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습관 읽고

기획자의 습관
최장순 | 홍익출판사

서점에서 매대에 있는 걸 집어들어 훑어보고 살까 잠깐 생각했었다. 그러다 도서관에 예약걸 수 있길래 빌려 읽었는데, 샀으면 한바탕 포효할 뻔 했다. 요근래 책 읽으면서 이렇게 저자가 싫어진 건 오랜만이다.
사실 <기획자의 습관>이라는 제목에 알맞은 내용이고, 내가 만약 30년쯤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좋아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업에서 일하는 사람이 보기엔 우스운 내용이고, 만약 지망생을 타겟으로 놓고 썼다면, 어린애들 주머니 이런 식으로 털지 말라 하고 싶다.
최소한 <책은 도끼다>는 이 정도로 얄팍하지는 않았다. 아...진짜...
이 책은 편집부에서 포장을 너무 잘했다. 산뜻한 표지와 제목은 물론이거니와 뒷날개의 '봄비에 어울리는 저녁메뉴를 고른다.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옆 사람에게 집중한다. 단어 하나의 뉘앙스를 조심히 살핀다. 매일 지나치는 일상을 새롭게 바라본다. 가사 한 줄이 좋아 기억해둔다. 우리는 그렇게 기획자가 된다.'는 문장, 뒷표지의 '기획력을 기르는 생활습관'까지 아주 사고 싶게 만들어놨다.
그렇게 부푼 마음으로 목차를 넘겼는데, 내용이 시작되기도 전에 학술도서보다 긴 일러두기가 나온다. 일러두기를 4번까지 늘어놓으며, 원어를 어떻게 쓰겠다는 둥, 번역을 자기가 한걸 쓰겠다는 둥, 콘셉트 대신 컨셉이라고 쓰겠다면서 이상한 외래어를 배격하겠다는 이유를 갖다붙이는데, 뭔가 이상했다. 그러더니...허 참....책 읽으며 이렇게 헛웃음 자주 터뜨리긴 처음이네. 
이 책은 영희야 놀자, 철수야 놀자 수준의 이야기를, 니체의 짜라투스트라 포장지에 싸서 던지는 책이다. 그 간극이 어이가 없어서 자꾸 실소가 터져나온다. 게다가 표현 참...'진정한 기획자는 세상의 모든 의미를 파악하려는 듯 눈은 영롱하고' -->이런 표현을 낯간지러워서 어떻게 쓰지? 하... 0도를 기준으로 자기 글이 마이너스 7도여도 200도여도 상관없다는 헛소리를 할 때는 글쓰기보다 일단 그 논리적 비약을 좀 어떻게 하라고 다그치고 싶다. 누가 글쓰기 기준을 잡아 내 글이 마이너스인지 플러스인지 세고 있냐고? 자기가 어거지로 그렇다고 가정하고는, 그걸 꾸짖을 때는...진짜..와....이런 부분이 한 두군데가 아니다. 
이런 걸 기획이라고 하니까, 애들이 기획이 아이디어만 있으면 되는 줄 알고 뛰어들잖아! 기획이 아이디어만 가지고 되는 싸움이냐고!! 저자 자신이 책에서 고백하고 있듯 인스타 아무리 검색하고 아이디어 내서 공연 VIP들에게 네일아트 쿠폰이라는 새끈한 사은품 아이디어를 마련해 오면 뭐하나? 50대 이사가 로고 찍힌 티켓지갑 하라고 해서 킬 당했다며? 그걸 설득하지 못한 건 결국 기획에 실패했다는 거다. 기획에서 아이디어가 중요한지, 설득력과 영업력이 중요한지가 이 책 유일한 사례 에피소드에 정확하게 나오네.
이 책에서 하나 건진 게 있다면 '남자라면 반드시 다섯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고사가 좋은 뜻이 아니라 나쁜 뜻으로 쓰였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다섯수레의 책을 읽은 혜시는 도가 천박하여 그 말이 이치에 적중하지 못했다는 것이 내용인데, 우리나라에선 그 중 다섯수레의 책만 강조한다고. 그래서 책 많이 읽는 것에 연연하지 말라고 하는데서 끝났으면 좋았잖아? 자기는 바이블이 되는 책을 원문으로 읽고 몇번씩 반복해 읽는다는 얘기를 어찌나 반복해서 해대든지. 자기 잘났다는 소리 하고 싶어서 남 깎아내리는 거 아니고 뭔가 그게.
하여튼 간만에 분노의 독서였다.



덧글

  • 진이 2018/09/08 14:03 # 삭제 답글

    밑줄 긋기가 하나도 없는 책은 간만이라 제가 리뷰 밑줄 긋기를 해보았어요.
    17줄 - 이 책은 영희야 놀자, 철수야 놀자 수준의 이야기를, 니체의 짜라투스트라 포장지에 싸서 던지는 책이다.
  • 이요 2018/09/08 14:03 #

    딩동댕! 정답을 맞추셨습니다!
  • TomiParker 2018/09/08 15:45 # 답글

    게임 기획에는~ 옛날에 천족과 마족이 있었어요~
  • bullgorm 2018/09/08 21:13 # 답글

    흔해빠진 자기계발서의 기획자 버전인가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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