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동네 일주일째 살고

이사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인터넷이 연결되자마자 이사와 관련한 글을 올려야지 결심했다가 그 결심이 짜게 식어버린 건 내 블로그에서 4년전 이사한 글을 찾고나서였다. (이 글 : http://tripp.egloos.com/2978585
사람이 어쩜 이렇게 달라진 게 없어. 그때도 나는 여전히 버리고 있었고, 버리고 버려도 미니멀 라이프란 요원한 일이었고, 이번에도 똑같았다. 이번에는 장롱, 탁자, 책장 따위 무거운 가구들을 버렸는데도, 역시나 이사한 집에는 물건들이 넘쳐나고 정리는 힘들다. 그래도 어쨌든 몇자 적어보자면....

1. 사람이 이사하는 이유 
방을 내놓고 계약이 된 후 나는 새로 들어올 사람이 싱크대나 욕실의 하수구 냄새, 덜렁거리는 싱크대 문짝, 푹푹 패인 장판 등을 잘 모르고 계약했을 거라고 말했다. 나도 살아보고서야 문짝과 문틀 사이가 떠서 날벌레들이 많이 들어오고, 어떤 조치를 취해도 하수구 냄새를 없앨 수는 없으며, 큰 방의 전등은 켜서부터 끌때까지 위이잉 소리가 난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 말을 듣더니 남친이 말했다. "니가 계약한 집도 분명 그런 결점들이 있을거야. 어떤 이유가 있어서 이사를 가겠지만 그 집이 100% 마음에 든다면 옮길 이유가 없지."라고. 듣고보니 그럴듯한 말이었다. 
그리고 진짜로 이사 당일, 미처 못실은 짐을 지키고 있던 세입자의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 집은 맞바람이 쳐야 시원한데, 복도 창에 망창이 없어 현관문을 열어놓으면 모기가 들어오기 십상이고, 욕실에서 샤워하면 욕실문 밖으로 물이 넘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집주인에게 복도창에 망창을 설치해달라고 했는데, 당연히 안된다는 대답을 들었다. (도대체가 당연히 안된다는 건 대체 무슨 뜻일까?) 며칠 밤을 자보니 렌지 후드를 통해 다른 집의 음식 냄새가 들어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느 집이나 단점은 있고,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사를 한다. 물론 가세가 기울었다거나 결혼을 했다거나 직장을 옮겼다는 필연적인 이유로 이사를 하기도 하지만, 나처럼 별로 달라진 게 없는데도 더 이상 그 집에 살기 싫다는 이유로 이사를 하기도 한다. 남친 이야기처럼 내 방의 결점을 피해 남의 결점많은 방으로 옮기는 걸까?
다행히도 이 집은 누워있으면, 옛날부터 내 집이었던 것만 같다. 합이 맞다. 햇볕이 잘 들어오고, 슬리퍼 신고 베란다에 나가 움직여도 될 정도로 베란다가 넓고, 수납선반이 설치되어 있어 싱크대를 넓게 쓸 수 있고, 욕실 수납장 안에 타올과 욕실용품이 다 들어가고. 사실 나는 합이 맞지 않는 집에도 잘 적응하고 사는 사람이긴 하지만, 마음이 편한 집이라 더없이 만족스럽다.
아마도 사람은 내 방의 결점을 피해 그런 결점 없는 방을 찾아 살고, 거기서 몇년 살다보면 다시 크게 느껴지는 그 방의 결점이 없는 방을 찾아 떠나는 게 아닐까? 

