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후반의 폰털이 일기 살고

강화도에 인터뷰하러 갔었다. 성공회 대주교였던 김성수 주교님이 은퇴한 뒤 만든 발달장애인을 위한 마을이 강화도에 있었다. 
사실 가기 전까지만 해도 '왜 이 코너는 맨날 나이 많은 남자 멘토들만 인터뷰할까? 여자도 좀 하고 젊은 사람도 좀 하지..' 투덜거리며 갔다. 인터뷰 시간이 월요일 오전 9시반이었다는 것도 한몫했다. 아침 6시부터 일어나 출발했으니까.
그런데 인터뷰 하는 동안 주교님한테 감동했고, 돌아오는 길, 우리 차 안에선 각자 차례로 "회개합니다" 소리가 울려퍼졌다. 적은 돈이라도 이 마을에 후원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인터뷰 원고를 쓰면서 성공회에 대해 찾아봤다. 영국의 헨리 5세던가? 하여튼 왕이 이혼하려고 했더니 교황이 안된다고 해서, 그때부터 로마 카톨릭과 척지고 세운 교회가 영국 정교회라고도 불리고 성공회라고도 불리는 이 종교다. 그러니 신부들에게도 결혼을 허락한다. 교회 자체의 부흥보다는 이웃을 돕고 정의를 실천하는데 관심이 있는 교회였다. 성공회대 출신의 진보적 인사들이 그 얼마나 많은가. 점점 성공회에 대한 호감이 커졌다.
그런데 인터뷰 기사를 다 써서 넘긴 날 032로 시작하는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았더니 주교님이었다. 깜짝 놀랐다. 
인터뷰할 때 명함을 주고받기는 하지만, 이 인터뷰는 모 단체의 원장님이 진행하기 때문에, 행여 인터뷰이들이 전화를 하더라도 원장님이나 직원들에게 하지 일개 외주 작가인 나에게 하지는 않는다. 인터뷰 끝나고 처음 전화 받아봤다. 통화를 끝내면서 주교님은 "그 원장님이랑 다른 분들께도 안부 전해줘요."하고 끊으셨다. 설마 진짜 나에게만 전화하신 거? 카톡으로 확인했더니 사실이었다. 아...뭐 이런 분이 다 있어? 
이후 다른 책을 읽다가 노예 무역에 종사하던 사람이 성공회로 개종하고 주교가 되어 노예제도를 없애는데 앞장섰다는 구절이 눈에 띄었다. 만약 성공회가 무엇인지 몰랐다면, 기억도 못했을 한 줄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목하 고민 중. 교회 안나간지도 너무 오래되어 기독교인이라 말하기도 뭣한 상태이긴 하지만, 태어나 처음 종교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성공회로 개종하고 싶다. 어차피 하나님은 여기나 거기나 같을테니까....
그러나 나는 알지. 교회도 안나가는 내가 그 모든 게으름을 이기고 과연 성당에 나갈까? 그전에 일단 후원부터 처리를...쿨럭.

무슨 심사가 있어서 한달 만에 모두의 학교에 갔더니, 10월에도 여전히 내가 큐레이션한 책들이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 
이번 주제는 '지금 여기 여자 소설'. 김애란, 윤고은, 정유정, 박지리, 리안 모리아티, 아고타 크리스토프, 길리언 플린을 소개했다.
 
이 날은 창업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 일이 연거푸 일어난 날이다. 
오전에는 어느 단체의 연차보고서 만드는 업체 심사위원으로 들어갔다. 기획과 취재, 원고를 쓰고, 디자인하여 카탈로그를 만드는 일인데, 평소 내가 해온 일이고, 잘 아는 단체였기에 심사위원으로 들어갈 게 아니라 그 일을 내가 따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사업자등록증이 없는 프리랜서. 관에서 하는 일에는 자격요건이 필요하다. 그걸 갖추지 못해 내가 맡지 못한 일이었다. 이런 일이 종종 있다. 사업자등록증이 없기 때문에 다른 업체에 내 이름을 얹어서 원고료를 주거나 아예 일을 주지 못하는 경우들. 세금이니 뭐니 귀찮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사업자등록을 외면하고 있는데, 벌써 프리랜서로 밥벌이 한지도 10년이 넘어가니 이제는 좀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날 밤에는 오랜만에 전 직장 동료를 만났는데, 걔도 창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이제 내가 알던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점점 퇴직 이후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걔도 40대니 창업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렇게 하루에 두 번이나 창업과 사업자 등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 나도 사업자등록을 해야 하는가 고민된다. 아...프리랜서 밥벌이 시즌2가 도래한 느낌. 

