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드라마 보고

10월에 굉장히 많은 드라마들이 일제히 포문을 열고 전쟁 중이다. 도대체 뭔 의무감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블로그를 해야한다는 의무감? ㅋㅋㅋ) 그 드라마들의 1~2화를 봤다. 1화의 10분도 못보겠는 드라마(제3의 매력)가 있었고, 그럭저럭 1~2화는 봤으나 그 다음이 궁금하지 않은 드라마(나인룸, 여우각시별)도 있었고, 정말 괜찮은 경우에는 4회까지 본 것(내 뒤에 테리우스)도 있지만, 지금은 다 놓고 딱 하나 본다. 바로 <최고의 이혼>.
에이타와 오노 마치코가 나왔던 원작 일드 <최고의 이혼>도 느무느무 재밌게 봤기에 한드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다 캐스팅도 좋았다. 배두나와 차태현이라니. 이런 자연스러운 조합이 있나. 이엘이 약간 불안하긴 했지만 스틸컷만 봐도 마음에 들었기에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었건만, 1회는 일이 있어서 못보고 2회 후반부터 봤다. (물론 나중에 1화도 다 찾아봤다) 
참으로 희한한 것은, 일드를 볼 때 나는 에이타 편이었다. 아무리 인정 많고 사랑스럽더라도 저렇게 지저분하고 시간약속 안지키고 흐리멍텅한 여자라면 같이 살기 힘들겠다 싶었다. 그런 것들이 불러일으키는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다는 걸 동거해본 사람은 누구나 아니까. 그런데 한드로 바뀌고 두 주인공의 캐릭터가 별반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차태현은 완전 밉상이고, 배두나에게 자꾸만 얹혔다. 왜 그러지? 일본의 경우는 거리두기가 되고, 한국의 경우엔 여자 편에 서는 내 태도의 문제인가? 그것 참 희한했다.
저렇게 이기적이고 얄미운 남자 역할에 차태현 보다는 이서진이나 이제훈이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했는데, 회를 거듭하여 보다보니 차태현도 괜찮은 캐스팅이다. 더불어 이웃집 바람남 손석구는 어찌나 멍뭉미가 있는지, 뭐 저딴 놈이 있나 싶다가도 걔가 고개를 끄덕이며 차태현에게 푹 기댈 때나, 멍멍이처럼 목을 쭉 빼고 먹는 거 자기 입에 넣어달라고 기다릴 때보면 여자들이 왜 그렇게 꼬이는지 알만도 하다. <마더>할 때까지만 해도 사이코 같다고 생각했는데, 매력있는 배우인듯.
일드에서도 매회 "우와 어쩔려고!" 싶은 부분에서 엔딩이 나서 다음 회 기다리기가 감질 났는데, 한드에서도 그렇다. 매회 엔딩마다 "우와..어쩌냐?"하면서 본다. "이제 인정하지 그래? 당신은 나 사랑한 적 없어." 할 때도 정말 가슴 아팠고, 어제는 이혼하고서 같이 자는 사태에 들어섰는데..어찌될지....ㅎㅎㅎ "예민해서 자기 속이 제일 볶일텐데도 성실하게 꾸준히 자기 책임을 다하죠." 같은 말에 괜히 내가 위로받고, 그런 말을 들으며 "왜 남이 보면 큰데 그게 안보일까요?"하는 배두나의 대사도 좋았다.
주인공 네 남녀도 괜찮지만, 주변인물들의 이야기도 잘 다뤄서 좋았다. 여동생과 동거인의 레즈비언 코드, 두 부부의 부모들의 캐릭터, 할머니 이야기도. 한드로 바꾼다면 어색하지 않을까 했던 것들이 잘 어울려서 괜찮다. 일단 나는 이 드라마의 코미디가 잘 맞는 것 같다. 취향저격의 코미디가 많아서 보다가 혼자 빵빵 터진다.

