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에 본 영화 보고

2018년 1월 : 부라더, 살인자의 기억법, 강철비, 윈드리버, B급 며느리, 침묵, 분노, 코코 (총 8편)

부라더(장유정 감독,각본 | 마동석, 이동휘, 이하늬)
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를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뮤지컬로 봤을 때는 엉엉 울었다. 자신은 탈출하지 못했지만 자식들은 자유롭게 살도록 한 아버지의 염원이 느껴져서 엄청 감동했는데, 이미 내용을 알고 본 영화는 재미없었다. 이상하게 장유정 감독 작품은 뮤지컬로는 넘나 재밌는데, 영화로 만들면 가짜 같고, 코미디도 살짝 내 코드와 안맞다.

살인자의 기억법(김영하 원작 | 원신연 감독 | 설경구, 김남길, 김설현)
영화 보고 났더니 소설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소설로 읽을 때 뒷부분에서 "이거 뭥미?"하면서 욕을 했는데, 문제는 욕했던 기억은 나는데 결말이 뭐였는지는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 설경구의 혼신을 다한 오버연기 오랜만에 보는데, 참 열심히 연기하고, 잘 한다고 생각하지만, 역시나 부담스럽다.   

강철비 (양우석 감독,원작 | 정우성, 곽도원)
포스터를 봤을 때는 70년대 반공영화나 전쟁영화 삘이 나서 절대 보고 싶지 않았는데, 본 사람마다 재밌다고 하지 스코어는 400만을 넘어가지 예상 밖이었다. 봐보니 알겠다. 재밌었다. 초반에 북한사투리를 알아먹지 못해 애 먹었지만 그것만 넘기면 괜찮다. 끝까지 어떻게 될까 손에 땀을 쥐고 봤다. 하필 대선이 끝나고 차기 대통령이 정해진 시점에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다니! 타이밍도 절묘하지.
장강명의 <우리의 소원은 전쟁> 읽을 때 그 현실감에 몸서리치며 스트레스까지 받았는데, <강철비> 역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도 없어서 전율하며 봤다. 사람으로는 잘 생기고 정의로운 정우성을 따라가며 봤지만, 남한 사람인고로 곽도원의 위치라든가 국제관계에서의 역할 등이 인상적이었다. 무척 현실적인 상상력이었고, 그만큼 재밌게 봤다. 

윈드리버 (테일러 쉐리단 감독 | 제레미 레너, 엘리자베스 올슨)
진짜 괜찮은 영화다. 눈 오는 설원을 뛰어가다 죽은 여자의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결국엔 인디언 인종 차별에 관한 이야기다. 
보통 자식을 앞세운 부모들의 복수극은 범인을 잡아 제손으로 죽이는 식으로 끝장을 보게 마련인데, 이 영화의 제레미 레너는 그런 직접적인 복수를 하지 않는다. 그와 함께 수사했던 FBI요원이 딸 또래의 백인 여자이고, 그가 쫓는 범인은 딸의 친구이자 친구의 딸이다. 딸과 비슷하지만 딸은 아닌 그 여자들을 위해 그는 일한다. 친구의 딸을 죽인 범인을 잡음으로써 자신의 딸에 대한 복수까지 우아하게 하는 영화로 품위있다. "여긴 운이라고는 없는 곳이오. 강한 자만이 살아남지. 당신이 살아남은 건 당신이 강하기 때문이오."라는 대사 좋았고, 미국인 인구통계에 인디언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마지막 자막도 인상적이었다.
전혀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레이>도 좋았던 걸 보면 나는 설원 배경의 품격있는 액션과 과묵한 남자주인공에게 홀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B급 며느리 (선호빈 감독 | 김진영, 조경숙, 선호빈)
유부녀 동생이 보고 싶다고 해서 서울에서 만난 날 아트하우스 모모 가서 봤다. 
하하하, 이 며느리 골때린다. 말하는 거나 행동이 넘나 귀엽다. 외모는 살짝 조갑경 닮았고, 말이나 생각을 보면 참 매력있다. 어머니와 마누라 사이에 새우등 터지며 이런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도 대단하다. 그 시어머니는 손자만 포기하면 될텐데, 그렇게 손자가 보고 싶은가? 하.... 