남친이 청바지 산다고 해서 유니클로에 따라갔다가 추리닝 득템!^^
이 추리닝 바지는 남자꺼다. 남자 쪽 메리야스 코너에서 마음에 드는 추리닝을 두세개 보고, 비슷한 게 있을까 싶어 여성복 코너로 갔는데, 여성용 추리닝은 촉감도 다르고 핏도 달랐다. 아무리 봐도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어차피 집에서 입을 건데 굳이 남녀 따질 필요 있나 싶어 남자 걸로 선택했다. 입어보니 재질도 부들부들하고 아주 편하다.
그러다 몇달 전에 '남자 팬티 입는 여자들'이라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여성팬티는 작고, 불편하고, 비싸다. 그래서 남자팬티 한번 입어본 여자들은 다시 여자팬티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했다. 나는 아직까지 남자팬티는 입어본 적이 없어 여자 팬티가 남자 팬티보다 더 비싼지, 남자 팬티는 편한지 그 차이를 잘 모른다. 이번에 남성용 추리닝을 입으니 그 기사가 전격 이해됐다. 이렇게 편하고 질이 좋다면, 이 참에 팬티도 남자껄로 한번 바꿔봐?  

  
아래쪽에 물이 고여있는 전 수도꼭지 | 8천원에 사온 수도꼭지 | 갈아주신 수도꼭지

아침에 세탁기를 돌리는데, 수도꼭지에서 물이 줄줄 샜다. 이미 돌리기 시작한 터라 걸레로 둘둘 감아놓고, 유투브로 고무패킹 가는 법을 검색했다. 수도계량기 옆의 수도를 잠가놓고 손잡이를 돌려 어떻게 하면 된다는데, 될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일단 세탁기가 다 돌아간 다음 물 떨어지는 걸 폰으로 찍고 철물점으로 갔다. 고무패킹을 달라 했더니, 사진을 보고는 그렇게 해서는 안되고 수도꼭지 전체를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돌려서 교체하면 된다길래 수도꼭지를 사왔는데....하아...내 힘으로는 꿈쩍도 안했다. 도구의 문제도 아니고 오로지 힘의 문제. 아무래도 사람을 불러야 되겠길래 주인집에 전화를 했다. 아줌마와 까딱하면 언성 높일뻔 했으나(왜 주인집들은 월세는 그렇게 따박따박 받으면서 자기들이 해줘야 될 건 해주기 싫어하는지...) 극적으로 타결, 설비 아저씨 불러오고 고치는 동안 주인집에서 내려와서 봤다. 주인집에서 내려올 동안 뚝딱 갈아버림. 30초도 안 걸린 것 같다. 출장비 2만원, 수도꼭지 8천원. 다음 달 관리비에서 제하고 보내기로 했다.
새는 수도꼭지 덕분에 베란다 강제 청소한 날.


덧글

  • 룰루랄라나 2018/10/30 15:24 # 삭제 답글

    ㅎ언니 블로그 중 가장 좋아하는 코너라고 혹은 꼭지라고 해야하나요 ^^~늘 사람냄새가 나는 언니의 글들이 좋아용 ㅋ 그나저나 언니가 큐레이팅한 책들 궁금하네요~~
  • 이요 2018/10/31 16:18 #

    이렇게 좋아하는 팬이 있다니 댓글이 안달려도 꾸준히 써야겠네. ㅎㅎㅎ
  • 해리 2018/10/31 17:46 # 삭제 답글

    [우리 마을]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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