그리고 KBS 단막극 두 편을 봤다.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는 진짜 재밌었다. 나는 전소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이 드라마 보면서 전소민의 귀여움에 푹 빠져버렸다. 연기도 얼마나 자연스럽고 좋은지. <오로라 공주>의 암세포까지 사랑하는 여자인줄로만 알았지 이런 배우인줄 몰랐네.
이 드라마는 수능시험 문제 출제위원들의 합숙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물이다. 주인공은 수학선생으로, CC였던 남자와 결혼했지만 이혼했다. 그리고 합숙소에 와보니 자기 담당 경호원(경찰)이 예전 첫사랑이었다. 설상가상 수학 교수인 전남편도 뒤늦게 출제 검토를 한다며 합류한다. 합숙소에서 전 남친들과 삼각관계에 빠지는 여자 이야기다. 수능시험 출제를 위한 합숙이라는 것도 신선한 배경이었고, 그 안에서 선생들이 그토록 치열하게 문제를 내는지도 몰랐으며, 교사란 자고로 윤리적이고 고리타분하다는 편견을 깨고 이혼과 삼이혼을 한 교사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통통 튀면서도 재밌었다. 전소민은 나중에 냉동실의 오답노트를 꺼내 드라이기로 녹이는 장면까지 넘나 귀엽고 마음에 들었다.
이 드라마가 KBS 공모전 대상작이라고 한다. 최근 다른 공모전에 접수한 내 입장에서는 이런 대본이 접수되지 않았기만을 바랄 뿐이다. ㅠ.ㅠ

그리고 김금희 작가의 원작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너무 한낮의 연애>도 봤다. 최강희가 나온다고 해서, 주인공 양희와 넘나 잘 어울리는 캐스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장면부터 나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화면에 당황했다. 아...연출 뭐 이래? 이건 완전히 내 머릿속의 장면과는 동떨어진 드라마였고, 재미도 없었다. 
주인공들이 20대 때 만나는 그 패스트푸드점은 그런 사이버틱한 공간이 아니란 말이다. 빨간 의자가 있고, 약간 지저분하면서 가난해보이는 그런 장소여야지. 이 소설의 분위기는 퇴락하고 한가하고 가난한데, 드라마의 장면장면은 사이버틱하고 비현실적이다. 이렇게 분위기에 안맞는 배경과 장면들이라니! 가장 어이없었던 건, 양희의 집. 재미없음에도 이 드라마를 끝까지 봤던 건 양희의 집을 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 장면이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양희가 어째서 그런 나이브한 성격이 된 건지, 사랑에 취해 남의 차까지 빌려 갔던 남자가 쌔한 현실을 깨닫고 각성하는 장면이 바로 그 장면이었는데... 어떻게 양희네 집이 그런 멀쩡한 한옥일 수 있단 말인가? 원작에서는 비닐하우스였다고!! 가난하다는 걸 보여주려고 설탕물도 내오고, 벽에 붙은 사진액자도 보여주고 하더라만 비닐하우스와는 급이 달랐다고! 언젠가 쓰러져가는 대문의 가난한 집을 묘사해놓은 시나리오를 보고 모 교수가 요즘 이런 집이 어딨냐는 망발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어쩌면 이 피디도 가난을 경험해본 적이 없거나 가난이 뭔지 모르는 거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내내 지지부진하고 재미없던 이 드라마는, 마지막 연극에서 만난 두 남녀 사이에 <라라랜드>와 같은 상상씬을 넣음으로써 여운을 만들어줬다. 그 장면 하나 건졌다.



덧글

  • 해리 2018/10/30 16:57 # 삭제 답글

    이요님이 그러시다면 ~ 최고의 이혼! 달려보겠숩니다.ㅎㅎ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 는 재밌었음.ㅎㅎ
  • augenauf 2018/10/31 08:29 # 삭제 답글

    <최고의 이혼>, 지금 유일하게 보는 드라마네요. 배두나 좋아하는데 여기서는 좀 중간중간 발음도
    못알아듣겠고 너무 어이없이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어서 몰입이 잘 안 되네요. 그래도 볼만한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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