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초반의 영화들 : 원더, 보스 베이비, 팬텀 스레드 외 보고

4월 둘째주까지 본 영화 총 7편 : 더 홀 트루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레디 플레이어 원, 치즈 인더 트랩, 보스 베이비, 팬텀 스레드, 원더

더 홀 트루스 (코트니 헌트 감독 | 키아누 리브스, 르네 젤위거, 가브리엘 바쏘, 구구 바샤로)
유명 배우들이 나오는데다 반전이 있는 법정물이라길래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봤다. 폭력적인 남편을 아들이 욱해서 찔러 죽인 사건에 관한 법정드라마로, 이야기 자체는 법정 미드의 한 회 정도에 적합한 이야기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반전을 눈치 챌 수도 있다. 다른 무엇보다 르네 젤위거가 너무 늙어서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누군지 모르고 보다가 "어? 목소리가 르네 젤위거 같은데?"하면서 다시 보니 진짜 그녀였다. 세월 참 무상하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츠키카와 쇼 감독 | 키타무라 타쿠미, 하마베 미나미, 오구리 슌, 오오토모 카렌)
현재 중학교 선생으로 재직하는 남자가 과거 그 중학교 다니던 시절 만났던 시한부 소녀와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액자 구조로 되어 있어 <러브레터> 생각도 나고, 예상보다 재밌게 봤다. 벚꽃 난분분한 시한부 멜로에 학창시절 이야기라니 오글오글 할 것을 대비하고 봤는데, 예상 외로 저 이상한 제목이 문자 메시지가 되어 날아갈 때 심쿵? 울컥! 했다.
사실 나중에 사쿠라가 다시 너의 췌장을 먹고 싶다고 할 때는 두번째라 별 감동이 없었는데, 남자애가 너를 좋아한다는 온갖 말을 문자로 찍었다 지웠다 하다가 결국엔 모든 것을 지우고 "나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고 한 줄 보낼 때 예상치 못한 감동이 있었다.
그나저나 일본 여배우들은 제발 예쁜 척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 물론 사쿠라 캐릭터가 안으로 슬픔을 삭이고 밖으로는 엄청 명랑한 척 캐릭터라는 건 알겠는데, 너무 예쁜 척 한다.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볼 때마다 항상 그 부분이 걸리적거린다. 그런 걸로 따지면 대만이나 일본 배우보다는 그래도 한국 여배우들이 훨씬 연기를 잘하는 듯. (생각해보면 이렇게 예쁜 척 할 수 있는 영화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기도 하고...-.-)

레디 플레이어 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 타이 쉐리던, 올리비아 쿡, 벤 멘델슨, 마크 라이언스)
깁스하고 병원 아닌 곳으로의 첫 외출이었다. 그러나 내 목발은 높디높은 CGV 상영관 계단을 올라가지 못해 제일 앞줄 장애인석에 앉아 봤고, 덕분에 아이맥스로 보는 거랑 비슷한 효과가...어찌나 울렁거리고 어지럽던지...쿨럭. -.-;; 스필버그의 유서 같은 영화라는 평을 듣기도 했고, 예고편도 무척 재밌어서 기대를 했는데, 내 기대와는 다른 영화였다. 이런 SF게임 같은 영화인 줄 몰랐다. 왜 스필버그인데도 이렇게 안터지나 싶었더니 남자들이 좋아할 영화였다. 게임에서 이스트 에그를 찾는 이야기라니....덕후 기질이 없는 나에게는 안드로메다 이야기나 다름 없었고, 다들 제임스 할러데이가 스필버그의 현신이라던데 나는 자꾸만 스티브 잡스가 생각나고... 다만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적대자 IOI가 그놈의 이스터 에그 찾겠다고 사람들은 24시간 뺑이치게 만드는 부분이 참 자본주의답고 리얼하다 싶었다. 

치즈 인더 트랩 (김제영 감독 | 박해진, 오연서)
난 이 영화의 원작 웹툰은 너무 디테일하고 예민하고 질질 끌어서 보다 말았고, 드라마를 좋아했다. 그러나 원작팬들은 김고은이 홍설과 어울리지 않는다, 유정이 주인공인데 왜 백인호 분량이 많냐 하면서 쌩난리를 쳤지. 그래서 원작이랑 똑같이 만든 영화 보니 만족하셨어요? 내 이럴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와...진짜... 로맨스 영화인줄 알았더니 호러 영화였어. 저래서 대학 어떻게 다녀? 무서워서...헐...

보스 베이비 (톰 맥그라스 감독 | 알렉 볼드윈, 토비 맥과이어, 마일즈 크리스토퍼 박시)
이 영화 엄청 골때렸다. 앞의 10분 보다가 와...이거 뭐지?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애들용 영화가 아닌 것 같은데....아기 목소리가 무려 알렉 볼드윈이다. ㅋㅋㅋ 아기라면서 하는 짓이 어찌나 징그럽고 능청스러운지 시종일관 이걸 애들이 봐도 되나 싶었다. 마지막은 훈훈하게 끝났지만 디즈니에선 만들어질 수 없는 영화다. 드림웍스다워. ㅋㅋㅋ
팀은 동생이 태어나자 엄마, 아빠의 사랑이 그쪽으로 다 가버려 심통이 난다. 그런데다 이 아기는 부모님 앞에선 재롱 피우다가도 부모만 사라지면 돌변한다. 20년차 회사 부장 같은 말을 하며 팀의 속을 득득 긁는다. 다행히 아기는 퍼피주식회사의 신개발 강아지에 대한 정보를 물어 오면 바로 하늘나라로 복귀할 거라고 하니, 팀은 동생을 도와 신개발 강아지를 찾는 모험에 동참한다. 
회사 상관 같은 아기도 웃겼지만, 아이들과 애완견을 경쟁 상대로 둔 것도 기발했다.
나중에 본 <원더>와 비슷하게 이 영화에서도 동생이 생긴 맏이의 심리가 잘 그려져 있다. 부모와의 시간도 뺏겨버리고, 동생이 약올렸는데도 싸우면 자기만 야단맞고...나도 맏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하며 봤다.
 