침묵 (정지우 감독 | 최민식, 이수경, 이하늬)
내가 대체 무슨 글을 보고 이 영화를 보겠다고 결심했지? 그 날의 나를 규탄한다. 진짜 재수없고 짜증나는 영화였다. 무려 살인이다. 응? 돈으로 덮을 게 따로 있지. 살인을 돈으로 덮으면서 그걸 부성애라고 하다니..미친 거 아니니? 땅콩회항과 맷값 사건에 광분하는 국민이라고 우리나라 국민이. <베테랑>을 1천2백만명 이상 본 나라라고. 그런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지? 마지막에 이하늬가 용서해준다는 식으로 손 흔드는 장면에서 진심 토나올 뻔 했다. 죽은 사람한테 물어봤어? 용서해준대? 이렇게 시대착오적이기도 쉽지 않을 거다. 일단 올해 최악의 영화 후보에 올려둔다. 
 
분노 (요시다 슈이치 원작 | 이상일 감독 | 모리야마 미라이, 마츠야마 겐이치, 아야노 고, 와타나베 켄, 츠마부키 사토시, 미야자와 아오이, 히로세 스즈)
케이블 TV에서 해주길래 뭔지도 모르고 보기 시작해 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이야기인가 궁금해서 결국 새벽 1시가 넘도록 끝까지 봤다. 하...놀랍고 강렬하고 기가 막힌 이야기였다. 씨네21에선가 연말결산 올해 최고의 영화(작년)에 이 영화를 꼽은 평론가들이 꽤 되던데 왜 그런지 알겠다.
(이 영화 볼 사람은 이후 설명 읽지 말고 영화부터 볼 것)
오프닝에 잔인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설명도 없이 갑자기 각각 다른 지역의 다른 사람들 이야기 세 편이 교차편집되어 보여진다. 게이 커플도 있고, 오키나와의 고딩도 있고, 도시락 싸주며 사랑을 키워나가는 커플도 나온다. 이 맥락없는 이야기는 뭔가 하며 보다보면 오프닝의 살인사건을 벌인 범인이 잡히지 않고 도주 중인데, 세 편의 이야기에 각각 매우 수상쩍은 남자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범인은 도주하면서 성형을 했다고 한다. 즉 그 셋 중 하나가 범인이다. 세 남자는 각각 다른 배우가 연기를 하는데도 묘하게 서로 분위기가 닮아서 누가 범인인지 종잡을 수 없다. 
관객과 마찬가지로 그 남자들 주변인물들도 혹시 그가 살인사건의 범인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 의심이 관계를 어떤 식으로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채널 스크린에서 '신뢰와 불신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카피를 달았던데, 딱 맞춤한 카피다.
"오빠는 혹시 아이코는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 "오키나와는 몰라도 너의 편이 되어줄게" "날 의심하는 게 아니라 믿어준다는 거잖아"
세 파트의 사랑이 다들 절절하고 가슴 아팠다. 그 사랑 사이에 끼어들어오는 작은 균열도 세심하게 조율해낸다. 
내가 보기론 벌써 두번째인 츠마부키 사토시의 게이 연기, 볼 때는 몰랐다가 나중에 찾아보고 히로세 스즈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던(역시 청소년은 빨리빨리 크는구나) 그녀, 미야자키 아오이의 그 맹하면서도 청순한 연기, 벌써 이모 역할을 하게 된 이케와키 치즈루 등등 캐스팅도 화려하고 적절했다.  
이 영화가 넘나 괜찮아서 찾다 보니 몇년전 부산영화제에서 본 <악인>과 매우 닮은 영화였다. 감독 이상일, 원작 요시다 슈이치, 주연 츠마부키 사토시, 제목 글자 2자. 다 똑같애. <악인>도 좋았는데, <분노>도 좋다. 이야기와 철학의 위대함은 원작에서 나왔겠지만, 영화에 집중시키는 힘과 영화 자체의 에너지, 끝난 뒤의 여운은 감독과 배우들 덕분이 아닐까 싶다. 한때 일본영화 감독 중 가장 좋아했던 사람이 이누도 잇신이었는데, 이제는 이상일이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윈드리버>가 좋아서 1월의 영화다 했는데, <분노>까지 보고 나니 1월이 다 가기 전에 벌써 올해의 영화를 봐버린 건 아닌가 싶다.

