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의 숨어있기 좋은 방

tripp.egloos.com

포토로그



9월의 폰털이 일기 살고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어귀에 발레교습소가 생겼다. 원래는 모델 에이전시 및 모델 학원이 있던 곳이었는데, 1층이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다가 미용실로 다시 바뀌는 긴 시간 동안 2층에선 뭘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몇달 전에 발레교습소가 들어왔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며 지나다니던 어느 날, 그곳에서 클래식 음악이 울려 나오기 시작했다. 퇴근 시간 무렵부터 밤 10시 전까지 음악 소리가 들린다. 그 시간에 집으로 들어가는 날이면, 골목에 들어섰을 때부터 음악 소리와 함께 발레선생님의 구령소리가 들린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싶을만큼 좋다.
퇴근후 들어가는 골목길에 따뜻한 불빛이 2층 창문으로부터 퍼져나오고, 클래식 선율과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내가 미처 몰랐지만 오래전부터 마음 속에 품고 있던 로망이었나보다. 이 창문을 올려다볼 때마다 <쉘 위 댄스>에서 아저씨가 전철 타고 지나가면서 댄스 교습소를 올려다보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 재미없고 성실하던 아저씨가 왜 갑자기 춤을 배우려고 했는지 알 것만 같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발레를 배울성 싶지는 않지만.^^
'천안~ 삼거리 흥~ 능수나 버들은 흥~ 내 멋에 겨워~ 흐으응흥~'
과연 몇이나 아는 노래인지는 모르나, 천안하면 천안삼거리, 천안삼거리하면 능수버들 아닌가! 천안에서 숙소 찾아가는 길에 진짜 능수버들이 가로수로 서 있는 거리를 통과했다. 어찌나 신기한 광경이던지... 사진을 찍었다. 이런 치렁치렁한 머리채를 날리며 능수버들이 양옆으로 도열해 있다.
사실 천안 갈 때만 하더라도 강의가 3시반이면 끝나니까 아라리오 갤러리에도 들르고, 천안 관광지 한 두군데 쯤 구경하자는 계획을 짰다. 그러나 잔디밭에서 중딩 대상으로 4시간 강의하고 났더니, 진이 다 빠져버렸고, 아무 것도 하기 싫고 눕고만 싶었다. 겨우 숙소로 기어들어와 저녁 먹고 씻고 엎어져 잤다. 침대에 누워 "우리가 무슨 생각으로 아라리오 갤러리와 리각 미술관을 운운했던가!" 콧웃음을 치며 잠들었다.
그러고보면 초등중등 교사들은 퇴근하고 친구도 만나고 영화도 보고 문화생활도 하는데 다들 체력 대단하다 싶다. 우리도 20대 때는 야근하고 철야하고 밤새 술 마시고 바로 출근하지 하지 않았냐며, 다 나이들어 그런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ㅋㅋ 
내일은 아산으로 가는데, 두번째니까 여력을 좀 남겨놓을 수 있을까? 공세리 성당은 가볼 수 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천안에서 돌아오는 길, 한강 너머로 해가 떨어지고 있다.
금요일 오후라 차가 무지막지하게 밀렸다. 천안 고속도로 타고 부터 서울까지 계속 밀렸던 것 같다. 3시반에 출발했고, 심지어 천안 호두과자에도 들리지 않고 바로 왔는데도 집에 도착하니 6시반이 넘었다. 나야 조수석에 앉아 편하게 왔지만, 언니는 강의하고 진빠진 상태에서 운전을 3시간 가까이 했으니 정말 힘들었을 듯. 그렇다고 강의날짜를 우리 맘대로 바꾸지도 못하니, 이번에는 서울 아닌 부천(언니 집)으로 가기로 했다. 좀 덜 막히길 기도하며...
토요일 오전, 독서모임을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했다. 아주 오랜만에 갔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저렇게 백기완 선생이 창가자리에 앉아 신문을 읽고 계셨다. 우리 자리와 넘 가까워서 이야기를 못하다가 뒤늦게 애들에게 백기완 선생 아니냐고 했더니, 모임 애들 중 백기완을 아는 사람이 나와 동갑인 해리 밖에 없다. OTL 애들이 백기완을 모른다. 여기서 세대 차이 한번 확 느껴주시고!
나중에 어떤 아저씨가 초딩 아들 손을 잡고 와 백기완 선생 맞은편에 앉아 인사하더니 평소 존경하던 분인데 이렇게 만나서 영광이라며, 아들 소개도 하고 이야기 몇마디 하다가 가셨다. 아...남자들은 저렇게 몰라도 가서 이야기하고 하는구나 싶었다. 나도 아이 엄마라면 그럴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하긴 예전에 여의도 정치광고대행사에서 일할 때 엘리베이터에서 심상정을 만난 적이 있는데, 반갑게 인사했더니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셨다. 엘리베이터 내린 다음, 같이 있던 후배직원이 "아는 사이예요?"라길래 모른다고 했더니, 모르면서 어쩜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인사를 하냐며 놀란 적이 있다. ㅋㅋㅋ
카피라이터 후배가 이 길과 저 길을 기웃기웃하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전향해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매달 함께 어반스케치를 하고 있는 친구다. 그렇게 그린 그림이 꽤 쌓여 일러스트 잡화집을 내겠다며 지난 달 텀블벅에 펀딩을 올렸다. 남친과 함께 후원했는데, 다행히 펀딩이 성공했고, 우리는 잡화집과 2개의 강화유리컵과 스티커와 책갈피와 엽서와 손수 쓴 편지를 받았다.
바리바리 묶은 리본과 비닐 포장을 벗기며, 나는 포장하기 귀찮아서라도 텀블벅은 못하겠구나 싶었다. ㅎㅎ 아직 유리컵은 개시를 못했다. 첫 음료로 아이스커피를 담을지 맥주를 담을지 목하 고민 중이다. ㅎㅎ
혹시 잡화집과 유리컵이 궁금하다면 이번주 토요일 세종문화회관 뒷마당에서 열리는 소소시장에 방문해보시길! 저 자주색 삐딱 고양이가 어느 테이블엔가 당신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소소시장 정보  http://blog.naver.com/wrongtimenosee/221095388061
이 친구가 운영하고 있는 매일매일 드로잉 브런치 https://brunch.co.kr/@ndr-everyday