팬텀 스레드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 | 다니엘 데이 루이스, 빅키 크리엡스, 레슬린 맨빌)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것 치고 이 영화는 재밌게 봤다. 일단 드레스를 만드는 디자이너가 주인공이라 예쁜 드레스를 보는 즐거움이 있었고, 결국엔 사랑 이야기라 좋았다. 
제목의 '스레드'가 뭔 뜻인지 몰라 찾아보니 '실'이었다. 아마 한국어로 번역한다면 '천의무봉' 정도로 바뀔 수 있는 제목 아닌가 싶다.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인데, 나에게 이런 사랑 어떠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겠지만, 보는 동안 설득된다. 주인공 레이놀즈는 마마보이에 극도로 이기적이며 여자를 대상으로만 보지 인간으로 보지 않는 남자다. 그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지만 부족함이 없다. 왜? 그의 누나가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여자는 시끄럽게 굴면 갈아치우면 그만이다. 이들의 구도는 <크림슨 피크>를 연상시킨다.
그러던 이 남매 앞에 알마라는 만만치 않은 여자가 나타나고, 그녀 역시 싫증나려고 할 때 알마가 역습한다. 나는 '저런 방법 밖에 없나?'하며 알마의 역습을 탐탁지 않아 했지만, 레이놀즈 같은 인간에게는 저런 방식 외에는 먹혀 들지 않겠구나 싶기도 했다. 아마도 둘의 그런 기이한 사고방식과 성격이 맞았기 때문에 저렇게 붙어 산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 끝까지 나는 레이놀즈가 제레미 아이언스라 착각하고 봤다. 왜 이렇게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헷갈리는지. ^^;;;; 내 눈에 서양남자 구분하는 센서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원더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 | 제이콥 트렘블레이, 이자벨라 비도빅, 노아 주프, 줄리아 로버츠, 오웬 윌슨)
이달에 본 영화 중에 가장 좋았다. 먼저 본 언니가 좋다고 추천할 때 "얼굴 기형인 애 나오고 뭐 그런 얘기 아니예요?" 했더니 "니가 생각하는 영화가 아닐걸?" 했다. 영화를 보고 나니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다. 궁극적으로는 안면기형인 아이가 학교에 적응하는 이야기이지만, 만듦새가 전형적이지 않아 예상했던 대로 가지 않는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한줄이란 '우정이란 무엇인가'가 아닐까 싶다. 
주인공 어기에게는 잭이라는 친구가, 어기의 누나 비아에게는 미란다라는 친구가 아킬레스건이다. 어기는 잭을 믿고 진심으로 좋아하다가 잭이 뒷담화하는 것을 듣고 크게 상처받아 절교한다. 비아는 어릴 때부터 단짝 친구였던 미란다가 어느 날부터 자기를 멀리하기 시작해 상처받는다. 그 친구들을 다시 친구로 맞이하기까지의 과정에서 다른 친구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사려깊은 어른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물론 못된 친구도 당연히 등장한다.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어기의 시선으로 가지 않는 게 신선했다. 우정의 분기점에서 검은 바탕에 아이들의 이름이 떠오를 때마다 "아..이번 아이의 비밀은 무엇일까"가 궁금해지는 구성이었다. 그리고 줄리아 로버츠같은 대배우가 이런 영화에서 조연인 엄마를 맡아 극을 튼튼하게 지탱해주는 것도 좋았다. 그런 의미에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과 비슷한 느낌도 있다. 
물론 나는 맏이 비아의 입장에 감정이입되어 또 열심히 봤다. 김연아의 언니 심정이 저랬을까 싶기도 하고, 겨우 엄마와의 하루를 허락받아 좋아하는데 그때 또 어기의 전화를 받고 나가는 엄마를 보는 그 모습이 어찌나 마음 아프던지...하여간 영화 보는 내내 눈물 콧물 찍어내느라 바빴다.
이 좋은 영화를 만든 감독이 누구인가 찾아봤더니 <월 플라워>를 만든 감독이었다. 아...이분 이런 영화에 특기가 있는 분이구나. 앞으로는 믿고 봐야겠다.
 

덧글

  • dd 2018/04/16 23:44 # 삭제 답글

    보스베이비! 넘나 언밸런스하고 귀엽죠! 디비디 사려고 각잡고 기다리는데 아무래도 안나올려는 모양입니다ㅠㅠ
    원더 정말 좋았어요. 어기 가족도 좋았지만 미란다가 참... 예쁘고 안쓰럽고 그래요.
  • 이요 2018/04/17 09:16 #

    언밸런스하다는 좋은 말이 있었군요! 딱 맞는 표현. ㅎㅎㅎ 그리고 미란다 참 가슴 아팠어요.
  • 2018/04/17 15:38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weathergirl 2018/04/23 01:00 # 답글

    우와! 다른 좋은 평이라니 너무 감사해요! 저도 제레미아이언스랑 다니엘데이루이스랑 닮았다고 생각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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