2. 다시 찾은 빗소리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소리는 10년전만 해도 빗소리였다. 그런데 10년전 3명이 함께 모여 살게된 집의 베란다에는 빗소리가 증폭되어 들리는 지붕이 얹혀 있었다. 장마 때만 되면 빗소리가 우박 쏟아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TV 볼륨을 최대로 올려도 빗소리에 파묻혀 대사가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6년을 보냈더니 빗소리에 넌더리가 났다. 그리고 혼자 이사나간 집 또한 운명의 장난인지 베란다 지붕이 똑같은 소재로 되어 있었고, 내 윗층인 주인집에는 베란다가 없었다. 나는 그 우박쏟아지는 소리를 4년 동안 또 들어야 했다. 
이 집을 볼 때, 이사올 때, 이사와서 며칠 동안에도 계속 날이 쨍쨍해서 빗소리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주말, 드디어 비가 왔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집은 1층이라 베란다 지붕이 어떤 소재로 되어있든지 간에 내 베란다 위에는 2층집 베란다가, 그 위에는 3층집 베란다가 있다. 비가 베란다 지붕에 닿을 리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1층집이라 도로나 바닥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들을 수 있다. 하...먼지 위로 떨어지는 비냄새를 맡으며 증폭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빗소리를 듣는데, 이게 행복이구나 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3. 문고리닷컴
이번 집에서는 저번 집처럼 수동적으로 살지 말자고 결심했다. 환경에 나를 맞추며 살지 말고 뜯어 고칠 건 고치고, 새로 살 건 사고 좀 예쁘게 꾸며서 살자고. 대충 짐이 정리된 월요일, 나는 호기롭게 문고리닷컴에 접속했다. 싱크대 손잡이랑 시트지 정도 주문할 예정이었는데....거기서 나는 무려 11시간을 보냈다. 우와...세상에 이렇게 많은 물건과 선택지가 존재하다니. 손잡이 하나를 사려고 해도 최소 100개 이상의 물건을 봐야했다. 하....8시간 지나면서부터 눈알이 뻑뻑해지고 두통이 몰려오며 세상에서 쇼핑이 제일 힘들다 하는 망상까지 하게 됐다. 그렇게 하루 온종일을 문고리닷컴에서 보내고 무려 11만5천원을 결제했는데...일주일 째 물건이 배송되지 않는다. ㅠ.ㅠ 같은 날 주문한 쿠팡에선 담날 물건이 왔고, 목요일에 2차 결제한 물건까지 다 왔는데!! 
나는 언제쯤 새벽 5시의 햇살에 블라인드를 칠 수 있을까? 언제쯤 내 장롱은 하얀색으로 옷을 갈아입을 수 있을까?

4. 태어나 처음 해본 사전투표 
이사하고 전입신고를 하러 갔더니 5월 23일 이전에 전입신고를 해야 이쪽 선거구에서 투표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선거인명부가 발생한 다음에 이사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그래서 아무데서나 할 수 있다는 사전투표를 하기로 했다. 
나 태어나서 사전투표 처음 해봤다. 투표소로 올라갔더니 앞서 간 사람들이 "저는 상수동이요." "저는 서강동이요"하길래 나는 "저는 그런 동 아닌데요."했더니 그러면 관외투표인 줄에 서라는 거다. 섰더니 주민증을 검사하고는 내 명단을 컴퓨터로 체크하더니 즉석에서 프린터로 투표용지가 뽑혀나왔다. 색색깔 다른 용지가 쭉쭉 뽑혀나올 때만 해도 신기하다며 바라보고 있었는데, 무려 7장까지 뽑혀 나오는 걸 보고 기함했다. 뭐가 이리 많아? 내가 이사하기 전에 선거공보물이 오지 않아 받아보지 못했다. 그러니까 사전투표도 생에 처음이지만, 선거공보물을 보지 않고 투표하기도 첨이다. 7군데나 투표해야 하는지 진정 몰랐다. 투표소에 들어가 하나하나 찬찬히 살피며 7군데 도장 찍는 것만 해도 시간이 걸렸고, 혹시 번질까봐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접어서 봉투에 넣는 것도 시간이 걸렸다. 봉투에 넣고 스티커 뜯어서 딱 붙이고 나와 투표함에 넣었다. 아하 사전투표란 이런 것이군. 이걸 봉투 다 뜯어서 일일이 개표하는 것도 일이겠다 싶었다. 



덧글

  • 룰루랄라나 2018/06/27 23:15 # 답글

    여름 빗소리.저도 참 좋아해용~ㅎ 빗소리 하나만으로 이사하길 잘하셨다니~역시 언닌 감성파^^* 사전투표 저만 신기한 게 아니었군요~~정말 최첨단 대한민국이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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