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일기 읽고

나뭇잎 일기
허윤희 | 궁리

사비나 미술관에서 이 책의 원본을 봤다. 스케치북에 한장 한장 정갈하게 그린 나뭇잎과 연필로 써놓은 일기. 한장 한장 사진을 찍다가 책으로 나온 것을 알게 되어 빌려 읽었다.
이 책의 느낌은 추천글에 나온 그대로다.
"그녀의 <나뭇잎 일기>를 펼치면 첫눈에 매우 정갈한 느낌을 받는다. 하얀 종이 위에 나뭇잎 한 장이 깔끔하게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그날의 단상이 몇 줄 담백하게 쓰여 있다. 이런 깔끔함과 담백함을 드러내는 종이의 여백에는 매일 산책에서 뒤따라온 작가의 삶의 울림이 말없이 자리한다." 
읽는 동안 참 좋았다. 느릿느릿 한장씩 넘기면서 나뭇잎의 모양을 찬찬히 뜯어보고, 참 실물처럼 잘 그렸다 감탄하고, 글이 좋은 페이지에는 포스트잇을 붙였다. 마음에 드는 나뭇잎은 뒤의 색인 페이지로 넘겨 이름을 찾았다. 그리하여 나는 담쟁이와 벚나무와 애기똥풀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희한하게 생긴 잎이 있어 찾아보니 '며느리배꼽'이라는 이름이었다. 몇 페이지 뒤에 며느리배꼽과 비슷한 잎이 나오길래 같은 잎일 거라며 색인을 찾아보니 '며느리밑씻개'였다. 와...며느리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파리들은 이렇게 생겼구나!! 
계절이 넘어가면서 나뭇잎들은 파랗게 무성해졌다가 단풍이 들고 시들고 구멍이 숭숭 난다. 단지 나뭇잎만으로도 계절이 느껴졌다.
일기의 글도 단정하고 사려 깊다. 같은 일을 당했더라도 나는 저렇게 쓰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 보니 내가 매일 이런 일기를 쓴다면 어떤 글을 쓰게 될까 궁금해졌고, 그래서 올해 나는 '일간 이요'를 쓰기로 결정했다. 그림을 잘 그린다면 매일 그림도 그리고 싶지만 그건 또 언젠가 타이밍 맞는 날이 오겠지. 

밑줄긋기
5 _ 지난날을 돌아보면,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은 날마다 있었다. 그 순간이 오래 머물지 않고 사라져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뿐...
21 _ 새 소리를 유심히 들었다. 큰 바위 밑으로 흐르는 개울물 소리도 들었다. 올챙이들을 보았다. 산에서 내려오면 큰 길을 건너는데, 자동차 소리가 가히 폭력적이다. 그동안은 돈이 없어서 차를 안 샀지만, 이젠 돈이 생겨도 안 살 것이다. (08.5.11)
22 _ 엄마, 아플 때 부르는 이름... (08.5.12)
77 _ 내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08.7.6)
91 _ 그림을 그리려고 밤나무 한 잎을 따서 손에 쥐었다. 그때 한 여자가 지나갔다. 그녀는 양손에 밤송이 같은 두 아이의 손을 쥐고 있었다. 나는 내 손 위에 파아란 나뭇잎만 쓸쓸하게 바라다 보았다. (08.7.20)
145 _ 나무 그림자는 계단을 쓴다. 그러나 먼지를 날리지 않는다. 
182 _ 제임스 터렐의 전시가 열리는 미술관 바닥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다. 하늘의 빛, 침묵, 순수, 영원, 무한함...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흘렀다. 좋은 작품은 가르치지 않고 깨닫게 해준다. (08.10.26)
284 _ "장래에 좋은 세상이 올는지 말는지 지금으로는 모르는 일이거니와 설혹 온다손 잡더라도 그대를 버리고 나 혼자 누릴 생각은 없소. 저기 하늘이 내려다보시오." "나는 하늘보담도 당신을 믿습니다." (홍명희의 '임꺽정' 중)
303 _ 방사능 비가 내리는 우울한 날. 사람이야 우산을 쓰면 되지만, 산과 나무와 꽃과 풀은 하루 종일 저 비를 맞아야 한다. 인간의 과도한 욕심 때문에 여리고 착하고 순한 것들이 늘 희생자가 된다. (11.4.7)
361 _ 들은 것은 잊어버리고, 본 것은 기억하고, 한 것은 이해하게 된다. (중국속담)
362 _ "한 20년 타지에서 살다 보니까 그곳도 타국이고 이곳도 역시 타국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나한테 고향이 있다면 그것은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순간이다." (시인 허수경)
381 _ 지휘자 정명훈에게 정치에 대한 견해를 묻자 자신은 음악밖에 모른다고 대답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예술도 예외는 아니다. 예술가도 이 땅 위에 사는 사람이다. 나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 공동의 삶을 고민해야 한다. 그러한 고민과 생각이 예술로 이어질 때 삶과 예술은 하나다. (12.02.11)


덧글

댓글 입력 영역


2018 대표이글루_mov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