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퀸 입덕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보고

보헤미안 랩소디
브라이언 싱어 감독
라미 말렉, 루시 보인턴, 벤 하디, 조셉 마젤로, 톰 홀랜더 출연
2018. 11. 4. 합정롯데시네마 

이것은 아주 긴 글이 될 지도 모르겠다.
요 근래 영화 보고 이렇게 눈이 퉁퉁 붓도록 울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미안해요, 퀸  
이 영화 이야기를 하자면 예전에 퀸을 얼마나 좋아했는지에 대한 증언부터 시작해야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퀸을 좋아한 적이 없다. 락음악을 잘 모르고 한국 대중가요만 좋아한 청소년 시절, 기껏 기억나는 외국 그룹이란 웸, 아하 정도. 대학 들어가서는 교회 대학부 활동을 하면서 너바나를, 백워드매스킹을 이유로 사탄의 음악을 하는 자들이라고 발표한 적도 있다.^^;;; 그때 너바나와 함께 공격했던 그룹이 바로 퀸이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딱 그 공격에 들어맞는 곡이었는데, "엄마, 내가 방금 사람을 죽였어요."하며 사형장에 끌려가는 아들의 노래라는 내용도 놀라웠고, 앞부분의 '갈릴레오 갈릴레오'는 무슨 지동설과 연관해서 이야기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이해하기 어려웠던 곡이었던 만큼 공격하기에는 좋았던 것 같다. 기독교의 영향을 배제하더라도, '부적응자들을 위해 부적응자가 만든 음악'을 좋아하기에 나는 넘나 모범생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는 연예계에 살짝 발을 담그게 됐고, 20대가 다 지나서야 남들 10대때 했던 일들을 하게 되었다. 메탈리카에 대한 책을 만들면서 락음악의 계보를 알게 되고, 내한가수들의 콘서트에 가서 헤드뱅잉을 했고, 쏟아지는 신보 CD를 들으며 좋은 노래 알아듣게 되었다. 퀸을 좋아한 적 없지만, 그들의 음악은 어느 새 귓속에 인이 박혀 흥얼거리게 되었다.
언제던가? '자유'라는 이름의 콘서트에서, 그 5월 어느 대학의 노천무대에서 나는 윤도현 밴드에게 한 눈에 반했다. 그 전까지 내게 윤도현이란 '아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타잔'이라는 이상한 노래를 부르는 가수였을 뿐이다. 그런데 실제 콘서트장에서 본 그는 압도적이었고, 날아다녔다.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나는 10여년 가까이 YB의 팬으로 콘서트를 쫓아다니고, CD를 구입했다. 그러니까 내게 윤도현을 다시 알려준 계기가 '자유콘서트'였다면, 퀸을 다시 알려준 계기가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영화였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두서없이 길게 하고 있는 것이다.
몰라봐서 죄송해요, 퀸 형님들, 프레디 머큐리! 

멤버 한명 한명에 대한 애정 
퀸의 노래에 대해 내가 갖고 있던 모든 의문을 이 영화 한 편으로 다 풀 수 있었다. 
"갈릴레오를 그렇게 부르다가 갑자기 엄마한테 총쐈다고 하는 건 대체 뭐야?"가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한 나의 의문이었다. 극 중 로저도 '갈릴레오'를 수십번 하이톤으로 외치다가 "대체 갈릴레오가 누구야?"하고는 쓰러진다. ㅋㅋㅋ 내 맘이 그 맘이었다니까. 제작자는 '위스밀라'는 대체 뭐냐면서 '비스밀라'도, '랩소디'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 그러나 퀸은 하던 걸 하고 싶지 않았고, 서로 붙여본 적 없는 음악들을 붙이고 섞어 새로운 걸 만들어냈다. 클래식에서의 '광시곡(랩소디)'도 집시의 음악을 차용한 걸로 알고 있다. 바로 거기서 '부적응자들을 위한 부적응자들의 음악'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엄마, 난 가끔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 싶어요."(I sometimes wish I'd never been born at all) 부분을 피아노치면서 즉흥적으로 작곡하고 깜짝 놀랄 때, 메리에 대한 절절한 마음으로 'love of my life'를 작곡할 때, 내가 그 에피파니의 순간들을 목격하는 기분에 감격했다. 
멤버들이 드럼 위에 물을 붓거나 동전을 던지고, 악기 사이에 이상한 물건들을 넣고 녹음하는 활기찬 장면, 함께 떼창을 부르고 파티션이 넘어지던 장면도 좋았다. 밴드 활동의 활기가 느껴졌다. 오로지 프레디 머큐리만을 조명하는 게 아니라, 각 멤버들의 역할이 무시되지 않고 나오는 것이 좋았다. 쿵쿵따 쿵쿵따를 넣거나, 디스코 음악이라고 폄하하다 베이스가 둥둥 울릴 때 자기들끼리 좋아하고 키들거리는 그 모든 순간이 좋았다. 알고보니 퀸 멤버들이 제작자였더라. 저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구나 싶었다. 

