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걸 읽고

랩걸
호프 자런 지음
김희정 옮김
알마 

유시민이 알쓸신잡에서 언급하는 바람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 나는 그 전에 샀다.ㅋㅋ 독서모임에서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두껍고 빽빽해서 사두기만 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이번에 다치면서 읽게 되었다. 
북유럽 혈통의 저자는 어릴 때부터 아빠의 실험실에서 지내며 예민하고 남다르고 집요한 기질을 키우다 과학자가 된다. 남자들의 세계인 과학에 여성 과학자로 들어와서 예산따기도 쉽지 않은 식물학 전공자로 연구하는 이중고가 잘 드러나 있다. 그런 가운데 빌이라는 소울메이트를 만나 버려진 지하 창고에 자신의 연구실을 차리고 연구를 해나가며, 사적으로는 연애하고 결혼하여 아기를 낳는다. 식물과 자신의 사생활을 연결지어 유려하게 쓴 도입부들이 인상적인 에세이다. 
여성 과학자로 산다는 것, 식물을 연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굉장히 세심하고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전형적인 여성적인 글쓰기로, 나는 이런 글 읽기를 좀 버거워하는 독자인데도 저자가 워낙 글을 잘 써 재밌게 읽었다. 특히 빌과 저자의 괴상한 기질과 찰떡궁합 같은 호흡이마음에 들었다. 저자가 몽상에 가까운 계획을 세워 돈을 구하고 필요한 장비를 구해서 빌의 책상에 던지면 빌은 투덜대며 실험을 시작하고 대여섯번의 실패 끝에 뭔가 싹수를 보이고, 그때부터 끝없는 실험 끝에 뭔가가 완성되면 최종보고서는 저자가 쓴다. 이런 잘 맞는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돈이 없어서 학회 참석하러 고물차를 몰고 미국 횡단했던 에피소드나 집 없이 차에서 숙식하던 빌의 이야기, 지질 조사를 할 때 덩어리파와 쪼개기파의 특성과 갈등, 질량 분석계를 비롯한 과학실험도구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기억에 남는다.
 
책을 읽기 전에 이글루스에서 랩걸에 대한 두 개의 리뷰를 봤다. 그 중 하나에 빌과 저자가 결혼할 거라고 철석같이 믿다가 딴 남자랑 결혼해서 놀랐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나는 스포일러 당한 후 책을 읽어서 내내 빌 이야기만 나오길래 도대체 남편은 언제 만나나 목을 빼고 기다렸다. 또 하나의 리뷰는 아들에게 과학자의 꿈을 심어주려고 책을 사서 함께 읽다가 너무 이상해서 중단했다는 리뷰였다. 유시민의 나이를 생각하면 딸이 지금 얼마쯤 되었겠다는 감이 오지 않나? 그걸 왜 초딩 아들에게 읽어줄 생각을 했을까? 이런 아전인수식 해석을 보다보면 책 추천도 참 쉽지 않구나 싶어진다.
과학자의 에세이라 내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는데, 그런 부분을 빼고 내가 이해한 부분 중 몰랐던 식물에 관한 사실은 제일 아래쪽에 식물에 관한 밑줄긋기로 따로 모아둔다. 

