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랑하는 사이 보고

그냥 사랑하는 사이
류보라 극본 | 김진원 연출
이준호, 원진아, 이기우, 강한나 출연
jtbc 월, 화 밤 11시 (16부작)

어제 <그냥 사랑하는 사이>가 끝났다. '그사이'가 공식 준말이라더라만 난 '그사사'로 부른다.
작년 연말에 호기롭게 시작한 드라마들이 죄다 용두사미가 되어가고 있는 중에 그사사는 유일하게 끝까지 늘어지지 않고 매회 사람 가슴 미어지게 하며 눈물 한바가지씩 흘리게 한 드라마다. 일단 지금까지 올해 최고의 드라마.
<비밀>을 워낙 잘 봤기 때문에 류보라 작가에 대한 믿음이 있었지만, 혼자 쓰는 드라마를 이렇게 잘 쓸줄은 몰랐다.

이 드라마가 시작된 S몰은 삼풍백화점으로도, 성수대교로도, 세월호로도, 제천 사우나로도, 밀양 병원으로도 읽힌다. 그 재난의 현장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 살아남았지만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하나 하나를 들여다보며 보듬어주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그 사고 자체를 소재로 어설픈 위로를 건넸던 다른 드라마들이 애처로워보일 지경이다. 살아남은 자를 이렇게도 찬찬히 부드럽고 세심하게 다독여줄 수 있었구나, 그걸 지금까지 몰랐구나 싶다.
살아남은 자 안에는 일반적인 의미의 피해자 유족 외에도 공사현장에서 일했던 인부, 그 쇼핑몰을 설계했던 사람, 쇼핑몰 관계자들이 얽혀 있고, 사망자 가운데는 사고 자체로 죽은 사람은 물론 죄책감을 못이겨 자살한 사람도 포함되며, 생존자의 타입도 다양해서 살아남았지만 허깨비가 된 사람, 신체적인 부상을 입은 사람, 심리적인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람 등을 모두 보여준다. 주인공들 자체가 그 사고로 인한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데다, 이들이 추모비를 만들기 위해 만나는 유족들 역시 제 각각의 상처를 안고 있다.

제목부터가 멜로멜로한데, 주인공 강두와 문수의 사랑 뿐 아니라 여기 나오는 모든 사람의 사랑이 다 가슴 아프고 일리 있다. 문수를 좋아하지만 상사라는 권력으로 누르고 싶지는 않은, 거기다 자기 아버지의 죽음이 어쩌면 문수 아버지 탓일지도 모른다고 오해하면서도 좋아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주원(이기우)도 불쌍하고, 그렇게 딴 여자를 보고 있는 주원의 등을 바라보고 있는 유진의 사랑도 가슴 아프다. 자식을 잃은 후 이혼도 못하고 같이 살지도 못하는 부부를 보는 것도 안됐고, 손님으로 돈 주는 만큼 웃어주는 거라고 하면서도 마음이 끌리는 마리(윤세아)와 정이사(태인호)도 불쌍하다. 난 특히 마리와 정이사의 관계가 좋았다. 다른 드라마에서라면 악의 축으로 나왔을 정이사를 그리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돈이 전부고, 속물이고, 맨날 떽떽거리는 사장이지만, 이 사람이 항상 외롭고, 혼자 결정해야 하고, 속물처럼 굴면서도 결국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준다는 걸 인간적으로 보여줘서 좋았다. 마리가 고양이 밥주는 거 빙긋이 웃으며 보는 장면이나 강가에서 머리 쓰다듬어달라고 하던 장면들 퍽 인상적이었다. 
유진 역의 강한나는 초반에 참 미스캐스팅이다 싶었는데, 이기우로부터 "너는 뭘 잃었는데?"라는 말을 듣고 차마 그 앞에서 말하지 못하고 차 안에서 과거를 떠올리며 엉엉 울 때 나도 같이 울었다. 그때 이후 강한나는 뭘해도 예쁨.ㅋㅋ

인물들 하나하나가 다 애틋하고 허투루 다뤄지지 않는다. 
할멈 역의 나문희, 몸에 좋지도 않은 통조림 깡통과 콜라를 먹으며 사람이 인이 박힌다는 게 뭔지 말하는 장면이라든가 강두에게 하는 마음씀씀이들("슬프고 괴로운 건 노상 우리곁에 있는 거야. 받아들여야지 어떡하네")이 그냥 생각만 해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녀가 떠나고 외국인 노동자를 비롯해 식구들이 모여서 묵묵히 뭘 먹던 장면이 떠오른다. 저게 제사지, 명절이지 싶었다.
강두의 동생 재영과 그녀를 괴롭히는 레지던트 선배마저도 성격과 케미가 있었고(초코바 툭 던져주며 "니네 오빤 대체 뭐하는 사람이냐? 어떻게 살았길래 간 떼준다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 초반에 얄미워서 "저 개싸가지는 뭐야?"했던 소미는 화장품을 서로 교환하고, 일도 같이 하면서 문수의 절친이 된다. 처음엔 밉상이다 했는데, 후반부엔 얘가 넘나 예뻐 보이는 거다. ㅎㅎㅎ
문수의 친구인 완진이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 다친 얘기를 슬쩍 흘리며 "그 세월이 쉬웠겠냐"할 때도 가슴이 쿵했다. 강두와 같은 컨테이너를 썼던 소장과 팀장님, 또 산호탕의 이모, 절대 바보 아닌 것 같던, 인생의 비기를 아는 것 같던 상만이와 매일 강두 밥 챙겨먹이는 상만이 엄마. 심지어 강두를 쫓아다니던 사채꾼들 조차 캐릭터가 있고 인간적이다. 어떻게 이렇게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조율할 수 있었을까? 대단하다.

사실 난 해피엔드주의자는 아니라 마지막이 비극이었어도 괜찮았겠다 싶지만, 어쨌든 강두가 살아남아 다행이고, 드라마가 끝나도 여기 이 사람들이 부산 변두리 어딘가에서 여전히 그럭저럭 잘 살고 있을 것만 같아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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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몽고메리 2018/01/31 22:01 # 답글

    오 왠지 관심가는 드라마네요
  • 2018/02/01 14:0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2/01 14:1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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