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선언 읽고

서울 선언
김시덕 | 열린책들

하반기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을 책을 투표할 때 안타깝게 떨어진 책이다. 제목과 설명 듣고 궁금해서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두껍다 생각했으나 사진 자료가 많아서 금방금방 잘 읽힌다. 건축가가 서울 여기저기를 소개하는 책 종류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많이 읽기도 했다. 이 책의 서문 추천사를 무지개떡 건축으로 유명한 황두진 건축가가 써줬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건축가가 아니다. 고문헌학자라고 한다. 전쟁문헌학이 전공이라는데, 자신이 나고 자란 서울에 대해 옛 기억과 최근의 답사, 문헌 등을 뒤져서 써놓은 책이다. 건축 쪽의 이야기도 많지만 근대사, 역사를 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아 신선했다.
저자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주장을 한다. 조선왕조 600년의 사대문 안에 살던 양반 남자들의 세계만 서울이 아니라고. 서울은 백제의 첫 수도이기도 했고, 많은 서민과 여자와 노예들이 살았고, 1936년과 1963년에 행정구역이 넓어져 시흥, 개포동, 은평구도 모두 서울이라고. 그러니 조선시대 양반가나 왕궁을 복원한다고 근현대의 소중한 건물들을 헐어버리고 없애버리는 짓을 하지 말자고. 근래 들은 중 가장 참신한 주장이다. 
요즘은 교수나 학자나 나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은데, 이 저자도 나보다 어리다. ^^;; 비슷한 연배를 살아와서 1980년대 1990년대의 이야기들이 하나도 낯설지 않다. 서울에 온지도 20년이 넘어가니 내가 살았던, 혹은 밥벌이하러 돌아다녔던 신림동, 난곡, 독산동, 구룡마을, 고속버스터미널, 영등포, 영동시장, 북가좌동, 면목동의 풍경이 머릿 속에 선하게 펼쳐지고, 또 여기 나오는 사진들을 보면서 그곳에 내가 모르는 이야기가 이렇게 많았구나 했다.
언젠가 한글박물관에서 봤던 이문건의 한글고비 이야기와 더불어 학교 담벼락에 박혀있는 연령군 묘역비 사진은 참 재밌었다. 이렇게까지 비석을 소중히(?) 여기다니! 일제시대에 세워진 비 중에는 쇼와 등의 연호나 사람 이름 등이 정으로 쪼아져 못 알아보게 해놓은 비석이 전국에 많다고 한다. 
그에 비해 현대의 재해 기념비는 어떤가? 삼풍백화점 피해자 추모비와 대구 지하철 참사비 등이 엉뚱한 자리에 가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들었는데, 성수대교 참사 기념비는 뚜벅이족들이 갈 수 없는 곳에 있다고 한다. 승용차만이 진입 가능하다. 그런데 1925년 대홍수가 난 뒤 수해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해 기자들이 1929년에 비를 세웠다고 한다. 그 시대가 지금 이 시대보다 훨씬 염치있었다.
청계천 복원 전에 지하 수로 탐사에서 발견된 수표교 위치는, 당시 복개공사 하던 이름 모를 인부가 수표교 자리라고 아치형으로 표시를 해놓았다고 한다. 허물어버린 오래된 건물의 석재나 목재가 매립지로 가서 버려진다는 말에 몇 개라도 주워와 자기 집에 보관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례들을 읽으며 사람들이 참 자기 자리에서 양심껏, 빛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사는구나 반성도 되었다.
YH무역 및 동일방직 여공들의 싸움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최근 <라이프>에서 서산개척단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오기도 했고, 예전에 조은 선생과 인터뷰하면서 또 <사당동 25+1>을 읽으면서 정부가 철거민과 빈민들을 트럭에 태워 전기도 물도 들어오지 않는 강변 혹은 해변에 갖다버리고, 거기서 죽을 고생하며 겨우 집을 만들고 길을 뚫고 전기를 놓고 살만하게 바꿔놓으면 국유지라며 나가라고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 이 책에도 그런 내용이 꽤 많이 나온다. 서산, 사당 뿐 아니라 성남, 광주 등도 그런 곳이었다. (어쩐지 이재명이 이해되려고 한다..)   
그래서 저자가 근대 이전 문서도 문자를 쓸 줄 아는 지배층의 문헌이었기에 피지배층의 문서가 없는데, 그런 문헌이 없다고 한탄할 시간에 뭐라도 좋으니까 지금 여기의 것을 끄적이고 찍어서 남겨달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암요, 그래야지요. 그러려구요.