밑줄긋기
11 _ 사람들은 과학자라고 불리려면 수학을, 혹은 물리나 화학을 잘해야 된다고 말할 것이다. 틀렸다. 그런 말은 뜨개질을 하지 못하면 주부가 되지 못한다거나 라틴어를 모르면 성경을 연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물론 그런 것을 잘하면 도움이 된다. 하지만 나중에도 공부할 시간은 충분하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질문이다.
33 _ 지금까지 나를 가르친 모든 선생님들이 귀찮아 하고 골칫거리라고 생각했던 나의 특징들(무엇이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고 모든 것을 지나치게 하는 경향)은 과학 교수들이 원하는 바로 그 특성이었다. 
40 _ 나는 식물의 성장을 연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돈은 늘 지식을 위한 과학이 아닌 전쟁을 위한 과학에 몰렸다.
44 _ '의미가 있다'는 단어는 너무나 모호해서 쓸모없을 정도지만, 거기에 '커다란'이라는 단어를 앞에 붙이면 50만 달러의 연구 기금을 끌어올 수도 있다.
52 _ 모든 시작은 기다림의 끝이다.
182 _ 인간들은 잡초밖에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놓고 잡초가 많이 자란 것을 보면 충격을 받은 척, 화가 나는 척한다.
203 _ 선인장은 사막이 좋아서 사막에 사는 것이 아니라 사막이 선인장을 아직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사는 것이다. 사막에 사는 식물은 어떤 식물이라도 사막에서 가지고 나오면 더 잘 자란다. 사막은 나쁜 동네와 많은 면에서 비슷하다. 거기서 사는 사람은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어서 거기서 사는 것이다.
231 _ "잘 들어. 어차피 학생들하고 친구가 될 수는 없어. 그러니 그런 희망은 지금 당장 버려." 빌이 한숨을 쉬었다. "너랑 나는 뼈가 닳도록 일을 하고, 똑같은 걸 계속 가르치고, 학생들을 위해서 목숨까지 걸겠지. 그래도 학생들은 늘 우리를 실망시킬 거야. 그게 우리 직업이야. 우리 둘 다 그렇게 해서 돈을 버는 거고."
251 _ 우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문을 두드리는 것도 멈추지 않았고, 언젠가는 그 문들이 열리기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믿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사랑과 공부는 한순간도 절대 낭비가 아니라는 점에서 비슷했다.
262 _ 내 제한된 경험에 따르면 성차별은 굉장히 단순하다. 지금 네가 절대 진짜 너일 리가 없다는 말을 끊임없이 듣고, 그 경험이 축적되어 나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되는 것이 바로 성차별이다.
272 _ 우리 모두 일하며 평생을 보내지만 끝까지 하는 일에 정말로 통달하지도, 끝내지도 못한다는 사실은 좀 비극적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 대신 우리의 목표는 세차게 흐르는 강물로 그가 던진 돌을 내가 딛고 서서 몸을 굽혀 바닥에서 또 하나의 돌을 집어서 좀더 멀리 던지고, 그 돌이 징검다리가 되어 신의 섭리에 의해 나와 인연이 있는 누군가가 내딛을 다음 발자국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276 _ 날씨는 변덕을 부릴 수 있지만, 언제 겨울이 올지 알려주는 태양은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억겁의 세월 동안 나무들은 경화 과정에 의존해 겨울을 날 수 있었다. 식물들은 세상이 급속도로 변화할 때 항상 신뢰할 수 있는 한 가지 요소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291 _ 결혼한 사람들 사이에서 서른이 넘은 싱글 여성은 커다랗고 순한 집 없는 개에게 향하는 것과 같은 동정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부스스해 보이는 외모와 자급자족적인 성향 때문에 주인이 없다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지만 그 개가 사람들과의 접촉에 본능적으로 목말라하는 것을 보면 언젠가 더 행복한 시절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피부병 같은 것에 걸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는 집 앞 포치에서 밥이라도 먹게 해줄까 고려해보지만 얼른 그 생각을 접는다. 달리 갈 곳이 없어서 너무 귀찮게 치댈까 봐 걱정이 되어서다.
300 _ 몬터레이 소나무는 노르웨이 가문비나무에 비해 두 배나 빨리 자라지만 두 나무 모두 비슷한 둘레가 됐을 때 종이 제조용으로 벌목된다. 결과적으로, 노르웨이의 종이 제조사들은 미국의 종이 제조사들에 비해 일반적으로 부채 상환 능력도 좋고, 토지 보유량도 두 배 정도 된다.
349 _ 가장 좋은 계획도, 좋은 자리에 서서 생각해보면 더 좋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미리 자세한 계획을 짜는 것을 그만두고 위에서 봐야 길이 잘 보인다는 사실을 믿기로 했다.
380 _ 자기가 원래 되어야 하는 것이 되는 데는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린단다.
399 _ 세상은 조용히 무너져내리고 있다. 인류 문명은 4억만 년동안 지속되어 온 생명체를 단 세 가지로, 즉 식량, 의약품, 목재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해버렸다. 우리의 끊임없고 점점 더 거세지는 집착으로 인해, 이 세 가지를 더 많이, 더 강력하게, 더 다양한 형태로 손에 넣고자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식물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들고 말았다. 이 황폐의 규모는 수백만 년 동안의 자연 재해가 끼친 피해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다.

