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그 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읽고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권김현영 | 휴머니스트 

요즘 가장 핫한 페미니스트 권김현영. 이 분 강의도 들어봤고, 페북 팔로워이기도 한데, 이제까지 낸 책이 거의 공저다. 단독으로 책을 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에 단독저서가 나왔다길래 아묻따 사버렸다. 
읽다보니 페북을 통해서든 뭐든 내가 이분 글을 제법 읽어봤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까지 쓴 칼럼을 모아놓은 책인데 10꼭지 정도는 이미 본 것들이었다. 
이 책에도 나와있지만 90년대에도 페미니즘은 핫했다. 나는 그때 20대였고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때라 더더욱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랬던 페미니즘이 어느 순간 없어진 것처럼 보이다가 강남역 살인사건으로 다시 불붙기 시작했을 때, 몇 권의 책을 읽으며 이제는 기초 수준의 페미니즘 책이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간 것들을 읽어야 할 때라는 걸 알게 됐다.
이 책의 후반부에는 여성학자 권김현영이 본래 쓰던 학문적인 글이 몇 편 나오는데, 읽으면서 "아...여기까지 이해하기엔 내가 딸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밑줄긋기
4_ 찬성과 반대라는 두 선택지만을 두고 각 입장을 대변하는 전문가를 줄 세워 진영의 힘을 키워나가는 식. 하지만 이건 진영을 만들 만한 세력을 가진 이들이나 취할 수 있는 싸움 전력이다. 내가 둘 중 하나를 고르면 그다음에는 다른 쪽을 고를 사람을 불러올 것이다. 이런 싸움의 목표는 권력 자체를 획득하는 데 있다. 그런데 그건 권력에 저항하는 게 아니라 투항하는 게 아닌가.
5 _ 페미니즘의 목표는 권력을 남성으로부터 '탈환'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권력에서 폭력을 제거하고 권력의 의미를 바꾸는데 있다.
6 _ 행위를 중심으로 혐오표현을 만들면 그 행위를 규제하는 효과가 생기지만, 해당 집단의 정체성 자체를 멸시하여 지칭하면 반동만 강해진다.
37 _ 상대를 얕보거나 배제하면서 자신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다고 선의였다고 변명하지 말자. 선의는 그런 것보다 훨씬 나은 아름다운 감정에 붙여야 할 이름이다.
52 _ 다시 묻자. 애국심은 정말 그렇게 모든 가치에 우선할 정도로 정의로운 것인가.
71 _ 그녀들의 소설은 신변과 개인사를 다루었기에 무가치한 것이 아니라 넘어서려던 경계가 매번 인간의 얼굴을 띠고 있기에 더 큰 고통을 받았던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지하련과 최정희의 글쓰기에 관하여)
102 _ <82년생 김지영>이 포팍해낸 핵심적 시대정신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미 지나간, 낡아버린 문제처럼 보이게 만든 것 자체가 새로운 형태의 성차별적 현실이라는 점 말이다.
108 _ 여성우선주차장의 도입 취지는 여성 운전자의 운전 미숙, 주차장 안전문제에 따른 더 넉넉한 주차공간의 필요 등이었다. 여성 운전자의 운전 실력에 대한 편견을 가중했다는 점에서도, 주차장의 안전관리와 시설개선 전반에 대한 책임을 최소화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도 성평등 정책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정책 입안자와 담당자는 역차별 담론 자체가 성차별 문제를 가릴 수 있다는 점을 사려 깊게 살펴야 한다.
110 _ 애초에 여자로 태어난 게 잘못이었나. 아니, 여자로 태어난 게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사회가 잘못이었다.
117 _ '가족 같은'이라는 수식어는 구인란에서 가장 월급을 적게 주고, 여성이 많이 몰려 있는 직업군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었다. 
134 _ 여성의 인권은 구타당하고 강간당하고 착취당하는 최악의 상태를 전시해야 공감을 얻는다. 반면에, 남성의 인권은 잠재적인 피해 가능성과 인간으로서 명예훼손에 대한 우려만을 이야기해도 공감을 얻는다.
139 _ 민주주의는 타인의 운명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마음의 근육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145 _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고 말하면 너무나 다정하게 대할 것이 분명한 이웃과 친구와 가족이 성폭력 피해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성폭력, 존속살해, 가정폭력, 인신매매 등 개인을 완전히 파괴한다고 알려진 범죄의 피해자에게 주변인들은 이상할 정도로 무심하게 군다. 피해자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관습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상을 뛰어넘는 고통을 겪은 당사자는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재현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것이 피해자들이 겉보기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는 이유다.
161 _ 공감은 상대의 고통과 만나 그 고통을 전이받는 경험이다. 반성과 성찰 없는 분노, 너무 쉬운 공감은 피해자를 타자화하고 가해자를 비인간화하여 자신은 가해와 피해 모두로부터 언제나 자유롭다는 오만함과 닿아 있다.
197 _ '불완전함이 지속가능한 것', 저는 이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이상적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198 _ 하지만 이른바 '좌파' 남성들은 항상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거나 보호하고 싶어했습니다. 자신들의 팬클럽쯤으로 생각하고 각성되어야 할 대상으로 취급했지 동등한 시민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202 _ 사람들의 문제제기를 마치 대의가 아니며 국익과 위반되는 것처럼 구도를 만들지 마세요. 잘못은 누구나 저지를 수 있지만, 그 잘못을 덮는 과정에서 진짜 문제가 만들어집니다. 왜 "남자들 원래 그래. 그렇게 세상물정을 몰라?" 이런 말을 2017년에도 듣고 있어야 하나요. 바로 그 세상물정을 바꾸지 않고서 대체 무슨 희망과 변화를 말합니까. 이런 시시하고 비겁하고 사소한 남성 간의 의리야말로 민주주의의 주적입니다.
215 _ 피해자가 이야기하면 피해자로서의 말 외에 다른 말은 소거되기 일쑤다. 피해를 중심으로 정체성이 구성되기 시작할 때, 한 개인의 입체적 역사는 극단적으로 축소된다.
219 _ 고통의 내용을 상상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타인의 고통을 만났을 때 먼저 느끼는 감정은 연민, 동정, 공감이 아니라 그 상태로부터 분리되고자 하는 혐오, 공포, 두려움, 불안감이다.
242 _ 1980년 대선 이후 이들은 스스로를 표현하는 수식어를 안티페미니즘에서 "가족 친화적 운동을 선도하고 있는"으로 바꾸었다. 이런 식의 언어적 전유는 안티페미니즘 세력을 규합하는 데 유용했을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운동 내부의 분열을 즉각적으로 초래했다.
258 _ 관련 전문가들은 화학적 거세와 같은 약물치료는 본인이 더는 범행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경우 그 의지를 돋기 위한 보조적 조치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유아 대상 성범죄는 손가락이나 이물질 삽입 등 남성 성기의 발기 문제와는 무관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259 _ 청소년 성매매를 소아성애 문제로 보는 것과 10대 여성들의 가출 등 일탈 행동의 문제로 보는 것은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낳을 것이다. 


덧글

  • 진이 2019/11/08 20:09 # 삭제 답글

    제목 너무 맘에 든다. 밑줄긋기 페이지를 보면 그리 페이지 많은 책이 아닌것 같은데...한바닥을 적어놨군. (나도 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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