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보고

커튼콜 
 
로비의 현수막 

창작가무극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지리 원작 | 이희준 극작, 작사 | 오경택 연출
최우혁, 박은석, 강상준, 송문선 출연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 
2018. 10. 4

왜 동생과 이 뮤지컬을 보게 되었나?  
몇년 전부터 동생이 자기 생일선물로 공연을 보여달라고 했다. 그렇게 몇 번의 뮤지컬과 연극을 봤는데, 썩 재밌는 작품이 없었다. 한여름이라 졸면서 보거나 하품을 참으며 봤다. 올 여름 역시 별로 볼 것도 없고 덥기만 해서 생일을 스리슬쩍 넘어갔는데, 가을이 되어 이 작품이 뮤지컬로 선보인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동생에게 톡을 보내고 예매했다. 
왜냐하면 이 뮤지컬의 원작인 박지리 작가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소설을 동생이 추천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학교 선생님들끼리 돌려 읽었는데 굉장히 재밌었다면서 나에게 읽어보고 영화로 각색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렇게 박지리 작가를 알게 되고 <다윈 영의 악의 기원>뿐만 아니라 박지리 작가의 모든 작품을 다 읽었다. 영화 각색이야 어느 눈 밝은 제작사가 이미 접촉해서 하고 있겠지 했는데, 창작가무극으로 선보인다니 당연히 보고 싶었다. 
게다가 단 6일 공연하면서 다양한 할인을 해줬다. 공연 당일 후드티를 입고 와도 할인해주고, 원작소설을 들고 와도 할인해주는데 그 중 나는 가족할인을 받으려고 주민센터에 가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떼갔다. ㅎㅎㅎ 40%나 할인되는데 증명서 떼는 게 대수랴.
그렇게 기대하며 예술의 전당으로 갔지만, 나나 동생이나 걱정이 앞섰다. 뮤지컬이면 뮤지컬이지 왠 창작가무극인가 싶었고(뭔가 전통 마당놀이나 현대 무용 같은 게 펼쳐지면 어쩌나 걱정됐다), 배우 중에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원작이 재미있으니 기본은 할 거라며 걱정을 누르고 극장으로 들어갔다. R석과 S석 뿐이었는데, S석을 끊었더니 3층 같은 2층이었다. 어질어질.

강추 창작뮤지컬!
그렇게 걱정을 안고 공연을 보기 시작했는데...웬일이니! 재밌었다.
동생과 봤던 모든 작품(중에는 <위키드>도 있다) 중 가장 재밌었다. 
일단 무대장치가 환상적이었다. 중앙이 회전하는 무대여서 학생들의 교실, 다윈과 제이의 방, 9지구 역사, 도서관 등이 자유자재로 나타났다 사라지고, 돈이 꽤나 들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가 있어 실시간으로 연주해준다. 특히 떼창이 좋았는데, 곡 자체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전형적인 뮤지컬곡이었으나 가사가 참 좋았다. 새가 저렇게 높이 나는지, 풀 냄새가 이렇게 진한지 왜 안가르쳐줬냐는 프라임 스쿨 학생들의 자유송 가사 좋았고, 제이의 장례식날 부르던 바닐라케이크 송은 완전 포복절도 하면서 들었다. ㅋㅋㅋ 16살 때 죽은 소년의 장례식을 30년 동안이나 하려면, 거기에 사람들이 계속 오려면 바닐라 케이크라도 맛있어야 오는 거 아니겠냐며. 센스 쩐다고 생각했다. 후드를 입고 부르는 혁명가 장면도 좋았다.
원작소설은 800p가 넘는데, 소설의 거의 모든 이야기가 전부 무대에서 구현된다. 나는 각색과정에 몇 개는 빠지고 하나에 집중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의 소설의 흐름과 똑같이 흘러간다. 덕분에 러닝타임이 좀 길다. 인터미션까지 합해서 150분. 한 30분 정도는 줄여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내가 좋아한 부분은 다윈과 레오의 우정. 두 배우가 노래도 잘하고 케미도 좋아서 그 둘만 나오면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들의 분량이 좀 더 많았더라면 좋았을텐데...아버지들의 이야기를 하느라 얘들 분량이 적은 게 좀 아쉬웠다. 특히 다윈 역의 최우혁 배우(TV 나오는 그 최우혁은 아님) 진짜 목소리도 좋고 노래도 안정적으로 잘 하더라. 그에 비해 루미 역의 배우는 안타까웠다. 목소리에 바이브레이션이 많아서 가사 전달이 잘 안되는데다가 노래의 음역대가 높아서 고음 올라가면 삑사리 날까봐 조마조마하게 지켜봤다. 여배우만 좀 더 잘했으면 참 좋았을텐데...안타깝다.

