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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푹 빠진 <사랑의 온도> 보고

사랑의 온도
하명희 극본 | 남건 연출
서현진, 양세종, 김재욱, 조보아, 이초희, 이미숙 출연 
SBS 월,화 밤 10시 

언제였더라? <마녀의 법정>이 야구 때문에 11시에 시작하던 날, 기왕 TV 앞에 앉은 거, 다른 거라도 보자 싶어 처음 제대로 본 <사랑의 온도>. 이미 중반을 넘어서서 다른 드라마라면 러닝타임의 30%는 뮤직비디오 같은 영상으로 채우고 있을 땐데, 여전히 내용이 많고, 심지어 꽤 쫄깃쫄깃했다. 

돈의 힘을 현실적으로 사용하는 드라마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자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남자가 서로 사랑한다니 이런 비극이! 그러나 그는 다른 드라마의 조연들처럼 그들을 곱게 보내줄 마음이 없고, 남자에게는 식당에 투자한 돈으로 흔들고, 여자에게는 편성권을 쥐고 흔든다. 주인공 남녀들은 요즘 가장 핫한 직업인 쉐프와 드라마 작가인데도, 실은 그들 위에 돈이 있다는 걸 처절하게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드라마다. 재벌 2세가 예쁜 옷을 사주고, 명품백을 사다 바치는 그런 시시한 연애를 하는 게 아니라 자기 돈의 힘을 알고, 그걸 적재적소에 점잖게 쓰면서 그들을 옥죈다.
오호라...꽤 재밌네? 하면서, 그때부터 나는 VOD와 인터넷을 오가며 1회부터 다 봐버렸다. 마감이 코 앞인데도 이 드라마에 빠져 "한 회만 더 보고.. 딱 한 회만 더 보고.."하다가 반나절을 날리고, 새벽 2시에 잠이 든 적도 있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배우들 
서현진은 어쩜 그리 사랑스러운 것이냐! 여자가 보는데도 이렇게 사랑스럽고 예쁜데, 남자들이 보면 심쿵사하겠다 싶다. 서현진 나온 드라마 중에 제일 예쁘게 나오는 것 같다. 그리고 처음 보는 얼굴인 양세종. 우리의 온셰프도 연기 잘한다. 28살이라는, 6살 연하남이 보일 수 있는 치기와 막장 부모 밑에서 힘들게 자란 애늙은이의 모습이 교묘하게 섞여 있는데, 표현을 참 잘하는 것 같다. 후배가 보더니 요즘 젊은 여자들이 좋아하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는 배우라고 했다.
지홍아(조보아)는 볼 때마다 얄밉고, 얄밉다 못해 요즘은 미운 정이 드는 중. 김재욱은 초반에 너무 늙었다 싶었는데, 요즘은 이 남자가 제일 가슴 아프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내가 이 드라마를 보는 8할은 이초희 때문. 경상도 말과 서울말 쓰려고 노력하는 경상도 말을 기가 막히게 구사하는 우리의 황보 경 작가! 나 정말 우리 경이 보려고 드라마 보는 듯. 넘나 귀엽고 넘나 공감가는 것!

너무나 리얼한 드라마판 이야기 
황작가의 보조작가로 시작해 공모전에 당선되고 입봉하고, 입봉작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다른 작가가 이어 쓰고, 감독과 작가가 서로 싸우고, 그 사이에서 제작사가 조율하는 이 모든 것들이 넘나 리얼해서 볼 때마다 괜히 내가 부르르 떨고, 짜증내고, 의기소침해진다. 지홍아 만큼이나 열받는 게 민감독. 으아...진짜 볼 때마다 열이 뻗친다. 실제로 내가 보조작가를 하며 가장 놀랐던 게, 감독이 대본과 똑같이 찍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며 감독 마음대로 찍는 걸 알고 있었지만, 드라마는 작가가 쓴 건 토시 하나도 건드리지 않는 줄 알았다가(김수현 작가 이야기만 너무 부풀려져 떠돌아다녔나 보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충격받았었다. 이 드라마는 진짜 드라마판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우리 피디님이 이 드라마에 나오는 황석정이 진짜 드라마 작가들과 비슷한 면이 많다고 했을 정도.

아름다운 서교동, 연남동, 북촌
내가 또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 동네가 나오기 때문이다. 서현진이 핸드폰 없는 온셰프의 전화를 놓친 후 공중전화로 전화를 거는 씬이 있는데, 그 공중전화 박스가 있던 곳이 바로 우리집 앞 서교어린이공원이다. 서현진 뒤로 내가 매일 지나다니는 커피숍 창문이 나오는 걸 보고 깜놀! 이 공원 앞에서 찍던 게 이 드라마였구나 했다. 서현진을 실물로 볼 수 있었는데! 아쉽.
또한 북촌과 삼청동 쪽도 자주 나와서 그것도 좋다. 정독도서관 앞길에 있는 특이한 건물이 착한수프 건물로 나오고, 얘네가 뛰어다니거나 자전거 타고 다니는 길에 한옥 기와들이 즐비한 걸 보면 괜히 좋다. 요즘 드라마들 보고 있으면 연남동과 북촌 없었으면 드라마를 어디서 찍을뻔 했나 싶다. 그러니 이런 예쁜 동네가 여기저기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인물 하나하나에 공감할 만한 구석이... 
이 드라마에는 공감할 꺼리가 무수하게 많은데, 정말 여러명의 인물에게서 제 각각 나의 모습을 본다. 
이현수(서현진)은 왜 나에게 벽을 치냐고 하지만, 자신의 가족과 현수를 분리하려는 온셰프의 마음을 나는 차고 넘치게 알고 있다. 자신이 부인을 팬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온셰프 아버지의 태도를 볼 때마다 속에서 불이 치민다. 똑같은 사람을 알기 때문이다. "언니를 질투하면서도 안보면 궁금하고, 그래서 언니와 헤어질 수 없다"고 나불거리던 지홍아의 모습도 낯설지 않다. 그 상황에 있어본 적 있기 때문이다. 황보 경 작가의 경상도 말과 서울말 쓰려고 애쓰는 경상도 말의 미묘한 억양 차이를 확실히 안다. 내가 서울 생활 초창기에 늘상 구사하던 억양이니까. 연하남 애인 뒤에서 종주먹을 휘두르던 이미숙의 마음도 안다. 
나와 닮은 곳 하나 없는 지홍아나 온셰프 엄마조차도 이해의 건덕지가 있게 그려져 있다. 그래서 따박따박 말대꾸 하는 식의 대사들이 무지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는데도 보기를 멈출 수가 없다.  

지난 회까지 상황은 점점 어렵게 되었다. 온셰프는 온정성을 다해 5인분의 도시락을 만들어 병실을 찾아가지만, 현수 엄마의 병실을 잡아주고 유명 의사에게 수술받게 해준 박대표를 보고 아무 말 없이 물러나온다. 아마 이런 일은 앞으로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이들이 현실에 무릎 꿇을지 계속 사랑할지 끝까지 보고 싶다. 심적으로 둘을 응원하지만, 솔직히 내가 이현수 작가의 언니거나 엄마라도 박대표를 선택하라고 할 것 같다. 온셰프의 엄마는 정말 극복하기 힘든 존재니까.
<마녀의 법정>이 워낙 재밌어서 <사랑의 온도>를 본방사수하지는 못하겠지만, 틈틈이 돌려가며 봐야겠다. 어쨌든 끝까지 보고 싶은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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