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이요] 곤도 마리에의 정리법 보고

넷플릭스에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프로그램이 떴다.
눌러봤더니 일본인 곤도 마리에가 미국의 가정집들을 돌아다니며 정리법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일단 통역가를 대동하고 미국의 가정으로 가는 것도 이상했지만, 치우는 과정보다는 제목 그대로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처방만 나오고, 과정은 생략한 채 마지막 치워진 집만 보여줘서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이런 프로그램은 치우기 전의 너저분한 상태와 치운 후의 깨끗한 상태가 극명하게 대조되어야 재밌는데, 의뢰인의 집이 처음부터 너저분하지 않았다. 또한 이런 프로그램은 치우는 과정에서 고군분투하고 티격태격하면서 차츰차츰 나아지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그 중간 단계를 전부 인터뷰로 떼운다. 의뢰인의 부부 사이가 나빠졌다든지 이번에 치우면서 관계가 호전됐다든지 하는 인터뷰만 나오고, 정작 그걸 치우는 모습은 별로 보여주질 않는다. 피디가 청소나 정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나는 몇년 전에 이미 곤도 마리에의 정리의 마법을 드라마로 본 적이 있다. 드라마에선 옷을 가슴에 대보고 설렌다 안설렌다며 분류하는 부분이 과장되긴 해도 재밌다고 느꼈는데, 통역을 대동한 리얼리티쇼로 보니 실제로 저런 행동을 하면 되게 이상하구나 싶었다. 아마 우리나라 리얼리티쇼라면 MBC <러브 하우스>처럼 처방한 당사자(즉 곤도 마리에)가 직접 치워주거나, 아니라면 의뢰인들이 열심히 치우는 광경을 집요하게 보여줬을 것 같은데, 미국 프로라 그런지 그런 부분은 생략되거나 대충 넘어가버리니 나는 참 재미없다며 대충 보고 껐다.

그런데 오늘 아침, SNS에 무려 세 명의 페친이 이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정말 치우고 싶어졌다고 간증글을 올렸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물건의 폐기 기준을 '설렘'으로 잡은 것이 핵심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그 중 한 명이 분석하기를 "이 프로그램은 정리나 청소를 잘 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재미없을 것이고, 정리를 못하는 사람들이 재밌게 볼 것이다. 제작자가 정리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안다."라고 했다. 음.... 뭔가 그럴 듯한 분석이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재미없어서 피디가 정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뒤집어 보자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재밌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제작자가 잘못 만들어서 재미없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하니 내가 이 프로그램의 타깃 시청자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깔끔 떨고 매일매일 쓸고 닦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물건이 많은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음...역시 타깃이 아니었던 거였다. 


덧글

  • 우람이 2019/01/11 11:53 # 답글

    전 곤도 마리에 책도 재밌게 봤고 쇼도 재미있게 봤어요 ㅎ 그리고 이사하면서 많이 버리고 도움도 많이 받았어서 시즌 다 보고 또 보고 하고 있어요ㅎㅎ 첫번째 커플이 상태가 괜찮아서 덜 재밌었던 것도 있기는 해요. 에피 8개밖에 안되지만 집 주인의 상황이 다 다르고 물건 못 버리는 호더(?)도 있어서 각각 재미있었어요. 예를 들어 사별하고 혼자 남은 아내, 부모에게 집을 물려받은 부부, 더 작은 집으로 이사한 4인 가족, 게이 커플, 결혼한 레즈비언 커플 등등 다들 상황과 성향이 다른 사람들로 뽑은 거 같더라구요. 그나저나 물건이 많은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시라니, 20세기형 인간은 부럽습니다. 전 끝없이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어하는 맥시멀리스트로 남을 것 같거든요 (..)
  • 이요 2019/01/11 15:02 #

    아...8개의 에피소드가 각각 다르군요. 첫 집은 육아하는 집인데도 너무 깨끗했어요. 저도 미니멀리스트는 아니지만 물건이 꽉꽉 들어차 있으면 어쩐지 정신없고 숨이 막히더라구요.
  • 물밑두꺼비 2019/01/11 12:39 # 답글

    저도 혹해서 봤는데 일단 통역이 있다고는 하나 의사소통이 원할하지 않는 것이 정리의 달인인 곤도 마리에의 역할을 축소시키는 것 같고 별로 재미가 없더군요. 그래도 흥미가 생겨서 책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을 읽어보았는데 책이 훨씬 좋았습니다. 정리방법이나 설렌다는 의미에 대해 이해를 잘 시킨다는 느낌을 받았고 저도 그 원칙이 수긍이 가더군요. 정리할 것을 한꺼번에 다 꺼내쌓아보아야 한다는것, 곤도 마리에가 정리해 주는 것이 아니고 물건의 주인이 직접 모든 것을 해야한다는 것 등등이 왜 그런 원칙을 지켜야 하는 지 수긍이 가고 이렇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이요 2019/01/11 15:03 #

    저는 사실 곤도 마리에 일드 보고 서랍장 안의 옷들을 세워서 보관한지 2년쯤 됐습니다. 버리는 것도 예전보다 수월하구요.^^
  • 자그니 2019/01/14 22:59 # 답글

    저도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중인데... 정리 기준을 '감정'으로 잡은 게 맞아떨어졌다는 친구분들 의견에 한표요... 뭐랄까. 이 시대의 기준을 제시해줬다고나 할까요. '아까워서' 못 버리는 사람들에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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