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신여성 도착하다 (덕수궁미술관) 보고

 
덕수궁미술관 앞에 걸린 '신여성 도착하다'전 플래카드 

요 1~2년 페미니즘 열풍이 거셌다. 출판계가 그 흐름에 가장 민감했다면 드라마들이 발빠르게 편승하고 있고, 영화는 아직 정신 못차리고 있다. (<미씽>이나 <비밀은 없다> 같은 작품이 간신히 명맥 유지) 덕수궁미술관에서 <신여성 도착하다> 전을 개최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진작에 나왔어야 하는 전시가 이제야 하나 나왔구나 했다. 페미니즘과 함께 여성혐오 열풍도 거세다 보니 반대편 눈치도 보느라 여성주의 시각을 더 팍팍 내지르지 못하고 몸 사렸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직접 가서 본 바, 나는 굉장히 재밌었고 좋았다. 요즘 웬만한 전시는 사진을 찍게 하는데, 이 전시는 촬영 불가다. 그래서 폰카로 찰칵 찍으면 되는 설명도 일일이 핸드폰에 메모하느라 돌아보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전시는 크게 세 파트로 나뉜다. 
2층부터 보라고 해서 2층으로 올라갔더니 잡지 표지, 신문 만평 등을 모아 1920~1930년대 신여성이 어떤 식으로 묘사되고 보여졌는지 전시해놓았다. 시작 부분에 나혜석의 신문 만평이 걸려 있었는데, 그림 솜씨도 좋고, 위트가 있어서 역시 난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신여성을 비난하면서도 접근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양가감정이 잘 드러나 있는 만화였다. 
잡지 '신여성'의 표지화들이 쫙 걸려 있었는데, 플래카드에 걸려있는 저 그림이 그 중 가장 눈에 띄었다. 예뻐서 그런 듯. ㅎㅎ
특히 나의 발길을 잡았던 것은 '근우'라는 잡지의 창간사였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적수공권의 빈 주먹만 쥔 조선의 여성이다. 발가벗은 몸뚱이로 모든 사명과 일천만 여성의 불행을 두 어깨에 지고 넓은 황야에서 울면서 달음질하는 여성이다. 같은 인간으로서 사회에 짓밟힘 당하고 같은 자녀로서 아버지의 내침을 당하며 심지어 자기가 낳은 아들에게까지 길러주는 의무밖에 가지지 못한 기구한 운명을 가진 여성이다...그러나 이 불행이 영원히 있을 것은 아니다." 뭔가 울컥해서 그 자리에서 다 베껴 적었다. 예나 지금이나...하....
구석으로 돌아가면 '장한'이라는 잡지의 표지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잡지는 화류계 여성들이 돈을 모아 만든 잡지다. 표지에는 어떤 여자가 새장 속에 갇혀 있는 그림 위로 '동무여 생각하라, 조롱 속의 이 몸을'이라고 적혀 있었다. 일러스트도 캐치프레이즈도 심금을 울린다. 저런 잡지를 발행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시 기생들의 의식이 깨어있었구나 놀라웠다. 하지만 그 코너에는 유명 요릿집의 기생들 사진으로 만든 엽서세트도 있어서, 한국 여자들을 관광상품화하는 역사는 참으로 오래 되었구나 싶었다.
2층에는 당시 여성들을 그린 인물화도 전시한다. 과천 국립현대에서 봤던 그림들이다. 연구실 가운을 입은 여자라든가 뜨개질하는 여자 그림들. 물론 남성화가들의 작품이다. 

1층으로 내려가면 근대 여성화가들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나혜석, 천경자, 박래현 등 이미 알고 있는 유명화가들의 작품도 좋았지만, 특히 정찬영이라는 한국화가의 그림이 멋졌다. 공작새를 그렸는데...그 정교함이란! 일반적인 동양화와는 사뭇 달랐다. 박래현이 해부도를 그렸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또 천경자의 경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맨날 보던 그림이 아니라 처음 보는 대작 2개가 걸려 있었는데, 하나는 금성문화재단, 하나는 뮤지엄 산에 있다고 한다. 뮤지엄 산에 가보고 싶던 마음이 이 작품 덕분에 더 깊어졌다. 천경자는 대작도 이토록 아름답구나!
이 코너에 자수 작품도 걸려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명장 인터뷰를 진행하며 자수 명장을 만나고, 우리나라 자수의 역사와 일제시대 공업용 미싱이 들어오면서부터 바뀐 자수에 대해 들었는데, 여기서 자수를 보니 감회가 깊었다. 그리고 작품들이 어찌나 훌륭한지...이걸 예술이 아니라고 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암으로만 처리한 마리아상, 미니병풍첩 등 어마어마한 재주들이 많았다. 자수 작품은 워낙 많아서 전시 기간 동안 매주 교체 전시한다고. 

그리고 5인의 신여성을 집중 조명해놓은 방이 있다. 작년에 읽은 <세 여자>의 주인공인 주세죽과 김명순, 가수 이난영, 무용가 최승희, 화가 나혜석이 그들이다. 이난영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그들의 일생에 대해 읽고, 영상자료나 사진 등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최승희는 작년 수림미술관에서 이미 한 차례 봤고, 주세죽과 김명순은 소설로 읽었지만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참 좋았다. 특히나 그들의 마지막이 정신병원에서 행려병자로 죽거나 북한에서 숙청당하거나 이국땅 러시아에서 쓸쓸히 죽는 것이어서 참 가슴 아팠다. 지금 여자로 태어나는 것도 그닥 행운은 아닌데, 당시에 뛰어난 여자로 태어나 산다는 것의 고난신난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사용했던 패션잡화나 사진 등도 재밌었고, 오늘날 여성 미술가들이 그들의 삶을 재해석한 작품도 볼만 했다. 대개 영상작품이거나 설치미술이다. 
보고 나와서 1층 월 앞에서...^^

주말에 가서 사람이 많은 편이었는데(막 바글바글하지는 않았고 적당히 있었다) 4월 1일까지 한다니까 전시 끝나기 전 평일에 한번 더 가서 보고 싶다. 놓친 것도 찬찬히 읽고, 교체된 자수 작품도 보고, 건너 뛴 영상작품 같은 것도 보고.
토요일마다 교수들을 불러 신여성에 대한 토크도 한다고. 덕수궁 입장료 1천원 포함 3천원에 꽤나 알찬 전시다. 강추!


신여성 도착하다 
2017. 12. 21~2018. 4. 1 (매주 월요일 휴관)
덕수궁 미술관
입장료 3,000원(덕수궁 입장료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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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진냥 2018/01/15 11:37 # 답글

    멋진 전시네요! 저도 가서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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