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떠나는 뉴욕 보고

왓챠를 결제한 후 거의 하루에 한편 꼴로 영화를 보고 있다. 한달 모으면 스무편이 넘을 것 같아, 그 중 주제 비슷한 것끼리 묶어봤다. 보다보니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쭉 연이어 보고 있더라는 것. 여행 대신 영화랄까? 
뉴욕 라이브러리에서 (프리데릭 와이즈먼 감독)

이 영화는 왓챠 첫 화면을 훑어보다가 눈에 걸린 영화다. 개봉 당시 뉴욕 시립도서관 뒷마당(브라이언트 파크)이 나온 포스터를 보고 확 끌렸는데, 다큐라기에 관심을 껐던 영화다. 왓챠에서 공짜로(라지만 매달 결제는 하고 있음) 본다면 괜찮을 것 같아 눌러보았다. 영화 시작하자마자 리차드 도킨스가 이 도서관 로비에서 강연을 한다. 내용이 흥미진진하고 재밌어서 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이 영화에 빨려들어갔는데....며칠에 걸쳐 봤다. 왜냐하면 러닝타임이 3시간이 넘기 때문이다. ㅋㅋㅋ 한참을 봤는데도, 커서가 중간까지도 가지 않았다. 매우 긴 영화다. 
요즘 도서관이고, 강연장이고 전부 문을 닫아서 도서관 순례와 강연 세미나를 영상으로 본다는 느낌으로 보면 좋은 영화다.
내가 알던 뉴욕 라이브러리 본관 뿐만 아니라 뉴욕 곳곳에 있는 분관들의 모습도 나오고, 도서관을 운영하는 관장과 직원들이 회의하는 장면이 적어도 5번 이상 나오기 때문에, 보고 있노라면 내가 이 도서관 직원이 된 느낌도 든다. ㅋㅋㅋ 내가 일하는 서평원 월례회의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랄까?
 
뉴욕 여행 갔을 때 우리 숙소가 브라이언트 파크 근처에 있었다. 바로 옆에 있으니까 언젠가는 가보겠지 하면서 맨날 지나쳐 다녔는데, 결국 뉴욕 떠날 때까지 저 잔디밭의 녹색 의자에 앉아본 적이 없다. (사실 잔디밭이 저렇게 넓지도 않다. 포스터의 잔디밭은 센트럴파크와 합성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 저기 앉아서 야외 음악회 보는 게 꿈이었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저기서 뉴욕패션위크가 열리고 있었다. 하얀 천막을 쳐놓고 기자와 패피들이 북적북적했었지.

수준 높은 강연을 들으며, 도서관 운영의 어려움을 고민하며, 그 사이사이 뉴욕 도서관의 초록색 티파니 등과 어두컴컴한 복도, 고풍스러운 서가들을 마음껏 볼 수 있어 좋았다. 뉴욕 도서관은 당연히 공립도서관인 줄 알았는데, 카네기인가 누군가 여튼 재벌이 세웠고, 시의 예산도 들어오지만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프란시스 하 (노아 바움벡 감독 | 그레타 거윅, 미키 섬너, 아담 드라이버)

이 영화에서 그레타 거윅이 뉴욕 거리를 달려가는 장면은 그대로 <작은 아씨들>에서 시얼샤 로넌이 거리를 달려가는 장면에 겁쳐쳤다. 아...질주 장면에 이런 쾌감이 있구나, 멋지다 싶었다.
이 영화는 노아 바움벡의 초기작으로, <작은 아씨들>의 감독 그레타 거윅이 주연 배우로 출연한다. 이 영화 개봉 땐, 나는 노아 바움벡이 누군지도 몰랐고, 뉴욕의 예술가들 이야기인데다 흑백영화라길래 보고 싶은 마음이 1도 들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년이 지나 왓챠에서 발견하고, 이제는 노아 바움벡의 팬이 되어 눌러보게 되었다.

