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 읽고

헝거
록산 게이 지음
노지양 옮김
사이행성

<나쁜 페미니스트>의 작가 록산 게이. 나는 그녀가 이렇게 뚱뚱한 지 몰랐다. 190cm의 엄청난 키에 200Kg을 넘거나 육박하는 몸무게다. 그녀는 자신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이 책을 통해 고통스러울 정도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초반에는 너무 잘 써서 빠져들듯이 읽었고, 후반에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제는 좀 끝내면 안되나 생각하며 읽었다.
내가 읽었던 어떤 책에서 말 잘 듣는 효녀딸들이 뚱뚱해지는 건 "내 곁으로 오지마"라는 이야기를 몸으로 하는 거라는 해석을 읽고 놀랐던 적이 있다. 즉 다른 사람(가족)과 나 사이의 간격을 만들기 위해 자기 체적을 불리는 거라고 한다. 그런 거였구나, 다가오지 말라고 말을 못하니 그렇게 먹어서 자기의 공간을 확보하는 구나 했는데, 록산 게이는 성폭행 당한 이후 남자들이 무서워서, 뚱뚱한 여자가 되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기에, 어떤 남자에게도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중에 그것이 자기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페미니즘 공부를 하고서도 살이 좀 빠지면 다시 누군가에게 다칠까봐 무서워 먹어 찌우길 반복했다.  
비만(obese)은 라틴어 오베수스obesus에서 유래하는데, 뜻이 '뚱뚱해질 때까지 먹다'라고 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비난의 뜻은 없었는데, 어쩌다 비만은 이렇게까지 비난을 받게 되었나?  
초고도비만은 아니지만 나도 뚱뚱하다. 어릴 때도 비실비실한 편은 아니었지만, 본격적으로 중학교 2학년때부터 살이 쪘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의 많은 부분에 엄청나게 공감하며 읽었다.
"실제로 충격적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뚱뚱한 사람들을 괴롭히면 살을 빼게 될 거라고, 몸 관리를 하게 될 거라고, 그것도 아니면 자기 시야에서 사라지게 될 거라고 믿고 있다. 의사 자격증이라도 가진 것처럼, 비만과 관련된 건강상의 문제를 장황하게 설명하는 식으로 인신공격을 한다. 이 박해자들은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실, 우리 몸이 통제 불능이고, 사회를 거역하고, 뚱뚱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자기들이 우리를 정의의 길로 이끄는 사도라고 생각한다. 무척이나 이상하고 잔인한 시민 의식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214p)"
이 부분 읽는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뚱뚱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무례하게 대해도 된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는 걸까? 
그런데 실은 그 보다 더 싫은 부류가 있다. 스스로 착하다고 믿는 부류들이다. 
"가끔은 어떤 사람들, 내 생각에는 날 아껴주려는 사람들이 나에게 뚱뚱하지 않다고 말하곤 한다. 이런 말을 한다. "스스로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그들은 '뚱뚱하다'는 것을 무언가 부끄러운 것으로, 무언가 모욕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인데 사실 나 같은 경우는 '뚱뚱함'을 몸의 실체로서 이해한다. 내가 그 단어를 쓸 때 나를 욕보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나 자신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착한 척 하는 사람들은 부끄럽지도 않은 듯이 이렇게 말한다. "당신 뚱뚱한 거 아니에요." 혹은 이런 게으른 칭찬들을 한다. "얼굴이 참 예쁘시잖아요." "정말 훌륭한 분이시잖아요." 내가 뚱뚱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보기에 가치 있는 자질들을 보유할 수는 없는가 보다."
내 말이! 왜 뚱뚱한 것과 예쁜 것이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뚱뚱하다'는 말에 나쁜 의미를 지들이 붙여서 생각해놓고서는, 씨알도 안먹히는 "뚱뚱하지 않아요." 따위의 소리를 해대는 건지! 록산은 책을 펴내고 북토크에 가면 서점 담당자들이 자신의 실물을 보고 놀라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본다고 한다. 그건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저렇게 뚱뚱할리 없다는, 저런 몸매일줄은 몰랐다는 뜻인데, 그 역시 뚱뚱함 안에는 똑똑함이나 지적임이 함께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록산 게이는 최근에 발목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고, 그때 가족들이 와서 돌봐줬으며 그래서 이 사람들의 나를 보호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사랑이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스무 살에는 자기를 다그쳤으나 마흔이 넘으니 몸이 "그렇게 안 해도 돼. 자리에 앉아. 야채도 먹고 비타민도 먹어야지."(317p)한다는 말에 어찌나 격하게 공감했는지!! 나도 올해 발이 부러져 깁스를 해보고서야 몸과 건강과 노화와 함께 산다는 것에 대해 깨달았으니 말이다. 
대학 강의실의 책상이 붙어있는 일체형 의자, 나도 앉을 때마다 일어설 때마다 불편하고 때로는 멍도 들어서 정말 싫어하는데(한겨레문화센터 의자가 다 이 모양이다), 그 의자에는 초고도비만은 앉을 수도 없다. 록산은 뉴욕 하우징웍스에서 북토크 하느라 무대 올라가다가 5분을 낑낑댔고(너무 높았다), 앉자마자 의자에 금이 가서 내내 자기 종아리와 허벅지로 버티고 앉아있는 자세를 취했다고 한다. 아...정말 생각만해도 식은 땀이 난다. 비행기에선 옆에 앉은 사람이 너무 불편해해서 2자리를 끊는데, 그러면 승무원들이 그렇게 괴롭힌다고 한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가방을 두거나 넘어오려는 사람도 넘나 많고. 에효...
록산이 연애하던 놈들 중 걸으면서 팔이 흔들려 자기 몸에 닿는 걸 싫어하는 인간이 있었다. 걷다가 록산의 팔이 닿으면 그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고, 그때부터 록산은 온 몸을 움츠리고 로봇처럼 걸었다. 헤어지고 난 뒤에도 자기 팔의 흔들림이 의식 될 때는 분노가 치솟고 팔을 풍차돌리기 하고 싶어진단다. 이건 내 팔이란 말이다, 내 걸음걸이란 말이다! (279p) 할 때 정말 따라 외쳐주고 싶었다. 
몰랐으나 새로 알게 된 사실, 가슴 아팠던 부분도 많았다. 먹고 토하기(폭식증, 거식증 등)를 할 때 당근을 미리 먹으놓으면 색깔이 선명해서 먹은 걸 다 게워냈다는 표시가 된다는 사실, 손가락으로 목구멍을 찔러 게워내는 게 반복되면 손가락이 위산으로 화상을 입는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비행기 타기 전에 친구가 감자칩 사주겠다고 했더니 "나 같은 사람은 공공장소에서 그런 음식 먹는 거 아니야." 할 때도 넘나 가슴 아팠다. 
요즘 세상에서 비만은 일종의 장애와 비슷하게 취급되고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장애보다 더 비난받는다. 나는 뚱뚱하기 때문에 이 책의 거의 모든 내용에 공감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초고도비만인 사람을 만났을 때 과연 나의 눈길은 어떠했나를 생각해보면 반성해야할 부분도 있다. 정희진이 책 시작부분에 써놓은 추천사처럼, 정말 하기 힘든 자전적인 이야기를 정말 잘 썼다. 