아버지와 아들과 그 아들과....
나는 원작 소설에서도 마지막 다윈과 레오의 우정에 마음이 쓰였고, 뮤지컬에서도 두 친구의 우정 부분이 가장 보기 좋았다. 그럼에도 이 뮤지컬은 원작의 그 많은 이야기 중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의 3대에 걸친 비극에 방점을 찍는다. 특히 아버지 니스의 분량이 엄청났는데, 니스 분량은 좀 빼도 되지 않나 싶었던 나는 2부에 와서야 왜 그렇게 니스의 분량이 많았는지 알게 되었다. 이 극의 주제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비극, 죄의 대물림이다. 2부 클라이막스에서 다윈의 살인과 니스의 살인을 같은 무대에서 함께 보여주는 장면을 보며 감탄했다. 저걸 보여주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구나 싶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1부가 밝고 발랄해서 더 마음에 들었지만, 이 극의 주제는 2부에 담겨 있었다. 내가 그 장면에 감탄하고 있을 때, 객석 여기저기에선 코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는 사람들이 많았단 말이다. 
마지막에 할아버지까지 3명의 후디들이 등장하는 장면도 멋졌다. 이 극의 각색자는 이 소설을 그렇게 읽어냈구나.
소설을 읽을 때 박지리 작가가 여자이면서도 여성 혐오적인 시각이 있고, 아버지와 아들 관계에 천착한다고 느꼈는데, 무대로 보니 그게 더 극명하게 느껴졌다. 나는 아들을 위해 아버지가 자신을 희생했니 어쩌니 하는 서사를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라 비극이 3대로 이어지는 이 극 역시도 눈물 흘리며 안타깝게 보기보다는,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결국엔 자기 선택이고 욕심이었으면서, 아버지 때문에 자기 인생 버렸다고 하는 건 변명이다. 이 뮤지컬은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짓고 어른이 된다'라는 카피 한줄로 이 소설을 요약했지만, 나에게 이 소설을 요약하라면 '그 선택은 누구의 탓도 아닌 너의 결정'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나에게 가장 안타까운 건 레오였다. 법률시험에서 레오는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죄 중 용서못할 것은 없다'라고 쓰지 않는가? 아마 그 기차 안에서 다윈이 사실을 이야기했더라면 레오는 그 테이프를 없애고 친구를 이해했을 것이다. 그래서 레오의 죽음이 너무나 안타깝다. 레오...ㅠ.ㅠ

근래 본 창작뮤지컬 중 수작이었고, 올해는 단 6일 했지만, 앞으로는 공연 기간이 더 길어지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예상하는 김에 뮤지컬 어워드에서 창작뮤지컬 상 받지 않을까도 예상해본다. 

덧글

  • 명품추리닝 2018/10/07 19:06 # 답글

    우리나라 창작뮤지컬 수준이 최근 비약적으로 높아진 것 같아요. 전 볼 수 없는 기간에 공연된 작품들이 많아 더 안타까운... ㅠㅜ 언젠가 이 작품도 재연하면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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