋㅋ '나들'과 '다들'이라 한끝 차이로구만.

글을 잘 쓴다. 그런데 내 취향은 아니다. 나는 이렇게 뭔가 주렁주렁 달린 글을 좀 싫어한다. 물론 예쁘라고만 걸어놓은 수식어도 아니고, 밀도 높은 문장이긴 한데, 행간에 묻어나는 먹물 냄새, 내게는 버거운 예민함, 장식성..이런 것들이 좀 느끼하다.
편견일지도 모른다. 아마 수유너머R에서 니체를 읽었다는 구절에서부터 그런 거부감이 들었을 것이다. 수유너머R에서 니체를 읽을 수 있는 주부라...그게 일반적인 주부에게 가능한 일일까? 그리고 학생이라고 해도 될 말을 굳이 '학인'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거슬렸다.
그래서 나중에 내가 글쓰기 강좌에서 하는 말과 똑같은 말이 나오고, 그보다 더 선명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내가 수년간 독서모임에서 해왔던 활동들을 칭찬해주는 이야기들이 나와도 초반의 삐딱했던 시선을 고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질투 때문일 수도 있다. 같은 길을 가는데, 나보다 훨씬 열정적이고(강의가 강의를 낳고 또다른 강의를 낳고, 매주 한권씩 읽어 글을 써오고 합평하게 만드는 강의를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천적(사보의 미담기사를 거부하고 재능기부로 인터뷰를 한다든지)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마지막에 3명의 학생들이 쓴 르포가 실려있는데 맥도날드 알바생의 글과 아빠가 떠난 후 우울증에 걸린 엄마 이야기가 크게 마음을 울렸다.

P.S _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읽기에 실패한 이후 나에게는 니체를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사람을 나누는 분류법이 생겨버렸다. 그리고 그 분류법은 대체로 들어맞았기 때문에 점점 공고해지고 있다. 쩝. 


밑줄긋기
18 _ 무엇에든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자가 어디에도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법이다.
55 _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는 것은 쥐며느리와 며느리의 차이다. 완전히 다른 차원의 세계다. 하나는 기분이 삼삼해지는 일이고 하나는 몸이 축나는 일이다. 주변에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은데 정작 글 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 피곤하고 바쁘다며 '집필 유예'의 근거를 댄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말은 그 일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루에 한 잔 꼭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은 날이 새는 것도 모르고 게임을 한다. 돈과 시간을 들여도 아깝지 않고 그쪽으로만 생각이 쏠리고 영감이 솟고 일이 되게하는 쪽으로 에너지가 흐르는 것. 그게 무엇에 빠진 이들의 일반적인 증상이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수년간 영화를 한 편도 안보는 사람은 없다. 글을 쓰고 싶은데 글을 수년간 한 편도 안 쓰는 사람은 주변에서 종종 본다. 글을 쓰고 싶은 것과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을 즐기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72 _ 우리는 고통 그 자체를 앓는 게 아니라 해석된 고통을 앓는다. (성폭행을 당했으니) 여자 인생 끝이라는 해석, 여자가 행실이 부주의해서 생긴 일이라는 해석, 치욕스러운 일이니 입을 다물라는 해석 등등 난무하는 말들의 장대비까지 맞는다. 그런데 우리에게 책이라는 우산이 생겼다. 책 안에서 더 사료 깊은 말들과 다양한 해석의 입장을 접하면서 우리는 이 고통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지, 왜 나를 아프게 하는지 더 침착하게 생각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96 _ 우리는 경험이라는 체에 걸러진 것만 본다. 니체는 어느 누구도 책이나 다른 것들에서 자기가 이미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얻을 수 없다며 "체험을 통해 진입로를 알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들을 귀도 없는 법"이라고 말했다.
97 _ 매번 읽을 때마다 새 책같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사이 나는 살았고 뭐라도 겪었고 변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이 시집은 나에게 너무 어려워" 혹은 "이 책은 내 스타일이 아니야"라고 제쳐두는 것은 자신을 고정된 사물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절대 변하지 않고 화석처럼 살겠다는 이상한 다짐이다.
128 _ 무엇을 경험하느냐가 아니라 경험한 것을 통해 무엇을 느끼느냐이다.
135 _ 글에는 적어도 세 가지 중 하나는 담겨야 한다. 인식적 가치, 정서적 가치, 미적 가치. 곧 새로운 지식을 주거나 사유의 지평을 넓혀주거나 감정을 건드리거나. 
164 _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과 주례사가 재미없는 이유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말들이 특정 개인에게 와닿을 리 없다. 공부 열심히 해라, 사이좋게 지내라, 부부가 대화를 많이 해라, 서로 이해해라 등등.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조건을 배제하고 나오는 말들은 공허하다. 듣는 사람에게 공감의 연결고리가 생기지 않는다.
176 _ 글은 삶의 거울이다. 글은 삶을 배반하지 않는다. 그것이 글 쓰는 사람에게는 좌절의 지점이기도 하고 희망의 근거이기도 하다.



덧글

  • augenauf 2017/08/13 21:16 # 삭제 답글

    은유 작가의 글, 처음에 선입견이 들지 모르는데 나중엔 감탄했어요. 솔직하면서도 사고의 깊이도 있고 문장도 좋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인데 그렇게 쓰기가 쉽지 않쟎아요. 저는 "싸울수록 투명해진다"를 읽었는데 좋았습니다. 요즘처럼 책 안 팔리는 시대에 은유 작가 책은 잘 팔리더군요. 흠...... 부러웠습니다. ^^
  • 긴호흡 2017/08/14 11:15 # 삭제 답글

    제 블로그 지인이 최근 심히 애정하는 작가예요. 저는 한겨레에서 칼럼을 통해 글맛을 종종 보고 있죠...근데, '나랑 같은 길을 가는데 나보다 훨씬 열정적이고 실천적'인 사람, 정말 싫어요!!! 무지무지 샘 나고, 스스로가 너무 후줄근해 보여서 짜증 나거든요....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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