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신화 읽고

북유럽 신화
닐 게이먼 지음
박선령 옮김
나무의철학

토르가 망치를 들고 설친 지도 꽤 오래 됐는데, 히어로물을 안좋아하다보니 그 유래가 어딘지도 몰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토르, 라그나로크 같은 것들이 북유럽 신화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의 초반, 세상이 시작되는 전의 이야기와 세계수, 샘, 신들의 이름이 나올 때는 이걸 계속 읽어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신화를 대충 개괄해놓은 책처럼 느껴져서 덮을까 했는데, 3장(오딘의 눈)부터 각 챕터가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로 꾸며져 쭉 재밌게 읽었다. 
드라마 <청춘시대>에서 한예리가 담당하던 아이돌그룹이 헤임달이었는데, 그게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신의 이름이었다! 신들의 파수꾼으로 라그나로크를 전부 지켜봐야 하고, 마지막에 호른을 분다. 드라마를 볼 당시만 하더라도 순우리말이거나 해와 달 사이에 뭔가를 넣어 만들어놓은 말인가 했었는데...^^ 
전투 중에 전사한 군인들은 다른 곳으로 가고 전사하지 않은 자들은 죽은 뒤 헬로 간다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전투 중 죽는 것에 대해 명예를 드높이고, 그러지 못한 전사들을 불명예로 간주하는 북유럽의 가치가 느껴졌다. 
여러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았는데, 먹는 것에 관한 게 많고, 그게 또 거의 토르와 연결되어 있어 웃겼다. 토르가 세상에서 제일 큰 솥을 얻기 위해 벌인 어마어마한 모험담은 대단했고, 피와 꿀을 섞은 술을 마시면 취해서 나오는 것이 바로 시와 문학이라는 상상력은 재밌었다. 염소의 살만 발라먹고 뼈는 남겨두라 했는데 뒷다리 골수를 파먹는 바람에 부활한 염소가 절룩대는 이야기, 돼지를 다 먹고 나면 다음날 또 살아와서 끊임없이 잡아먹혀야 하는 돼지의 슬픈 운명...ㅋㅋㅋ 
우트가로달로키의 환각으로 생각과 달리기를 한 티알피, 뿔잔에 든 술인줄 알고 마셨으나 바다였던 토르, 노년과 씨름한 토르 등 그 이야기에 담긴 철학적이면서 기발한 상상력도 좋았다.
삼국유사도 그리스/로마신화도 다르지 않지만 북유럽 신화에서도 아름다운 미인을 얻기 위한 혹은 뺏기 위한 권모술수와 협상이 난무하는데, 이 곳의 여신들은 그렇게 당하고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등장인물들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로키. 거짓말쟁이, 사기꾼에 태어나길 못된 놈이지만 매력적이었고, 신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그를 미워하지 못하겠더라. 다만 마지막엔 결국 그의 악의가 라그나로크를 불러오는 게 섬뜩했다. 라그나로크를 예언하는 마지막장은 요한계시록이 그렇듯이 현재를 비유하는 듯한 구절이 있는데, 특히 미드가르드의 뱀 요르문간드의 송곳니에서 나온 독액이 물속에 쏟아져 모든 바다생물을 독살하고, 미세한 바람의 형태로 공기 중에 뿜어내 그 공기를 호흡하는 바닷새들도 죽인다는 부분이 요즘의 미세먼지와 대양 오염을 연상시켜서 섬뜩했다. 
오딘과 토르와 로키, 그리고 프라야. 매력적인 인물들이다. 신의 세계와 거인의 세계가 다르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되었고.

밑줄긋기
268 _ 그가 던지는 모욕에는 적당한 양의 진실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듣는 이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덧글

  • shaind 2018/07/13 15:41 # 답글

    "팩트폭력"의 역사는 유구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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