출판사에 다니는 소피와 동거하는 무용수 프란시스. 남자친구가 집을 얻어 함께 살자고 하는데, 소피 핑계를 대며 거절하다가 결국 헤어지게 된다. 아... 이 기시감 무엇? 여자친구와 남자친구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내 상황과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그렇게 푹 빠져 보고 있자니, 소피는 홀라당 다른 여친과 아파트를 얻었다며 나가버리고, 돈이 없는 프란시스는 부잣집 남자애들의 동거하우스에 빌붙고, 그런데 월세는 밀리고....어쩜 저렇게 타이밍 안맞고, 일이 안 풀리고, 답답한 인생이 있나 싶다. 최고는 아무도 못만나고, 아무 의미도 없이 2박3일 파리 여행 다녀온 거. 하아...진짜...돈도 없으면서 거길 왜 가니? 갈 이유도 없으면서? 프랜시스는 내내 한숨이 나오는 캐릭터다. 하지만 나 젊을 때는 안그랬나 뭐. 다 그런거지... 돈이 없는 예술가가 대도시에서 느끼는 곤란의 종합판인데다, 그 와중에 동성애와 이성애의 경계를 넘나들며, 계급 차이까지 보여주는 총체적인 젊음의 난국이다. 그 시기를 지나온 나에게도 재밌는 영화였고, 그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는 더 큰 감흥을 줄 것 같다. 흑백의 뉴욕은 내가 느낀 뉴욕과는 다른 느낌을 주지만, 클래식하다.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 (리처드 론크레인 감독 | 다이앤 키튼, 모건 프리먼, 신시아 닉슨)

이제 맨하탄 중심가를 지나 브루클린으로 가볼까? 
이 영화는 개봉 당시 보고 싶었는데, 빛의 속도로 내려가버린 뒤, 어둠의 경로를 찾아헤맬 때 절대 발견되지 않았던 영화다. 대신 검색에 <브루클린>이 정말 많이 떠서,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 대신 <브루클린>을 보게 되었는데, 그 영화도 좋았다. 시얼샤 로넌이 나온 여성 성장영화다. 그렇게 이 영화를 단념했는데, 왓챠에 떡하니 나오지 뭔가? 당장 눌러봤다. 

젊은 시절 집값이 싼 브루클린으로 이사온 부부는 이제 70대가 되어 엘리베이터 없는 6층에 살기가 너무 힘들어 집을 팔고, 엘리베이터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한다. 조카가 부동산 중개인이라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오픈하우스 하는 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들어와 집구경을 한다. 세 명의 후보팀이 이 집을 눈독들이자, 부부는 부동산의 도움없이 맨해튼으로 가서 직접 자기들이 집을 찾아나선다.
다이앤 키튼과 모건 프리먼이 부부로 나오는데, 둘의 분위기와 캐릭터도 좋고, 젊은 시절 그들의 로맨스도 참신하고 좋았다. 늙은 강아지의 수술을 보여주며 노부부의 삶을 은유하는 것도 좋았다. 그들의 조카딸로 나오는 신시아 닉슨은 <섹스 앤 시티>의 배우라 반가웠다. 마지막에 이모부부에게 욕해주고 돌아서던 장면 인상적이었다.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쟤네 집에 못가겠어요." ㅎㅎ 
무엇보다 집 보러 다니는 이야기다 보니 브루클린과 맨해튼의 동네 풍경, 집 풍경이 자주 나와서 원없이 뉴욕을 볼 수 있었다.
뉴욕 여행 중 브루클린 브릿지, 맨해튼 브릿지, 퀸즈보로 브릿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되면서 나도 뉴욕 좀 알게 되었다고 엣헴, 했던가. ㅋㅋㅋ 브루클린 브릿지 아래를 헤매다녔던 그때 생각이 많이 나는 영화였다. 

원더힐 (우디 앨런 감독 | 케이트 윈슬렛, 저스틴 팀벌레이크)

이번에는 코니 아일랜드다. 코니 아일랜드는 뉴욕의 저 아래쪽 끝에 있는 유원지다. 나는 뉴욕여행 중 혼자 코니 아일랜드를 다녀왔다. 이미 휴가철이 끝나 관람차는 멈추고, 해변에 사람 하나 없었는데, 희한하게 그 쓸쓸한 퇴락이 좋았다.

