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하 읽고

알로하
윤고은 | 창비

오랜만에 읽은 윤고은의 단편집. 여행을 좋아하는 작가답게 빠리, 하와이, 쎄비야 등 외국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많고, 윤고은답게 현실과 환상이 이물감없이 맞물리는 내용도 여전했다. 환상을 늘어놓으면서도 현실에서 벗어나지 않아서 그녀의 소설을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마지막 부분에 너무 환상으로 들어가버리는 이야기가 자주 나와서 아쉬웠다.

프레디의 사생아 : 빠리에서 향수 사업을 하려는 남자. 이사온 집에서 퀸의 프레디 머큐리 노랫소리가 자주 들린다. 알고보니 이 집에 프레디 머큐리가 약 2년 정도 살았다는 거다. 그 사실을 향수 마케팅에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재의 셀러브리티 마케팅, 인플루언서 등의 본질을 꿰뚫는 이야기가 신선하고 재밌었다. '이제 그 집에는 모든 것이 있다. 단지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만 없을 뿐이다'는 마지막 문장도 좋았다.  
알로하 :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관한 우화. 호놀룰루 지방지에 부고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가 해변에서 어떤 노숙자 노인을 만난다. 그는 자기가 시한부 암에 걸렸으니 자기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부고기사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매일 해변에서 만나 파란만장한 그의 인생유전을 듣던 기자는 어느 날 검색을 통해 이 노인의 이야기가 자기네 신문 부고기사를 짜집기한 내용이라는 걸 알게 되는데.... 읽는 내내 나보다 그 노인 같은 사람이 작가가 되었어야 했다고, 나 따위가 무슨 창작을 하겠다고 이러고 있는지 자괴감이 들었다.
월리를 찾아라 : 어마어마하게 큰 쇼핑몰에서 월리 분장을 해서 좋아요 스티커를 받아야 하는 알바생 이야기. 초반에는 그렇고 그런 알바 이야기인가 싶지만 나중에 사장까지 월리 분장한 채로 나오는 걸 보면 먹고 먹히는, 서로를 이용해서 올라가려(그 올라가는 곳이 고작 정규직이라는 게 서글픈)하는 한국 취업시장과 자영업이 생각나 무섭고 섬뜩한 이야기. 화장실의 피는 대체 뭐였을까?
사분의 일 : 한예리가 나왔던 영화 <더 테이블>의 한 에피소드가 생각나는 이야기. 자매 둘을 포함한 네 명의 가족이 사정에 따라 각각 찢어져서 사는데, 어느 날 언니가 결혼한다며 그러니 집을 렌트해 단란한 가족을 연기해야 한다고 해서 옷을 맞춰입고 가족 사진을 찍고, 렌트한 집에서 음식을 만들고, 예비 형부를 맞는 하루가 그려진다. 
해마, 날다 : 술 마시고 전화해서 헛소리할 수 있는 업체가 있다. 그곳의 텔레마케터들은 해마1, 해마5식으로 불린다. 참신한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달과 구멍에 관한 이야기가 엉켜나오면서 마지막이 산뜻하지 못했다.
P : 대기업 P가 장악한 P시에서 살던 장. 어느 날 내시경 검사를 한다며 원치 않는 물체를 삼켰다가 그 물체가 몸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장에 걸리면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해파리같이 생긴 그 물체는 점점 불어나고 회사에선 휴직하라고 압력 들어오고... 삼성의 수원 같기도 하고, 백혈병에 걸린 여직원들 얘기 같기도 하고, 사실 삼성이 아니라도 어떤 기업이라도 회사 있다가 나가면 겪게 되는 심리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요리사의 손톱 : 지하철에서 책 읽어주는 알바라니 내가 하면 딱이겠다 싶었지만, 일이 되면 무엇이든 재밌지만은 않은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자기를 희생해가며 사람들이 가장 잘 볼 수 있는 방법으로, 그렇게들 하는 거겠지. 이 소설 역시 P의 연장선에 있는 이야기로 생각해보니 이번 소설집의 많은 이야기들이 실직과 취업에 몰려있다.  
Q : 성석제의 '단 한번의 연애'라는 소설이 있다. 읽으면서 실소와 어이없음 밖에 느낄 수 없는 소설인데, 포항을 배경으로 쓰여졌고, 그 소설을 쓴다고 1억을 받았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 소설 'Q'를 읽으면 왜 그런 소설이 나오는지 100% 이해하게 된다. 성석제도 참 힘들었을거야...그렇다고 그렇게 쓰는 건 아니지. 젠트리피케이션과 창작자의 고통과 지역개발이 맞물려 돌아가는 웃기고 재밌는 얘기지만, 창작자 입장에선 마냥 웃을 수만도 없는 이야기.
콜럼버스의 뼈 :  내가 여행갔던 스페인 쎄비야가 배경이라 여러 장소를 떠올리며 읽을 수 있었다. 30년 만에 소식을 들은 친아버지의 자취를 따라 쎄비야에 온 여자의 이야기. 주소지가 없다고 해서 여기저기 골목을 누비다 어느 가족과 만난다. 남자의 누나가 노래를 불러주는 그 장면이 정말 따뜻하고 좋았다.  

전체적으로 무서우면서도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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