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읽고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마일리스 드 케랑갈 지음
정혜용 옮김
열린책들

독서모임에서 하기로 해서 읽어본 책. 사전 정보도 하나도 없었고, 겨우 소설이라는 것만 알고 읽었다. 사실 스터디가 아니었으면 앞의 한두장 읽다 덮었을 거다. 문체가 문체가...으아아아....내가 정말 싫어라하는 난삽하고 현학적이면서 문법 무시하고 의식의 흐름에 따라 나열되는 문체였다. 난해한 전형적인 프랑스 소설 문체랄까. 뒤의 역자후기를 읽어보면 번역자도 말도 못하게 고생한 것 같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그런 문체임에도 불구하고 희한하게 집중시켜주는 맛이 있어 그 문체에 적응하고 나면 그럭저럭 속도감 있게 읽어나갈 수 있게 된다.

젊은 청년 세 명이 새벽 바닷가에서 서핑을 하고 오다가 교통사고를 낸다. 두 명은 목숨을 건지지만 시몽 랭브르는 뇌사 상태에 빠진다. 이때부터 그를 맡은 의사,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등이 시몽의 부모를 설득하여 장기 기증을 받으려 하고, 아직 체온이 따뜻한 채로 누워있는 아들의 죽음조차 받아들이지 못한 부모가 장기 기증에 동의할지 거절할지를 고민하고, 파리의 다른 병원에선 심장 기증을 기다리는 환자 클레르가 연락을 받는 등 숨가쁜 24시간이 펼쳐진다.

뇌사자의 장기 기증에 관한 소설이다. 
나도 주민등록증이 바뀌기 전에는 주민등록 뒷편에 장기기증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던 사람이다. 죽고 난 뒤에 썩어 없어질 육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기 기증이 그렇게 간단한 거라면 좋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장기 기증의 미묘한 점은 숨이 넘어간 뒤에는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해부용으로 기증하는 게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내 장기를 이식시켜 줄 거라면, 죽은 다음에는 안된다. 심장은 뛰고 있지만 뇌는 죽은 상태에서야 적출할 수 있고, 바로 그 점 때문에 뇌사자의 보호자들은 장기 기증을 거부한다. 체온이 따뜻하고 메스를 대면 피가 흘러나오는 상태에서 장기를 적출하는 건 어쩐지 살아있는 몸을 죽이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대단한 점은 장기 이식에 관한 모든 관련자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뤘다는 점이다. 그 각각의 입장에 대해 한번씩은 생각해보게 한다는데, 또 공감하게 한다는데 의의가 있는 소설이다. 
일단 나는 시몽의 부모가 눈(각막)만은 그냥 놔두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사람의 신체에서 눈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전까지 심장도 적출하는데 각막이 뭐가 문제인가 피상적으로 생각했던 나는, 죽은 아들의 뚫린 눈구멍을 봐야하는 부모의 심정을 헤아리게 되었다. 연장 선상에서 뇌사자를 닦아주며 말을 건네는 친절한 간호사가 보호자들에게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같은 목표(장기기증)를 향해 간다면 그런 친절은 방해가 될 뿐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장기이식 코디네이터의 곤혹스러우면서도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위치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또한 장기이식에서 무조건 고마워해야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수혜자의 입장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자신이 살게 된다는 근본적인 죄책감뿐만 아니라 남의 심장이 자기 몸에 들어온다는 건 일종의 침범이라는 사실을 이 소설을 읽고 깨닫게 됐다. 심장이식이라는 것은 (비록 고장난 심장이지만) 자기 심장을 적출하고 남의 심장이 내 몸으로 들어온다는 것이고, 그랬을 때 내 몸이 그 이물질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하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더불어 이 과정에서 심장을 나르는 헬기조종사, 자동차 운전사의 조력 등 수많은 사람의 역할도 알 수 있었고, 그들 모두가 얼마나 높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견디고 있는지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스트레스는 내가 인터뷰 전날 밤 느끼는 스트레스의 아마 1천배 쯤에는 달할 것이고, 그런 상태로 매번 일을 해야 하다니 의사도, 코디네이터도, 간호사도, 인턴도 얼마나 힘든 일인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병원24시' 심장이식편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당사자들의 심정이나 그 당시의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제대로 담아낼 수 없고, 현장은 생생하게 보여줄지언정 의료지식이 없는 사람이 그 현장을 보며 이해해야 할 것들을 차분히 알려주지는 못한다. 그런 관점에서 이 소설은 다큐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문체가 힘들었지만 여러 의미로 대단한 소설이다. 


밑줄긋기
117 _ 그런데 시몽 랭브르의 육체는 경직되지 않았다. 바로 그게 문제다. 그 겉모습은 시체에 대해 사람들이 품는 생각에서 어긋나 있었다. 어쨌든 그의 육체는 차갑고 푸르스름하고 꼼짝 않고 있는 대신 따뜻하고 선명한 선홍색이었으며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으니까.
118 _ 1960년대 말에 태어난 세대. 그들은 늘어난 평균 수명이 지금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세상을, 죽음이 사람들의 시선에서 빠져나가 일상의 공간에서는 자취를 감추고 대신 전문가들이 죽음을 도맡는 병원으로 달아나버린 세상을 살아간다. 저들이 시신과 그저 조우라도 해봤던 적이 있을가? 할머니의 임종을 지켰다든가, 익사자를 끄집어냈다든가, 생의 마지막에 이른 친구의 곁을 지켰다든가, 그런 경험이 있을까? 그들이 <바디 오브 프루프>, <CSI>, <식스 피트 언더> 등의 미국 드라마들에서 말고 다른 곳에서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있을가?
161 _ 늘 임박해서야 정해지잖아. 그런 게 서핑이지.
312 _ 이런 일에 있어서 기증자라는 건 없어. 그 누구에게도 기증을 하려던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마찬가지로 수증자도 없는 셈이지. 장기를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그걸 받아들여야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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