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 생각하고

1.
강의를 마치고 수강생들과 뒷풀이를 했다.
그 중 대학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남학생이 하나 있었다.
그 학생이 이런 저런 질문 끝에 "그런데 선생님, 제가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을까요? 제게 싹수가 보이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건 해보지 않으면 몰라요."라고 대답했고, 그는 "에이..그래도 글 쓰시는 분이니까 딱 보면 아실 거 아니에요?"라고 했다.
순간 기시감을 느꼈다. 15년 전에, 내가 처음 시나리오를 배울 때, 나도 딸랑 시나리오 한 편 쓰고는 선생님에게 물었다. "제가 시나리오 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 제게 싹수가 보이나요?"라고. 그때 선생님이 나처럼 대답하셨다. 그건 모른다고. 누구도 알 수 없다고.
나는 그때 선생님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수십년 시나리오를 써온 사람이 그걸 모를 리 없다,고. 딱 보면 가늠이 될텐데 그런 이야기를 해서 자라나는 새싹을 밟을 수 없으니 대답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나이가 되어 15년전 내가 했던 질문을 그대로 돌려받아보니 선생님은 거짓말을 한 게 아니란 걸 알겠다. 30대 초반의, 막 글을 쓰기 시작한 나는, 재능이라는 게 눈에 보이는 것이고, 프로들은 그걸 한눈에 캐치할 수 있으리라 여겼지만, 이후로 10여년 이상 글을 쓰고 나이를 먹으면서 재능이란 성공에 그닥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요소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시점에 어떤 글을 쓰느냐로 그 사람이 미래에 어떤 글을 쓰고 있을지는 절대 알 수 없고, 그 사람이 끝까지 할 지 중도 포기할 지는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 질문을 던질 때의 나는, 십몇년 후 내가 누군가로부터 그런 질문을 받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아마도 그 학생도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오해할지 모르지만, 세월이 지나 어느 날, 그때까지도 그가 글을 쓰고 있다면 내가 한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겠지.


2.
올해 나는 두번이나 20대, 30대와 나란히 앉아서 면접을 봤다.
나이 때문에 떨어뜨릴 거면 처음부터 탈락시키면 좋을텐데, 요즘 공기업들은 나이와 성별과 학벌을 최소한 서류상으로는 못가리도록 만들어놔서 어찌어찌 하다 보니 두번 다 최종면접에 들어갔다. 결국 나이로 떨어뜨릴 거면서 눈가리고 아웅한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거기 앉아 면접관의 질문을 들으면서 나는 내가 여기에 앉아있을 군번이 아니구나 하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글을 쓰다보면 잘 나오는 날도 있지만, 전혀 안떠오르는 날도 있잖아요? 그럴 때 마감이 걸리면 어떡할거죠?" 같은 질문을 받으면 피식 웃음이 난다. 아놔, 내가 이런 질문에 답해야 하나? 그러니까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울면서 철야하는 날들은 이미 10여 년 전에 끝났다. 그 단계는 옛날옛적에 지났다. 그건 마치 편집장이 되어 인턴기자한테나 물어볼 질문을 받는 그런 느낌이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 내가 이 나이에 20대의 자리를 넘보고 있구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하지만 내가 쓴 책들과 긴 경력을 보고 "왜 작가의 길을 안가시고 여기 면접 보러 오셨냐?"고 비꼬듯 질문하는 면접관에게는 "그러시는 너님은 왜 자영업 안하시고, 거기서 재단 돈 받으며 면접관 일 하시는데요?" 하는 말이 울컥 넘어오는 걸 꾹 물어 삼키고 "책 써서는 먹고 살 수 없으니까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이런 자리에서 모욕을 감수하고 앉아 있기에는 내가 너무 나이가 들었구나 하고. 
언제나 양가감정이 든다. 나는 여전히 나를 먹여살려줄 부모도, 남편도, 사회적 지원도 없는데, 왜 나는 20~30대 구직자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느껴야 하는 건지. 이게 나이든 죄인지 알 수가 없다.  


덧글

  • 긴호흡 2018/12/11 10:42 # 삭제 답글

    양가감정...들죠, 이런저린 일에서요...'나이든 죄'를 부여안고 그래도 꾸역꾸역 살아야지, 그런 생각 내내 하게 돼요, 저도...
  • 2018/12/11 20:38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해리 2018/12/12 08:48 # 삭제 답글

    '나이를 먹으면서 재능이란 성공에 그닥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요소' 라는 문구에서 덜컹..ㅜㅜ
  • augenauf 2018/12/13 08:33 # 삭제 답글

    이요님 뿐만 아니라 요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느낌 가질 것 같습니다. 키워야 할 자식은 아직 있고
    (그 자식들은 독립도 못하고 부모 아래 입 벌리고 있는 일이 대다수고요) 직장에선 떨려났고
    그러니 여기저기 눈치 보여도 일자리 구하러나서야 하는 거죠.
    저도 강사 자리, 젊은 친구들한테 눈치 많이 보여요. 거의 최고령자에 속하는 지라...
    하지만 아무리 나이 먹었어도 먹고 사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흑......
  • 이요 2018/12/14 09:22 #

    '먹고 사는 일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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