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이요] 리뷰 생각하고

남자가 자기 트라우마를 극복하면 해피엔딩을 이루는 사랑이야기들이 있다.
<오늘의 연애>에서 이승기가 자신의 고소공포증을 이겨내고 자이로드롭을 타자 사랑이 완성되었고, <B형 남자친구>에서 이동건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어렵게 버스에 타서 자신의 사랑이 진실임을 보여준다. 그 자리에 상대 여자에 대한 배려나 희생은 없다. 스스로 성장하는 것만으로도 하도 장해서 나머지는 만사형통이다. 자기 트라우마를 극복하면 사랑은 저절로 온다. 여자를 위한다는 일이 고작 자이로드롭이나 버스 타는 일이라도, 여자들은 감격해서 그를 받아들인다. 그런 영화를 볼 때마다 자기가 밥을 차린 것도 아니고, 엄마가 다 차려놓은 밥을 단지 잘 먹기만 해도 "우쭈쭈쭈" 칭찬받는 아들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드라마 <미스티>의 마지막 회를 분노하며 본 것도 일맥상통이다. 사랑이라는 미명으로 자기 좋을대로 해놓고(심지어 사람을 죽였다) 용서받는 지진희를 보고 있자니 열불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최근에 이 비슷한 시나리오를 읽었다. 이혼 과정에서 양육권 분쟁을 벌이던 남자가 정신 차리고 아이들을 포기하는 것으로 해피엔딩을 이룬. 남주의 캐릭터가 시종일관 비호감이라 읽는 내내 뒷목을 잡다가 마지막에 와서는 분통이 터졌다. 양육권을 포기하는 게 성장이라니! 이보쇼, 그건 혹시 장애물를 떼고 날개 다는 행위 아니요?
분노의 리뷰를 썼고, ‘어째서 한국 남자들은 철드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용서받느냐? 책임에서 벗어나느냐?’고 일갈했다.

어제, 그 시나리오의 오프라인 리뷰가 있었다. 제작사에서 오신 분은 나의 리뷰를 읽고 이미 상처받은 상태였다.
리뷰하면서 우리가 “주인공의 성장으로는 감동하기 힘들다. 부족하다. 거기서 더 나아가 그는 희생해야 한다.”고 했더니, “아이들을 포기하는 게 가장 큰 희생”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뭔가 벽에 부딪친 느낌이었다. 아이들이나 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게 이토록 어렵나? 오로지 내가 포기한 것만 보이지 상대방은 안중에도 없다.
절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모습에서 몇 년 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역시 아버지와 자식의 화해라는, 같은 주제를 다룬 내 시나리오를 리뷰받을 때, 수세에 몰린 나는 “이 정도 성장하면 됐잖아요?” 했고, 영화사 피디님들이 지금의 나처럼 안타까운 표정으로 “이걸로는 부족해. 현실에선 이 정도로 되겠지. 그치만 영화는 현실이 아니잖아.” 했었다. 어쩌면 나는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더 공세적으로 이야기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랬기 때문에 계속 마음이 불편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최근에 읽은 이다혜의 책에서 ‘당신이 쓴 글은 아무도 읽지 않아도 당신이 읽는다. 악플의 첫독자도 당신이다’는 내용을 봤는데, 내 리뷰의 첫 독자 역시 나다. 내가 써놓은 글이 여전히 나를 찌르고 있다. 그 리뷰는 결국 나를 비추는 거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제발 그 제작자가 최소 <82년생 김지영> 정도는 읽고, 관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여자들이 어떤 생각으로 살고 있는지는 알았으면 좋겠다. 단지 밥을 잘 먹는 것만으로는 성장한 게 아니고, 그 밥을 스스로 짓고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어야 그게 성장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덧글

  • 달을향한사다리 2019/01/22 14:12 # 답글

    첫문단 공감 10000% 입니다! 진짜 첫문단 사이다! '나 이거 극복해쪄! 칭찬해줘! 극복하는데 네가 동력이 되었으니 나도 네가 책임져!'라고 하는 듯... 물론 마지막 문단과 이 글 전체에도 동감입니당~
  • 해리 2019/01/22 15:19 # 삭제 답글

    양육권을 포기하는 게 성장이라니! 이보쇼, 그건 혹시 장애물를 떼고 날개 다는 행위 아니요?
    고구마 먹다. 사이다! 사이다!ㅎㅎㅎ
    공감합니다. 이 글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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