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 읽고

인형의 집
헨리크 입센 지음
안미란 옮김
민음사

페미니즘의 고전이라는 이 책을 이제야 읽었다.
<인형의 집>이 연극이라는 건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 책이 희곡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원작소설을 연극으로 만든 줄로만 알고 있었다. 
마침 희곡을 쓰고 있는 중이라 도움이 될까해서 읽어봤다. 워낙 옛날 희곡이라 무대 장치 설명이 너무 촘촘했고, 쓸데없는 대사들도 너무 많았다. 
나는 노라가 마지막에 집을 나갔다는 것 외에는 이야기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 채로 읽기 시작했다. 

변호사로 일하던 헬메르 토르발은 새해에 은행총재로 내정된다. 드디어 월급이 제때 들어오고 권한도 가진 일을 하게 되어 헬메르 본인 뿐만 아니라 부인 노라도 넘나 기뻐한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전날, 거의 20년만에 찾아온 친구 린데 부인이 취직을 부탁하고, 노라의 간청으로 헬메르는 그 부탁을 들어준다. 그런데 린데가 취직하려면 크로그스타드가 해고되어야 했다. 문제는 노라가 크로그스타드에게 돈을 빌렸고, 갚아나가는 중이었다는 것. 헬메르가 아파서 남쪽 지방으로 요양을 가야했기에 빌린 돈인데, 그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지 않고 비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차용증에는 죽은 아버지의 서명이 날인되어 있다. 서명 위조까지 밝혀지면 큰 문제. 크로그스타드는 아직 차용증이 자기에게 있다며(돈을 덜 갚았다는 뜻) 자신을 해고한다면 이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노라를 협박한다. 노라는 남편에게 크로그스타드를 해고하지 말라고 하지만, 헬메르는 그런 비도덕적인 직원과 같이 일하지 못한다며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데...

일단 변호사보다 은행총재가 훨씬 좋은 직업이라는 것에 놀랐다.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변호사를 매우 하찮은 직업 취급하는 게 요즘이랑 달랐다. 그리고 남편을 위해 쓴 돈을, 남편 몰래 빌리고 갚는다는 것도, 그게 여자의 자부심이자 큰 비밀이라는 것도 그 시대답다. 
마지막 배신감이 드는 대목은 당연히 공감했지만, 그 전에도 헬메르가 말을 뱉을 때마다 뒷목 잡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아...진짜 뭐 이런 놈이...욕하면서 읽었다. 정말 이기적이고, 자기 본위이고, 재수가 없다. 으으...캐릭터 참 잘 만든 듯. 이야기 전체적으로는 린데 부인의 역할이 결정적이어서 의외였다. 위압적이고 이기적인 남자 헬메르에 비해서, 내내 노라를 괴롭히기는 했지만 린데 부인의 말을 들은 크로그스타드는 괜찮은 남자구나 싶었다. 대비가 극명하달까?
내가 본 영화 중에 <포스 마쥬어>라는 북유럽 영화가 있는데, <인형의 집>을 요즘 버전으로 각색하면 그런 게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읽는 동안 그 영화 생각이 많이 났다. 평소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가정인 줄 알았는데, 눈사태가 일어나자 아내고, 자식이고 다 내팽개치고 도망간 남편!! 알고보니 눈사태가 아니었고, 스키장에서 시간마다 흘려보내던 눈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일이 봉합되었다고 해서 부부관계가 회복될까? 그럴리가. 회복될 수가 없다. <인형의 집>도 마찬가지다. 비밀로 감추려고 했지만, 진실을 알게 되면 자기 편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던 남편. 그러나 그는 아내를 비난하고, 아이들에 대한 양육권조차 뺏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문제가 되었던 일은 잘 해결되지만, 그렇다고 부부관계가 봉합되지는 않는다. 결국 노라는 집을 나가기로 결심한다. 지금 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공연 당시 노라가 가출하는 결말에 대해 비난이 많았다고 한다. 하긴 지금도 그런 일쯤 꾹 참고 넘기며 남편 옆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그 옛날에는 어땠겠나 싶기도 하다. 노라가 차용증의 서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남자들이 만들어놓은 법과 삶에 있어서의 중요한 것들이 맞지 않는다는 측면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여자에겐 보호자의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지금이 노라의 시대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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