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괴물 읽고

거대한 괴물
폴 오스터 | 열린책들

나는 위스콘신주의 어느 도로변에서 신원불명의 한 남자가 폭탄 조립을 하다 폭사했다는 기사를 읽고, 그가 친구 삭스일 거라고 예상한다. 경찰이 찾아옴으로써 그 생각은 사실로 굳어진다. 이때부터 나는 삭스의 생을 쓰기로 한다. 
삭스와 나는 폭설이 쏟아지는 어느 날 뉴욕의 한 바에서 만났다. 삭스도 작가였고, 나도 작가였는데, 삭스의 낭독회에 내가 게스트로 초대받아 폭설을 뚫고 갔더니, 폭설 때문에 낭독회는 취소되었고, 그 사실을 몰랐던 두 작가만 와서 만나게 된 것. 그때부터 나는 삭스와 친구가 되고, 둘 다 결혼했던 터라 부부 동반으로 친해진다. 그러나 나는 첫 아이를 낳고 아내와 헤어지고, 삭스가 출장 간 사이 그의 아내 패티와 자게 된다. 사랑에 빠진 나는 삭스가 돌아오면 결투만이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삭스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예전 관계로 만나자고 한다. 어색한 시간이 지나고도 여전히 세 사람의 관계는 지속되고, 어느 날 삭스는 파티에 갔다가 난간에서 떨어져 죽을 뻔 한다. 이후 삭스는 패티가 아닌 마리아와 관계를 맺게 되는데...

줄거리를 쓰다 보니 지지부진하여 쓰다 말았다. -.-;; 굉장히 흥미진진해서 빨려들어가듯 이틀만에 다 읽어버린 책인데, 줄거리 요약을 하자니 이렇게 재미없을 수가! 폴 오스터의 소설은 항상 이렇다. 
폴 오스터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이제까지 읽어본 깜냥으로는 내가 재밌어 하는 소설과 재미없어 하는 소설로 딱 갈린다. <보이지 않는>이나 <공중곡예사> 같은 건 재밌었고, <뉴욕 3부작>이나 <선셋파크>는 재미없었다. 그래서 폴 오스터의 작품에는 항상 관심이 있지만, 과연 그 작품이 전자일지 후자일지 알 수 없어 망설이다 내려놓곤 했다.
<거대한 괴물>은 재밌는 쪽이다. 첫 단락부터 훅 끌린다. 
'6일 전, 위스콘신 주 북부의 어느 도로변에서 한 남자가 폭사했다. 목격자는 아무도 없었지만 조립하고 있던 폭탄이 사고로 터졌을 때 그는 길가에 세워 놓은 차 옆의 풀밭에 앉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뭔가 일어났고, 나(화자)는 그 죽은 남자의 전처 소유의 별장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이 소식을 접하고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다며 소설을 시작한다. 그렇게 삭스와 피터(화자)의 십수년에 걸친 인연이 소개되고, 서로가 공유(?)했던 여자들(패티, 마리아, 릴리안 등)이 공개되고, 겉으로 보면 별 일도 아닌 사건들이 어떻게 삭스의 인생에 영향을 끼쳤는지가 잘 짜인 이야기 속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사건은 후반부에 일어나기 때문에, 내내 이 이야기가 어떻게 폭탄으로 이어진다는 거야? 하다가 그 부분에서 "어어..."하고 넘어가게 된다. 별 것 아닌 이야기라도 어떻게 들려주는가에 따라 얼마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지 이 소설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이런 재주를 가진 것, 부럽다. (나라면 폭사와 실종과 살인사건부터 일단 터뜨리고 볼텐데, 그랬다면 흔해 빠진 소설들 중 하나가 되었겠지.)
두 남자를 제외하고는 주요 등장인물들이 다 여자들이다. 
나는 그 중 마리아가 하는 예술이 흥미로웠다. 누군가를 따라다니며 일거수일투족을 사진 찍고, 그것들을 전시하고, 도록을 만든다. 때로는 사설탐정을 시켜 자신을 따라다니게 하면서 변장을 한다든가, 규칙에 따라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행동을 한다든가 지시를 내린다. 사실 나는 이런 예술행위를 경멸하는 쪽이었는데, 이 소설 속에 묘사된 행위에는 묘하게 빨려들고, 급기야는 나에게 여유가 있다면 나도 저런 걸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마리아는 결국 삭스와도 사진을 찍고 기록을 했고, 그것은 나중에 피터가 삭스의 이야기를 쓸 때 도움이 된다. 
<거대한 괴물>은 <리바이어던>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가 개정판으로 내면서 제목을 바꿨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 <리바이어던>은 삭스가 쓰다가 끝내 완성하지 못한 소설의 제목이고, 그 제목을 친구 삭스의 일대기를 쓰면서 그래도 붙였다. 일종의 액자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뒤의 역자후기를 읽어보면 폭탄과 자유의 여신상에 대한 복선들을 밝혀 쓰고 있는데, 읽을 때는 몰랐다가 후기 보고 '과연 그러하다' 싶었다.
리뷰가 횡설수설에 뒤죽박죽이지만, 하여간 이 소설 재밌다. 