밑줄긋기
43 _ 이제까지 서울을 말해 온 사람들이 조선 시대 후기와 식민지 시대의 사대문 안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 시기의 유적과 기록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풍부한 자료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한편, 현대 한국 시대의 서울은 시간적으로 우리와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소홀히 취급받아 온 측면도 있습니다.
47 _ 백제의 첫 왕성이 온전히 보존되지 못하고 이처럼 파괴되어 있는 것은 물론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지만 관점을 바꾸어 보면, 백제 시대의 왕성, 조선 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시기의 서민 동네, 현대의 고층 아파트, 이 세 개의 시대가 이렇게 한곳에 공존하고 있는 모습은 참으로 놀라운 광경입니다. (풍납토성 근처를 본 사사키 다카히로의 말)
78 _ 오늘날, 지혜로운 도시 탐험가들은 도시에서 노는 법을 여럿 개발했습니다. 지하철역이나 백화점의 대리석 벽면에 박혀 있는 암모나이트 등의 화석을 찾아내는 도시 화석 탐사, 폭우를 대비해서 지하에 건설된 대규모 집수조 등을 둘러보는 도시 속 거대 시설 탐사, 폐허가 된 건물이나 시설을 둘러보는 폐허 탐사, 예전에 철길이 놓여 있던 경의중앙선의 지상 구간이나 경춘선의 폐선 구간을 걷는 폐선 답사 등이 대표적인 도시 탐사 방법입니다.
79 _ 현대 한국 시대에 이들 기관에서 이루어진 어두운 역사를 감추기 위해 식민 잔재라는 말을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저는 품고 있습니다. 국민의례, 국민 교육 헌장, 반상회, 국가 보안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제도들을 일제 잔재라고만 해버리면, 현대 한국 시대에 이 제도들에 의해 피해받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은 사람들의 존재가 지워지는 결과를 낳습니다. 
139 _ 빈민촌이라고도 불리는 판자촌은 2017년 현재도 서울 구석구석에 존재합니다.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공간을 <반세기 전에나 볼 수 있었>다고 두 번이나 강조하면, 그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은 투명 인간이란 말입니까? 강남구청장 명의의 이 호소문을 읽으면서 저는, 사람이란 소속된 계급이 다르고 사는 공간이 다르면 정말로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되어 새삼 착잡해졌더랍니다.
148 _ 서울을 이야기한다면서 19세기 사대문 안팎의 한양만 이야기하는 건, 어른이 되어 버린 사람의 어릴 적 이야기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82 _ 저는 진보 진영에서 <생계형 친일>을 한 사람들까지도 모두 친일파로 몰아붙이는 데에도 반대하고, 보수 진영에서 <당시에는 살기 위해서 전부 친일했다>라고 말하는 데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255 _ 답사을 할 때에는 현지 주민분들께 많이 묻고 그분드르이 생각과 입장을 헤아려야 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현지인이 언제나 현지 상황을 가장 잘 알고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경우는 그 지역에 관심을 갖고 찬찬히 조사한 외부인이 현지인보다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312 _ 공단을 서울의 끝에 세운 의도는, 단순히 혐오시설을 서울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데에 두려고 한 것 뿐 아니라, 노동자와 일반 시민을 떨어뜨려 놓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321 _ 2017년 현재 한국에서 고시원은 더이상 고시 준비를 하는 고시생들의 거주 시설이 아니며, 옥탑방은 <옥탑방 고양이>라는 제목의 소설과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낭만적인 공간이 아닙니다. 국제적 기준에서 이들 시설은 이른바 <슬럼>으로 간주됩니다. 서울에서 가난은 <퇴치>되고 있고 빈곤층은 줄어들고 있는 것 같지만, 이것은 스스로가 슬럼에 사는 빈곤층이라고 자각하지 못하는 서울시민이 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착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383 _ 현대 한국 시민들은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유물 유적을 이해타산 때문에 깨끗이 없애버린 다음에, 다른 나라의 도시와 박물관을 보고 와서는 <한반도의 유물 유적은 빈약하다>라고 말합니다. <한반도에 이렇게 문화재가 없는 것은 외국의 침략이 많아서 그렇고 일제 때 약탈되어서 그렇다>라고도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외침을 받고 식민지 시대에 약탈되어 없어진 것 이상으로, 1945년 광복 이후 6.25 전쟁과 고도 성장 과정에서 없어진 것도 많습니다. 남탓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탓해야 합니다. 
389 _ 왕조 시대의 유적을 확장 복원하기 위해서는 근현대 서울 시민들의 유산을 헐어도 된다는 사고방식에 저는 반대합니다. 저는 왕조의 신하가 아니라 1919년에 수립된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의 시민입니다.
391 _ 하지만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조선 시대의 건물/공간을 창작한 뒤에 비워둘 거라면, 그런 복원은 퇴행적인 역사 왜곡이라는 말입니다. 조선 왕실이 곧 한민족은 아니며, 조선 왕조가 곧 현대 한국인 것은 아닙니다. 
395 _ 일제가 민족 정기를 훼손하고 풍수적으로 좋은 맥을 끊기 위해 율곡로를 개통했다는 주장은, 왕실과 민족/국민을 하나로 생각하는 현대 한국 일부 시민들의 퇴행적인 생각입니다. 왕실의 이익을 이른바 <민족 정기>와 동일시하는 현대 한국 시민들보다, 지배층과 자기 자신들을 구분해서 생각한 20세기 초기의 조선인들이 오히려 더욱 근대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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