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영화들 : 오 루시!, 서버비콘, 인크레더블2 보고

덥고, 할 일도 많아 이번 달도 5편 밖에 못봤다. 그래도 하나같이 괜찮은 작품들이었다.

텐텐 (미키 사토시 감독 | 오다기리 죠, 미우라 토모카즈)
이 영화는 예전에 여행갈 때 기내에선가 버스 안에선가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귀는 먹먹하고, 나는 들떠있는데, 이 영화는 너무 차분하고 지루해서 보다 때려치웠다. 도쿄 구석구석을 산책하는 이야기라고 해서 힐링이 필요한 어느 날, 다시 봤다. 일본영화 보던 초창기와 달리 이제는 일본영화 문법도 좀 알고 일본여행도 다녀왔기 때문에 재밌게 볼 수 있었다. 야쿠자가 돈을 주면서 산보하는데 동행하자는 어이없는 설정을 매끄럽게 잘 푼데다가 시효경찰 팀들이 나와서 반가웠다. 죽은 아내쪽 회사 사람들이 틈틈이 한번씩 나와 긴장감을 주고, 두 남자의 관계도 괜찮았다. 다만 본지 한달쯤 되니 그들이 갔던 도쿄 곳곳이 어딘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볼 때는 아는 곳이라고 좋아하곤 했는데. ㅋㅋ

오 루시! (히라야나기 아츠코 감독 | 테라지마 시노부, 조쉬 하트넷, 미나미 카호, 야쿠쇼 코지, 쿠츠나 시오리)
예고편 봤을 때만 하더라도 내가 이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갈 줄은 몰랐다. 후배가 보러가자고 해서 구로CGV까지 가서 봤다. 척박하고 꺼끌꺼끌한 영화인데,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직장생활 오래한 독신녀 루시. 집안 꼴은 엉망이고, 외로운데 남자는커녕 매력도 없고, 직장에서도 다들 불편해하는 그녀에게 조카가 대신 영어학원 다녀달라고 부탁한다. 노래방을 개조한 것 같은 이상한 영어학원에서 그녀는 허그를 잘하는 존이라는 강사를 만나고 첫눈에 반한다. 그런데 존이 조카딸과 미국으로 사랑의 도피행각을 했다. 딸을 찾으러 미국으로 가는 언니를 따라 루시도 미국으로 간다.

일본 영화인데 서양 배우가 낯이 익었다. 혹시 내가 아는 배우인가? 설마? 했는데 나중에 타이틀롤 올라가는 거 보고 조쉬 하트넷이라는 걸 확인했다. 일본영화 클라스라니.
이 드라마에는 세 명의 여자가 나오는데 셋 다 만만치가 않다. 언니는 여동생의 남자를 뺏어 결혼했고, 그렇게 낳은 딸은 엄마 속이고 미국으로 사랑의 도피행각 중. 주인공 루시는 여러모로 치이는 인생이지만, 보고 있자면 주변 사람들이 이해가 되는, 성격 참 별로인 여자다. 성추행한 남자가 지하철에 뛰어드는 첫 장면부터 범상치가 않더니, 여자들의 관계가 하나씩 베일을 벗을 때마다 "헉"했고, 나중에서야 이 모든 게 사랑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받기엔 너무 절박했다. ㅠ.ㅠ 이야기는 징글징글하게 끝까지 간다. 그랬기에 맨 마지막에 톰이 루시를 안아줄 때 희한하게 마음이 놓이며 눈물 한방울이 뚝 떨어질 수 있었다. 그래, 아무 관계 아니라도 그렇게 찾아와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러면 살 수 있지.
요즘도 가끔 그들이 영어시간에 했던 희한한 억양의 "토옴~ 조온~"하는 발음이 귓가에 쟁쟁거릴 때가 있다.

서버비콘 (조지 클루니 감독 | 맷 데이먼, 줄리안 무어, 노아 주프)
무슨 영화인지 전혀 모르고 보기 시작해서 앞부분 10여분을 보는 내내 "이거 뭐지? 이거 대체 무슨 영화지?"했다. (재밌게 보려면 저처럼 아무 정보없이 보길 추천!) 
미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일군 이상향의 마을 '서버비콘'. 그 백인들의 마을에 흑인 가족이 이사온다. 흑인 가족 옆집 테라스에서 줄리언 무어가 두명 앉아서 이야기를 한다. 헤어스타일과 화장법이 달라서 다른 배우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둘이 같은 배우다. 둘은 자매다. 그날 밤, 갑자기 침입자가 들어오고 그 남자들은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 여자를 죽이고 나머지는 살려둔다. 알고보니 장애인이 니키의 엄마였고, 멀쩡한 다리는 이모였다. 아들 니키는 그 아저씨들의 얼굴을 봤는데, 경찰서에서 아빠가 용의자를 보고도 그중에 범인이 없다고 하자 혼란에 빠진다.

