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읽고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
강동묵, 공유정욱, 김대호, 김영기, 김인아, 김재광, 김정수, 김형렬, 류현철, 송한수, 이진우, 이혜은, 전주희, 최민 지음
나름북스 

곧 있을 <아픔이 길이 되려면> 발제를 슬슬 준비하려고 읽은 책이다. 산업현장에서 노동자들을 치료하는 의사들이 모여 쓴 책이라 읽는 내내 한숨과 답답함이 밀려왔다. 초반에 "당신이 아픈 건 당신 잘못이 아니라 일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해준 의사의 손을 잡고 우는 환자 이야기에 나도 같이 울었다.  
나의 정체성 중 가장 큰 부분이 여성이라면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노동자라는 거다. (그에 비하면 작가라는 정체성은 새 발의 피 정도? -.-) 일하면서 별별 치사하고 더러운 꼴을 봤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나는 정말 곱게 자란(?) 노동자다. 육체적으로 고통받아가면서 내 몸 자체가 부속품이나 산업폐기물 취급을 당하지는 않았으니까. 나의 직업병이라면 과민성대장증상 정도?
책의 초반에는 산업재해를 사회적인 문제로 끌어올린 7개의 큰 사건이 나온다. 문송면 사건이나 구보타 쇼크 등을 여기서 알게 되었다. 석면중독, 메탄올 중독, 수은중독에서부터 기형아 출산, 열사병, 진폐증, 과로사, 자살까지 일하는 사람에게 있을 수 있는 여러 경우의 병들이 모두 소개된다. 그리고 그 병들이 왜 산업재해일 수밖에 없는지 설명된다.

책을 읽으면 너무나 여러가지가 문제이고, 모든 것이 시급히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두 가지가 꼭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을 시킬 때는 되도록 2인 1조로 시킬 것. 도시철도 기관사들의 자살률이 엄청나게 높은데, 이걸 분석해보면 1~4호선 기관사들 보다 5~8호선 기관사들의 자살률이 훨씬 높다는 것이다. 이유는? 1~4호선은 제일 앞칸과 제일 뒷칸에 한명씩 타서 2인 1조로 운행하기 때문이다. 5~8호선은 자동화되어 그 긴 량의 열차를 오로지 한 사람이 컨트롤한다. 그러니 누가 자살하겠다고 뛰어들기라도 하면 운행하던 기관사가 시체수습까지 도맡아야 하는 것이다.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을 도리가 없고 회복할 수도 없다. 다들 잘 아는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기사 역시 2인1조로 가야하는 곳에 혼자 갔고, 에어컨 수리를 하다가 추락사하거나 인터넷선 연결 기사 역시 추락사가 다반사라고 한다. 모두 2인 1조로 나간다면 죽지 않을 수 있는 현장이었다. 인건비만, 효율만 생각하여 1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구조가 죽음을 불러온다. 독박은 뭐든 좋지 않다.
그리고 또 하나, 위험의 외주화. 가장 위험한 일이 가장 적은 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대기업의 하청의 하청의 재하청, 외국에서 온 불법노동자, 파견직 노동자, 그리고 고교 현장실습생. 그들이 가장 위험한 일을 한다. 위험한 일을 하면 돈이라도 많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전혀 반대다. 가장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적게 받는다. 공해산업이 수출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수은 중독을 일으켰던 공장은 일본에 있다가 우리나라에 있다가 인도네시아로 갔다.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하다. 다들 취직이 안된다고 걱정인데, 정작 일하는 사람들은 죽을만큼 과로한다. 내가 아는 직장인(공무원 포함) 중에 일이 많지 않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다들 죽을만큼 일을 한다. 일이 너무 많은데 사람을 뽑질 않는 것이다. 하.... 일본은 요즘 일할 사람이 모자라서 노동력을 수입한다던데 우리나라도 그렇게 되기 전에는 힘든 건가. 하긴 이미 많은 위험한 일들이 이주노동자들의 손에서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다. 
탄광이나 채석장, 조선소 등 전통적인 육체노동 현장의 직업병들은 물론 노트북의 프레임이 깨끗하게 닦여 나오는 것도 누군가의 노동의 산물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첨단산업이라며 깨끗한 이미지로 포장하지만 실은 더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매년 1조씩 쌓아두는 산업재해보험금 제발 좀 풀어서 쓰고, 기업들에게 '기업살인법'이 제정되었으면 좋겠고, 하청과 외주가 없어져서 다들 인간적으로 일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덧글

  • 2018/06/04 10:2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6/04 10:3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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