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음악가 읽고

직업으로서의 음악가
김목인 | 열린책들


홍대 언저리에 살면서 이름은 들어봤으나 어떤 음악을 하는지는 몰랐던 사람, 김목인. 
누군가의 직업을 들여다보는 건 언제나 흥미로운데, 특히 싱어송라이터라는 이 직업은 글 쓰는 직업과 너무도 닮아서 매 페이지 페이지마다 공감하다, 박장대소하다 밑줄 그으며 읽었다.
공감가는 대목이 참 많았지만 그 중 가장 좋았던 건, 꿈이란 게 어떤 옷을 갈아입으며 다가오는지를 모른다는 것, 그걸 알아보는 게 중요하다는 것. 자신이 영화를 좋아하는 줄 알고 영화학교에 가고 단편영화 만들겠다고 돌아다녔던 그 시간들이 결국 음악으로 가는 길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책 내용을 따라가며 내가 공감했던 것들을 적어본다.
하지만 창작자들의 문제는 자기만의 미묘하고 엄격한 기준이 있되, 자기도 그게 뭔지 모른다는 것이다. 뭐가 필요한지는 모르고, 뭐가 아니라는 것만 아는 고집스런 상태. (31p) 아! 이 부분 읽는데, 절로 무릎이 쳐졌다. 진짜다, 이건 아니다는 기준은 있는데 그 기준이 대체 무엇인지 모른다는 거. 글 쓸 때 참 자주 느끼는 일이다. 그러니 이성적인 기획자들은 그런 작가를 보고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ㅎㅎ
그래서 이런 구절도 나온다. 제작자들에게 음악가들이란 하자는대로 열심히는 안하면서 말만 많은 족속, 음악가에게 제작자드이란 수익을 나누는 거에 비해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족속(120p). 기획자와 작가도 마찬가지다. 
김목인은 음반가게에서 이렇게 세상에 이렇게 앨범이 많은데 여기에 한장 더 얹고 싶은 욕구는 뭘까 한다는데, 나는 그걸 정확히 서점과 도서관 서가에서 느낀다. 이렇게 많은 책이 있는데, 혹은 이렇게 재밌는 영화와 드라마가 많은데...
또한 창작은 언제나 일상의 일들에 끊임없이 미뤄져 제일 뒷순서로 남는다는 말도 극공감했다. 해야 되는데, 해야되는데, 하면서 초조함만 늘어가고 그 때문에 마음이 기진맥진해지는 상태. 창작자라면 다 알 것이다.
그리고 프로듀서에게 조언 듣고 나면 묘한 희망도 생기는데, 집에 가면 30분 내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내 공간으로 돌아가면 미궁에 빠져 수정하는데만도 며칠이 걸릴 게 분명하다. (198p) 와...정말 이건 작가랑 똑같다. 리뷰 받고 나면 집에 가서 이것과 저것만 싹싹 고치면 퍼펙트하네, 희망에 차있다가 막상 컴퓨터 켜면 하아...한숨 나오는 상황들. 노래 가사 쓰다가 모든 노래가 그냥 좀 1절로 끝나면 안 되나 생각했다는데서도 빵터졌다. ㅋㅋㅋ 2절이 얼마나 생각이 안났으면...저도 시나리오는 1장에서 끝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돈 얘기, 섭외 및 잡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우리 얘긴가 했다. 섭외 연락에서 첫 통화 중에 결정하지 말고 다음에 전화하라는 것 (금과옥조다. 성질 급하고 명확한 거 좋아하는 내가 처음에 제일 못했던 일이고, 지금도 잘 한다고는 못하지만 그래도 노력하는 부분이다), 자신이 전화를 받아 "네, 김목인씨와 상의드리고 연락하겠습니다"하고 끊으라는 농담은 돈 받고 글 써주는 작가들끼리도 맨날 하는 말이다. 월말이 되면 수금하는 비서와 작가로 인격을 분리해야 된다고. ㅋㅋ
공연 후의 뒤풀이를 몸과 마음의 간극을 되돌려 놓는 것이라고 정의내린 것도 수긍이 갔다. 공연 후의 몸의 긴장과 흥분을 마음 자리로 끌어내리려고 술을 마시고 뒤풀이를 한다고. 강의가 끝난 뒤 가벼운 흥분으로 잠이 오지 않고, 술 마시고 싶어하는 강사들이 많은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음악을 하게 끌어들인 것들이 의외로 인터넷 커뮤니티, 사기성 농후한 교육기관, 누군가 객기로 잠깐 열었던 공간 등이고, 이 곳이 본래 의도와 다르게 지망생들에게 본의 아닌 기회를 제공한다. 글도, 영화도 마찬가지다. 메인스트림에서 착착 밟아 올라가는 게 아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참견하다 발담그다 보면 어느새 그 일을 하고 있게 된다.
정말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었다.


