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2개의 전시 : 호크니 & 시대유감 보고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회에 다녀왔다.
티켓 할인이 유일하게 멜론티켓에서만 된다고 하여 부랴부랴 멜론 가입하여 예매해놓은 지도 한 달이 지났는데, 그간 SNS에 뜬 어이없이 긴 줄 인증샷을 보면서 언제 가야 사람이 없을까를 가늠하다가 긴 연휴가 끝난 다음 날 오후에 갑작스럽게 가게 되었다. SNS에서 보던 것처럼 긴 줄은 없었지만 평일 오후라기엔 많은 사람들이 관마다 그득했다.
하필 미술관 들어가기 직전 설레는 전화를 받아서 정신도 없고. 때마침 도슨트 설명 타임과도 겹쳐서 여러모로 사진을 진득하게 볼 정신이 아니었던 건 아쉽다. 사실 정신 차리고 봤어도 관람객 수가 줄어들지 않는 이상 한계가 있었겠지만.
밖의 사람들은 대충 이 정도 수준.
평소 미술관에 가본 사람은, 평일에 이 정도면 얼마나 사람이 많은지 알 수 있을 터.
작품 사진을 찍을 수 없는 대신, 외부에 이렇게 포토존을 곳곳에 만들어놨다.

이번 전시회는 테이트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이 함께 주최했다. 테이트 미술관의 작품이 많이 왔고, 시립미술관의 2~3층을 사용했다. 작품이 엄청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꽤 많다 싶었고, 각 방별로 호크니의 시대별 그림을 잘 볼 수 있었다. 초반에 있던 '난봉꾼의 행각' 같은 건 관람객이 없었더라면 꼼꼼히 읽고 하나하나 뜯어봤을텐데 그렇게 보기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작은 그림이나 나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그림은 대충 넘어갔다.
나는 '푸른 기타'방의 그림들이 좋았다. 푸른색 주조의 에칭 작업인데 피카소의 영향을 받은 시절 그림이다. 호크니에 관한 책을 읽었을 때도 이 시절 그림들을 별로 못봤고 피카소와 연관이 있는지도 몰랐다가 이 전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악기와 인테리어 등을 세밀한 에칭 작업으로 담아냈는데 몇가지 색을 안쓰면서도 섬세한 디테일과 디자인적인 시각이 돋보여 좋았다. 푸른색 주조로 수영장과 비를 표현한 판화도 느무느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결국 수영장 판화가 표지에 찍혀있는 노트를 한권 샀다)
또 유명한 '클라크 부부와 퍼시'를 실물 영접했는데, 긴 털 러그 속에 숨겨진 발이 섬세하면서도 기억에 남는다. 사람 보다 그들이 안고 있는 고양이, 바닥에 깔린 러그, 뒤의 모빌과 화병 등 인테리어 요소요소가 조화롭고 아름다웠다.
3층에 전시되어 있는 호크니 화집. 디따 큼. 전지 크기임.

그리고 남들도 다 칭찬하는 그랜드 캐년. 나도 역시 좋았다.
하늘과 땅 사이의 그 고운 보라색 지층. 부분부분 다 다른 붓질과 색채의 향연. 진짜 내가 그랜드 캐년 앞에 서 있는 기분.(실제 그랜드 캐년은 가본적 없지만, 바양작이나 카파도키아를 떠올리며 유추함) 그랜드 캐년 맞은편에는 와터 근처의 나무들이 걸려 있었는데, 같은 빅사이즈의 그림이라도 화려한 원색 계열이 더 마음에 든다. 와터 나무들 그림은 몇년 전에 국립현대 과천관에서 본 적이 있어 그런지...(아니다, 그때도 그 그림은 별 감흥이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화려한 쪽이 좋은 듯)
포토콜라주는 없었지만 자기 스튜디오 안의 풍경을 만들어놓은 작품이 좋았다. 포토콜라주를 보는 것 같았다.
호크니 포토월보다 훨씬 예술적이었던 천창으로 들어오는 햇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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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에는 호크니 전 외에 3개의 전시를 더 하고 있었다. 천경자 상설전시, 80년대 민중미술 작품전 '시대유감',  소장품전인 '멀티 액세스 4913'이다. 1층에서 하는 '멀티 액세스 4913'은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천안 수장고를 개방한 전시에서 영감을 얻었는지, 방을 수장고처럼 꾸미고 소장품을 전시했다. 그러나 갑자기 약속이 생기는 바람에 바빠서 제대로 못봤고, 천경자전은 워낙 자주 봤던 터라 '시대유감' 전만 제대로 봤다.
'시대유감'은 가나아트센터의 이호재 대표가 자신의 컬렉션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해 생긴 가나아트 컬렉션의 일환이다. 그는 80년대 당시 미술운동을 지지한다는 의미에서 민중미술 작품을 꾸준히 사 모았다고 한다. 바글바글한 호크니 전시와 달리 사람이 없어 무척 한갓지게 구경했다.
아~ 신학철. 삼청동에서 만났던 신학철을 여기서 다시 만났다.
이런 서정적인 그림을 그리기도 하셨구나!!
뒷편(시대순으로 배치되어 있음)에는 신학철의 콜라주도 있었지만,
나는 콜라주 작품보다 이런 그림이 참 좋네.
오윤
저 그림은 박흥순의 '복서'라는 그림인데, 앞에 가서 봤을 때는 감흥이 없었다.
그냥 누군가 케이오 되는 순간을 그렸구나 정도.
그런데 돌아나가다가 중간 통로 정 중앙에 걸린 걸 보니 좋았다.
역시 그림이란 어떻게 배치되는가에 따라서 감흥이 달라지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각각 다른 쪽에 걸려있던 그림인데, 부부의 그림이다.
왼쪽이 이응로 화백의 그림. 오른쪽이 그의 부인 박인경 화백의 그림.
사람인자를 많이 써서 그리는 이응로 화백의 그림은 자주 봤지만 박인경의 그림은 처음이다.
(예전에 봤지만 모른 채 지나갔을 수도)
사진으로 볼 땐 조형성 강한 왼쪽 그림이 아름다운데,
실제 봤을 땐 오른쪽 그림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냥 수묵화가 아니다. 저 검은 것들이 죄다 글씨다.
글씨를 써서 강의 풍경을 완성한 것. 멋지다.
홍성담의 고풀이.
안창홍
전체 그림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그림. 작가 이름을 알아오지 않아 찾는데 한참 걸렸다.
붉은색과 남색의 두 작품이 나란히 걸려 있다.

민중미술이 담당하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다만 나는 여전히 예술지상주의라 아무리 뜻이 좋은 그림이라도 아름답지 않으면 감흥을 받지 못한다. 그래서 개념미술도 싫어하고, 추상미술도 (이해가 안되기 때문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영화나 시나 음악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뜻이 좋아도 재미없는 작품에는 설득이 안되고, 때론 계몽주의라는 걸 알면서도 그 작품의 작품성에 매료되어 눈물을 흘린다. 결국 판단 기준은 완성도, 혹은 예술성이다.
시대유감 전에 걸린 많은 작품 중 내 마음을 흔들었던 작품만 찍었다. 설명이 없어도 그대로 마음에 들어온 작품들.

(2019. 5. 7. 서울시립미술관)

덧글

  • 이글루스 알리미 2019/05/24 08:05 # 답글

    안녕하세요, 이글루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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