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배기의 맛 읽고

꽈배기의 맛
최민석 | 북스톤

<꽈배기의 멋>을 읽고 다음 권은 안읽어도 되겠다고 한 게 무색하게 이 책도 읽었다. 이 책은 2012년에 발간한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라는 에세이의 개정판이다. 두달 만에 절판된 에세이를, 이번에 새 에세이를 내며 개정하여 시리즈처럼 제목도 바꿔 낸 것.
개인적으로는 <꽈배기의 멋>보다는 이 책이 나았다. 아무래도 2012년에 쓴 글이니 더 젊을 때 써서 그런가 발랄하고, 무엇보다 앞쪽에 오무라이스를 비롯 음식 이야기들이 나와서 그런 것 같다. 학창시절 이야기도 가끔 나오는데, 책날개에 고향이라든가 출신학교 같은 것이 전혀 없으므로 유추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주윤발의 영화를 본 연도로 보건데, 나보다 서너살 어리지 싶고, '아카데미'라는 극장이 있는 지방중소도시라고 하니 포항이나 울산이 고향 아닌가 싶다. 소개팅녀와 경주 월드에도 다녀왔다는 부분에서 힌트. ㅎㅎㅎ  
지난 책에도 나와 있지만 여기서도 작가는 에세이를 쓰고 싶어 소설가가 되었다고 한다. 참 특이한 발상이다. 그래서 그는 꾸준히 한 해에 몇편의 장편과 단편소설, 에세이를 쓰고, 웬만한 원고 청탁은 거절하지않고 받아들인다. 꾸준함의 힘이란 이런 게 아닌가 싶은.
작가가 7년 동안 글을 써왔다는 작업실 같은 커피발전소는 찾아보니 놀랍게도 내가 다니는 길에 항상 있었던 커피집이었다. 딱 한번 원두를 산 적 있는데, 발 나으면 한번 가서 커피를 마셔볼테닷. 아마 운좋으면 노트북 펴고 앉아 있는 최민석 작가를 흘끔 훔쳐볼 수 있겠지.


밑줄긋기
34 _ 김을 전등에 비춰보면 하나의 잘 마른 바다가 들어 있는 듯하다.
40 _ 그나저나, 신인 작가는 뭐라 설명해야 하나. 참! "한국문단에는요...(문단 설명하는 데, 십 분), 등단이라는 게 있어서요...(이번엔 등단 설명에 십 분), 그 등단을 하고 나면, 또 문예지란 게 있어가지고요(또 문예지 설명 십 분), 단편소설을 게재하고, 나중에 그걸 소설집으로 엮어야 하기 때문에, 몇 년이..." 거 참! 누가 이 이야기를 듣고 앉아 있겠는가!
48 _ 외도를 한 당사자가 뉘우쳐 다시는 그러지 않고, 이제부터 진정 잘해보겠다는 의미에서 용서를 구한다손 쳐도, 그건 결국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유인즉슨 나는 이제 모두 고백하고, 뉘우치고, 가정에 충실할 의지가 충만하니, 지금부터 당신이 나를 용서하고 받아줄 차례라는 것을 강요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고려해볼 때 절대 쿨해질 수 없는 성질의 것이고, 순간적으로 무한한 자비가 발동해 용인하더라도 결국 세월이 지나면 울분이 부활해 어느 날 관계를 해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86 _ 누군가를 인정하지 않고, 누군가를 질투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할수록, 세상엔 좋은 것들이 좀 더 생겨날 것이다.
170 _ 나는 헌책방 중에서도 특히 문예지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서점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어쩐지 시간이 묵혀놓은 문학적 무게 같은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제목은 한자로 써있고, 모서리가 부드럽게 닳은 80년대 문예지의 표지 위에 잔뜩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젊은 이문열, 청년 김원일, 패기 가득한 눈빛의 최수철 작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 다들 자신의 청춘에 진지하게 임했구나' 하는 인상을 받곤 한다.
175 _ 왜 그렇게 열심히 가르마를 탔느냐면, 지금으로서는 논리적으로 선뜻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때엔 (다른 중학생들도 그랬듯) 자기가 몰입한 것만 근사하게 처리할 줄 알면 그걸 멋진 걸로 생각해버렸다. 
227 _ 종종 밤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돌아올 때면 마치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땅 위에 추락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짝거리며 빛나는 은하수가 땅에 고스란히 착륙해 빛을 뿜어내고 있다. 그 빛은 결국은 나의 일상이었다는 사실이 여행에서 돌아오면 더욱 선명해진다.
246 _ 나는 원작 소설을 읽을 때와, 개작된 영화를 볼 때 드는 느낌이 마치 '여행을 하는 것'과 '여행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소설엔 분명 독자의 능동적인 속도와 적극적인 해석의 여백이 존재한다. 반면, 영화에는 속도가 이미 정해져 있고, 해석의 공간 역시 소극적으로 존재한다. 이미 빛과 색, 표정과 동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설을 읽는 것은 걷고 싶을 때 많이 걷고, 쉬고 싶으면 쉬었다 다시 걷는 여행과 같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영화를 보는 것은 카메라의 시선과 속도에 따라 진행되는 여행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해서 어느 것이 옳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향유 방식에 따라 각자의 매력이 있고, 편리함이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여행을 가기 위해선 몸을 움직여야 하고 시간과 돈이 일상을 흔들 정도로 들지만, 다큐멘터리를 보기 위해서는 관심과 시간, 그리고 끝까지 볼 정도의 인내가 있으면 되는 것이다.
248 _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의 다큐멘터리를 한 편 봤다 해서, 인생에 손해를 보는 경우는 별로 없다. 거의 없다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타국을 갔다오고도 태연하게 지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곳에서 쌓인 불쾌한 감정, 감당할 수 없는 경비가 생활의 멍에가 되어 돌아온다. 반면, 그곳에서의 찌뿌듯한 경험, 실수마저도 남겨진 일상을 살아가는 데 참고자료로 삼는 이가 있다. 그건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물론 즐거운 여행이 삶을 더욱 기쁘게 할 것이란 것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무릇 소설이란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좋은 소설이란 읽을 때도, 읽고 난 후에도 좋은 삶을 선사한다. 그리고 그 시간의 범위가 여생이 되기도 한다. 


덧글

  • 오후 2018/04/11 14:42 # 삭제 답글

    회사가 커피발전소 근처라 자주 하는데, 작가분 거의 80% 확률로 점심에도 앉아 계시더라구요..ㅎㅎ
  • 이요 2018/04/11 19:33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2018/04/12 07:32 # 삭제 답글

    포항 맞아요! 저도 괜히 반갑더라구요 ㅋㅋ 커피발전소에서 임경선씨도 자주 봤어요 거기 사장님을 남자주인공으로 소설을 쓰기도 했죠
  • 이요 2018/04/12 11:23 #

    포항 맞았군요! ㅎㅎㅎ 커피발전소 검색하다 보니 임경선 작가님도 거기서 벌써 4년차라고 나오더군요.
  • 2018/04/13 14:5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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