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살고

목요일 낮. 
오전 모임과 오후 일정 사이에 약 3시간 정도 시간이 떴다.
영화 한편 보면 맞춤하겠다 싶어 종로로 향했다.
종로 2가에서 종로 3가를 가는 그 길 내내 나는 노인들을 봤다, 만났다, 부딪쳤다.
한국 어디서 이 정도로 밀도높은 노인들을 만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기분이 이상했다.
점점이 직원이나 대학생처럼 보이는 사람이 박혀 있을 뿐 모든 사람이 노인이었고, 그것도 많았다.
종로가 노인들의 거리가 된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평일 낮에 몸으로 부딪히니 느낌이 달랐다.

영화표를 끊고 간단하게 점심을 먹을까 하여 에스켈레이터에 올랐다.
내 몇걸음 앞에 노인 두분이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중 한분은 이야기하는 목소리나 방식이 굉장히 젊은 느낌이었다.
"너희들이 나를 보러 모인다는 게 참 기쁘고, 우리도 이럴 수 있구나 생각이 들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듣고 있다가 목격했다!
그 할아버지의 7부 바지 밑으로 보이는 종아리 전체를 감싸고 있는 문신을.
깜짝 놀랐고, 이어 "그렇지, 조폭이든 뭐든 그들도 나이 먹고 노인이 되겠지..."하는 깨달음이 밀려왔다.

그들은 친구를 만나 반가워했고, 나는 건물을 빠져나왔다.
햄버거 가게나 던킨도넛이라도 있으면 하나 먹으려고 했는데...없었다.
종로 큰 길에는 햄버거 가게도 베이커리도 없었다.
그리고 또 없는 게 있다. 그 흔한 에띄드 하우스, 이니스프리, 올리브영이 없다.
아....그렇구나....여긴 관광객도, 젊은이도 없는 구역이구나...
온통 보석상뿐인 이 길가에 간혹 짜장면집, 칼국수집은 보였지만 서양요리를 파는 곳은 없었다.
간신히 극장 근처에 하나 있는 편의점을 찾아 삶은계란 2알을 샀다.
영화 시간이 되어 극장으로 들어가는데, 표를 받고 자리 안내해주는 분도 나보다 족히 20년은 더 들어보이는 할머니였다.

나는 점점 늙어가고, 
아마도 누군가의 우스개소리처럼 20년 후에는 홍대 앞이 지금의 종로처럼 되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요즘 핫한 동네가 오르막 골목길이고, 요즘 핫한 가게들의 의자가 불편하고 테이블이 밥상만큼 작은 것은, 
그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그곳에 갈 수 있는 사람이 젊은이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든 사람을 배제하려는 무의식이 가파른 오르막과 좁은 테이블, 등받이 없는 의자로 나타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사실 이게 처음도 아니다.
맥도날드에서 무인판매기를 봤을 때도 같은 생각을 했었다. 이런 거 못쓰는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는 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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