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T 읽고

무라카미 T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비채

티셔츠를 즐겨입는 하루키가 어느 잡지에 자기 티셔츠를 종류별로 소개하면서 쓴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예술의 전당에 다녀왔는데, 오며 가며 전철 안에서 다 읽어버렸다.
'책머리에'부터 구미가 확 당기는 이야기가 나온다. 가지고 있는 수많은 티셔츠 중 가장 아끼는 티셔츠가 뭐냐는 물음에 토니 타키타니 티셔츠라고 하는 하루키. 사진이 나오는데 노란 바탕에 파란색 글씨로 "TONY" TAKITANI House라고 적혀 있다. 하와이 마우이 자선매장에서 1달러에 샀다고 한다. 이 티셔츠를 사고 "토니 타키타니는 어떤 사람일까?" 상상하다가 소설을 썼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그 소설은 영화화되었다. 단돈 1달러로 자기 인생 최고의 투자를 했다고 하는데, 이 책을 안 읽을 수가 있겠는가? 하루키는 어떻게 하면 사람을 읽게 만드는 지 너무 잘 안다.
나는 토니 타키타니를 영화로 봤는데, 그 영화는 워낙 톤다운된 무채색으로 기억되어 그와 대조적으로 노란 티셔츠를 보고 깜짝 놀랐다. 책의 맨 뒤에 가면 토니 타키타니가 실제로 뭐하는 사람인지도 나온다. (스포일러라 여기 적지 않겠음)
하루키의 에세이답게 힘빼고 담백하게 썼는데, 그게 또 다 재미있다. 하루키는 티셔츠가 너무 많아 옷장에 다 보관하지 못해서 박스에 넣어서 쌓아놓았다고 한다. 이 에세이를 연재하기 위해 종류별로 보관된 박스에서 티셔츠를 몇장 꺼내서 사진 찍고 했단다. 하와이에서 1.99달러에 중고 티셔츠를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적는 바람에, 이 에세이 연재가 끝날 때쯤에는 하와이 중고 티셔츠 가격이 4.99달러로 뛰어올랐다고 한다. ㅋㅋㅋ 일본 사람들이 너무들 가서 사입으니까. ㅎㅎ
소개된 티셔츠 중에는 자주 입는 것도 있고, 자기 이름이 떡하니 인쇄되어 있어(자기 작품의 굿즈로 제작된 티셔츠의 경우) 한번도 안입어본 티셔츠도 있다. 사진만 봐도 예쁘다. 하루키는 글자만 박혀 있는 스타일을 좋아하지만, 나는 귀엽고 색깔 예쁜 걸 좋아해서 티셔츠 사진만 봐도 재밌었다. 하루키쯤 되면 티셔츠를 가지고도 이렇게 책을 만드는구나 싶지만, 재밌는 걸 어떡해?
나도 여름에는 티셔츠만 입는 사람이라 여기 나오는 각 지역 티셔츠, 마라톤이나 행사 기념 티셔츠를 보며 지금은 없는 내 티셔츠들을 떠올렸다. 십년 동안 입다가 갖다버린 신라의 달밤 티셔츠(영화 시사회 가서 받았다)는 빨간색에 박스티라 2002 월드컵 때 잘 입고 다녔다. 등에 박힌 김혜수와 이성재와 차승원의 얼굴이 노랗게 바래서 부스러기가 떨어질 때까지 입고 다녔지. 매년 여름수련회 마다 맞춰입곤 했던 티셔츠들 가운데서도 즐겨입었던 게 많은데, 이랜드였나 헌트였나 처음 런칭했을 때 사입었던 녹색 공룡스티커 붙은 티셔츠도 오래 입었다. 넓적한 파란 줄무늬가 있는 긴 티셔츠는 잘 찾아보면 대학 1학년때부터 거의 매년 여름 사진에 등장한다. 이렇게 떠올려보니 책 한권이 나올만 하구나 싶기도 하고, 만약 나에게 이런 걸 쓰라면 어떤 물건으로 쓸 수 있을까 떠올려보니 가방 정도려나? 손수건이나 에코백도 있다. 하지만 그 물건들도 이사다 미니멀리즘이다 하며 죄다 갖다버려서...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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