덧글

  • 해리 2017/09/13 17:36 # 삭제 답글

    니가 오기전까지. 아무도 몰라서. 백기완 선생 보고 혼자서 끙끙.ㅋ
  • 도빅 2017/09/13 17:50 # 삭제 답글

    아 백기완 선생님.. 무슨 선생님 같아 보이기는 했어요 ㅋㅋㅋ
  • 긴호흡 2017/09/13 21:22 # 삭제 답글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거 아줌마되면 잘해요^^ 임순례 박찬옥감독 길가다 보고는 냅다 달려가서 말걸게되더라고요...여감독들이라 그랬을까요? 아, 부산영화제 때 이광모감독 보고도 인사했었네요...적고보니 제가 나름 용감한 사람인가 싶네욯ㅎㅎ
  • 해리 2017/09/14 11:27 # 삭제 답글

    참고로 천안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 그 노래도 난 안다. 천안 하면 그 노래~
  • 밥과술 2017/09/15 14:56 # 답글

    앗, 저 어저께 학림다방에 갔었습니다. 수십년만에 들어가 본 것 같습니다. 대학로를 워낙 잘 안가게 되니까..

    번지없는 주막이라는 노래에 '능수버들 태질하는 창살에 기대어~"라는 대목이 있지요. 옛날에 막걸리집에서 젓가락 장단에 부르던 노래인데... ㅎㅎㅎ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