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시예찬 읽고

우리도시예찬
김진애 | 다산초당

김진애에 대해서는 항상 양가감정이 있는데, 이 책을 읽는 내내도 그랬다. 도시와 건축에 대해 유일하게 소리를 내고 정책을 바꿔나가는 여성이라는 점에서 기대하는 바가 있고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그녀가 만들어놓은(혹은 망쳐놓은) 인사동의 돌확과 우중충한 분위기는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알쓸신잡2'에 김진애가 나왔을 때도, 드디어 저 남자들의 정글에 여자가 나왔군 하는 마음으로 봤지만 첫회부터 목소리며 말투며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 시청을 포기했다. 
이 책을 보는 기분도 내내 그랬는데, 2003년도에 나온 이 책의 주장(그러니까 근본적으로는 2002년도에 조선일보에 실린 그녀의 주장)이 거의 현실이 된 2019년을 살면서 과거의 글을 보니 기분 참 묘했다. 싹 다 밀고 재개발을 하지 않은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전국 방방곡곡 똑같이 과거 흔적을 유리 안에 집어넣고 봉인 시킨 후 재생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놓은 비슷한 건물들이 수십 수백채가 넘어가니까 이건 이것대로 획일화라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하필 보존해 놓은 대부분의 건물이 일제강점기 때 근대 건물이라는 것 역시도 입맛이 썼다.

이 책은 2003년에 나왔던 책을 복간한 책이다. 복간에 부쳐 써놓은 글을 보면 발간 당시에서 하나도 고치지 않았는데, 그건 우리 도시의 변화속도가 너무 빨라 그 시간을 기록해놓은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걸 읽을 때까지만 해도 코웃음을 쳤다. 수정하기 싫어서 달아놓은 변명치고는 치졸하군. 그런데 읽다보니 진짜 10여년 만에 바뀐 것들이 너무나 많아 그 당시의 기록으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구나 싶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광화문에 세종대왕동상이 서기 전이었고, 부산 영화의 전당이 생기기 전이었으며, 동대문에 DDP가 있기 전이었고, 세종시가 생기기 전이었다. 하...10년 단위로 끊어봐도 우리 도시는 정말이지 빠르게 변하는구나 싶었다.
광장을 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시간의 개념으로 보는 건 참 마음에 들었고 신선했다. 내가 왜 그렇게 여의도 광장이 싫었는지, 광장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지 알게 되었다. 대체로 재밌게 읽었으나 두 가지가 아쉬웠는데, 하나는 도시를 너무 관광객의 눈으로 본다는 것과 또 하나는 첫째, 둘째, 셋째 하면서 기획서처럼 썼다는 것. 조선일보 기초의 책을 잘 읽지 않아서 이런 부분이 생소했던 것 같기도 하다. 
옛날 우리 마을의 집 앞에 있던 텃밭. 손바닥 화단 같은 걸 만들고 싶어 설치했다는 인사동의 돌확은 난 10년을 봐도 여전히 별로고, 바닥에 깔린 전돌 역시도 그렇다. (아무리 봐도 로마유적을 어설프게 베낀 느낌이다) 또 경주 쪽샘마을에 대한 찬탄 역시도 불편하다. 경주시민에게 쪽샘은 그런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운상가에 대한 애착도 나는 잘 모르겠다. 뚜벅이 입장에서 세운상가는 정말이지 걷고 싶은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주장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걸 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부러운 감정도 들었고, 또 광장이나 재개발에 대한 신선한 해석도 괜찮은 책이었다.  

밑줄긋기
166 _ 미사리 카페촌에 러브호텔은 전혀 없다. 이야말로 낭만적이다. 낭만이란 몸이 아니라 마음인 것이다. 낭만이란 같이 밤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같이 밤을 지새는 것이다. 그것도 '라이브'로.
187 _ 왜 이렇게 단지를 좋아할까? 집단주의, 안전주의 성향때문일까, 그 어디에 소속되려는 심리 때문일까? 물론 이런 소비자적 성향도 작용하겠지만, 대규모 단지 조성에는 '공급자적 논리'가 더 앞선다. 단지는 규모가 있으니 '큰 손'이 개입하기 좋다. 초기에는 국가와 공기업들이 주도했었고, 1980년대 이후에는 민간기업들이 주도해 왔다. 권력과 자본이 손을 잡은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정치인이나 관료들은 실적 보이기 쉬워서 단지를 좋아하고, 민간기업들은 큰 건으로 이익을 올리기 쉬워서 단지를 좋아한다.
216 _ '크게 또 빨리'가 20세기 도시의 열풍이었다면, 21세기 도시의 트렌드는 '작게 또 내 손으로'다.
253 _ 1960-80년대 우리 사회는 독재 사회이면서도 광장 알레르기에 시달리는 이중적 구조였다. 그만큼 절대적인 독재는 아니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절대 독재 사회에서는 과시용 광장이 많이 만들어진다. 구 소련 모스코의 붉은 광장, 무솔리니의 임마누엘 2세 광장, 히틀러의 뉘른베르크 광장, 중국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 평양의 김일성 광장과 같은 광장이 만들어졌을 법도 한데, 군사독재 정권 동안 우리 사회에서 광장은커녕이었다. 독재와 반복재, 전체성과 시민성이 충돌하는 사회 분위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안보와 국방력을 과시하기 위한 '여의도 광장'이다. 
256 _ 우리가 쌓아온 광장성이란 '필요할 때 순식간에 광장을 만들어 내는 마술적 능력'이다. '정서적 공감대가 이루어질 때'가 '광장이 필요할 때'다. 광장은 오히려 시간적 개념이고, 항상 광장이 거기에 공간적으로 존재해야 할 필요는 없다.
288 _ 찾기 어렵고 구성 요소가 워낙 많으니 직설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싶어한다. 간판은 그래서 많아진다. 전광판에 대해 너그러운 것도 플래카드 달기 좋아하는 것도, 직설적 소통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305 _ 여차하면 재개발, 재건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공공의 막연한 분위기 띄우기는 시민들의 터전을 불안하게만 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동네는 부동산이 될 뿐, 동네 라이프가 좋아질 가망은 희미하다.
306 _ 이제는 하고 싶은 열 개 중 한둘만 하더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소비자들이 그만큼 좋은 품질을 원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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