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라이브' |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보고

라이브 
노희경 극본 | 김규태 연출
정유미, 이광수, 배성우, 배종옥 외 출연
tvN 금토 18부작 


드라마 비수기에 유일하게 즐거움을 줬던 드라마가 끝났다.
노희경 드라마답게 매회 질질 울면서 봤다. 끝까지 적응 안되는 러브라인 빼고는 다 좋았던 드라마다.
내가 한국드라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있다는 걸 느낀 게 언제였더라? 2000년대 초반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한창 일을 하던 90년대에는 드라마에서도 여주인공들이 나처럼 일을 했다. 영업을 하고, 거래처에 배신을 당하고, 물건을 들어 옮기고, 내가 낸 아이디어를 뺏기고, 상사한테 욕먹고, 술 퍼마시고, 다시 또 일어나 출근하고. 그런데 언젠가부터 미니시리즈의 주인공들이 일 대신 정치를 하기 시작했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와 <토마토>까지만 해도 여주인공은 주로 말단 직원이었는데, IMF가 끝나고 신자유주의가 대세가 되면서 드라마 주인공들이 편집장 혹은 마케팅팀장, 변호사 등등 전문직종에다 상급자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드라마에서 일 대신 정치와 권모술수가 횡행했다. <스타일>을 보면서 이제는 드라마에서 일하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되었구나 싶었다. 현실이 청년들을 인턴으로 빨아먹다 버리기 시작하자 드라마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 같다.
일하는 드라마에 대한 갈급함은 <미생>에서 채워졌다. 이번 <라이브> 역시 가장 말단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나는 너무나 좋았다. 첫회에 사기꾼 회사에 입사했다 돈 떼먹힌 염상수나 매번 시험치고 면접 보면서도 떨어지는 한정오의 사연에서 이미 이 드라마 리얼하겠구나 했다. 훈련소에서 제발로 나가는 훈련생 뒷통수에 대고 오양촌이 "그런데 니가 생각하는 그런 이상적인 직업이 이 세상에 있을까?"했을 때, 나는 거의 토씨하나 안틀리고 그 대사를 동시에 말했다. 밥벌이 한지 20년 넘어가니까 오양촌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푹 빠져서 보면서, 시보들이 지긋지긋하게 하는 일이 주취자들 토사물 치우는 거라는 걸, 경찰조직이 조직원들을 감싸주기는커녕 잘라내기에 급급하다는 걸, 성범죄 피해자들에게는 해바라기 센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전까지는 몰랐던 것들이다. 
내가 살면서 경찰서 갈 일이 뭐가 있겠나 싶지만, 이 드라마를 보다 떠올려보면 의외로 내 생활 곳곳에 경찰서가 있었다. 그리고 그 경찰이란 거의 지구대였다. 술 취해서 비틀거리며 신촌 8차선을 건너는 여자를 보고 112에 전화해서 빨리 와달라고 한 적도 있고, 주운 핸드폰을 지구대에 갖다준 적도 있고, 세들어 사는 빌라에 사고가 나서 경찰이 출동하거나 문을 뜯은 일도 있다. 주민등록증 잃어버렸을 때도 일단은 경찰서로 가라고 했던 것 같고. 
드라마에 나오는 홍일지구대와 한끝 차이인 홍익지구대가 우리집 근처에 있다. 화장 곱게 한 여경이 편의점에서 아이스바를 잔뜩 사서 지구대로 가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나 그때서야 여경들이 화장을 하기도 한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
하여튼 그렇게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경찰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일을 당했을 때 억울해 하고, 얼마나 위험한 일을 하며, 그 일들은 어떤 절차를 거쳐 어떻게 해결되거나 뒤로 숨어버리는지 알게 되었다. 
특히 나는 한정오와 안장미 팀장이 담당했던 성범죄 및 아동학대 건에 대해서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부분이 배려돋게 그려진 것이 좋았다. 또한 사람이 죽은 모습을 본다는 게 얼마만한 충격인지를 한정오를 통해 한번, 송혜리를 통해 또 한번 찬찬히 보여주는 것도 좋았다.
사실 일반 사기업을 다닐 때도 내가 잘못하지 않았는데, 조직이 나를 감싸주지 않으면 정말 배신감을 느낀다. 그런데 경찰조직은 감싸주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나서서 막 잘라내더군. 안장미 팀장 정직 받을 때도 완전 열뻗쳤고, 마지막 염상수를 놓고 벌어진 일들 역시 어이가 없었다. 작가는 그런 부분을 통해 진짜로 조직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조직이 어떻게 돌아가야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드라마를 보면서 친구들과 톡을 했는데, 어느날 이 드라마에 잘 생긴 배우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최명호가 그중 낫기는 하지만, 다른 드라마에 비하면 정말 잘생긴 인물들이 너무 없더라. 그래서 더 리얼하고 좋았던 것 같다. 오양촌만 해도 처음에는 엄청 꼴보기 싫다가 나중에는 정이 들어 넘나 좋아졌는데, 미안하지만 염상수는 끝까지 좋아지지 않았다. 후반에 우리는 톡방에서 내내 누가 염상수 역을 했으면 좋았을까 설왕설래했고, 안재홍이 했으면 훨씬 좋았을 거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나는 이광수를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친구들이 너무 싫어하니까 보는 내내 내가 이광수 쉴드 쳐주고 있더라는 거. 하지만 쉴드 치면서도 한정오와 염상수가 서로 좋아하는 사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밥.잘.사>의 손예진과 정해인 케미가 100%라면, <라이브>의 이광수와 정유미 케미는 5% 정도? 
어쨌든 오랜만에 현장의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드라마를 봐서 넘나 좋았고, 이런 드라마들이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지면 좋겠다. 검찰이든 소방수든 교사든 회사원이든 실제로 현장에서 일을 하고 욕을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리고 그들이 조직을 만들어가는 주인공인데, 왜 우리는 그들보다 상위 1%의 이야기를 더 자주 보게 되는가? 나는 현장의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드라마를 더 보고 싶다.
 