밑줄긋기
9 _ 자기 연민과 나르시시즘은 최악의 인성이자 글쓰기 태도인데 그 덫에 거리기 쉽다. 예술에서 권력자는 상처받은 사람,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하긴 상처가 아니라면, 왜 쓰겠는가? 상처가 없으면 쓸 일도 없다. 작가는 죽을 때까지 '팔아먹을 수 있는' 덮어도 덮어도 솟아오르는 상처가 있어야 한다. 자기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경험을 쓰는 것이 아니다. 경험에 대한 해석, 생각, 고통에 대한 사유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 자체로 쉽지 않은 삶이고, 그것을 표현한다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산을 넘는 일이다. (정희진)
115 _ 설령 진실이었다고 해도 진실을 아는 것과 진실을 믿는 것은 다른 일이며 그 둘을 일치시키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
166 _ 유명한 여자들의 들쑥날쑥한 몸무게 변화는 마치 주식시장처럼 관찰되고 있는데 그들의 업계에서는 자신의 몸무게야말로 자기가 보유한 개인 주식, 즉 시장 가치의 물리적 특질이기 때문이다. 연예인이 살을 빼면 자신의 새로운 몸을 '과시하면서' 상품 가치를 올리는데 사실 평생 갖고 있던 단 하나의 몸이지만 이제 타블로이드 신문에 좀 더 적합한 사이즈가 되었기 때문이다.
284 _ 나에게 연애와 우정이 이다지도 어려웠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만 사랑받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96 _ 수치심에 대해 내가 아는 건 수치심에는 바닥이 없다는 사실이다.
337 _ 나를 성폭행한 소년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이 사실은 1000퍼센트 확신하는데 용서가 나를 구원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덧글

  • 밤은 노래한다 2018/09/07 01:39 # 답글

    Bad feminist 로 알게 된 작가인데, 이번 헝거도 너무 좋은 글이더라구요. 저도 쓰신 부분들처럼 작가처럼 엄청난 몸을 가진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처음 알게되었어요. 읽으면서 충격적인 장면들도 많았는데 담담하게 서술한 글을 보면서 참 힘들었겠구나 싶어서 위로해주고 싶어졌던 책입니다. (리뷰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 키드 2018/09/07 11:47 # 삭제 답글

    하, 이 책.... 저는 이 사람이 쓴 글 너무나 고통스러울 것 같아서 이 책은 아직 도전 못하고 있었는데, '사랑이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는 구절에서 그리고 이 리뷰로 인해, 이제 드디어! 읽기로 결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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