밑줄긋기
18 _ 요즘에는 모두가 다 문학 비평갑니다. 그래서 어떤 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저자에게 협박을 하지요. 그러는 데는 어떤 논리가 있습니다. 그 망할 자식이 나한테 한 짓의 대가를 치르게 하자, 뭐 그런 거죠.
96 _ 좋은 결혼은 외부의 압력이 아무리 많더라도 견뎌 낼 수 있는 반면, 나쁜 결혼은 깨져 버린다.
199 _ 돌이켜 보면 삭스를 그처럼 괴롭힌 것은 바로 그것, 즉 욕망을 느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겉다르고 속다른 수단으로서의 욕망의 부정이었다.
397 _ 그는 자기가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한 용감히 역경을 헤쳐 나가기 위해 어떤 불편도 감수하겠다고 했다. 훗날 나는 그것이 광신자들이나 할 법한 얘기, 그에게는 자신의 삶이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고백임을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의 이야기가 너무도 만족스럽고 너무도 열성적이고 단 한점의 의심도 없이 들려서 그 말 뒤에 숨은 뜻을 제대로 알아차릴 수 없었다.


덧글

  • augenauf 2018/11/02 09:26 # 삭제 답글

    폴 오스터가 묘사한 '마리아'라는 인물이 실존 예술가입니다. 소피 칼. 프랑스 예술가지요.
    책에서 묘사한 그녀의 예술행위는 실제 소피 칼이 했던 예술입니다.
    한번 찾아보시길...
  • 이요 2018/11/02 10:56 #

    우와...찾아보니 진짜 둘이 작업도 하고 했네요. 오늘 도서관 가서 <진실된 이야기>나 <뉴욕 이야기> 빌려 오려고요. 정보 감사.^^
  • blus 2018/11/03 00:28 # 답글

    폴 오스터의 읽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의식이 작품속으로 흘러들어가 휩쓸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참 좋아요. 특히 책을 덮고 난 뒤에야 그렇게 휩쓸렸다는 걸 깨닫는 때의 느낌이 감미롭지요.마치 꿈 속에서 꿈 속의 다른 사람이 꾼 꿈을 지켜봤다는 감각이랄까요? 그래서 저도 다른 사람한테 폴 오스터의 작품을 추천할 때는 애를 먹습니다. 결국엔 '아 그냥 봐'로 추천하고 추천받은 사람도 읽고나서 왜 그냥 보라고 했는 줄 알겠다고 하지요.ㅎㅎ
    개인적으로 폴 오스터의 작품 중에선 <달의 궁전>,<거대한 괴물>,<우연의 음악> 이 세 작품을 꼽습니다. 유난히 저 세 작품이 각별하게 느껴지더라구요. 거기에 하나를 더 꼽자면 <신탁의 밤>. 전 <뉴욕 3부작>을 이 소설들을 읽고 난 뒤에야 보게 되었는데 오히려 조금 가벼운 오락소설의 느낌이 나서 나름 신선하게 느껴져서인지 후루룩하고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ㅎㅎ
  • 이요 2018/11/04 16:46 #

    <달의 궁전>은 누군가 별로 재미없었다고 해서 제쳐놓았던 작품인데....음...일단 <우연의 음악>과 <신탁의 밤>을 한번 읽어보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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