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칸에서 바닷소리 들으며 시나리오를 씁니다 읽고

료칸에서 바닷소리 들으며 시나리오를 씁니다
니시카와 미와 지음
이지수 옮김
마음산책

니시카와 미와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유레루>는 내 인생의 영화 50안에 꼽는 영화이고 <꿈팔이 부부 사기단>도 재밌게 봤다. 이 책은 이 감독의 최신작인 <아주 긴 변명>을 만드는 과정에 일어난 일들을 써놓은 영화 작업 일기다. 그 일기 외에 잡지에 연재했던 영화 관련 칼럼, 단편소설, 에세이 등을 모아놓았다. 
글을 잘 쓴다. 거의 대부분의 영화를 각본까지 맡고, 특히 이 영화는 소설로 먼저 쓴 후 영화로 만들었다더니 표현력이 기가 막힌다. 이를테면 이런 표현 '그러니 너도 혼자 있지 말고 우리 집을 도와라. 이런 말을 들으면 나는 약해진다. 내 핏속에 충만한, 오빠 뒤를 금붕어 똥처럼 따라다니고 싶어하는 타고난 꼬맹이 여동생 기질이 격렬하게 부채질당하기 때문이다'. 고레에다 감독의 막내동생처럼 일하는 이야기를 쓴 구절인데, 금붕어 똥처럼 따라다니다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 발탁되어 영화판으로 들어온 일, 예산의 제약 같은 거 받고 싶지 않아 소설로 먼저 이야기를 완성한 것, 아역배우 오디션을 하고 그 아역배우들과 영화 찍은 이야기, 영화가 끝나고도 홍보하느라 사진찍고 인터뷰한 이야기 등이 나오는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람은 <아주 긴 변명>의 남주인공 모토키 마사히로다. 이 사람과의 첫만남, 두번째 만남, 입씨름, 주고받은 이메일 등이 다 나오는데, 허락을 맡고 썼겠지? 싶을 정도로 솔직하고 치부라고 하면 치부라고 할만한 성격적인 부분을 과감하게 드러냈다. 일본 드라마 꽤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 배우가 나온 건 변변히 본 게 없어서 <아주 긴 변명>은 꼭 챙겨봐야겠다. 이렇게 만드는 과정을 알고 보면 영화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제일 처음에 실려 있는 영화배우의 죽음에 대한 에세이를 읽으며, "와...글 잘 쓴다." 한 방 맞고 시작했다. 아이가 없기 때문에 아이가 있는 지인들의 집에 살면서 관찰(그 와중에 밥 맛있다는 에세이도 나옴)하고 아역배우 오디션을 하며 죄책감을 느끼고 2시간만 지나면 상태 이상해지는 애와 헬을 경험하는 부분에선 웃음이 나오면서도 어떤 상황인지 눈에 훤히 그려졌다. 스태프와 감독 사이를 조강지처 혹은 새 애인과 빗대 설명하는 부분은 뭔가 남성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런 이야기 중에 10년간 함께 했던 밴드 대신 유명 작곡가와의 작업 이야기가 나오면 이건 이것대로 그건 그것대로 의미있는 경험이었겠구나 싶어진다. 그 정점은 아이의 피아노 연주 이야기로, <유쾌한 대장간>을 딱 원하는 느낌으로 쳐온 아이의 연주를 들으며 '자신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포기만 하지 않으면 우리는 또 어디까지든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왜 내가 격려를 받는 느낌인지!
제목에 나오는 바닷소리 들리는 료칸은 고레에다 감독이 자주 가는 곳으로, 덕분에 니시카와도 거기 묵으면서 글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은 좋아하는 감독이 썼고, 제목에 내가 좋아하는 게 다 들어있어서(료칸, 바다, 시나리오) 기대했던 책인데, 타이밍이 안좋아서 서점에 책 깔리자마자 노재팬 운동이 시작되는 바람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고 한다. 안타깝다.   


밑줄긋기
11 _ 죽은 이를 그리워하지 말고 살아 있는 사람을 살아 있는 동안에 그리워하고 싶다.
16 _ 줏대없이 스타만 보면 환호하는 성향은 이 일을 하다보면 반드시 잃어버리는 것 중 하나로, 어떤 톱 아이돌을 맞이하든 현장의 젊은 남자 스태프는 그 옆에서 코끼리 같은 표정으로 하던 일을 이어나간다.
18 _ 이렇게 세상을 떠난 사람을 그리워하기란 쉬운 일인데 어째서 살아서 건강할 때 그리하지 않는 것일까, 언제나 생각한다. 그리워하는 것은 죽은 사람을 위한다기보다 남겨진 자의 후회를 진정하기 위한 일이다.
64 _ "여자지만 잘 할 수 있어요" 따위의 대사는 그 자체로 비굴해서 관자놀이가 떨린다.
86 _ 꽃 필 무렵에는 비바람이 잦다 했소 (우무릉)
111 _ 어쨌거나 '영화밖에 없었던' 시대에서 '영화도 아직 있는' 시대로 변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139 _ 사랑? 맹세한 무렵에는 그런 이름이었던가. 타성을 '불멸'이라고도 부른다네. 
141 _ 초호 시사회는 '잔치'라고는 할 수 없다. '이제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저지른 잘못을 눈앞에 두고 직접 보는 모임'인 것이다. 160 _ 오프닝은 영화의 얼굴. 재미있는 영화일 것 같네, 하고 관객을 끌어들이는 선제 펀치가 필요하다.
164 _ 자신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포기만 하지 않으면 우리는 또 어디까지든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188 _ 인간은 의외로 자기 혼자 끙끙거리며 생각하는 것보다 남들에게 필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269 _ 감정없는 경험은 '기억'이 되지 않아서, 아무리 많은 사람과 만남을 거듭해봤자 숫자를 자랑할 수는 있어도 역시 인생이라 부를 수 있는 시간은 되지 않는 게 아닐까요.
272 _ 분명 언제 연락하든 괜찮을 테지만 연락하기 위한 변명거리를 찾는 도중 왠지 모르게 연락을 포기하는, 서로에게 멀고도 그리운 관계로 차츰 정착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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