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 칼의 책 두 권 : 뉴욕 이야기 & 진실된 이야기 읽고

거대한 괴물에서 트랙백. 

소피 칼의 이 책들을 읽게 된 것은 폴 오스터의 <거대한 괴물>을 읽고, 리뷰를 올렸다가 거기 미나리님이 댓글을 달아주었기 때문이다. 소설 <거대한 괴물>에 나왔던 마리아가 실존 예술가 소피 칼에서 비롯된 캐릭터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소피 칼이 어떤 사람인가 찾아봤고, 흥미가 생겨 도서관에서 나란히 꽂힌 이 두 권의 책을 빌렸다.
 
뉴욕 이야기 (소피 칼, 폴 오스터 지음 | 심은진 옮김 | 마음산책)

이 책은 직접적으로 <거대한 괴물>과 관련이 있는 책이다. 폴 오스터가 소설을 쓰면서 소피 칼에게 소설 속 등장인물로 캐릭터를 좀 빌려가도 되겠냐고 했고, 소피 칼은 허락했다. 그렇게 <거대한 괴물>이 나왔고, 소피 칼은 덕분에 제법 유명해졌다. 폴 오스터가 그녀를 이용했으니, 이번에는 그녀가 폴 오스터를 이용할 차례. 소피는 소설 속 마리아처럼 살았고, 그 실험의 결과를 <이중 게임>이라는 7권의 책으로 냈다. 그 중 <뉴욕 이야기>는 7번째 책이다. 우리나라에는 이것만 번역되어 나온 것 같다.
폴 오스터가 보낸 '고담 핸드북'이라는 지령에 따라 실험한 사진을 찍어, 글을 써서 낸 책이다.
폴 오스터가 요구한 건 어렵지 않았다. 만나는 사람에게 미소짓기, 샌드위치를 만들고 담배를 사서 노숙자나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기, 뉴욕의 어떤 한 장소를 지정해 자기 집처럼 쓸고 닦고 거기를 지나다니는 사람에 대해 사진 찍고 메모하기. 이 실험은 일주일 정도밖에 가지 못했다. 소피 칼이 선택한 장소가 공중전화부스였는데, 전화국에서 나와 철거해버렸기 때문이다.
이 일이 1994년 9월에 벌어진 일이라, 아직 나의 기억에도 생생한 시간들이고, 소피 칼이 응원메시지 적어달라고 붙여놓은 종이의 프린트가 도트 프린트로 찍어놓은 글자라 정겨웠다. 샌드위치는 종종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담배는 한번도 거절당한 적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전화부스 근처에서 사람이 살해되거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도 나오는데, 그런 것들도 놀라웠다.
사람들에게 미소짓고 샌드위치 권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라, 나중에는 지인에게 하루 부탁하기도 한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 소피 칼이 폴 오스터를 만났을 때 "이제 다 끝났다고요 소피. 이제 그런 미소 짓지 않아도 돼요."라고 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그 페이지 옆에 그린듯한 미소를 짓고 앉아 있는 소피 칼의 사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실된 이야기 (소피 칼 지음 | 심은진 옮김 | 마음산책)

이 책에 나온 이야기는 소피 칼에 대해 검색하면서 어느 블로그에서 보고 알게 되었다.
소피 칼이 그렉과 결혼하고 결혼생활 7년의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만든 책이라고 한다. 하지만 제목과 달리 진실된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부분은 만들어진 소설이고, 어떤 부분은 진실이라 그 경계를 알 수 없다고. 정작 책을 펼쳐보니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단 자서전적인 책이었다.  
자기 아버지로 추측되는 남자가 쓴 편지를 액자 뒤에 숨겼다거나 친구와 마지막으로 훔친 빨간 구두를 한짝씩 나눠 가졌다거나 누드 모델로 일할 때 화가가 그림을 면도칼로 세심하게 찢어서 13일째부터 안갔다거나 연애편지를 받아본 적 없어 심부름센터에 의뢰해 연애편지를 받았다거나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보낸 연애편지의 이니셜을 자기 이름으로 바꾸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나온다.
그러니까 사진 한장을 놓고 이야기 만들기를 한 셈인데, 그 이야기들마다 각기 흥미로운 구석이 있어서, 이 여자 이야기를 참 잘 만드는구나 싶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도서관에서 빌린 이 책의 99p가 찢겨 있었다는 점. 남편의 성기를 여자가 뒤에서 잡아서 오줌 누이는 장면 옆의 설명이 찢겨 있었다. 나는 다행히도 이미 블로그를 통해 원본 사진과 그 설명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아니었다면 사진과 그 옆의 설명(은 아마도 다른 사진에 대한 설명이었겠지?)을 이어붙여 읽고는 넘어갔을 것이다. 
이 책에는 성기나 가슴 부분을 네모로 가린 사진이 많다. 뒤의 역자후기를 보면 원래 소피 칼의 사진은 그 부분이 가려져 있지 않은데, 우리나라에서 출판하려고 부탁을 했고, 소피 칼이 알겠다며 흔쾌히 사진을 가려 보냈다고 한다. 처음에는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패션쇼> 사태(누드 패션모델의 젖꼭지와 성기에 핑크색 하트가 동동 떠다녔던 국내 개봉필름)가 연상돼서 "이게 뭥미?" 분노했는데, 소피 칼이 직접 가렸다고 하니, 이 책의 한국어판을 만드는 작업 자체도 소피 칼의 작업의 연장처럼 느껴져 나쁘지 않았다.
아마 가리지 않았다면 이 책은 비닐로 포장되어 19금 딱지를 달고 있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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