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운 배 읽고

누운 배
이혁진 | 한겨레출판

이 소설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조선판 미생'. 이때 '조선'이란 고려, 조선의 조선이 아니고 배를 만드는 회사를 말한다. 중국에서 배를 만드는 한국회사에 일하는 3년차 기사가 꼼꼼하고 미세하게 회사가 돌아가는 꼴, 회장을 위시한 임원들의 알력다툼, 배가 눕고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생>을 읽을 때 무역업에 대해 몰라도 상관없듯, 이 책도 조선업에 대해 몰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워낙 현장 경험이 생생하고, 설명이 잘 되어 있어, 정확히는 몰라도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지는 알 수 있게 적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사라는 조직을 1년만이라도 다녀본 사람들이라면 극 공감할 이야기들이 수두룩 하다.
주인공 문기사가 팀을 옮겨다니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나는 그 중 팀장, 홍소장, 황사장이 기억에 남는다. 이 세 사람이 이야기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끌어가기 때문이고, 작가가 힘을 쓴 캐릭터이며, 유능한 사람들이면서도 결국에는 내쳐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배가 쓰러지니 어서 회사로 들어오라는 팀장의 전화를 받았다'가 이 책의 첫문장이다. 도크에 멀쩡하게 있던 기공률 80%가 넘어가던 배가 누워버린다. 이때부터 주인공은 팀장과 함께 보험금을 100% 받아내기 위한 일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홍소장을 만난다. 홍소장은 프리랜서 손해사정인으로 팀장이 한발만 늦었어도 보험사쪽 일을 했을 사람이다. 유능해서 직원들이 잘 모르는 중국 보험 현황, 부보험과 주보험의 관계 등을 살펴 일이 되도록 해준다. 팀장과 홍소장이 열심히 해서 누운 배의 보험금을 다 받아내게 되는데, 팀장은 그 과정에서 회장라인의 이사 하나와 척을 지고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된다. 홍소장은 안타까워하면서도 프리랜서라 회장이 원하는 선까지만 일을 하고 손을 뗀다.
이후 다른 부서로 발령난 주인공. 회장이 새로운 사장을 임명하는데, 이 사람이 황사장이다. 매사 불도저 같고, 정확하고, 회사의 적폐를 하나하나 청산하는 인물인데, 읽다보면 호감을 갖게 된다. 결국 황사장이 누운 배도 일으킨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항상 그렇듯 윽박지르고 화내고 닦아세우다 보니 적을 많이 만들었고, 무엇보다 그의 유능함이 회장을 불안하게 만들어 쫓겨난다. 이 모든 일을 겪으며 주인공 역시 이 회사에 사표를 쓴다.

문체가 약간 김훈을 흉내낸 것 같아서 뒤로 갈수록 거칠었고, 마지막에 그가 회사를 비판하고 조직을 비판하고 선배들을 뭐라고 하더니 결국 돌아가는 곳이 글쓰기라는 것도 좀 그랬다.-.-;; 그 판은 뭐가 다르다고. 이 두 가지가 살짝 걸렸지만, 그 외에는 괜찮았다. 굉장히 몰입해서 읽은 소설이었다.
나는 처음에 제목을 보고 세월호를 말하나 했는데, 조선업에 기반한 이야기였다. 주인공이 1~3년차라는 게 못내 아쉬웠지만(그로 인한 치기가 느껴진다) 또 생각해보면 그 연차 이상을 지나면 이런 글이 나오지 않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밑줄긋기
20 _ 사람들은 원인에 관해 말했지만 사실 책임에 관해 말했다. 생산부서 사람들은 생산에서 발생하지 않는 원인들을 말했고 설계부서 사람들은 설계에서 발생할 수 없는 원인들을 말했다.
42 _ 한배를 탔다고 다 한마음이겠습니까. 풍랑을 만나면 각자 자기 살 방향으로 노를 저어대기 마련입니다.
84 _ 회사라는 말은 똑같았지만 업체에서 말하는 회사란 당신네 회사라는 뜻이었고 곽상무가 말하는 회사란 당신들이 와서 돈받아가는 회사라는 뜻이었다. 같은 말을 두고 뜻이 갈라섰으니 어느 쪽이 옳은지는 현금을 쥐고 있는 쪽, 힘이 센 쪽에 달려 있었다.
116 _ "회사 좋아하세요?" 일전에 내가 물었을 때 오대리는 낯뜨거운 소리라도 들었다는 듯 웃었다. "회사가 뭐라꼬 좋아한다, 만다 합니꺼." 잠시 후 덧붙였다. "그래도 이기 우리 회사다, 그런 생각은 가끔 하지예." 나는 동생을 내 동생이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 동생이라고 말하는 부산 사람들의 말버릇을 생각했다.
160 _ 보여지기는 뭐가 보여집니까? 보는 거고 듣는 거고 생각하는 겁니다. 보여지고 들려지고 생각되어지고 그딴 말 집어치우세요.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게 확실한데 왜 꼬리를 말아 말합니까?
233 _ 나는 윈치를 권양기, 와이어를 강선, 블록조차 분단이라고 부르는 중국 직공들이 부러웠다. 고유명사를 제외하면 조선 영어의 짧은 단어는 중국어로 온전히 옮길 수 있었고 중국 직공들은 그렇게 옮긴 말로 작업했다. 중국인들에게 조선 용어는 조선 영어가 아니었다. 중국인들은 중국어로 배 한 척을 거의 지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은 한국어로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조선 영어를 제외하고 나면 거의 조사와 어미만 남을 터였다. 다른 산업도 비슷하지 않을까?
296 _ 시스템, 시스템 해도 다 사람이 돌리니까 돌아가는 거야. 대기업은 다 갖춰놓고 시스템으로만 돌아가는 것 같지만, 웃기는 소리지. 일해본 사람은 알아. 같은 원칙, 같은 규정이라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른 거고 빠져 나가려면 빠져나갈 구석이 다 있는 거야. 당연하지, 사람이 만들었으니까.


덧글

댓글 입력 영역


2017 대표이글루_mov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