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올해의 연말결산 살고

책등이 너덜너덜 떨어진 2019 카누 다이어리와 2020 새로운 다이어리

2019년은 내 인생의 몇몇해들과 더불어 최고의 해라고 해도 되는 해가 아닌가 싶다.
2018년 연말의 상황을 보자면 더욱 그렇다. 어느 사주보는 사람이 내가 47세에 대박이 터진다고 했다. 2018년이 바로 그 해였는데, 대박은커녕 다리를 다쳐서 깁스를 했고, 취직을 해보겠다고 연초부터 연말까지 빨빨 뛰어다녔으나 내 나이의 묵직함만 확인하고 좌절한 채 2019년이 밝았다. 더 이상 시나리오도 못쓰겠고, 취직도 좌절됐고, 그래서 그때 나는 일간 이요를 써볼까, 웹소설 판에 뛰어들어볼까, 사업자등록증을 내볼까, 온갖 방향으로 촉수를 뻗고 있었다. 물론 어느 하나도 쉽지 않고, 탐탁지도 않았다.

그런데 봄에 친구가 어떤 일을 소개해줬는데, 대뜸 출퇴근을 할 수 있냐 했고, 나는 5월부터 출근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5월에 SBS로부터 극본공모전에 우수상 당선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시나리오를 쓴지 17년 만의 일이었다.
출퇴근은 늦춰져 7월로 밀렸고, 공교롭게도 수상작가들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특전인 SBS 인턴작가 역시 7월부터 시작되었다. 
11년 만의 출퇴근과 매달 2편씩 총 70p쯤 되는 드라마 대본을 써내는 일을 과연 내가 다 할 수 있을까 엄청나게 고민을 하고 주변의 조언을 얻은 끝에, 되든 안되든 해보기로 했다. 일이 없어 길길 맸던 과거를 생각하면 행복한 고민이기도 했으니까.
이제 자유시간은 끝이니 6월에 잽싸게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북유럽과 동유럽을 찍는, 헬싱키-빈-부다페스트 여행으로, 어마어마하게 더웠고 힘들었다. 그즈음 독서모임 엠티 갔다가 해결의 책이라는 것도 펼쳐 봤는데 "이 다섯가지 일(정기적 알바1+한겨레문화센터 강의+부정기적 취재1+출퇴근+SBS인턴작가)을 과연 제가 해낼 수 있을까요?" 하고 물어봤더니 "시키는대로 하면"이라는 답이 나왔다.ㅋㅋㅋ 그래서 그냥 시키는대로 묵묵히 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7월부터 출근과 알바와 인턴작가 일을 병행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이 시작되었고, 머리카락과 살이 빠졌고, 새벽 5시에 일어나는 일상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9년 동안 하던 글쓰기 강의는 결국 그만뒀고, 부정기적 알바도 자연스럽게 없어져서 쓰리잡으로 일상이 안정화되었다. 인턴작가로 낸 드라마가 욕을 먹기도 하고 칭찬을 받기도 하면서 롤러코스터를 탔지만 어쨌든 꾸역꾸역 해나가고 있었는데, 운좋게도 11월에 웹드라마 각색 일이 들어왔다. 
덕분에 인턴작가 계약은 끝났고, 새로운 계약을 하게 되었다. 이게 잘 되면 2020년에는 데뷔하게 된다.
출퇴근하는 곳도 원래 연말까지였는데, 1월까지로 계약이 연장되었다. 1월까지는 여전히 쓰리잡을 해야 하겠지만, 봄이 되면 여유가 생길 것 같다. 그때는 어디든 바람 쐬러 가야지. 
이렇게 달린 관계로 1년 동안 벌어들인 돈도, 내가 가계부를 쓴 이후 최고액을 찍었다.

바빴고 힘들었지만, 좌절만 거듭하던 일상에 일이 되는 경험들을 연이어 하다 보니 이렇게 운이 좋아도 되나 싶고, 아프면 안된다는 긴장상태를 유지하다 보니 크게 아픈 일 없이 건강하다. 새로운 직장 문화도 경험하고, 새로운 (특히 젊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다. 물론 원래 만나던 사람들과 자주 못보고, 일상에 여유도 없어지고, 불면증도 생겼지만 한시적인 일이니까 참을만 하다고 느낀다. 
취직 면접을 볼 때마다 내 나이를 의식하고, 죄지은 것처럼 주눅이 들곤 했는데, 면접을 보고 아둥바둥 매달렸던 것이 무색하게 나를 필요로 한 곳이 생기고 하니까, 내년에는 또 어떤 일들이 다가올지 궁금하다. 2019년에 달군 엔진을 추동력 삼아 앞으로 쭉쭉 나가고 싶다.  

덧글

  • 신서희 숑숑 2020/01/02 00:29 # 삭제 답글

    와아~ 그럼 내년에는 선생님이 쓰신 드라마를 보게 되는 건가요? 벌써부터 두근두근 기대가 됩니다. ㅎㅎ
    새해에는 정말 정말 꽃길만 걸으시길요~~ 해피 새해입니다!!! ^^
  • 우람이 2020/01/02 10:29 # 답글

    2019년에 경사스러운 일이 많았네요! 올해도 그 기운이 쭉 이어가시길 기도할게요.
    블로그에 쓰시는 글 늘 감사하게 읽고 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D
  • 해리 2020/01/02 11:20 # 삭제 답글

    저는 딱 옆에 붙어있겠습니다. 내치지 말아주세요~ 이작가님^^ 올해도 꽃길 펼쳐졌으니 걸으시고~ 승승장구 쭉 이어가셔요
  • 달디단 2020/01/02 18:15 # 삭제 답글

    언니의 최고의 해는 2020년 올해 다시 경신될 것입니닷!!
  • 앤님 2020/01/04 16:41 # 삭제 답글

    원래 너무 운이 좋은 해는 “디비쫀다”고 이 사투리 아실랑가 머르겠지만 ㅋㅋ 뭐 그렇다고 하네요 꽃길을 위한 마지막 관문이 아니었을까 ^^ 잘풀리고 계신다니 듣기 좋아요
    다른 사람 잘된다는 얘기 들으면 기분 좋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작품 시작하시면 살짝 알려주세요 드라마 안보는 저지만ㅋㅋ 이요님건 예외로
댓글 입력 영역


2018 대표이글루_mov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