<원더힐>은 코니 아일랜드가 활황을 누리던 1950년대가 배경이다. 재혼하고 코니 아일랜드 대관람차 안의 집에서 사는 지니. 권태로운 생활을 이어가던 지니가 수상안전요원 믹키와 사랑에 빠지는데, 하필 남편의 딸 캐롤라인이 갱두목인 남편을 피해 이 집으로 오면서 삼각관계가 시작된다.

이 영화는 케이트 윈슬렛이 다했다. 끊임없는 두통을 호소하며 실제 할 말을 못하고, 불안에 무너지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처음 시작할 때 믹키가 "자신의 성격적 결함 때문에 비극으로 파멸하는 인물"을 그리겠다고 했는데, 바로 이 영화가 그런 비극이다. 지니의 아들이 계속 불을 지르는데, 나중에 정말 큰 일 치르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봤다.
우디 앨런의 <매치포인트>는 참 재미없게 봤는데, <블루 재스민>이나 <카페 소사이어티>, 이 영화는 재밌게 본 걸 보면 내가 나이 들어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다. 

덧글

  • 해리 2020/03/25 15:36 # 삭제 답글

    왓챠로 떠나는 뉴욕여행인가요~
    이요님 덕분에 저도 잠시 뉴욕의 기억을 꺼내어...봅니다. (애처롭다. 뭔가.ㅎㅎㅎ
  • 앤님 2020/03/25 16:59 # 삭제 답글

    저도 왓챠 무료 쿠폰 (3일짜리ㅠㅠㅋㅋ) 얻어서 보다가 급기야 크롬캐스트까지 사서 티비로 보는 지경에 이르렀슴다 ㅋㅋ 무료2주 볼 수 잇던데.. 이거 끝나면 저도 결제하겠죠...? 예견된 일ㅋㅋㅋ
    뉴욕은 영화에서 보면 참 멋있고 그런데 한번도 가보고 싶단 생각은 안들었네요 여전히 지금까지도
    여행 다녀온데가 배경이라 더 쏠쏠하게 보셨나봐요 코니 아일랜드는 왜때문애 혼자 가신건지! ㅋㅋㅋㅋ (하긴 여행가서 클럽 혼자 갔던 저를 대입하면 이상하진 않네예...)
  • 이요 2020/03/26 10:04 #

    저도 TV로 보는 방법을 연구 중입니다. 곧 그렇게 될지도...ㅎㅎㅎ 뉴욕은 영화에서가 훨씬 좋은 것 같아요. 실제 뉴욕은 너무 대도시라서 여행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능. 코니 아일랜드는 꼭 가보고 싶었는데, 너무 멀어서 친구들 데리고 가기는 좀 그렇더라구요. 반나절을 날리는 거라서. 그래서 친구들 귀국하고 한 친구랑 남았을 때, 그녀는 보스턴에, 저는 코니 아일랜드에 갔었죠. ㅎㅎ
  • 긴호흡 2020/03/26 09:58 # 삭제 답글

    <프란시스 하>!!!....그레타 거윅!!!!....^^
  • 긴호흡 2020/03/29 09:42 # 삭제 답글

    <내셔널 갤러리> 검색하니 안 나오네요, 안 보셨나봐요. 프레드릭 와이즈먼 감독의 <내셔널 갤러리> 추천요. 별 준비 안하고 그냥 미술관 훑어보는 것보다 최소 3배쯤은 효과가 좋겠다 싶더군요. 3시간짜린데 전 정말 한 번도 지루하다고 생각 안하고 잘 봤어요...무엇보다도, 작품을 보여줄 때 어떤 작품들은 직접 가서 한참을 들여다보는 정도의 시간 만큼 카메라가 길게 찍는 게 너무 좋았어요. 하지만 <라 당스>는 대체 몇 번에 걸쳐서 끊어봤는지 기억이 안난다는(...아니, 혹시 끝까지 못 봤을지도...ㅠㅠ) 그래서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는 진작 다운 받아놓고 안/못보고 있답니다. 컨디션 최절정일 때, 몸도 마음도 다 여유있을 때 봐야지, 생각만 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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