초반에 혼란스러웠던 장면들은 중반이 되면서 치정 청부 살인이라는 게 밝혀진다. 알고 보면 전형적인 이야기인데,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아주 흥미진진하게 다른 식으로 보여진다. 멋지다. 그때부터는 이 일이 어떻게 해결될지 궁금해하며 홀딱 빠져 끝까지 봤다. 묘한 마을의 묘한 자매, 정직하고 근엄한 아버지 같았지만 뒤로 불륜 중인 남자, 돈을 밝히는 보험조사원, 너는 내가 꼭 지켜주겠다고 하고 약속을 지킨 삼촌까지 요소요소가 잘 짜여있고 흑인을 둘러싼 폭동과 이야기가 어우러지며 간지나게 구성된다. 마지막 흑인 아이와 백인 아이가 서로 공을 주고받는 장면까지 똑떨어지는 영화였다. 지금까지 조지 클루니 감독의 작품을 몇 작품 봤지만 다 재미없었는데, 이 영화는 재밌었다. 조지 클루니가 감독한 영화 중에 제일 좋았다. 

인크레더블2 (브래드 버드 감독 | 홀리 헌터, 크레이그 넬슨, 이사벨라 로실리니)
이 얼마나 기다렸던 <인크레더블>의 속편인가! 남친은 다른 히어로물은 다 싫어하면서 이 영화는 어떻게 좋아할 수 있냐고 했지만, 이 영화는 다르단 말이다! 달라!
본 사람들이 다들 이야기하듯 페미니즘 시대에 걸맞는 히어로물이다. 나는 일단 전제부터가 마음에 들었다. 사람들을 구한답시고 출동하면 때려부수는 기물과 사회인프라가 얼마며 그 복구비용을 생각할 때 인크레더블보다는 헬렌을 홍보하는 게 기업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라는 대전제 말이다. 내가 히어로물이나 액션물을 볼 때 제일 불편해하는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그걸 정확하게 짚어 이야기하는 게 좋았다.
또 육아와 바깥 일을 남녀 역할 바꾸어 시키면서 편견이 전복되는 쾌감도 있었다. 아빠의 자동차를 탐내는 아들, 사춘기 첫사랑에 빠진 딸, 무엇보다 잭잭! 잭잭이가 이 드라마를 다 살렸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우리의 귀여운 잭잭이!
워낙 피씨하게 그리다 보니 사실 중간에는 좀 늘어지고 지루한 감도 있었지만, 영웅도 악당도 여자들이 하는 거 마음에 들어. 모니터를 통해 최면시키는 부분도 충분히 납득되는 좋은 아이디어였다.

덩케르크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 해리 스타일스, 아뉴린 바나드, 마크 라이언스, 톰 하디)
이 영화도 놀란이 만들었다는 사실 외에 아무 것도 모르고 보기 시작했다. 당연히 전쟁영화인줄 알았으나 전형적인 전쟁영화가 아니었다. 고립되어 남은 연합군, 그중에 영국군들을 무사히 본국에 송환시키는 이야기였다.
바다에서 탈출하길 기다리는 군대, 하늘의 전투기 조종사, 본국에서 출발하는 어선까지 3가지 시점의 이야기가 교차되는데, 각각의 시간이 다르다. 초반에 몇시간전, 몇일전 같은 자막이 나와도 신경쓰지 않고 넘겨버렸는데, 나중에서야 이들의 시간대가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만약 나혼자 봤더라면 이 비행기는 아까는 추락하더니 지금은 날고 도대체 이거 왜 이래? 하면서 신경질 좀 냈을 것 같다. 누가 옆에서 설명해줘서 겨우겨우 이해했다. 해안에서, 배안에서, 비행기 안에서 다들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에게 업혀서 전투다운 전투 한번 벌어지지 않는데도 제발 저들이 무사히 돌아가기를 기원하게 된다.
어선들이 몰려들 때 "저게 뭔가요?"하는 질문에 "Home"이라는 대답, 울컥했다. 죽은 친구의 사진을 신문에 내게 하는 친구도 소중했고.


덧글

  • 미니벨 2018/08/02 16:13 # 답글

    인크레더블 평이 좋네요. 생각해보니 1편도 안 본 것 같아 복습도 필요하겠네요.
  • 이요 2018/08/02 16:19 #

    1편도 안보셨다니 부러워요. 1편도 정말 재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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