소수자의 자기혐오와 아픔
하필 이 영화를 보기 전날, 우리는 모여서 소수자 혐오, 동성애자 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말이 칼이 될 때>라는 책을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으면서 그간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저질러왔던 혐오를 털어놓으며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보게된 이 영화에서 프레디 머큐리는 자기 혐오와 사회의 편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아마 내가 전날 그런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면, 짐이 프레디를 향해 "자기 스스로를 싫어하지 않을 때, 그때 찾아와요."라고 했던 말의 뜻을 몰랐을 것이다. 짐은 프레디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해 자기 혐오에 빠져 있다는 걸 한눈에 알아봤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엄청 울었는데, 특히 메리의 창과 마주보는 창에서 통화를 하며 스탠드를 깜빡깜빡할 때 눈물이 쏟아졌다. 저 남자는 지금 얼마만큼 외로운 것인가...가슴이 미어졌다. 
나는 예전에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로 죽었고, 뮤직비디오에서 여장을 하거나 공연에서 섹시한 퍼포먼스를 했기에 당연히 그가 자신의 게이성을 즐기고 과시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인기도 많고 유명했기에 그런 자기혐오와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부정 같은 건 당연히 없는 줄 알았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많이 미안했다. 아무리 연예계라고 해도 1980년대에 그렇게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것을,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기에 의심도 하지 않고 믿고 있었다.

소울메이트를 찾았는데, 그녀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성애자이기에 메리에게 마음이 얹힐 수밖에 없었다. 메리와 프레디의 관계는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없을 정도로 미묘하고 복잡하다. 차라리 메리가 남자였다면 쉬웠을텐데... 일생의 소울메이트를 찾았는데, 그를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나는 그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면, 나도 상대방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 아닌가. 그래서 메리에게 끝까지 반지 빼지 말라고, 끝까지 함께 하자는 프레디가 미우면서도 이해되었다. 아마 메리도 그랬겠지.
이 영화 유일의 악역이라고 할 수 있는 폴의 경우, 처음 작은 씨앗이 보였다면 마지막엔 그 씨앗이 발아하여 주인공을 괴롭힐 거라는 헐리우드 영화 공식을 충실히 따르는 악역이다. 메리가 찾아와 "폴은 니 가족이 아니야. 나와 퀸 멤버들, 매니저가 가족이야." 한 뒤 프레디가 폴을 내쫓았을 때, 그는 TV에 나가 온갖 루머를 떠벌인다. 나는 폴이 처음에 솔로앨범 관련해서 거짓말을 할 때까지도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다가 그때서야 "그렇게까지 밑바닥을 드러낼 건 없잖아?" 싶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어쩌면 폴에게 프레디는 사랑이라, 복수심에 그러고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참 한명 한명 이해 안가는 사람이 없도록 만들어놓은 영화였다.

보헤미안 랩소디와 스타이즈본과 라라랜드  
생각해보면 <보헤미안 랩소디>와 <스타이즈본>은 비슷하다. 음악이 좋고, 가수와 그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비극으로 끝나고, 여자편에서 보면 남자가 한없이 이기적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그런데도 내게 두 영화는 너무나 다르게 느껴졌는데, 가장 큰 차이는 엘리가 성공했을 때 잭슨이 그걸 받아들이지 못한 못난 남자였고, 프레디는 자신의 잘못에 책임지고 돌아왔다는 점이 다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연출력의 차이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나는 프레디의 마음을 섬세하게 쫓을 수 있었다.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 자신감, 성공 후의 자기혐오와 외로움, 죄책감까지도 제3자가 아니라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공감했는데, 그게 결국은 연출 덕분이 아닌가 싶다. <스타이즈본>의 잭슨도 나름 후회하고 미안하다고 사과했으나 내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연예계 성공기라는 점에서는 <라라랜드>와도 닮았는데, 나는 <라라랜드>의 첫 장면 하이웨이 씬에서 뻑이 갔다. 그때 내가 폭풍공감했던 것은, 다들 성공해보려고, 유명해지려고 LA로 몰려온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서울로 올라왔던 것처럼. 그런데 <보헤미안 랩소디>의 프레디는 독보적이었다. 한두소절 불렀을 뿐인데 알아볼 정도로 노래를 잘했고, 멤버로 합류한 뒤에는 야망이라고는 없는 멤버들을 독려해 성공의 길로 끌고 갔다. 생전 처음 시도해보는 이상한 곡들을 끝도 없이 다그쳐서 완성도를 높이고 녹음했고, 어마어마한 제작자 앞에서 엿먹으라며 들고 나오는 그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가? 그때마다 이건 결국 천재의 이야기라는 것에 자괴감을 느꼈다. 그래, 사람들이 원하는 건 결국 이런 거야. 천재의 성공. 드라마틱한 일생. 천재도 아니고 자신감도 없고 십수년을 아직도 지망생인 나는 대체 뭔가? 펑펑 울었던 그 눈물 속의 2% 정도는 속상함이 차지했다.

이 영화를 보고 음악은 좋았지만 서사가 진부하다는 리뷰도 봤고, 전문가들의 별점이 짠 것도 봤다. 그 사람들은 냉정을 유지할 수 있어 좋겠다. 나는 그런 평가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영화에 푹 빠졌다. 한눈에 사랑하게 된 상대의 키가 크고 작고, 머리카락이 곱슬이고 아니고가 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영화 보고 집에 돌아와 내내 유투브에서 퀸실황 공연을 틀어놓고 보고 듣고 있다. 10대, 20대 때, 프레디가 살아있을 때 좋아했어야 하는 그룹을, 나이 마흔이 넘어 이제야 애달파하며 듣고 있다. 

덧글

  • 로그온티어 2018/11/04 21:34 # 답글

    어째 영화리뷰보다는 고해성사 느낌이 더 크게 드네요 (...)
    다른 분들은 퀸 신도로서 신앙간증(...)만 하시던데 (...)
  • 이요 2018/11/05 10:47 #

    제가 퀸 신도가 아니었기에 신앙간증할 게 없어서 그만...쿨럭.
  • 해리 2018/11/05 07:39 # 삭제 답글

    기다렸소. 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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