밑줄긋기
21 _ 일이란 자신에겐 뚜렷하지만 남들에게는 한없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32 _ 나는 쇠퇴한 문화란 아주 사라지기보다 그저 압축 파일처럼 축소되어 구석에 간직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럴 거라면 잘 축소해 특유의 매력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문화는 돌고 도는 거라 언젠가 꼭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어차피 삶은 세상의 어느 쪽을 보느냐의 문제다. 세상의 변화를 잘 따라가는 것이 중요한 인생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좋아했고 여전히 좋아하는 무언가가 살아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한 사람들도 있다.
80 _ 어느 분야든 사람이 움직이면 간단한 일이 없다.
98 _ 사람의 마음이란 정말이지 지독히도 그냥 넘어가는 것이 없다.
105 _ 많은 이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제 갈 길을 찾아간다. 곁에는 그들을 불안하게 하는 수많은 조언들이 있지만, 그들은 이미 대강의 길을 알고 있다.
111 _ 그러니 어린아이에게 뭘 하고 싶으냐고, 직업으로 골라 보라는 게 얼마나 공허한 일인지 어른들은 한 번쯤 생각해 보길 권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계속 옷을 갈아입는 꿈이 뭔지를 자신이 알아보는 것이다.
124 _ 음악가가 유려한 연주를 하고 기획사 대표가 흐뭇하게 바라보는 장면 밑에 <소속 가수를 바라보는 사장님의 눈에서 꿀이 떨어진다>는 식의 자막을 내보내는 것인데, 상당히 불편하다. 이런 용어가 은근 무서운 것은 실제의 계약 관계는 합리적으로 변해 가고 있는데, 자꾸 낡은 방식으로 관계를 상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143 _ 누군가는 예술을 어떻게 <장사>에 빗댈 수 있냐고 스스로를 초월적인 위치에 놓을 수도 있겠지만, 어차피 게으른 예술은 상술이나 마찬가지고, 정성이 깃든 장사는 예술이나 마찬가지다.
149 _ 언제나 그렇듯 낯설고 막막한 곳의 한 귀퉁이에서 문을 두드리고, 그곳의 친절한 몇몇에 의해 어떤 문화의 중심부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떠났다 다시 돌아오면 모든 게 낯설고...그런 것이 문화의 순리인 것 같다. 그런 범에서 홍대는 매우 익숙하면서도 매번 낯선 곳이다.
153 _ <자전적인 것>으로 오해받는 것은 모든 창작자의 숙명이다.
173 _ 보통 첫 앨범에는 순전히 작업에 쓴 시간 외에도 무수한 방황의 시간이 배경처럼 담겨 있다. 그리고 그것이 첫 앨범만의 아우라를 만든다.
175 _ 역시 인생에는 완성이란 없고 마감만이 있는 것인가?
179 _ 지금도 그렇지만 진열대를 일 삼아 둘러보는 것만큼 한 분야의 윤곽을 아는 데 좋은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238 _ 언제나 어중간한 것이 문제다. 디자인을 직접 하려면 아이디어를 담뱃갑에 쓱 그려줄 만큼 꽤 재능이 있든가 디자인 같은 것은 전혀 모르는 음악가가 되는 편이 낫다.
251 _ 나는 많은 연구들에서 <자존감을 떨어뜨린다>고 증명된 일, <자기 이름 검색>을 간간이 해보았다.
254 _ 이 과정의 각 단계들은 해마다 점차 간소해지고, 가벼워지고, 생략될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 뭔가를 만들고, 주고받고, 들어 보는 기쁨이 이어지길 기대하는 것. 메모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누군가의 삶에서 또 다른 이야기로 확장되길 기대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여전히 하고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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