식물 정보에 대한 밑줄긋기
51 _ 씨앗 안의 배아는 자라기 시작하면 일단 허리를 굽히고 기다리던 자세를 곧게 펴서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형태를 정식으로 띠기 시작한다. 복숭아씨, 혹은 참깨씨나 겨자씨, 호두씨 등을 둘러싼 딱딱한 껍질은 대체로 이런 팽창을 방지하려고 존재한다. 실험실에서는 이 딱딱한 껍질을 긁어내고 물을 조금만 부어도 거의 대부분의 씨앗이 자라난다.
97 _ 이 세상의 이파리들은 단 하나의 임무를 완수하도록 만들어진 같은 종류의 단순한 기계를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로 응용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임무에 인류의 운명도 달려 있다. 이파리들은 당을 만든다. 살아 있지 않은 무기물에서 당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우주에서 식물이 유일하다. 우리가 태어나서 먹은 당은 모두 식물의 잎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이다. 뇌에 포도당을 계속적으로 공급하지 못하면 우리는 죽는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135 _ 식물들에게 빛은 곧 생명이다. 나무가 자라면 아랫쪽 가지는 새로 난 위쪽 가지들의 그늘에 가려 아무 소용이 없어져서 한물 간 퇴물이 된다. 버드나무는 이렇게 못 쓰게 된 가지에 예비 식량을 저장해서 그 가지들을 살찌우고 튼튼하게 만든다. 그런 다음 밑동 부분의 수분을 마르게 하면 가지가 깨끗하게 떨어져 강물에 떠내려간다. 물에 실려 흘러가던 가지들 100만 개 중 하나는 강둑에 쓸려 올라가 뿌리를 내린다. 얼마 가지 않아 원래 나무와 같은 나무가 다른 장소에서 자라는 것이다. 
173 _ 고개를 들어 살펴보면 어느 나무든 위쪽에 달린 이파리들은 아래쪽에 달린 이파리들보다 평균적으로 크기가 더 작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바람이 불어서 위쪽에 달린 이파리들을 움직이면 아래쪽에 햇빛이 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다시 한 번 나무를 보라. 아래쪽에 달린 이파리들의 녹색이 더 진하다. 햇빛을 흡수하는 색소가 더 많이 들어 있어서 그림자를 뚫고 들어온 더 약한 빛을 흡수하도록 도와준다.
365 _ 최초의 외떡잎식물들은 얼마 가지 않아 풀로 진화했다. 사막이 되기에는 습도가 높고 숲을 이루기에는 건조한 지구의 넓은 지역이 풀로 덮여 초원이 됐고, 이런 구역은 지구 방방곡곡으로 널리 퍼져나갔다. 풀은 번식하는 데 인간의 도움을 약간 받아서 곡물로 진화했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세 개의 외떡잎식물 종(쌀, 옥수수, 밀)이 70억 인구를 먹여 살리고 있다.




덧글

  • neo01 2018/04/16 18:56 # 답글

    저도 얼마전에 읽었는데 아직 리뷰를 못올렸네요.ㅜ 분량의 압박이 있긴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던거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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