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 읽고

또 이 따위 레시피라니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다산책방

어쩐지 시니컬하고 독설적일 것 같은 줄리언 반스가 부엌에서 요리책에 나온대로 요리하다 열받은 경험을 써놓은 에세이다. 이런 종류로는 빌 브라이슨이 제일 앞에 있고, 그 외에도 닉 혼비라든가 전 세계의 시니컬한 작가들이 여러 종류의 경험(요리, 여행, 집짓기, 원예 등등)을 하며 비아냥과 냉소와 유머를 적절히 버무려 써놓은 많은 책이 있다. 한 때는 그런 책을 재밌게 읽었는데, 요즘은 좀 시들한 상태고, 내가 시들한 것과는 별개로 그냥 그런 책들 사이에서도 이 책은 그닥 재밌는 편은 아니다.

나도 요리라면 할 말 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인데, 줄리언 반스와 나는 너무 극과 극에 놓여있다.
이 책의 세번째 꼭지에 과일 1파운드에 설탕 1파운드라고 쓰인 요리책을 보고 빈 1파운드 잼병에 과일을 담아 분량을 재고, 설탕을 담아 분량을 잰 후 잼을 만들어 실패한 이야기가 나온다. 반스는 '이 이야기를 듣고 한 번쯤은 웃어도 무방하다'고 했는데, 나는 대체 어느 부분이 우스운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과일들 사이의 빈 공간이 많아 설탕보다는 과일이 적게 들어갔겠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우스운 일인가 하면서 나는 빈정이 상해버리고 말았다.
그렇다, 내가 바로 그렇게 분량을 대충 재는 인간이다. -.-;;;
그러니까 나는 레시피에 나오는 재료가 없으면 대충 비슷한 재료로 메꾸거나 그 재료 없이 그냥 음식을 하는 인간이고, 줄리언 반스는 레시피책의 표현들이 너무 대충이라 신경질을 내는 종류의 인간이다. 자기 스스로를 '부엌에만 서면 노심초사하는 현학자'라고 한다. 그래서 레시피책의 표현 하나 잘못됐다고, 순서 하나 뒤바뀌었다고 난리를 치는 것이다. 가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얘기들도 나오지만, 대체로는 너무 예민하고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반부는 유명한 요리책의 리뷰라고 봐도 무방하다.


밑줄긋기
56 _ 요리책 저자도 다른 분야의 저자들과 다를 게 없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 대다수는 평생 써야 한 권 분량밖에 쓸 것이 없다.
74 _ 요리를 시작하고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교훈은, 요리책이 아무리 솔깃해 보여도 어떤 요리들은 반드시 음식점에서 먹어야 제일 맛있다는 사실이다. 내 경험으로는 디저트가 대개 그렇다.
166 _ 저자가 할 수 있다니까 우리는 해야만 하며,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으로는 아무리 저항해도 기어이 하고 만다. '그러려고 책을 샀잖아, 안 그래?' 하면서.
188 _ 기계적으로 단백질을 공격성과 관련짓고 싶은 사람은 히틀러가 채식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덧글

  • sargasso 2019/06/12 17:44 # 답글

    저도 그 과일/설탕 부분 보고 웃지는 못했는데... 곰곰 생각하니 무게를 부피로 착각한 게 문제구나! 싶었어요- 설탕 한 그릇 과일 한 그릇을 넣으면 누가 봐도 설탕양이 너무 많으니... 근데 그게 무게-부피 문제라는 건 고민해야 알겠더라고요ㅋㅋㅋ 창피해서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이요님 덕분에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고 안심ㅎㅎ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