코코 (리 언크리치 감독 | 안소니 곤잘레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벤자민 브랫)
이 영화도 좋았다. 약속과 약속 사이 시간이 떠서 오랜만에 극장에 혼자 가서 본 영화. 디즈니의 세계는 대체 어디까지 넓어지는 걸까? 이번에는 멕시코다. 
미구엘은 대대로 음악을 미워하고 신발 만들어서 먹고 산 집안의 아들이다. 하지만 음악을 너무 좋아하는 미구엘은 죽은 자의 날에 유명가수 델라크루즈의 기타를 훔쳤다가 죽은 자의 세계(저승)로 넘어가버린다. 그곳에서 외증조할아버지 델라크루즈를 찾아 모험을 하고, 그 과정에서 죽은 조상들도 만나고 진짜 외할아버지도 찾는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와 찾아보니 멕시코에는 죽은 자의 날이 1년에 한번 있다고 한다. 그때 조상들의 제사를 다 같이 지낸다고. 우리나라도 기일마다 껀껀이 제사 지내는 것보다 추석이나 설에 한꺼번에 몰아서 지내는 게 좋지 않을까 잠깐 부러워했다.
일단 이 영화는 음악이 좋다. 멕시코 음악 내 스똴~. 작년에 <베이비 드라이버> 음악이 넘나 좋아서 OST를 선물로 받았는데, 음반만 들으니까 영 별로였다. <코코>는 영상없이 OST만 들어도 좋을 것 같다.
음악 다음으로 좋았던 것은 이 영화가 여성들의 서사여서다. 미구엘
네 가계를 먹여살린 건 이멜다 여사. 그 뒤를 이어 다 딸들이 신발을 만들어 가업을 이어왔고, 이 영화의 제목인 <코코>도 미구엘의 할머니 이름이다. 거기다 무대디자이너로 나온 프리다 갈로! 캬~ 정말 이 강인하고 낭만적인 언니들 넘나 좋아.
그리고 델라크루즈와 헥터의 이야기는 저작권에 관한 이야기다. 글쓰는 사람으로서 저작권 문제는 언제나 민감할 수밖에 없고, 그런 면에서 흥미로웠다. 
결국 이 영화는 가족의 사랑에 손들어주며 끝나는데, 만약 미구엘네 가족이 미국 백인가족이었다면 나는 "저 놈의 미국 가족 만세 지겨워!" 했을텐데, 멕시코를 무대로 해서 그런지 위화감없이 받아들여졌다.  


덧글

  • 키드 2018/02/02 14:35 # 삭제 답글

    <분노>는 별다른 정보 없이 극장에 들어섰다가 조제와 츠네오가 나와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근데 조제(치즈루)의 이모 연기가 넘 잘 어울려서 더 놀랬던 기억이... 암튼 정말 좋은 영화인데 개봉관에서 오래 걸려있지 못하고 스리슬쩍 내려와서 안타까웠던 기억이 납니다.
  • 이요 2018/02/02 14:39 #

    그죠? 저도 조제가 벌써 이모 연기가 저토록 자연스러운 나이가 되었나 했었습니다.
  • lily 2018/02/05 13:56 # 답글

    윈드리버!! 이요님 덕분에 잘 봤습니다. 감사해요!!
  • 이요 2018/02/05 15:38 #

    리뷰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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