덧글

  • 긴호흡 2018/05/09 10:10 # 삭제 답글

    드라마를 보진 않았지만, 아니 힘이 딸려 어떤 드라마도 볼 수 없지만;;; 구구절절이 공감입니다...
  • 해리 2018/05/09 10:18 # 삭제 답글

    이요님 리뷰 너무너무 좋고요. ^^ (단, 케미 5% -> 17화에서 소숫점에서 마이너스 케미로 진입.ㅠ.ㅠ)
  • 이요 2018/05/09 10:19 #

    나도 -5%를 할까 5%를 할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ㅋㅋㅋ
  • 숑숑 2018/05/09 15:28 # 삭제 답글

    저도 정말 열렬히 애정하며 보았던 드라마예요. 역시 노희경 작가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는요.
    그러고 보니 드라마 거짓말 이후로 노희경 드라마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본방사수 했던 것 같아요.
    드라마가 한 직업에 대한 이미지를 이렇게 바꿀 수도 있구나 놀랍더라구요.

    참, 깁스 풀고 새 세상 만나신 거 축하합니다!!!
  • 포카 2018/05/10 02:51 # 삭제 답글

    저도 처음 8회 정도까지 열심히 보다 어느 순간부터 파출소(지구대) 이야기가 아닌 강력반 형사 이야기(?)가 되면서 흥미가 똑 떨어지더군요. "밥잘누나"가 나오면서 완전 치명타.. 간신히 다 보긴 했습니다.
    이광수는 그나마 인생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 했는데 연애로 엮는 바람에 망트리를~
    안재홍이 맡았으면 정말 그럴 듯 하겠군요.
    근데 이광수든 안재홍이든 연애는 안 어울리는데, 여히튼 연애크리 때문에 드라마는 망했는데, 정유미가 이광수가 고백할 때 침 꿀꺽삼킬 때 목 전체가 들썩이는 것 보면 저 연애장면은 꼭 넣고 싶어하는 작가의 맘이 이해되었달까요ㅎㅎ
  • 아느 2018/05/10 13:43 # 답글

    저도 라이브와 함께 열렬히 달려서 너무 공감되는 후기입니다. 이 드라마의 진주인공, 진커플은 오양촌, 안장미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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