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PC함 생각하고

‘PC하다’란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뜻이다. PC는 (Political Correctness)의 준말이다.
개그맨 유병재가 ‘엄마 아빠는 PC충’이라는 드라마를 만들었다. 제목을 보자마자 나는 “아!!! 또 선수 뺏겼어.”하는 탄식이 나왔다. 작년에 내가 끄적거리다 말았던 단막극 제목이 ‘PC한 선영씨’였다. 
나는 자칭 페미니스트이면서도, 어떤 ‘PC한 태도’는 도를 넘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그 기분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드라마를 한편 써보려다 (언제나 그렇듯) 시작만 하고 흐지부지된 상태였다.
PC논쟁에서 내가 느낀 ‘과도함’은 오십보백보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데서 오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오십보와 백보는 엄연히 다른데, 이를테면 여성혐오가 범죄행동으로 이어진 경우와 단지 사소한 말실수를 한 경우는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비난의 강도가, 범죄 자체가 아닌 가해자의 유명세에 따라 정해지는 것 같아 찝찝했던 것 같다.
그런데 최근 페이스북에 누군가 링크해둔 한겨레 칼럼을 읽고 어렴풋하던 그 이유가 명확해졌다. 칼럼은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라는 책을 쓴, 장애가 있는 변호사 김원영의 글이다.


‘그러나 현실은 도덕적으로 청소된 언어와 이미지 공간보다 더 복잡하다.’
바로 저것이었다. ‘애자’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누군가가, 실은 현실에서 누구보다 장애인의 손과 발이 되어주고, 의리 깊은 친구이기도 한 현실의 복잡함. 
지난 대선 때 나는 카톡 프로필에 태극기를 걸어놓은 이모와 통화를 하다, 이모가 얼토당토하지 않은 후보에게 표를 주려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 그 후보를 찍느냐고 물었더니, 이모와 친하게 지내고 늘 돌봐주러 오는 아줌마가 그 후보를 찍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러지 말라고 뜯어 말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우리 이모도 장애인이다. 관절이 약해서 걸음을 잘 못 걷는다. 나는 2~3년에 한번 이모를 볼까 말까 하며, 이모가 장애인 단체 해외여행에 따라가자고 할 때도 몇 번이나 거절했고, 컴퓨터에 에러가 뜰 때마다 나에게 전화하는 이모를 귀찮아한다. 극우 후보를 지지하는 그 아줌마는 적어도 며칠에 한번은 이모를 만나러 가고, 이모가 외출할 때마다 도와주며, 이모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친구이다. 아마 길거리에서 그 아줌마를 만났다면 나는 극우 꼴보수라며 피해 다녔거나 싫어했을 것이다. 이럴 때 나의 PC함은 과연 무엇인가?
SNS에서 옳은 소리 하는 건 너무나 쉽다. 그러나 현실에서 진짜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희생해가며 돌봐주기는 쉽지 않다. 이럴 때 PC함이라는 잣대는 무슨 소용이 있나?
내가 과도한 PC함을 싫어하는 것은, PC함에 매달리는 사람 중에, 나 같은 사람, 그러니까 말은 바로 하지만, 행동은 없고, 귀찮아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많을 거라는 게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자기 혐오인지도 모르겠다.
유병재는 오늘 생리대 못사는 여학생들을 돕는 단체에 기부를 했다고 SNS에 올렸다. 그게 자랑이든 방어든 그 무엇이라도 행동하지 않는 PC함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현실은 SNS 보다 훨씬 복잡다단하다.

P.S _ ‘엄마 아빠는 PC충’은 보지도 않았고, 그 내용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유병재에 대한 비난이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은 전부터 해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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