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요의 숨어있기 좋은 방

tripp.egloos.com

포토로그



예순여섯 명의 한기씨 읽고

예순여섯 명의 한기씨
이만교 | 문학동네

용산 참사에서 망루 진압의 시발점이 되었던 임한기라는 청년을 찾으려는 작가의 인터뷰 형식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이런 형식의 소설로 정아은의 <잠실동 사람들>과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이 있는데, <잠실동 사람들>은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고, <피프티 피플>은 초반 읽다가 그만뒀다. 집중이 안돼서 읽기 힘들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런 구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쓰는 입장에서는 손쉽기도 하고 매력있는 형식인데, 여간 잘 쓰지 않으면 읽을 때 흥미도가 뚝 떨어질 수 있다.
이 소설에선 이런 구조를 극단으로 밀어붙여 66명의 인터뷰이들의 말을 녹취록처럼 풀었다. 그 66명이 다 제각기 자신이 본 임한기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걸 종합해보면 한기는 심장이 잘 안뛰었고, 철로에서 자살하려다 살았으며, 등록금 구하려고 알바했으나 그 돈을 도박을 다 잃었고, 용역업체에서 일도 했지만, 재개발 지구에서 국숫집을 하던 청년이었다. 누구 눈에는 프락치로 보이고 누구 눈에는 다혈질의 정의로운 청년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를 죽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사라졌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용산 참사에 대해 잘 안다고도 잘 모른다고도 할 수 없다. 참사 당시에는 여러 기사와 책들을 찾아봤지만,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거나 이걸 개괄하여 정리해본 적은 없다. 다큐 영화 한편 본적 없고, 그러니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며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망루를 올린다는 게 어떤 건지. 
다른 지역 철거민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망루를 올릴 수가 없어요. 장정 삼사십 명은 있어야 올리기 때문에 십수 년 동안 망루는 늘 연대해서 올렸어요. 그렇게 올리고 나면 다른 지역에서 온 분들은 그날로 다시 돌아가요. 돌아가지 않으면 자기 구역이 침탈당하니까 경찰이 돌아가지 말라고 해도 서둘러 돌아가요. 그런데 돌아갈 시간도 주지 않고 입구를 막은 거잖아요. 그런데도 언론은 그렇게 보도를 한 거잖아요, 다른 지역에서 온 전문 시위꾼들이다, 이렇게. (176)

또 왜 이렇게 재개발을 하는 곳마다 이 난리가 일어나는 건지.
감정평가 산출 내역을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데 누가 공정하게 가치를 매기겠어요? 명도집행 고지 의무조차 없는데 누가 세입자와 협의를 하겠어요? 용역 내세우면 되는데 어떤 조합이 대화를 원하고, 정비업체 내세우면 되는데 시공사가 뭐하러 나서겠어요? 도정법, 도촉법, 민사집행법, 행정대집행법, 경비업법... 이런 것들이 전부 잘못되어 있어요. 다 힘있고 가진 자들에게만 유리하게 되어 있어요. 결국 세입자는 억울하게 쫓겨나거나 너무 억울해 싸울 수밖에 없어요. 일어나선 안될 일이 일어난 것 같지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난 거예요. (188)

그리고 용역과 시공사는 어떻게 얽혀있고, 그들 뒤에 누가 있는지.
자료를 살펴보니, 용역들 뒤에는 경비업체가, 경비업체 뒤에는 정비업체가 있었습니다. 경비업체 이사는 전직 경찰이나 관료들이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었구요. 정비업체 대표는 구청장과 향우회 회장, 부회장 사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재벌 시공사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출세에 눈먼 서장과 비인간적인 법률 조항들을 그래도 방치하는 국회의원들, 인기몰이에 급급한 시장과 대통령이 있었어요. (196)

다행히 장사를 하고 있지 않을뿐, 나도 수십년 동안 세입자였고, 지금도 세입자다. 앞으로 어느 시절에 가게를 꾸미고 장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일을 당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지금 당장 내 일이 아니기에 외면해왔다. 소설로나마 이렇게 몇가지씩 알게 된다.
이만교 소설은 발랄해서 좋아했는데, 이 소설은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발랄할 수 없고, 그래서 얇은데도 읽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밑줄긋기
29 _ 들어와서 제일 친해진 사람을, 나갈 때는 제일 원망하는 게 공시생의 고시원 생활이니까요.
60 _ 부동산이라는 게요,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게 아니잖아요. 보유세니 종부세니 양도세니 실거래가니 선분양이니 금리니 하는 정책 중에 아무거나 일이 프로만 올려도 오르고 내리는, 완전히 인위적인 거잖아요.
67 _ 사랑에 빠지면 다 변해. 나랑 만나는데 그대로면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 어떻게 사랑하는데 안 변할 수가 있어. 근데, 그러면 평소 모습이 그 사람일까, 아니면 연애할 때 나타나는 모습이 진짜 그 남자일까.
113 _ 돈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돈 버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비슷해 보여도 전혀 다른 거라고 생각해요.
147 _ 처음엔 정당한 보상비 받으려고 싸우지만, 나중엔 화가 나서 싸우고, 끝내는 억울해서 싸울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눈을 떠요. 엉터리 언론과 엉터리 경찰, 엉터리 정치인과 재벌들에 대해.
165 _ 감옥살이가 힘든 게 아니라, 재판 과정을 통해서조차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 나라라는 걸 확인하는 과정이 힘들었어.
169 _ "대학 졸업해서 대기업 취직하고 싶었는데, 근데 이게 다 대기업들이 하는 짓이잖아요, 대기업들이. 제 친구들 다 대기업 들어가려고 공부하는데 전 이게 정말 무서워요..."
175 _ 개발사는 이익만 추구하는 놈들이에요. 저희 주장이 합당하다고 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저희가 포기하지 않고 싸우니까 들어주는 것도 아니에요. 들어주는 게 자기들에게 더 이익이다 싶을 때 들어주는 거예요. 세입자가 너무 많으면 용역들을 이용하다가 용역 비용보다 세입자 요구를 들어주는 비용이 적겠다 싶으면 들어주는 거죠. (중략) 겉으로는 용역들과 싸우는 거지만 실제로는 용역 비용보다 적게들 때까지 버티는 거예요. 
181 _ 꽃조차 보기 싫어요. 세상이 엉망인데, 어떻게 저렇게 혼자 예쁘나 싶어서.



덧글

댓글 입력 영역




2019 대표이글루_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