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생각하고

어제 날 병원에 데려다 주려고 언니가 자동차를 몰고 왔다.
우리집 앞에 주차해놓았는데, 차 빼달라고 전화가 왔다.
차 빼러 나간 언니는 한참이 지나서야 들어왔다. 
뭐가 이렇게 오래 걸렸냐고 했더니, 앞집 아줌마가 나와서 쌩난리를 쳤다고 했다.
우리집 앞집에는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아줌마가 하나 산다. 
주차 문제, 쓰레기 문제로 아주 사람을 들들 볶아대는 사람이다.
자기 집 앞도 아닌데 차 소리만 나면 미친듯이 뛰쳐나와 
자기네 블록을 바퀴가 밟기라도 하면 온갖 쌍욕을 퍼붓고, 
담배꽁초나 쓰레기 하나로 동네 떠나가라 소리를 지른다.
자기 집 주차장에는 차 한대 못대게 표지판으로 다 막아놓고서, 
우리집에 차를 대면 쌍심지를 켜고 달려나와 감시를 한다.
이 골목 사는 사람들은 다 알아서 웬만하면 그 아줌마와 안 마주치려고 한다.
그 아줌마한테 한바탕 당한 것이다.
예전에도 언니가 우리집에 차를 가져왔다가 그 아줌마한테 한번 깨진 적이 있어 
웬만하면 우리집에는 차를 가져오려고 하지 않는데, 
이번에는 날 병원 데려다주는 관계로 가져왔다가 봉변을 당한 거다.
앞으로 언니는 두번 다시 이 집에 차를 가져오지 않겠군 했다.

그리고 그날 나는 다리 다친 이후 처음으로 극장에 갔다.
CGV상영관의 객석 사이 계단이 그렇게 높은 줄 몰랐다.
첫 계단을 목발 짚고 뛰어오르다 목발이 미끄러져 넘어질뻔 했다.
그랬더니 도저히 계단을 오를 엄두가 안났고, 
제일 앞의 장애인석에 앉아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오랜만의 나들이에 지쳤는지, 같은 날 집의 화장실에 들어가다 미끄러졌다.
이번에는 영화관에서보다 더 심하게 미끄러져서 깁스한 발에 충격이 가도록 쎄게 디뎠다.
4주 동안 화장실 들어가면서 사고난 적 한번도 없었는데, 이렇게 한번 미끄러지고 나니까
그다음부터 화장실 가는 게 겁났다. 
참고 참다 화장실 한번 갈 때면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럽게 발을 디딘다.
사실 화장실을 참을 수는 없으니까 결국 극복해야 할 문제이고, 
4주 동안 딱 한번 미끄러졌으니까 조심하면 앞으로 다시 미끄러질 일은 없는데도, 
화장실문 앞에만 서면 심호흡을 하게 된다.

이게 트라우마라는 걸 이제 알겠다.
화장실 턱을 올라가다 미끄러지는 것, 
영화관 계단에서 주저 앉는 것, 
주차하는 것. 
세상 아무 것도 아닌 일 같지만, 한번 일이 있고나면 쉽게 용기가 나지 않는다. 피하게 된다.
이런 조그만 일에도 트라우마가 생기는데, 큰 실패나 견디기 힘든 일을 한번 겪고 나면 얼마나 큰 트라우마가 생길까?
그러니 함부로 용기를 내라느니 그것도 극복 못하냐느니 할 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경우를 빼면 피하는 게 상책이다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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